지금 스튜어트 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5
제임스 프록터 지음, 손유경 옮김 / 앨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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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은 내게 고향집 담벼락 같다. 사실 내게 실제 고향이라는 것이 없는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마을 어귀부터 친숙한 고향의 느낌은 먼길을 달려온 마음을 무장 해제 시킨다. 스튜어트 홀이 내게 그렇다. 일종의 '사상의 고향' 같은 것이다. 물론 비 온 날 아스팥트 위에 고인 물만큼 얄팍한게 내 사상의 깊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양해를 해야한다. 하지만 동네에 하나 쯤 있던 바보들에게도 고향은 고향인 법이고,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음악 매니아들 중에는 최신 팝송에서 시작해 거꾸로 음악의 연원을 쫓아가는 경우가 있다. 마이클 잭슨을 듣다가 로버트 존스의 블루스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내게 '맑스'로 가는 그 사다리의 양 축에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과 '문화연구' 가 있었다. 물론 이런 흐름이 맑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볼 수도 그렇지 않다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자면 맑스 이후 모든 사회학은 도전이든 응전이든 확장이든 모색이든 맑스에 답을 했다.

나같이 '딴따라'를 좋아하는 학생이 '대중현상과 대중문화' 에 관심을 갖는 '문화연구'에 등을 돌릴 리가 없다. 특히 내가 대학을 입학 했을 때는 소위 '정치경제 시대'의 하락기와 '문화시대'의 상승이 겹쳐지는 시점이었다. 강내희를 중심으로한 <문화연구>라는 계간지 역시 내가 대학 다니는 동안에 첫 호를 찍었다.

내게 너무 친근한 스튜어트 홀이지만 그래봐야 그는 B급좌파다.(김규항이 B급좌파라는데 아무래도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재즈에서는 B급 뮤지션을 대개 '재즈사에 큰 흐름을 주도할 만한 뮤지션이나 장르의 중심적 인물은 아니지만 뛰어난 연주력과 재능으로 재즈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든 사람들' 정도로 본다.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찰리파커,마일즈데이비스 같은 이들은 A급 자격이 있다. 대신 소니스티트, 제리 멀리건, 리 모건 , 레이 브라이언트 뭐 이런 뛰어난 연주자들은 B급연주자라고도 한다. 이들의 실력이 결코 A급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튜어트 홀 역시 그런 의미에서 B급이다. 요즘 각광을 받는 슬라보예 지젝같은 학자도 이런 기준으로 보면 B급 좌파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지금 스튜어트 홀>은 입문서로서 상당히 잘 씌여졌다. 스튜어트 홀의 사상적 편력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홀이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면서 끊이 없이 자기를 갱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잘 포착해 냈다.

문화연구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스스로에게 "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긴박함 앞에서, 문화연구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스튜어트 홀의 방식이다.그는 자신의 작업이 결코 자기충족적이며 통일된 형식적 이론으로 읽히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생각의 밑 바닥에는 '비결정성'과 '국면적 특수성' 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스튜어트 홀은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스튜어트 홀의 작업 방식에서 매력을 느끼는 점은 이렇듯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때문이다.

"유일하게 해볼 만한 이론은 내가 완전히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싸워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저자 제임스 프록터의 글은 크게 '스튜어트 홀'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문화연구자 창시자로서의 홀이다. (내가 주로 배웠던 것이 이 시기의 그이다.) 그는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정치적으로 '대처리즘'과 충돌하게 되고 현실을 텍스트로 둔 그답게 이 문제를 통해 영국 문화정치의 분야를 건드린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정체성'의 문제,'디아스포라'의 문제로 건너간다.

스튜어트 홀은 "문화의 문제는 단연코 정치적인 문제이다" 라고 말한다. 문화를 단순히 향유하는 작품수준으로 이해하는 순수 미학자들에게는 불손하게 들릴 말이다. 그들은 문화는 그저 고도의 지성과 따뜻한 감성으로 즐기는 것 뿐이지 결코 '정치'적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또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구성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반 믿는 것 같지 않다.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리비스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길게 설명할 것 까진 없고, '문화/문명'의 이분법적 구분이다. 대중문화로 부터 고급문화를 지켜야한다는 입장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보는 아도느로는 대표적으로 안티-대중문화자였다. 이에 비해 뒤에 등장하는 레이몬드 윌리엄스,리처드 호가트,에드워드 톰슨 같은 이들은 대중문화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흔히 '좌파 리비스주의'라고 불리운다. 이유는 그들이 대중문화의 역학을 인정했지만 대중문화 내에서 '고급'대중문화'/ '저급' 대중문화를 구분짓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홀 역시 크게 보면 이 '좌파 리비스주의'에 들어가는데 물론 전임자들에 비해 조금 더 발전한 입장이다. 스튜어트 홀은 대중문화라는 곳을 '투쟁의 장' 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스튜어트 홀은 구좌파 맑시즘의 경제환원론적 문화주의에 선을 그어야만 했다. 구좌파 미학에서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전통적인 계급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스튜어트 홀은 이를 단연코 거부한다. 홀이 주목한 점은 뿌리없는 대중문화의 양가성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상징장치가 될 수 도 있지만 그 반대의 의미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튜어트 홀은 '대중문화'의 수동성 대신 그 '능동적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미디어의 효과 이론으로 보자면 초기 미디어 연구의 '강효과이론'에서 '상호효과이론'으로의 전환정도에 해당한다.(실제 이 모든 효과들이 동시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작용한다.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어트 홀 역시 '대중문화안에서의 위계'에 대해 인정한다. 그는 민속 예술/ 집단예술 사이 쯤에 '대중예술'을 둔다. 그가 '탈인격화되고 비독창적인' 집단 예술을 낮게 평가한다.

 "가장 우수한 재즈와 마찬가지로, 가장 훌륭한 영화는 고급예술을 향해 나아간다.그러나 보통 영화나 팝 음악은 집단예술로 변해간다"

이건 사실 대중문화에 대한 옹호자들 역시 한번쯤 걸릴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원더 걸스의 "SO HOT" 과  메르세데스 소사의 " 생에 감사해" 를 같은 대중문화라고 똑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다.)

스튜어트 홀은 방법론적으로 '구조주의'와 '문화주의'를 절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문화주의는 사회 변동의 동인으로서 산 경험을 중심에 둔 반면 구조주의는 경험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언어와 문화의 효과라고 주장한다. 홀은 마르크스의 결정론에 반대하면서도 '보증없는 마르크스주의' 예를 들자면 마르크스주의에 의문을 품고 넘어서려는 비판적 마르크주의를 선호한다. 스튜어트 홀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알튀세르적인 구주조의'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구좌파적으로 착각의 산물이라고 여기지 않고 우리가 우리 존재으 실제 조건들을 상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표상들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기호적 특성을 강조한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기호로서 작동한다면 당연히 기호/기호화의 문제 역시 중요해 진다.그가 매스 커뮤니케이션 비평분야에 남긴 족적은 이와 상관이 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말 그대로 '구조'를 강조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여기서 스튜어트 홀은 이것을 시대를 꺼꾸로 돌려서 그람시로 돌파한다. '헤게모니론'을 활용하여 '대중문화의 공간이 투쟁의 공간'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이 말은 '대중문화'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국면적으로 끈임없이 지배/저항사이에서 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러시아의 발렌틴 볼로시노포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에서 빌어온 '다악센트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대중문화에 성격에 대한 견해를 펼친다. 이것은 '반본질주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가 단순히 한 계급의 성향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며 그 의미 역시 관계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액센트를 갖는 다는 말이다.또한 이것은 '기호'의 해독 문제와도 관계 있다.

