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는 "번역으로 인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고 말한다. 해럴드 블룸 같은 이는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다"라고까지 말한다. -7쪽
에드먼드 버크는 편견을 일컬어 ‘인류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집단적 지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11쪽
번역이 전제되지 않는 지적 활동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동양철학자 김용옥의 말처럼 제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제아무리 영어 도사들이 많이 출현해도 그들이 ‘우리말’로 그들의 학식을 표현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외래 문명의 새로운 개념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 어휘와 개념, 더 나아가 우리 문화가 풍성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일본의 번역 활동을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한 고종석의 평가는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는 하나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21쪽
서양 철학자 강영안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2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번역 작업을 통해 서양 문화를 수용하고자 애쓴 일본 지식인들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철학은 일본을 통해 번역된 서양 철학 용어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 서양 철학이 한국에 수용된 시기가, 번역에 대한 고뇌와 시행착오가 일본인들을 통해 거의 끝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쓰고 있는 학문 용어들을 마치 옛 조선총독부 건물 헐어내듯 일거에 철거한다면, 우리는 논문은커녕 의사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23쪽
도교의 개념은 불교의 초월적 관념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했다. 예컨대 도가 철학의 중심 개념이며 예부터 중시되어온 용어인 ‘도’는 때로 가르침이란 뜻의 불교 용어인 ‘다르마’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른 경우 ‘도’는 ‘교화’라는 의미의 ‘보디’ 또는 ‘요가’를 번역하는 데 이용되었다. 불멸의 인간을 가리키는 도교 용어인 ‘진인’은 ‘완전히 교화된 사람’이란 뜻의 불교 용어인 ‘아르하트’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다. ‘무위’는 불교의 궁극적 해탈인 ‘니르바나’를 번역하는 데 이용되었다. -32쪽
불문학자 김화영의 표현대로, ‘참다운 번역은 원작은 가치에 대한 이해에서 생겨난 존경과 감동’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못한 번역은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의미 없는 노동일뿐이다. 자신이 각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나 전공하는 분야의 텍스트를 선정해 번역하는 것이 원칙이다. -110쪽
역주는 번역자가 독자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성의요 배려라고 생각한다. 번역은 결국 ‘문화’를 번역하는 것이고, 번역자가 한 권의 책을 번역하다 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원문의 의미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미심쩍은 부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목을 짚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 번역자? 나는 그런 번역자를 신뢰할 수 없다. -122쪽
충실성에 중점을 둔 번역, 가독성에 비중을 둔 번역 등 다양한 개성과 특징을 지닌 번역서가 출판되어 독자들이 ‘골라 읽는 재미’를 만끽하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리라. -143쪽
당시(18세기) 사회 지도층은 독서가 너무 지나치게 보편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하층계급의 독서량 증가로 가져올 위험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예컨대 자유주의의 비조로 알려진 존 로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157쪽
당연한 일이지만, 번역자와 편집자에게는 각기 고유 영역이 있다. 번역자에게는 일차적으로 ‘정확한’ 번역을 할 의무가 따른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액튼 경이 말했듯이 ‘정확성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다. 반면, 편집자에게는 넘겨진 번역 원고를 ‘다듬는’ 임무만을 맡겨야 한다. 정확성의 의무까지 편집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일이다. -160쪽
학문적 자부심에 충만한 학자들은 자신의 문장력에 대해서도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글쓰기에 약점이 추호라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장에 대한 편집자의 지적을, 마치 자신의 논문이 비판을 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고 정색을 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161쪽
"진정 ‘이상적인’ 작가는 자기 작품의 홍보며 표지며 책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일일이 자기가 확인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항상 결과적으로는 출판사 측의 판단은 존중하고, 출판사 측이야말로 자기 못지않게 책을 많이 팔았으면 하는 쪽이란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랜덤하우스 설립자 베네트 서프) -161-162쪽
