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걸.
(세네카)-8쪽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28쪽

이 모든 소란과 안달은 왜일까?
왜 이리도 절박하고 어수선하고 번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런 하찮은 것이 왜 이다지도 중요해진 걸까?
(쇼펜하우어)-42쪽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진정성> 中)-43쪽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고,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었다.
(<진정성> 中)-48쪽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진정성>中)-48쪽

그녁 연인에게서 원하는 것에 대한 나의 추측은 꼭 끼는 양복에 비유할 수 있고, 나의 진짜 자아는 뚱뚱한 남자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뚱뚱한 남자가 자신에게는 너무 작은 양복을 입으려고 기를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재단한 직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부푼 살을 접어 넣고, 바지가 뜯어지지 않도록 숨을 멈추고 배를 집어넣었다. 내 태도가 내 마음에 들 만큼 자연스럽지 않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양복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옷이 뜯어질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무사히 저녁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진정성> 中)-56-57쪽

피하기 위한 거짓말과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 유혹 과정의 거짓말은 다른 영역의 거짓말과 매우 다른 면이 있었다. 내가 경찰에게 자동차 속도를 거짓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이유 때문이다. 벌금이나 체포를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에는 괴상한 가정이 수반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따라서 다른 사람과 다른)특징을 비워버려야만 상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 관계에 있다고 (따라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태도다.
(<진정성> 中)-60-61쪽

유혹이란 일종의 연기와 같아,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청중에 의해 결정되는 행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배우가 관객의 기대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하듯이, 유혹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사랑받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주자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려면, 연애의 경우에는 배우가 관객이 무엇에 감동을 받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을 들이대면 된다. 연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자연스러운 행동과 비교할 때 그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 中)-62쪽

유혹의 어느 시점에서 배우는 관객을 잃을 위험을 무릎써야 한다. 유혹하는 자아는 연기로 환심을 사려고 시도하지만, 게임은 결국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상황을 규정할 것을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위험을 무릎써야 한다.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들을 인정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리버풀로드 23a번지의 문 앞으로 다가가면서 나는 기호들을 오독했을 위험에 겁을 집어먹고, 비유적인 커피 한 잔을 제안할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정성> 中) -65쪽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대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
너의 도시들을 배수비오 산기슭에다 세우라!
(니체)-70쪽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과 기대의 관계에 관하여 예리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는 모든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일을 못했다고 해서 늘 수치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일의 성취에 자존심과 가치를 투자했을 때에만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수치감을 느낀다. 우리가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고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일과 행복> 中)-77쪽

이런 감정적인 반응을 보면 작업장에 두 가지 요구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사업의 일차적 목적은 이윤의 실현이라고 규정하는 경제적 요구다. 또 하나는 경제적 안정, 존중, 종신직, 나아가 형편이 좋을 때는 재미까지도 갈망하는 피고용자의 인간적 요구다. 이 두 가지 요구가 오랜 기간 이렇다 할 마찰 없이 공존할 수도 있지만, 이 둘 사이에서 진지하게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업적 체제의 논리에 따라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
(<일과 행복> 中)-81쪽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테렌티누스)-86쪽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96쪽

여자들은 홀로 있는 남자들의 절망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충서와 이타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로맨스라는 면에서 잘나가는 유형의 남자들을 의심할 만한 이유도 되겠다. 그런 남자들은 넘치는 매력 때문에 내가 겪었던 이런 희비극적 과정을 알지 못한다.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릿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 아파하는 그 과정을.
(<독신남> 中)-99-100쪽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파스칼)-104쪽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햇을 무언가를 분별해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프루스트)
-122쪽

그러나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글쓰기와 송어> 中)-126쪽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지만
그래봐야 내 엉덩이 위일 뿐이다.
(몽테뉴)-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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