"기호는 늘 새로운 악센트를 부여받게끔 되어 있으며 의미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 즉 언어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에 전적으로 뛰어든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미디어의 메시지) '소비자가 생산자다'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서 스튜어트 홀은 '선호된 의미'라는 말을 넣어 둠으로써 '평등하지 않은' 다의미성에 대해 말한다.

스튜어트 홀은 이렇게 '대중문화'에서 '맥락성','관계성', '비본질성' ,'수용자의 능동성' 등을 읽어냄으로서 억압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저항과 반역의 도구로서 '권력의 배치'를 바꾸는 역할이 가능하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튜어트 홀은 '대처리즘'에 관심을 갖는다. '대체가 도대체 왜 승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실제적인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 정치 상황과 비교해 봐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홀이 보기에 대처의 승리는 '이미지의 승리'였다.

"이데올로기로서 대처주의가 한 일은, 사람들의 공포.불안.정체성 상실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것은 정치를 이미지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대처주의는 우리의 집단적 환상,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영국, 사회적 상상력에 호소한다. 좌파가 '자신들의 정책'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대처 여사는 이러한 이슈들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대처의 이데올로기 프로젝트의 정점에 '포틀랜드전쟁'이 있다. 여기서 대처는 '도덕적 원칙' 제국시대 영국의 위대함' '애국심과 가부장제'등의 이데올로기 재현에 힘쏟는다. 결국 '퇴보적 근대화'라는 무기를 통해 '대처'와 반대에 서야마땅할 '흑인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어낸다. 홀은 전혀 압뒤가 맞지 않는 정세와 이데올로기를 매칭시키는 대처를 '독재적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스튜어트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우파를 칭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도그마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좌파를 구원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 다닐때 우리 교수님은 파업 현장에선느 그렇다고 쳐도 ,노사 협상에서 노조가 수염을 기르고,붉은 띠를 두른 것이 어떻게 이미지 정치화되는지 생각해보자가 말씀하셨다. 사측은 '합리적' '타협적' '신사적' '이성적'인 이미지로, 노조의 주장은 -주장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 '비타협적' '야만적' '폭력적' 으로 TV를 보는 일반인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진보정치에 있어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왜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대학 과방같은 분위기여야 하는지? 왜 모든 사무실에서 그렇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야하는지? 이것이 물론 내가 부르즈아적 세련미를 존재조건으로 갖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재고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진보정당들이 이미지 정치를 잘 모르고 그것을 쓰는 것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다.

이제 스튜어트 홀은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간다. 흑인 문제와 관련해서 홀은 두 단계로 흑인 운동의 특징을 말한다. 특히 '정체성' 보호를 위해 나온 '선량한 흑인'이란 개념이 담론의 영역 안에서 또 하나의 '전체성'을 갖는다는 시각이다. 이것은 예를 들자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현재 우리의 시각의 한 단면의 예로 활용될 수 있다.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선한 아시아 노동자'라는 개념 역시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차분하게 봐야 한다는 점 말이다.

오랜 만에 문화주의자들의 이름을 불러 보니 한 편으로 반갑다. 우리가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주의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문화주의가 흔히 받는 비판인 '정치경제학적 결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나아가야 한다. 그것을 '문화이론을 왜곡하고 곡해한 것이다' 라는 방어적인 태도로는 더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 스튜어트 홀>은 아주 훌륭한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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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 독일, 서유럽, 미국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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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에게 권력을'

'웃음이 우리의 정치적 깃발이다'

마치 2008년의 '촛불집회' 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말 같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40년이나 묵은 슬로건이다. 

올해는 '68 혁명' 40주년이다. 반짝이는 희망의 촛불을 등불삼아 지난 역사를 읽기에 금상첨화의 해이다. 역사를 대할 때 66으로 불어난 몸매를 잊은채 55사이즈에 억지로 맞추려는 강제 대입 강박증만 경계한다면 말이다. 역사는 반면교사가 될 때 무덤에서 기어나온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난 다음 싸늘하게 등을 돌린 예 여인처럼 '정세'와 '정황'을 읽어야 한다.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큰 차원에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미시적인 반복이 동시에 발생한다고도 생각한다. 무슨 대단한 역사관은 아니다. 그냥 살아보니 그런 것 같다는 아주 민중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책 <68운동>(혁명이 아니라..)은 상당히 얇은 분량이다. 또 건조하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결코 흥미진진하게 혁명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 책에는 혁명의 낭만이나 후일담같은 것은 끼일 자리가 없다. 그녀가 68을 바라보는 전체적 시각을 먼저 간단히 설명해야 겠다. 그녀는 68혁명을(내겐 이 말이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기로 한다.) 68년에 한정된 운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식적인 말이다.) 68년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중반까지 이루어지는 '68혁명'의 정점에 해당하는 해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 저항운동을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전 사회적인 대항구성을 보유한 최후의 저항' 이었다고 본다.  쉽게 말하자면 '68혁명' 만큼 그 이후에 파급이 큰 '기성 체제 도전'을 상정한 운동은 없었다는 것이다. 

홀타이는 68혁명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68혁명은 분명히 실패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은 '문화혁명'으로 존재하는 68의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68은 영원하다.' 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촛불'의 상상력을 직접 68과 연계시키기도 한다. 나는 이 말도 부분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68혁명이 실패했다고 말한 저자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아렌트가 야스퍼스에게 쓴 편지를 재인용하여 이렇게 말이다.

" 우리가 1848년에서 배우듯 다음 세기의 아이들은 1968년에서 배울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68혁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단지 6-70년대의 락음악과 포크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말고도 말이다. 어쨋거나 레토닉으로 끝없는 승리를 외치는 것은 잠시 중단하자. 그렇게 따진다면 '민중의 역사'가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낭만적 도취로의 회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결코 그 '혁명'의 위대함과 의미에 흠집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언제나 승리할 수 만은 없다는 '겸손함' 정도는 갖고 있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68혁명은 전세계적이었다. '촛불집회'가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일부인지 아니면 국내적 운동인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반세계화운동에서 항상 중심적인 것이 '먹을거리'와 관련된다는 점,그리고 이 운동이 '다중'을 중심으로 작동된다는 점등은 시간적으로 68처럼 집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흐름에 포함시킬 수 있을 여지가 충분하다. 이 책에서는 68의 주도세력들을 이념적으로 상징하는 글이 세 권 소개된다. 프란츠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체 게바라의 <제2.3의 더 많은 베트남을 창출하자> 그리고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이다. 이 책들이 상징하는 것은 68혁명의 '제 3세계 해방구상' '비타협전략' '체제거부를 통한 새로운 인간상 구현' 이라는 주요 주제를 대표한다.  구체제뿐만이 아니라 구이념과도의 결별이다. 사회학에서는 이 흐름을 신좌파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신좌파도 신-신좌파에게 밀린다. 언젠가는 신-신 좌파도 신-신-신 좌파에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힘써야하겠지만
 

 68혁명과 촛불집회가 가장 큰 변별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 우선 집회의 주체가  다르다. 68이 대학생과 노동자들 중심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봐서 '촛불'이 훨씬 더 '진화' 한 것이다. 대신 이로부터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태도'와 '체제 도전'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다르다. 촛불이 결코 68이 될 수 없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68에서도 폭력문제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순수한 비폭력주의' 에 동의하지 않았다. 68은 현실적으로 '폭력'이 강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하지만 가장 정작 중요한 차이는 '체제 도전' 문제이다. 68이 도전했던 것은 '정권' 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 동안 인류가 이룩해 놓은 모든 기존 체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것이다. 여기에는 구좌파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4.19혁명, 87혁명, 그리고 촛불집회 보다 훨씬 어머 어마하고 거대한 기획이다. 이 점이 이해되지 못한다면 앙꼬 없는 단팥빵으로 68을 이해하는 것이다.