"번역이 바라는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채 편집자에게 넘어오는 경우, 편집자는 고심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문제 있는 부분을 다시 번역하거나, 새로운 역자를 찾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수위에서 교열 작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번역자와 편집자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 마련인데, 제대로 책을 내자는 뜻을 서로 잘 이해해 별다른 대립이나 갈등이 없이 작업이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서로의 자존심 내지 자신의 의견에 대한 고집 때문에 불편한 관계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책이 나오더라도 감정의 앙금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며, 책의 완성도도 떨어진다."(전응주, ‘역자에게 멱살 잡힌 사연’, 2004년 8월 26일 교수신문) -163쪽
나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 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서와 편집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아직 문화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167쪽
"출판인은 대학 총장에 못지않은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 총장이 훌륭한 교수를 찾아서 학생을 가르치게 하는 것과 출판인이 좋은 저자를 찾아내어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는가?"(현암사 사장 조상원)-169쪽
"서적의 우량 여부 평가는 독자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자기 돈을 꺼내어 그 책을 사는 데서 결정된다. 사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효용에 의해서 도서의 구매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일조각 사장 한만년) -173쪽
김교신은 책을 남에게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서재란 마치 ‘군함’과도 같아서, 마치 해상에서 전투가 발발했을 때 대포가 필요할지, 소총이 필요할지 알 수 없듯이, 서재에서 글을 쓸 경우에는 언제 어떤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적 생활자에게 책은 양도할 수 없는 값진 무기이다. -19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한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전자는 귀중한 것이고 후자는 비천한 것이다. 나는 개인주의는 존중하지만 이기주의는 전적으로 배척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존중한다. 자기를 존중함과 동시에 또한 남도 존중한다. ……개인주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우치무라)-208쪽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은 그것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더라도 가능하다.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있고, 또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동초서초하여 적당히 일관된 논리의 구색만 갖추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도 있다. 허나 번역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작품의 문자 그대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르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도 없고 또 전체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부분의 철저한 해석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인용출전에 대한 완전한 조사를 강요당한다. 그야말로 에누리 없이 그 번역자의 스칼라십이 완전히 노출된다."(김용옥)-220쪽
저명 학자들의 조악한 번역서들에 대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수 본인이 불성실하게 번역한 경우인데, 명색 교수라면서 일개 대학생에게 책잡힐 정도로 부실한 번역을 했다면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대학원생들에게 적당히 나눠 번역을 맡긴 다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경우인데, 이것은 도덕 불감증 차원을 넘어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일이다. 조악한 상품에 그럴듯한 가짜 상표를 붙여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이태원의 가짜 외제상품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주간동아’ 제279호(2011년 4월 12일)) -231쪽
저의 경우에는 함께 번역한 사람들이 전부 저보다 나이도 많고 학력도 높고, 개인적 관계로는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보니 처음에는 남의 글에 손을 대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일이 안 되니까 전체 논의 하에 수정을 적극적으로 할 것, 다른 사람의 수정에 대해 낫다면 전적으로 수용할 것, 개인적 감정을 갖지 말 것 등을 합의하게 되었습니다.(저자의 주간동아 글에 달린 댓글, ‘또 다른 번역의 문제점은’, ID: 번역의 실제) -254쪽
"내가 보기에 바른 독서란 이인삼각 경기와 같다. 때문에 독자는 저자가 그 책을 쓰기 위해 펜을 내어 달렸던 그 열정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가야 한다. 어떤 저자도 아침에 5분, 저녁에 5분 하는 식으로 책을 쓰진 않았으므로 그런 식의 독서는 이인삼각 경기를 파탄 낸다. 똑같은 책을 자투리 독서로 한 달이 걸려 읽은 독자와 한달음에 해치운 독자는 엄밀히 말해 다른 책을 읽은 것이다. 폭풍처럼 읽어야 한다. ‘나는 그 책을 밤새워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5")-263쪽
김영민은 우리 학계에서 중요시되는 미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김밥 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틀에 꼭 끼어서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기, 재주 없이도 오래 버티기, 인용과 표절 능력, 명절치레나 관혼상제 챙기기’("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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