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사회 이매진 시시각각 2
김영선 지음 / 이매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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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려고 일을 하는데, 도대체 왜 일을 할수록 더 비인간화되는가?" -9쪽

자본, 곧 기업과 국가의 거대한 폭력과 제도에 순치된 노동자들은 내면의 트라우마(상처)를 안고 두려움에 떨며 일한다. 이제 노동은 유일한 삶의 원리인 것처럼 내면화되고 말았다. 체제 동일시 또는 강자 동일시라는 생존 전략이 마침내 노동 동일시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자신만의 멋진 삶, 인간다운 삶이 존재할 텐데, 이제 사람들은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단지 노동 안에서, 그리고 그 연장에 불과한 소비 안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일종의 착각이자 행위 장애다.
-11쪽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장시간 노동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장시간 노동은 체력을 회복할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힘들게 한다. 가족 관계를 해친다. 아이의 숨결을 느끼는 즐거움을 빼앗는다. 사회관계 또한 빈약하게 만든다. 공동체 참여를 어렵게 한다. 가만히 멈춰 서서 여유를 즐길 시간을 박탈한다. 우리의 정신과 상상력을 좀먹는다. 장시간 노동은 이렇게 우리의 삶 자체를 팍팍하게 만든다.
-16쪽

우리는 지금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
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중에서
-18쪽

발췌)
장시간 노동은 우리의 삶 하나하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장시간 노동으로 자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자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기획하기가 여의치 못하다.
셋째, 그나마 남는 시간은 ‘상품 집약적’이고 ‘시간 집약적’ 여가로 채워진다.
넷째, 장시간 노동으로 일상 관계는 항상 불균형하다.
다섯째, 장시간 노동은 여가 생활을 여지없이 파편화한다.
마지막으로 과로 사회에서 휴가는 단순 피로 회복 도구에 불과한 박카스 휴가에 그친다.
-27~30쪽

"국제 사회조사 프로그램"(2008) 자료를 이용해 국가별 노동관을 분석한 결과 미국(자아 실현형), 프랑스(보람 중시형), 일본(관계 지향형)하고 다르게 한국의 노동관은 생계 수단형으로 나타났다. ‘일에 관한 흥미’, ‘기술 향상의 기회’, ‘일에 관한 만족도’, ‘직장에 관한 충성심’ 등 모든 항목에서 점수가 낮았다. 노동이 삶을 풍부하게 하기는커녕 그저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이 된 현실을 보여준다.
-41~42쪽

장시간 노동 관행이 계속되는 원인은 복잡다단하다. 첫째, 뼛속 깊이 뿌리박힌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원인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저임금 구조’와 ‘장시간 노동 신화’를 들 수 있다. 둘째, 작업장 맥락에서 ‘성과 장치’와 ‘노동자 분할’은 장시간 노동을 추동하는 핵심 요인이다. 셋째, ‘생산성 담론’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며 강력한 힘을 행사해왔다. 최근 경쟁력 담론으로 진화해 장시간 노동을 영속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 시간 권리를 향한 ‘대항 담론’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상황 조건으로서 경제 위기 이후 불어닥친 ‘상시적 구조 조정’은 자유 시간의 가치를 여지없이 파편화했다.
-59쪽

간혹 잔업과 특근이 ‘스스로 원해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잔업과 특근은 날품팔이이에게 사실상 ‘강제된’ 노동이나 다름없다. 기본급이 워낙 낮아 생계를 보충할 수단으로 마지못해 잔업과 특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탓이다. ‘강제된’ 노동이라고 표현한 더 중요한 이유는 기본급이 워낙 낮아 잔업 수당이나 특근비를 줘도 회사의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회사 처지에서는 돈 몇 푼을 더 주더라도 공장을 가동시키는 편이 비용이 덜 든다. 관리자는 "이럴 줄 모르고 회사 왔냐?"는 식으로 정시 퇴근하려는 노동자를 힐난한다. 아예 잔업이 취업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경우도 많다.
-136쪽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스럽게 동요하는 노동 세계에 내몰려 정상적인 개인사를 포기해야 하는 모습을 일컬어 ‘위험사회’로 진단한다.
-138쪽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 길은 자유 시간이 풍부한 사회다. 자유 시간이 양적으로 풍부할 뿐 아니라 자유 시간의 가치와 권리가 온전히 발휘되는 사회다. 자유 시간의 가치가 권리의 기반 위에 서고, 좀더 실질적인 민주화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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