홀스타인은 미국,프랑스,서독,이탈리아의 68혁명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붕괴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려낸다. 한 형제라도 아이들 마다 장단점이 다르듯 비교사적 분석으로 본 68의 성격도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결합된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반베트남 운동'의 불이 좀 처럼 붙지 않는다.68년에 시위대에 쫓겨 도망다닐 운명인 드골이 서국 국가중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68년도에 다른 국가에서 몇 년간에 걸쳐 축적된 운동 성과를 단기간에 추월하면서 68년에 가장 폭발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만 독특하게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학생들의 힘을 실어주었다. 이 책이 조금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구체적인 행동이나 사건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보다 조직의 운동노선과 이념간의 갈등 등을 중심으로 68이라는 사건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백가쟁명처럼 분출되는 담론과 실천들을 따라가면서 68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적인 그림을 객관적으로 잡아가겠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 듯 보인다. 따라서 흥분하지 않고-하지만 읽다보면 '야..여기서 이렇게 가는거야' 하며 흥분하게 된다.- 정도를 따라 68을 읽어 낼 수 있다. 물론 68이 갖는 후속적인 문화 변화의 내용이나 후 논의등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조금 양에 안찰 수 도 있다.  

68혁명이 붕괴되는 과정과 다른 형태로 전화되어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들이 많다. (촛불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 집권당은 보수대연합을 조속히 이루어내 공룡여당으로 어리버리한 야당을 동원하여 국회개원을 했다.)

 홀타이의 말을 그래도 인용해보자.

'사회현상은 유동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렵고 동원국면이 지나면 와해된다.사회운동은 특수한 과제가 있는 조직으로 바뀌거나 기존 정당에 흡수된다.사회운동은 조직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으면 복잡하게 얽힌 소집단이나 하부문화적인 생활방식 혹은 특수한 세대의 기억 공동체 속으로 용해된다.그로 인해 일상문화의 다양성은 커지지만 원래의 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화된다.'

한윤형인가 하는 인터넷 논객을 자처하는 친구가 모 잡지에 실은 글에서 최장집의 '대의정치부활'을 조금 넓은 의미로 이해하면서 현재 진보 정당의 헛질을 비판한 것을 읽었다.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나키즘적인 혁명을 촛불에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면 '조직'과 '정당'의 역할에 대해 그렇게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68혁명도 개인의 자유를 조직의 자유보다 앞세웠으나 그것을 추동하는 조직들의 연대가 있었다. 한윤형의 표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민주노동당은 촛불 초기에 앞서 나사보려다가 망신당했고,진보신당은 '아고라의 자식'이 되어서 칼러 TV만 들고 쫓아다녔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촛불' 집회에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활약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C8 도대체 이 말을 몇 번이나 더 '진보'인사들에게 해야되는지..) '조직은 뒤로 가라,당은 필요없다 '는 이론적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현실정치의 냉혹함의 메커니즘과 그를 통해 작업할 수 있는 전술이 필요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88만원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이 그랫던가? (기억안난다.) "개인을 억압하는 조직이 필요없다는 것이지 전술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오늘 아침 나는 웃긴 상상을 했다. 하지만 공포스러운 상상이었다. 만약 이명박이 도박사적 기질을 발휘해서. 정치적 도박을 한다면..(물론 현실적으로 절대 그럴 일은 없다.그러니까 상상이다.)

2MB퇴진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촛불에게 이명박이 국민담화를 통해

" 그래 알겠다. 나도 드럽다. 그렇다면 한 달내에 대통령직 재신임 국민투표를 하겠다.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 " 라고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거리의 촛불은 '승리'했다고 환호를 보냈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을 곧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거리의 흥분'된 상황에서는 곧 넘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의 시간을 거쳐 투표를 했다면 100일 조금 넘긴 이명박이 불신임되었을까? .... .... .... 온건한 사람들의 '아무리 그래도 1년도 안되었는데'부터 해서 노인들의 '동정표',등등 ...헌정질서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등등...하여간 '중도보수표의 대결집'이 이루어졌을 테고, 이명박은 지난 대통령 선거때보다 높은 지지율로 재신임되었을것이다.

아니라고 믿는다면 '찬물'로 샤워하고 다시 생각해봐라.

그 때가 되면 촛불이고 뭐 나발이고 없는 거다. 치명적인 거다. 이명박이 말하겠지 "여러분이 하자는 대로 국민투표까지 했다. 그런데 국민의 다수가 여전히 나를 지지하고 있다. 당신들은 이제 할 말 없다.'

좀 웃기게 썻으니까 끝까지 기조를 유지하면 '진보고 촛불'이고 당분간 박살나는 거다.

1968년에 국외까지 도망갔던 드골이 그랬다. 총선거라는 전술로 말이다.

68혁명을 이야기하다가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첨부터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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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세미나리움 총서 12
에릭 홉스봄 지음, 김정한.정철수.김동택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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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역사의 지속성을 폭파시키기에 충분한 남자.........

                                                                     발터 벤야민<역사철학테제>

 에릭 홉스봄은 포스트모던한 시대 조류에서는 구세대에 속하는 경직된 역사학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여전히 '민중'의 역사에 대해 말한다. 홉스봄이 특히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는 '노동자','농민' 들은 창졸간에 호적정리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역사로부터 망각된 '민중'이라는 사람들을 불러 일으켜 세우는 것이 자신의 필생의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조지프 미첼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나나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큰' 사람들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라 불린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홉스봄의 러브레터를 압축해 놓은 것이다. 예전에 실렸던 글들을 다시 재편집해 놓은 것이라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글들이 찜찔방 나들이 나온 대가족들 마냥 오손도손 모여있다. 홉스봄 학문을 관통하는 저류에 대한 일관성이야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원에 틀어 놓은 수돗물 파이프를 따라가듯 글의 흐름이 일관되게 콸콸콸하고 터져나오는 것은 아니다.

