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당신의 판단, 정말 최선입니까?

 

 

 



  "당신의 판단, 정말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금태섭 변호사의 본격 법 이야기 두 번째(라고 기억한다). 궁리에서 나온 <디케의 눈>을 읽었고, 2년전쯤인가 이화여대에서 조국 교수와 함께 한 강연회도 무척 재밌었다. 당시 조국 교수의 인기가 너무 많아-그래도 지금처럼 모든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인물은 아니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수많은 여대생들이 조국 교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길에 서는 사태가 빚어졌고, 다른 한 편에선 함께 강연을 했음에도 줄이 전혀(?) 없는 금태섭 변호사가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고 기억한다).  

  강의의 주제는 이번에 출간된 <확신의 함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보통 책이 출간되면 그에 맞는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간혹 비슷하지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엔 후자인 것. 책을 안 읽은 분들에겐 전자가 더 낫겠지만, 이미 읽은 분들에겐 후자가 더 신선하고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 '금태섭 변호사와 함께하는 국민참여재판 아카데미'라는 주제답게 2008년 한국에 도입된 배심 제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 배심원으로 뽑힌다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지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아직 배심 제도가 본격 활성화되지 않아서인지 관련된 내용을 접한 적이 전혀 없다. 다음은 금태섭 변호사의 강연 내용이다.  

  "2008년 배심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사건 발생 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은 굳이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법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을 판단하는 것에는 법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으며, 일반인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죄와 무죄 여부를 판단하는 것,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법관의 영역이라고 봐도, 여기까지 도출되기 위한 사실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판사는 기존에 쌓인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명확히 균형있게 사실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기존에는 재판이 서류만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구두 변론이 가능토록 하였다. 배심원들은 서류가 아닌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판단을 하게 된다. 때문에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현재 법 전문가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법률 용어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고, 전관 예우 등의 폐해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배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건으로는 살인, 뇌물, 강도 등의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재판은 거의 하루 만에 끝내야 한다. 배심원들의 생활을 빼앗으면서 오래 끌 수는 없기 때문. 배심원은 열두 명을 앉히는데, 그 중 세 명은 예비 배심이다. 그러나 누가 예비 배심인지 알려주지는 않으며, 이는 재판 과정을 진정성 있게 듣게 하기 위함이다. 재판이 모두 끝나면 그때 예비 배심을 알려준다."  

  "배심원은 주민등록 추첨으로 후보를 선정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들만 부르고, 후보들 가운데 재판 배심원으로 선정하기 부적합한 경우는 배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지인이 폭력, 살인 등을 당했는데 비슷한 사건에 배심원으로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 또,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 후보들 중에서 배제했으면 하는 사람을 지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배심원들의 생김새나 분위기 등을 보고 이 사람은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을 직감적으로 선택하는 것."  

  "배심 제도의 난점으로는, 배심원들의 재판 이전의 생각이 변론을 통해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 또, 지역의 평균적인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부르기 어렵다는 것, 배심원이 사건 당사자(피고)와 아는 사이인 경우 유죄 평결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 배심원들끼리 토론을 할 때 동전 던지기를 통해 유무죄를 결정한 사례가 있었는데 미국에선 이를 유효하다고 보았다는 것,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표정을 드러내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즉, 판사는 유죄라고 생각하는데, 배심원들이 무죄라고 하면 배심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기에 그들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미리 내색을 한다는 것." 

   금태섭 변호사는 배심 제도가 대략 이러한 난점을 드러냈지만, 난점을 알고 있으니 보완해 나가는 방안을 찾고 있으며, 재판 과정에 시민이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검사로서, 또 현재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겪는 여러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이야기했기 때문인지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여러 강연을 갔지만 Q&A 시간에 이렇게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질문에 질문에 질문에,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여전히 끝이 날 줄을 몰랐다. 시간이 오래 지체되면서 금태섭 변호사는 '이제 그만!'을 속으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들을 배려하여, 어느 선에서 멈추었고,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아쉽게 강연장을 나서야 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대로, 옳다고 믿는대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고, 문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움츠려들거나 자기자신을 꺾는다면 그 사람은 딱 거기까지인 것이라고 말했다. 시일이 지난 뒤 후회 없이 살고자 하면 그 상황에서 소신을 꺽지 않아야 한다는 것. 마지막 질문자 덕분에 이와 같은 말로 강연이 마무리되었다. 계속 검사로 살고자 했지만 검찰에 실망도 많이 했고, 자의반 타의반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그는, 이제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나서기도 한다. 조국 교수가 강단과 시민사회에 머리를 제공하는 학자라면, 금태섭 변호사는 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하는 실천가이다. 그를 다른 자리에서 또 만나기를 기대한다. 다음엔 세 번째 만남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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