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인문학 - 인문학과 싸우는 인문학
최진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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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선사하는 최상의 선물은 당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것,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려주는 것, 머리 싸매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애써 고민하고 언어로 토해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최진석)
-8쪽

인문학이 텍스트의 쾌락이자 종이 위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한, 이 세계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혁명은 인문학이 묵독의 자아도취를 벗어나 광장에서 올리는 함성이 될 때, 거리에 대한 관조를 중단하고 거리를 욕망할 때, 학문이라는 성에 칩거하지 않는 비학문이 될 때, 우리의 심장과 지성, 언어를 격발시키는 불온한 인문학이 될 때 점화되기 시작할 것이다.(최진석)
-8-9쪽

그것(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제언)은 차라리 지금-여기의 현실을 작파하고 ‘다른’ 현실을, 우리의 감각과 지식, 상식의 기반을 뒤흔들어 우리를 ‘낯선’ 변경으로 던져 넣는 것이어야 한다. (정정훈, 최진석)
-17쪽

나는 온화함과 동일성의 논리로 우리를 포획하는 인문학의 이미지를 뒤흔드는, 그래서 인문학을 낯설게 하고, 그래서 인문학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인문학에 반하는 사유 활동, 즉 그 사유 활동을 ‘불온한 인문학’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정정훈)
-104쪽

통섭이란 관념만큼 횡단에서 거리가 먼 것은 없는 것 같다. 통섭은 횡단과 반대로 하나의 체계 안에 지식들을 ‘통합’하고 ‘포섭’하려는 제국주의적 전략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이른바 ‘학제적 연구’보다도 훨씬 낡은 관념이지만, 그것이 종종 학제적 연구 체계의 구성으로 오해된다는 사실은, 학제적 연구 또한 통섭처럼 통합과 포섭의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와 달리 횡단은 하나의 지식을 다른 지식과 통합하여 단일한 체계를 부여하려는 발상을 가로지르는 것이고, 이런저런 지식들을 근거짓는 것과 근거 지워지는 것, 근본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일차적인 것과 이차적인 것의 위계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발상 전체를 전복하는 것이며,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과 반대로 거기서 이탈하여 엉뚱한 만남의 장소를 창안하는 것이다. (이진경)
-145-146쪽

추방된 자들의 (인)문학적 공동체를 위해 인문학자는 스스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유의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삶의 심층에 사유의 구멍을 뚫는 두더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인문학자들의 공동체는 사유의 탈영토성을 무기로, 개별적으로 삶의 심층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구멍을 연결해야 한다. 그 통로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소통시키고, 기술을 소통시키고, 기술자들을 소통시켜야 한다. 그래서 지하 생활자들의 땅굴 네트워크, ‘지도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박정수)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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