 1부는 영국 역사 중에서 특정 시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지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홉스봄은 '러다이트운동'과 '기계파괴자'를 구분하고 있다.'러다이트'라?  전형적인 상식 세계사 수준으로 나 역시 '러다이트= 기계파괴'운동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중간 중간에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난 자료들을 좀 찾아 읽어야 했다. 1부에서 가장 흥미있는 대목은 '제화공들의 정치성'이라는 글이다. 단 한번도 '제화공'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 이 장은 아무런 사전 준비없이 순간 순간 놀라면서 읽을 수 있었다. 19세기라는 혁명기 속에서 제화공들은 정치적 급진주의자들이었다.  홉스봄은 제화공들의 조직구성과 독특한 노동 방식,그리고 그들의 작업장이 가진 공간적 특징, 또한 제화공들이 가진 신체적 핸드캡의 역사적 전통들을 따라가면서 변혁정치내에서 제화공들의 잊혀졌던 위상들을 일깨운다. (똑같지는 않지만 영국 제화공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전자본주의 단계에서 사회문화적으로 연구해 볼 만한 한국의 보붓상들이 떠올랐다.) 홉스봄은 제화공들이 시골의 지적,정치적 삶의 대변자였으며 시골의 지식인이자 숨은 은자와 같은 교육자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좌파 예술의 도상학에 대한 부분도 1부에서 흥미있는 글 중에 하나이다.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필두로 좌파 예술에 나타나는 사회주의적 도상의 역할과 변화에 대해 재미있는 글을 만나게 된다. 가슴을 드러내고 민중을 이끌던 여성이 사회주의 혁명 단계에서 강한 근육질을 노동하는 남성상으로 바뀌게 된 추이가 흥미진진 하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사회주의 운동과 아방가르드 예술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9장 역시 예술의 사회사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볼 만한 대목이다. 초기에 우호적 관계에 있던 아방가르드 예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노동운동으로 부터 분리되고 비난받게 되는지가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미학론에 영향을 받은 건축들이 '전원도시'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한다.

2부의 주인공들은 농민들이다. 11장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을 한다. ' 농민을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흔히들 '노동자,농민'을 함께 묶어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농민'은 '노동자'와 다른 독특한 역사와 성향을 갖는다. 이때문에 과거 트로츠키같은 사람들은 변혁 주체 설정에 있어서 '농민'을 배제하고 '노동자' 중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홉스봄 역시 '농민'들에 대해 '아이구.. 불쌍한 우리 농민들..' 하는 식으로 온정주의적 방식으로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농민들이 가진 인식의 편협성에 대해 그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한정된 지역 바깥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고 또 무력하다는 사실은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보다 큰 국가로 자리잡은 시기에도 농민들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라고 말한다. 홉스봄은 여기서 출발하여 외부의 개입이 없는 일반적 농민운동이 비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한다.19세기 말 러시아에서 나로드니키가 강력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홉스봄의 강조점은 '농민'들이 가진 역사적 특수성과 인식론적 특성을 정치,사회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는 이어지는 장에서 '토지점거'에 대한 농민들의 유연하고도 장구한 운동 방식에 대해 서술한다. 세대와 세대를 걸쳐서 가끔 전복적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일시적 후퇴를 용인하면서 이루어지는 긴 호흡의 투쟁의 역사는 끈끈한 감동을 준다.

 이어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20세기 낭만적 의적으로 묘사된 산적 줄리아노다. 홉스봄은 '민중주의'를 가진 소영웅의 씁쓸한 결말을 통해서 '사회의식이 있는 산적이 아무리 민중의 사람을 받고 그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더라도' 훌륭한 정치적 판단력과 목표와 조력자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지배계급의 볼모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홉스봄의 관점을 '포뮬리즘'에 대한 경계로 읽을 수도 있을 법하다. 줄리아노가 활약했던 시대 분명히 대중들은 산적의 의협심과 민중주의에 환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게 썩어빠진 관료들보다 우리를 위한다는데 그게 뭐가 나빠?' 라는 상식적 반응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홉스봄이 지적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설령 그것이 '반관료적이고 반권력적'일지라도 ,또한 그것이 '민중주의'적 인 것일지라고 그것은 나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사학'에 승부를 걸고 그 '수사'에 대한 몰입으로 자신을 입증하는 대중의 정치적 움직임에 대해 진지한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설령 그 결과가 단기적으로 해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그런 '수사학의 포퓰리즘'은 진보 정치에 있어서도 장기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위한 도정에 안개를 뿌리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물론 수사학을 잘 이용하는 것도 대중정치의 덕목이다.진보의 순수성이 가끔 놓치기도 하는)

요즘 사태와 연결시켜서 '난무하는 수사학'에 대해 언급해본다면 '이명박 타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반이명박'이 정체성인 양 작동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정치적 정체성의 부재이다. 즉 '반이명박'은 하는데 그 다음이 뭔지 모른다는 것은 '내거티브'한 전술이 '정체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이고 역사적인 예가 선거때마다 출몰하는 '비판적 지지'라는 유령이다. 실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지 못하고 결정적일 때는 객관식 중 하나를 고르는데 만족하며 대신 '진보적 수사학의 포퓰리즘'에는 환호하는 것. 한국의 기회주의적 우파들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정작 중요한 사람들인 스스로를 진보의 화살표쪽에 조금 더 가까이 위치시켜 놓는 다수의 건강한 시민들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상대의 악에서 나의 정당성을 끄집어 내는 것은 노예의 철학이다.' 라고 니체를 인용한 듯한 말을 한 사람은 유명한 진중권이다. 그러니까 결국 '반 이명박'을 넘으라는 말이다.

홉스봄의 이야기하다가 또 삼천포로 갔다. 뭐 인생이 그러려니 하자..

홉스봄의 재즈 이야기는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큰 편이었다. 주로 책 서문들을 오려 붙여놓은 인상이 강했다. 재즈에 대해 어느정도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별 다른 흥미를 못느낄 것 같고 또 재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루해만 할 것 같다. 그나마 재즈의 사회사라는 측면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재즈'나 '1960년대 이후의 재즈' 편은 읽을 만하다. 특히 홉스봄의 시각에서 중요한 점은 '재즈의 성격'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와인 붐이 불기 전에 살짝 넘실거렸던 한국의 재즈붐을 생각해볼 때 교과서적이지만 또한 중요한 시사점을 읽을 수 있다. 홉스봄에게 재즈는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음악이다. 그는 초기 재즈 성장에 있어서 이런 성향을 끌어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좌파들 중에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는 점을 말한다. 물론 모든 전위 예술들은 어떤형태로든 원형과 정신이 탈취되고 상업주의의 옷이 입혀져 지배적인 대중문화로 자리잡는다. 즉 대중이 만나는 문화는 어떤 출발점을 갖더라도 결국 '상업주의'의 옷을 입고 만나게 된다. 재즈 역시 이와 유사하다. 이제 우리에게 재즈는 분위기 좋은 카페, 낯선 외국 양주, 이름 모를 이태리 안주와 어울리는 음악이 되어버렸다.

홉스봄의 지적을 들어보자.

"재즈는 바로크 음악처럼 교양인을 위한 패스티시나 고고학적 유물의 형태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재즈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이다....이제 재즈는 별 수 없이 일종의 클래식 음악과 같은 것으로 변모하고 마는 것인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경제적으로 윤택한 중년의 중산층 관객이나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재즈 예술가들이 거의 한물간 양식들로 채워진 레퍼토리를 라이브로 연주하는 일종의 보편적인 문화유산으로서 말이다."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을 사람도 있지만...요즘 재즈는 분명히 홉스봄이 말하는 그런 패스티시같은 성향이 있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팝이나 락은 애들 듣는 것 같고 클래식은 좀 지루하고 적성에 안맞고...재즈는 적당히 고상하면서 또 적당히 즐길 수 있어서 나이 들어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했다. 덧댈말이 없을 만큼 아주 전형적이다. '나이'에 담겨진 사회적,경제적 속성들을 행간 속에서 읽으면 더이상 부연이 필요없이 홉스봄의 지적과 똑같다.  

