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9월
판매중지


엄밀하게 말해 시장에서 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노동력이고 그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력과 노동은 구분하여 써야 하는 개념이다. 친숙한 비유를 들자면 수문이 닫힌 댐에 저장된 물이 노동력이라면, 수문이 열렸을 때 흘러나오는 물이 노동인 셈이다.
-11쪽

근대성이라는 말에는 ‘기술의 근대성’ 뿐 아니라 ‘해방의 근대성’이라는 구성 요소도 포함된다. 흔히 한국 사회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목표, 가치를 말하고는 한다. 산업화는 과학기술의 진보, 생산력의 발전, 근대적 계약 등 바로 기술의 근대성을 의미한다. 민주화는 보편적 인간 권리의 신장, 인간에 대한 갖은 억압의 철폐 등을 담고 있는 해방의 근대성을 가리킨다. -20쪽

공장이나 회사의 규격화한 노동에 적응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학교 교육으로써 길러지리라고 기대되는 미덕이다. 바로 노동자를 훈육하는 것, 즉 길들이는 것이다. 징병제가 실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이러한 능력을 극단적인 형태로 양성하는 공간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조직의 윗선에 맡겨버린 채 자신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이른바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그렇게 이루어진다.-20쪽

영화 ‘레 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민중들은 침묵하며 ‘반란자들’이 사살당하는 것을 숨죽인 채 지켜본다. 그것은 그 민중들이 겁에 질려 그렇게 행동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사후적으로는 ‘동의’로 해석된다. 왕을 교수대로 보내는 피의 시민 혁명을 일으켰던 바로 그 프랑스에서 루이 나폴레옹은 무산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잡았다. 그러고는 곧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히틀러 또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대중 독재’라는 이론이 주장하듯이, 사악한 권력도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동의라는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대중이 어리석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소수의 지식인이나 헌신적 열정을 가진 혁명가들이 대중을 ‘의식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그렇지 못하다는 것 또한 역사 속에서 되풀이된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결국 시스템으로서 성립한 권력, 그 기초에는 사람들이 ‘몸에 붙이고 있는’ 신념의 체계가 놓여 있는 것이다. -24쪽

"이 학교를 나오면 100퍼센트 삼성반도체에 취업이 되고 본봉 5천만 원에 보너스 2천만 원. 1년에 7천만 원 번다고 자기랑 사귀자는데 맞는 말인가요?"(여자 대학생)
"반도체 회사에 취업하면 백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데 그 학과에 가도 될까요?"(3학년 여자 중학생)
-27쪽

노동자가 파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이지 노동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노동은 노동력이라는 그릇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같다. 그런데 그 물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항아리’처럼 어느 정도는 제한 없이 길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준적인 내구 연한이 10년인 기계는 10년가량 사용하고 나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노동력은 (물론 사람도 수명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하루 여덟 시간 ‘사용’할 것을 열 시간 ‘사용’한다고 해서 금세 닳아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이라는 용어와 ‘노동’이라는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굳이 마르크스 경제학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만약 ‘노동’을 ‘사용’한다는 말을 쓰게 되면 도대체 노동자가 판매한 것이 무엇인지가 모호해진다. 내가 한 달 동안 직장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 것은 내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팔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 달 동안 일한 대가인가? 전근대사회의 노예라면 모호할 게 하나도 없다. 노예는 언제 어디서건 노예주의 처분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말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53쪽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류가 얻어낸 과학기술의 대부분은 애초에 두 가지 목적과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전쟁.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목적. 다른 하나는 노동 통제.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일 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78쪽

감정 노동의 강도는 사회의 문화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다. 남녀차별적인 문화, 여성을 외모나 성적 매력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한 문화, 반드시 여성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평등한 관계로서가 아니라 인종 같은 요인에 의해 차별하는 문화에서는 감정 노동이 더욱 심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106쪽

모든 노동자는 소비자이지만 모든 소비자가 노동자인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는 잊힌다. 노동자가 소비자라는 정체성으로 행동할 때 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노동과 노동의 갈등으로 옮겨진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하나의 인물이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자기분열되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자기분열은 계급 의식과 계급 지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바와 삶의 물질적 조건 사이의 괴리로 나타난다.
-119쪽

새로 부임한 경영자가 말한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습니다." 종업원 머릿속에서 이 말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 자르겠다는 말이구나.’ 경영자의 말에서 지극히 중립적인 어감을 갖는 ‘구조’라는 명사는 ‘노동자’와 같은 말이고, ‘조정’이라는 동사적 의미를 담은 명사는 ‘해고’와 같은 말이다.
-133쪽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당연히 이 세상 그 무엇도 비효율적이기보다는 효율적인 상태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영의 효율성 제고’라는 말은 압도적으로 임금 삭감, 사실상의 근무시간 연장 등을 가리킨다. 오너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저지르는 갖가지 편법과 불법 같은 ‘비효율적’인 행위는 경영 효율성 제고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133쪽

노동자 정체성과 소비자 정체성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이 충돌은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노동자로서 나는 열악한 작업 조건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통받는 대형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마트 안 가기 운동’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가 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 혼자 연대를 시도한다면 불합리한 구조는 바꾸지 못한 채 소비자로서의 합리적 소비와 효용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 차원에서 연대를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른 노동자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결국 플리트우드가 지적했듯이 이런 ‘나’들의 태도와 행동이 모여 집합적으로는 다른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해로운 작업 조건을 유발하게 된다. -137쪽

모두가 CEO가 되기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노동자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소비자라는 정체성이 종종 압도한다. 자영업자의 문제는 개인 사업자, 프리랜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다. 이러한 점은 물리학적 원자들의 세계처럼 노동이 실종되고 사람이 사라진,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경제학에 의해 이론적으로 합리화되는 동시에 현실적인 경향으로서 강화되고 있다.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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