또한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대해서도 홉스봄의 말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어딜 가나 왜 'FLY TO THE MOON' 인지...그리고 일본 비너스 레이블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에디 히긴스 트리오시리즈는 홉스봄적인 의미에서 정말 지겹다. 미국의 재즈가 진 자리에 유럽재즈가 등장했 듯이 요즘 국내 재즈 음반들을 보면 유럽쪽 브랜드들이 더 많은 다양성과 재미를 준다.

홉스봄은 역시 노인네다. '노동자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시대에 여전히 '대문자 L' 로서의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중'의 시대에 여전히 '민중'에 대한 추억거리를 들먹인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정 정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도  가끔 땅에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영화를 떠올린다. 그런 장면들이 가끔 나오지 않던가. 마을의 위기를 구하는 중요한 한 마디를 건네는 어느 현명한 노인들...  

 "우리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식의 정원에서 소일하는 무위도식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니체 <삶을 위한 역사의 유용성과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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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람시에게로
칼 보그 지음, 강문구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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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 하면 떠오르는 '헤게모니'다.  나는 '헤게모니'하면 먼저 두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는 그 단어를 처음 접했던 대학 신입생때 일,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기말인가, 세기 초인가 월간조선 조갑제가 '그람시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라고 곡을 외쳤던 칼럼이다.

대학 들어가서 처음 들었던 수업에서 강사는 '헤게모니'란 말이 있는데 아냐고 물었을 때, 찍기 세대인 우리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강사는 칠판에 축구장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가운데 하프라인을 그렸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그리고 '헤게모니'는 모두 축구장에서 알게된 용어다. 나중에 같은 과 딴따라 동기는 락 밴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헤게모니'였다. 그 친구는 아직 결혼도 안하고 기타 치고 있다.

네이버 검색에 친절하게 나오는 그람시의 '헤게모니'를 그대도 옮겨보자.

"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 Prison Notebooks》에서 계급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 단지 힘의 위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제도, 사회관계, 관념의 조직망 속에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이해()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종속집단인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상식적이며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당시 '동의'라는 말과 '상식적으로 받아들인다' 라는 말은 대학 신입생인 내게 자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만큼 충격적이었다. 저 말은 내가 지금 믿고 내가 지금까지 따라왔던 '상식'이라는 토대가 사실은 일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봤던 조갑제의 칼럼에 배꼽을 잡았던 기억도 난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조갑제는 소련의 붕괴 이후 갈피를 못잡고 있는 좌파들이 신좌파라는 이름으로 그람시라는 유령의 깃발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해하고 가장 잘하는 저질스런 방식으로 그람시에 대해 설명했다. 아마 결국 폭력혁명하자는 맑스파의 불순분자들의 중간 오야붕쯤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배꼽 찾는데 한참 걸리게 해준 사람은  카랑카랑하던 진중권이었다. 그는 먼저 조갑제에게 애써서 좌파들이나 보는 그람시를 읽어준 노고에 감사했다. 그런데 진씨는 조씨가 헛다리도 한참 뒤에 잡고 있다고 비웃었다. 뒷북도 저정도면 예술수준이라는 것이다. 좌파들은 오래전에 그람시를 떼고, 푸코와 데리다를 건너 들뢰즈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뭐 뒤의 학자들이 더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라 조갑제의 놀라운 발견이 사실 구태의연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갑제 선생은 결국 21세기 명동거리에서 환한 얼굴로 유레카를 외치며 '지구가 둥글다고...너희들 몰랐지...지구가 원형이란 말이야" 라고 외치신 거다.

 그런데 조씨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가 21세기가 시작된지 8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그람시를 봤다. 결정적인 계기는 '촛불집회'였다. 촛불집회의 긍정성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 그 한계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촛불 집회의 결말이 어떡게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신 최초의 '무중심성'과 '소박한 시민참여'에 대한 뜨거운 거리의 흥분이 성찰의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명박산성 앞에서 5시간 토론을 했다는 것도 사실 그 집회가 대중동원력을 가지면서 예견되었던 일이다. 나는 책방의 서재 앞을 어슬렁 거리다가 구석탱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는 칼보그의 <다시 그람시에게로>를 골라들었다. 얇은 책이다. 요즘 두꺼운 책보느라고 심신이 지쳤는데 두께도 시의적절하고 내게 며칠 전부터 그람시가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영민해보이는 청년 그람시의 사진이 있는 1만 5천원짜리 위의 책이 아니다. 91년도에 나왔던 3천5백원짜리 책이다. 역자와 제목, 출판사,저자가 같은 걸로 볼 때 동일한 책이다. 다른 것 보다 먼저 45%가량 상승한 책 값에 놀라게 된다. 하기야 내가 대학들어 갔을 때 생맥주 500cc 한 잔에 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람시의 이론이 가진 위치는 맑스의 경제주의적 속성과 레닌의 전위당 중심의 자코뱅적 성격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보그의 말대로 하자면 경제적 성향이 강했던 맑스의이론에 정치의 우위성을 부각시킨 것이 레닌이다. 그리고 그 지평을 이어받돼 한층더 다층적인 차원과 개방적인 차원에서 맑시즘을 비약시킨 것이 그람시다. 그람시는 엘리트주의적인 레닌의 혁명론에서 조금 더 비켜나있다. 물론 그 역시 조금 다른 차원에서 당의 역할에 대해 중요시했다. 하지만 레닌의 당이론과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람시의 혁명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혁명은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는, 즉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접근때문에 그람시를 '문화혁명' 주창자로 만든 것이며 우리 강사 선생은 '문화론'시간에 그람시를 언급한 것이다.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을 창출해내는데 있어서 의식의 역할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이것은 역사적 결과물일 수 도 있는데 -길게 이야기하기 힘든 -'제2인터내셔널'의 테제에 대한 그람시 안티테제적인 성찰로 볼 수 있다. 그람시는 맑스의 국제주의에 대해서도 '지향으로의 국제주의'와 '현실적으로 민족주의' 동원의 힘을 구분했다. 즉 교조적으로 국제주의를 지지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그람시에게 지배계급의 청룡도가 '헤게모니'라면 피지배계급의 장팔사모는 '대항 헤게모니'이다.그는 지배계급과 전체 인구의 다양한 부문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유대를 끊어버릴 것을 요구했다. 내가 이번 촛불 집회를 보면서 지속성을 갖는 일종의 '대항 헤게모니'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람시는 헤게모니가 두 단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먼저 지배적인 기존 체제의 허위적 세계를 관통하는 단계,그리고 인간해방을 목표로하는 새로운 사상과 가치의 세계를 창조하는 단계. 이번 촛불집회가 첫 번째 단계에서 짱돌 하나 던졌다면 이것이 더 큰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도모하는 것,그렇게 하기 위해 진보진영이나 그람시가 중요시 여기는 '유기적 지식인'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것, 내가 이즈음에 그람시를 떠올렸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람시적인 의미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결코 '기동전'이 아니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소아적인 투쟁'이다. 하지만 그람시는 과거 교주주의자들과 달리 이런 투쟁의 다양성에 대해 긍정했다.그람시를 비맑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는 그가 계급이라는 일원성보다는 시민이라는 다층성에 더 큰 주목을 했기때문이다. 그람시의 목표는 대중적이고 유기적인 혁명적 변혁 모델의 비전을 정형화하는 것이었다.그는 선재투쟁이라는 개념과 평의회,블록 등의 개념을 통해서 일상적 삶의 변혁혁을 포괄하는 혁명이론을 만들어낸다. 또한 과거 맑스주의자들이 벌였던 오류를 지적하면서 피억압계층의 '자발적' '초보적' 소요의 움직임을 높이 평가한다. 항쟁의 초기에는 불가피하게 '비순서적'이고 또한 '모순적'일 수 박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항쟁의 최초 단계부터 '외부적'조정 없이 일관된 발전노선을 따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교조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집회의 문제점은 바로 그 역에 있다. 촛불집회의 시민적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불행히도 '외부적' 조정 자체를 배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말이다.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그런 것과 맞닿아 있다. '어떻게 맹아적인 대중투쟁을 효과적으로 쌓아올릴 수 있을까? ' 하는 문제 말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를 경험하고 '자발적으로 시위하고 또 어느 정도 지나자 알아서 시위를 철수'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중심성'의 시위가 갖는 한계를 지적했다. 그물론 촛불집회의 성격과 양상을 그람시의 시대적 맹아와 동일시해서는 절대 안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 역사에 비추어- 이런 대중의 힘의 규모를 파악하고 현 정세를 정확히 읽어 그 역량을 최대치화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하지 못한 힘들에 대해 또 가차없는 보복을 가해왔다. 그람시는 피억압계급의 대변자가 되면서도 또한 다른 계급과의 관계의 앙상블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재자로 '유기적 지식인'이란 개념을 창출한다. 이들은 하늘에서 뚝떨어지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그람시가 생산의 영역보다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의 싸움을 준비했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는 개념인셈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대항 헤게모니'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의 총체적 형태를 '당'으로 파악했다.

  그람시에게는 대중적인 것과 엘리트적인것, 구조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적인것, 이론적인 것과 자발적인 것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나는 이번 촛불 집회에서 무너진 '정치'에 대한 분노로 '정치'를 부정하는 낭만적 레토닉을 많이 만난다. 그 대신 흥분에 찬 '시민적 순수성'에 대한 환호가 그자리를 채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최고의 사상서들은 사실 문학적으로 씌여졌을지라도 '문학'으로 분류되진 않는다. '비폭력적인 시민들의 순수성'은 좋으나 그것만으로는 결국 부족하다. 나는 이번 촛불집회가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인 융합을 통해서 찻잔 속의 태풍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돌아선 자리에 남은 것은 추억뿐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소박한 시민적 혁명이 전화되어 앞으로도 지속될 수많은 신자유주의적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에 '대항 헤게모니'의 단초가 되주길 바란다. 그람시는 현실의 비참을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다.그런데 지금 거리에서 쏟아지는 현실의 낙관이 현실의 변혁이 될 수 있으려면 어떤 지향이 필요한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드디어 대책회의가 주도적으로 토론을 통해 방향을 결정하려는 듯 하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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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15 11:22   좋아요 0 | URL
이번 촛불 집회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진중권과 노회찬 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방송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힘도 크구요. 6월1일 폭력진압이 그대로 묻혀버렸다면... 이런 큰 파장을 몰고오진 못했겠지요.
그람시가 전선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런 파장이 큰 운동에 대해선 그람시가 펄쩍 뛰면서 놀랄 일이 아닐가 싶습니다.
한나라당으로 가고, kbs로 모이는 힘을 주는 것은 주최측이 아닌 인터넷 방송과 인터넷 상의 토론장이니 말이지요.
몇 명의 '선택된 시티즌'만이 참여하던 직접 민주주의가 이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직접 민주주의로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중고생의 참여는 '우발적'이었다기보다는 '주체적'이었던 것 같구요.
학교 현장에 있는 저로서는 주체적인 학생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지만 말입니다. ㅠㅜ

드팀전 2008-06-15 12:33   좋아요 0 | URL
그람시가 말하는 혁명과 운동의 궁극적 지향은 '일상의 혁명'을 포함하는 사회주의 혁명입니다. 그람시 같으면 지금의 현상에 감격하기 보다는 이런 파장을 어떡게 하면 '헤게모니적 전환'까지 이어갈 수 있는 가 하는데 신경을 쓰겠지요.그람시의 계획은 촛불집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보다 더 큰 변혁의 비전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정세가 다르기때문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 아이디어가 온고지신의 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람시의 이론적 비전과 이번 시위의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과 또 앞으로 가능한 형태의 결과에 대해 같은 지평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람시는 볼세비키 혁명을 목도한 세대입니다. 촛불집회가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러시아 혁명과 맞먹을만 할까요...^^

turk182s 2008-06-24 03:16   좋아요 0 | URL
촛불을 네그리하고 맞대는 글은 많이보았는데 그람시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군요..덕분에 잘읽었습니다. 촛불은 진화하리라고 봅니다..예전에 미선효순보다는 지금의쇠고기 촛불이 더 의미가 크잖아요,,비록 요즘 집회참여자숫자가 하강하고있지만 이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나중에 총체적 경제난국시 다시한번 거리로 나서게 되겠지요..그때는 지금처럼 얌전하지많은 않을겁니다. 사실 지금의촛불주도는 일반서민들보다는 그래도 먹고살만한 중산층들들이 주도적이라고봅니다.그러니까 계급적으로 30-40대 대기업직원,전문직종사자, 아이들 먹거리로 예민한 그들의 주부들,,거기에 이미 소규모자영업자로 내몰린 고학력 출신자들의 분노가 경제적인상황과 맞물려 터졌다고봅니다. 아직은 님말대도 헤게모니적인 투쟁이아니지만 조심스레사태를 지켜보면 민영화,임투,등등 노조들의 참여가 본격화되면 다시한번 새로운 양상이 될거라고봅니다. 68혁명도 고딩과 대딩들이 시작했지만 중간에 노동계급이 대거참여해서 양상이 바뀌듯이 말이죠,,뭐 끝에 노조가 배신을? 때리며 끝나긴했지만..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제주도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서쪽으로 돌았던 우리들은 여행 마지막 날, 함덕 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일행은 푸른 잉크빛 바다에 몸과 기억을 염색하려는 듯 바다를 즐겼다. 동네 아이들에게 물장난도 치면서 말이다. 물놀이에 숨이 차질 무렵이었다. 소년 하나가 바윗가 근처에서 손바닥 절반쯤 되는 게를 한마리 잡았다. 집에서 먹던 꽃게에 비하면 흉칙하게 생긴 것이었다. 이것이 식탁에 오르던 게와 같은 종이라는 것이 의심스럽게 생겼다. 우리는 바닷가의 장난감을 톡톡 건드리며 놀았다. 그때 게를 발견했던 제주 소년이 한마디 했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됀데요."

우리는 조금은 흉칙하게 털이 난  볼품 없는 게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치 않았다. 그래서 도시인의 무감각한 자신감으로 " 야...이걸 먹는 건지 못먹는 건지 니가 어떡게 아냐? " 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 때 제주도의 태양과 바람덕분에 까맣고도 건강한 피부를 갖고 있던 소년은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 음...음....몰라요. 근데 조상때 부터 먹었어요"

우리는 제주 소년이 쓴 '조상' 이란 말에 박장대소했다.

그 제주 소년은 마이클 폴란이 말한 '잡식동물의 딜레마' 를 해결하는 인류학적 방법을 이미 알고고 있었던 것이다. 조상이나 주변 어른에게 직접 배운 것은 책이나 도감보다 더 확실하다.버섯을 따 놓고 식용인지 식용을 가장한 가짜 버섯인지 고민하던 폴란도 이 말에에 공감을 표한다.그는 도감과 책을 펴놓고도 우왕좌왕한다.결국 생명과 관련된 먹을 거리의 선택문제에서 '도감'과 '책'은 무용지물이었고 주변의 전문가의 한마디가 더 큰 신뢰를 준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란  음식에 대한 선택의 다양성이 이중의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버섯은 먹어도 되고 어떤 버섯은 먹으면 배가 아픈지 고민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먹을 때 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면 정말 머리가 아플 것이다.하지만 인간은 '문화'라는 장치를 통해서 매번 식탁 에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 놓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했다. 또 다양한 요리법을 통해서 먹기 불편할 것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았다. 동물 살해라는 윤리적 함정을 살짝 망각하게끔 해주는 방식들도 장치들도 제공해 놓았다.그런데 마이클 폴란은 이런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풍요로와진 세기에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구석기 인간들의 고민보다 한결 세련되게도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면서 현대인들은 같은 종류의 고민에 빠진다. '유기농? 무농약? 칠레산? 중국산? 아니 한국산? '

마이클 폴란은 우리 식탁에 오르는 먹을 거리들의 계보학을 추구한다. 이를 '음식 사슬'이라고 한다. 즉 아침 식사에 오른 닭가슴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육,도축,포장,유통되어 오르는지를 거꾸로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음식사슬의 로드무비'를 찍는다. 좀 더 성찰적인 '체험 삶의 현장'인셈이다. 그는 '산업적' '전원적' '수렵 채취'의 음식사슬의 한 쪽 끝을 직접 체험한다. 산업적 생산물의 경우 오하이오의 대규모 옥수수 공장을 탐방한다. 이 과정에서 신대륙에 옥수수가 퍼지는 과정과 산업농에 맞춰 옥수수가 진화하는 과정, 한 알의 옥수수가 옥수수 바다에 들어가고 이것이 어떤 어떤 곳에 씌여지는 지를 재미발랄하게 묘사한다. 정말 재기발랄하다. 환워론적인 오류가 있겠으니 미디어적으로는 충분히 재미 있는 '옥수수인간' 같은 개념은 우리가 대규모 단일재배되는 옥수수에게 얼마나 의존적인지 보여준다.

또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소와 관련해서 윤리적으로 위생학적으로 가장 건강한 육식의 공급방식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그것은 가축 내장을 먹이거나 옥수수를 먹여서 공장에서 소고기로 키운 소가 아니다. 권정생 선생의 말로 하자면 '가장 소답게 키운 소'를 먹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말한다. 즉 소답게 풀을 먹고소답게 풀 위에 똥을 싸면서 큰 소 말이다. 마이클 폴란도 사육과 도축이란 딜레마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위해 희생되지만 가장 그 종의 본성과  어울리게 키워진 방식을 권장한다. 즉 소는 소 답게 닭은 닭 답게 키우고 그렇게 키운 것들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고기로 키운 소나  닭고기로 키운 닭. 계란을 낳게하기 위한 제품처럼 키워진 닭과 그 생산품은 닭에게도 인간에게도 비윤리적이다. (불행히도 한 동네에 대 여섯군데씩있는 닭집은 모두 양계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불운한 닭들이다.)

마이클 폴란은 폴리페이스 유기농 농장에서 흥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자본주의의 가장 부가가치 높은 산업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산업적 유기농'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과연 산업적 유기농이 유기농인가?" 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산업적 유기농'이 유기농이 의미가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유기농의 지속가능한 순환론적 세계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그는 유기농 운동의 세가지 철학적 조건을 말한다.즉 대안적 생산방식,대안적인 유통시스템,그리고 대안적인 소비방식이다.그는 이 세가지가 유기농 운동이라는 혁명적 프로그램을 떠받치는 버팀목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단지 '생산방식' 만을 유기농화한 기업형 유기농 공장은 결코 유기농운동의 철학과 궤를 같이 할 수 없다.

흔히들 유기농 운동같은 것을 하는 단체에서는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의 세계관이다' 라는 말을 한다. 내가 처음으로 한살림 강의를 들었을 때도 담당자는 그 이야기로 첫문을 열었다. 마이클 폴란도 말하지만 유기농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 함의가 들어있다. 단지 '웰빙'을 위해 유기농을 먹는 것은 이기적인 선택일 뿐이고 비정치적이다. 유기농 운동은 생태주의 운동의 먹을거리 판본이다. 또한 대규모 생산을 꿈도 꾸지 않는다. 이것은 다분히 소농과 지역중심의 운동이다.격주로 들어오는 한살림 소식지에는 땅과 소농 그리고 지역을 살리기 위한 한살림 운동의 취지가 적혀있다.나는 먹는 행위가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음에 동의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  경남 밀양에서난 고추와 경남 함안에서난 쌀과 경남 남해의 마늘을 먹었다. 나는 거리에서 시위를 하듯 정치를 먹어 삼킨 것이다.(하지만 의미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누가 그 맛있고 싱싱하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매번 정치를 염두에 두겠는가.)  내가 먹은 음식들은 모두 비싸고 모두 경남 지역에서 났다. 그리고 농작물을 키운 농부에게서 조합을 거쳐 바로 내 식탁으로 왔다. 나는 마이클 폴란의 글을 읽다가 장일순 선생을 비롯해서 한산림 운동을 시작했던 분들의 혜안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이 책에서 가장 껄끄러운 부분은 결국 잡식성 동물이 피해갈 수 없는 '사육동물의 도축'이다. 물론 우리는 이것을 담장 너머의 누군가에게 맡기기때문에 뚝뚝 떨어지는 소들의 핏방울이나 향기롭지 못한 내장, 그리고 죽음을 앞둔 동물의 눈망울을 볼 필요가 없다. 거기에 우리는 적당하게 이런 과정을 잊게 만들 풍부한 요리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마이클 폴란은 직접 닭의 목을 따는 용기를 선보인다. 무척이나 주저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채식주의자이지만 채식주의가 윤리적이라고 옹호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육식을 하고 가축을 기른 것은 진화의 결과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의 윤리적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다른 층위의 윤리가 작용한다.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동물섭취를 청교도적 윤리로 제단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연의 모든 동물은 먹고 먹히는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종 자체를 유지하면서 순환하게끔 한다. 그런데 극단적 채식주의 휴머니즘은 동물 종이 아니라 동물 개체 하나 하나에 윤리를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감정적인 차원에서는 옳고 박수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의 법칙에는 어긋난다. 실제로 야생의 동물들 중에서 편안하게 자기 수명 다 누리고 자식들 보는 앞에서 임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대개는 어린 동물일 때 또는 늙거나 병들어서 또는 재수가 없어서 더 큰 육식동물들에게 희생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에게 잡혀먹히는 어린 영양이 불쌍하다고 모든 사자와 고양이과 포유류를 우리에 가두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중간 과정의 코미디는 알아서 상상해보고 ....결국 생태계의 흐름은 무너지고 만다.마이클 폴란은 이런 문제에 관해서 동물애호가인 피터 싱어에게 메일을 보내 답을 구한다. 피터 싱어 역시 극단적인 방식으로 동물섭취를 반대할 수는 없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낸다.

폴란의 여정은 수렵 채취 과정까지 간다. 멧돼지 잡기와 곰보 버섯따기가 그것이다. 이 장은 실제로 조금은 실험적인 것이다. 멧돼지를 잡고 버섯을 직접 따러 간다. 여기서는 그 의미보다 책 전체에 걸쳐 있는 폴란의 위트있는 문장력을 칭찬하고 싶다. 앞서서도 그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비유와 구체적인 상황 묘사로 글의 흡입력을 높였다. 난생 처음 총을 쏘아 보는 폴란이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은 오히려 다큐멘터리화면이 묘사하지 못하는 글의 생생함이 담겨있다. 첫 사격을 양보하고 느낀 후회부터 돼지를 잡고나서의 흥분,그리고 죽은 돼지를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을 본 뒤 생긴 후회감.돼지를 분해하는 작업에서의 역겨움..그리고 동료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잔머리..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잘만든 다큐멘터리보다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폴란이 가진 흥미있고 감각적인 문장력때문이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지속시킬 수 있는 이런 능력은 정말 훔쳐오고 싶다.

결론에서 폴란은 이 모든 음식사슬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고 직접 식탁을 차린다. 동료들을 불러모아서 '이야기'가 있는 저녁 식사의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저자가 서문에서 '음식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겠다고 했을 때 " 까다롭고 때론 역겨운' 과정을 지켜본 후 무슨 즐거움은 즐거움이냐?"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로드무비를 다 보고 나서 그가 만든 식탁을 보면서 나 역시 그 즐거움에 동참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은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무지의 식탁을 성찰하고 앎의 즐거움으로 식탁을 채우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들 예찬이와 그를 힘들게 했던-아직도 숨어있을지 모를-아토피에게 감사했다. 나와 아내는 그전부터 한살림이나 유기농 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아는 것이었다. 아이가 아토피가 생기고 나면서 우리 부부는 음식에 훨씬 많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주저하는 나를 '자연요법과 유기농'으로 설득한 것은 아내의 공이다. 당시 나는 주저주저하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확신범이었다. 그것 때문에 몇 번 충돌도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아내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한살림에 가입했다. 부산의 한살림은 또한 자랑스럽다. 다른 곳은 그저 인터넷으로 가입하고 돈만 내면된다. 그러나 부산 한살림은 사람 귀찮게 한다. 꼭 사무실에 방문해서 1시간 이상 강의를 들어야 한다.강의라는게 뭐 대단한 건 아니고 한살림의 취지-이기적 웰빙만은 아닌-를 듣고 이해시킨다. 우리집은 주로 한살림에서 기본적인 부식거리를 산다. 당연히 마트는 한 달에 한번이나 갈까 말까이다.또 가끔은 예찬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위해 동네 산업유기농 판매하는 유기농점포에서 돌에서 만든 유기농 바나나를 사먹인다. 바나나는 한살림에서 나오지 않는다.그렇다보니 유기농과 산업유기농의 차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예찬이의 아토피는 거의 나은 듯 보인다.하지만 아토피는 낫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도 먹는 것은 관리한다. 아이는 과자도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고 오렌지 주스나 사탕,아이스크림같은 것은 말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아이는 다른 또래 보다 주먹 하나가 더 크다.그리고 어찌나 밥을 씩씩하게 잘먹는지 어디 가든 칭찬받는다. 아이는 한번도 항생제를 맞지도 바르지도 않았다. 예방주사 역시 마찬가지다.(언젠가는 맞힐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에 대한 정보는 예방주사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모임같은데 가보면 안다. 돌이켜 보면 아토피가 우리 부부에게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준 셈이다. 나와 아내는 가끔 닭을 시켜먹기도 하고 피자도 먹는다. 내가 조금 더 나쁜 음식을 자주 먹는다. 바쁠 때는 햄버거로 때우기도 하고 조미료 마구 들어간 김치찌개도 잘 먹는다. 예찬이도 앞으로 커가면서 그럴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애써 피할 필요는 없다. 대신 알고 나면 조금 더 줄이게 되고 가급적 멀리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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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6-08 15:49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의 리뷰만 보면 항상 사고싶어 근질근질해져요...ㅎㅎ

드팀전 2008-06-09 10:57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책입니다.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이 들어있습니다.특히 폴란의 웃음담긴 문체는 즐겁게 하지요.

zzanga62 2008-07-16 03:28   좋아요 0 | URL
사실 저자는 채식주의자이지만 채식주의가 윤리적이라고 옹호하지는 않으며,

피터 싱어를 통해서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동물섭취를 반대할 수는 없다는 유보적인 입장의 답변을 받아냈다는 리뷰를 보고 의견을 올린다.

극단적 채식주의자란 '당신 꼭 채식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말할까요?
그러나 대개의 채식인들은 채식의 좋은 점을 홍보하고 동참하기를 권하거나,
육식을 줄일 것을 권하는 정도가 아닐까요?
왜냐면 현실적으로 당장 모든 축산을 금하고 모든 육식을 중단하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먹이사슬을 인정하고 자연에서도 불쌍하고 고통스런 죽음들도 많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나 피터싱어가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이해해보는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산업축산은 너무나 반자연적이고 반생명적이며,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통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 환경파괴외 인류기아에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기본적으로 육식동물일지라도 평생 가둬키우다 잡아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축산이 점차 대형화되며 값싸게 많이 생산하기위해
동물을 생명취급하지 않고 작업속도도 엄청나게 높입니다.
도살장의 경우만 해도 그 업체의 직원들조차 엄청난 신체적,정신적 위험 속에 일하고,
너무 빠른 작업속도로 동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자연스레 동물을 일부러 학대하기까지에 이를 정도이니,
동물학대가 얼마나 많이 다양하고 끔찍하게 일어나는지는 차마 입에 다 담기 어려운 지경이며, 결국 그 생산물을 먹고 인간은 광우병, O-157, 조류독감과 같은 끔찍한 질병에 감염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살장> 읽어보세요)

신자유주의 추세 속에 축산업체는 점차 합병되어 대형화되는데,
그럴수록 선진적이고 수준 높은 생산과정과 결과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국 정부와 나아가 전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힘이 세져서
어떤 윤리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이윤 높이고 작업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될 뿐입니다.
은막 뒤에서 이뤄지는 동물과 인간에 대한 끔찍하고 잔혹한 학대와 비리들은
점차 강도가 높아지고 다양해지며 그들을 건드리기는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그들의 감독자이며 축산과 동물보호법을 관장하는 농림부는 국민건강이나 동물복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축산업체 경영자들의 이윤창출만을 비호해줄 뿐입니다.

축산업체에 대한 규제 완화와 합병의 허용은 레이건, 부시 등 시장주의자,
극우적 대통령 집권기에 더욱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초국적 자본들은 육류 외에 모든 음식에 걸쳐 전세계에 죽음의 밥상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유기농 식물과 로컬푸드를 지향합니다.

자연친화적 축산이 보편화되려면 지금처럼 고기를 싸게 많이 먹으려 해서는 안되고,
가끔씩 제값 주고 먹어야 합니다.
암튼 이런 현실들을 알면서 되도록 고기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한 마리라도 극단적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기, 우유, 다단식 닭장에서 생산된 달걀 등을 먹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꼭 채식해야 합니다라고 말 하지는 않지만,

육식을 줄여가지 바라며 채식은 현재 최선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우리도 신자유주의에 깊이 쩔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축산에 있어서도 미국과 같이 대형화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한미FTA는 우리가 꼼짝없이 노예화되게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