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인문학 스터디 5기. 경제 강연 시리즈, 신용불량자가 넘쳐도 대출 광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 편. <대출 권하는 사회>의 저자 김순영 선생님께서 강연하셨다. 이 책은 후마니타스에서 나왔는데, 이 출판사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나오는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거나 고쳐 쓴 책들을 많이 낸다. 이 책도 김순영 선생님의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는 자격이 특정 계급에게로만 제한되어 있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누구나 발급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후 발생하는 또다른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IMF 구제 이후 경제 지표는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왜 2003년말의 신용불량자 숫자는 급증하였는가? 이 당시에 약 110만 명 정도가 증가하였다. 신용카드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2003년 때부터 늘어난 것이다. 2003년부터 신용불량자 수는 약 230만~260만 명 가량이고, 신용카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약 110~120만 명 정도이다."  

  "현금 서비스 한도를 풀어서 한 달 천만 원까지 개인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게끔 제도가 변경되었고, 규제가 풀리자 개인들은 큰 금액을 대출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현재와 미래 자금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책임도 물론 있다. 개인의 신용이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면서 신용카드 소지자가 많아졌고, 당시 현재 인터넷 가입 때처럼 현금을 쥐어줘가면서 카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는 카드사들 간의 치열한 경쟁탓이었다."  

  "신용카드 이용실적을 살펴보면, 카드로 구매한 금액, 할부  금액보다 현금 서비스의 실적이 70%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신용카드의 본래적 역할보다 대출과 현금 서비스 카드 역할을 하게 되어,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신용카드사가 연계를 맺은 업체의 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카드를 소지한 개인에게 1년 기준 카드 유지비를 받는다. 신용카드 경쟁이 치열해지며 광고비 지출도 커졌고, 특히, 삼성 카드의 경우 97년 이후 다른 카드사들이 광고비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금액을 늘려나가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신용불량자'에 대해,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소비를 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개인의 실수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개인보다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준 카드사와 은행, 정부의 잘못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 쓸 수 있는 사용 한도를 무한정 올려놓고, 열심히 쓰라고 독려하는 환경에서는, 소비가 곧 미덕인양 자신의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쓰고 보자는 사고방식이 팽배하게 된다. 은행과 카드사와 정부의 합작품이고, 이윤은 은행과 카드사가 다 가져간다. 그들이 대출 한도나 서비스 한도를 높이고, 사용을 독려하는 것은 기업 이익을 올리기 위함이다. 절대, 사용자 개인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자. 

  " 할부와 현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보면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신용카드가 사실상 대출 카드의 역할을 하게 되고, 이자 비율이 높아 개인의 경제적 상황이 더더욱 악화되었다. 카드사의 광고비는 이러한 수익에서 지출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음으로써 수익이 더욱 커지는 순환 고리를 가진다."

  "카드사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는가. 아니다. 카드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타 카드사와의 경쟁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연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나 발급해준 것은 수수료와 이자 수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약 28% 가량의 이자 수익 비율은 일본의 사채보다도 더 높다. 조건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발급해준 까닭은 강박적 채권 추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강박적 채권 추심에 대해서는 영화 <똥파리>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일단 조건 불문하고 돈을 빌려줬는데, 돈을 쓰고나서는 갚을 능력이 안 됐고,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빌려준 기관이나 개인은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채뿐만 아니라 카드사나 은행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 정부가 등록금 대출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대출해주고, 졸업하고 나서 갚으라 했는데, 갚지 못하면 강제 추심을 하겠다는 것. 이래놓고 교과부는 알바를 할 필요가 없어요, 든든 학자금 제도가 있잖아요, 이러고 있다.

  "은행권 카드사와 전업 카드사 두 부류가 있는데, 화장품, 보험은 길에서 다 가입하고 구매하는데 왜 신용카드 발급만 아무 조건 없이 해주면 안 되는가, 하고 김대중 정부 당시 규제개혁위원회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양쪽 모두 무한정 발급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관명과 그들의 주장이 얼핏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이 신용카드 발급에 대해 규제하는 것을 반대했다.규제개혁위원회의 일원 중 엘지카드사 등 재벌계 카드사 임원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 재벌계 카드사는 은행권 카드사보다 홍보의 수단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은행만큼 영업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길에서 홍보를 하려고 했고, 그것을 위원회가 허락한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만든, 미국까는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규제를 강화해야 할 기관이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상황. 그 안의 임원들을 보면,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 관계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다른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대되는 기관에 몸담은 것이다. 법조계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나. 판검사 하다가 기업 변호인단에 들어가 있고, 국세청에 있다가 기업에서 세금 업무 맡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를 여러 개 만들고, 카드깡을 하고, 카드 비용을 대출롤 돌려주겠다고 하는 업체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어떻게든 돈을 빌리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경로를 밟게 되는 사람들이 갚아야 할 비용은 점차 늘어나고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금액이 된다. 이때가 되면 범죄나 자살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자다." 

  "김대중 정부가 이자 제한법을 폐지하였으나 최근 대부업계의 경우 44%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200%이상의 고금리를 적용하는 사채업체들도 있다. 원금 100만 원 미만이면 20%, 100만 원 이상이면 15%로 제한한 일본에 비하면 사채업의 천국인 셈이다.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사채업체들이 한국을 시장으로 삼는 이유는, 일본보다 한국의 이자 제한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5~20% 받느니, 한국으로 와서 44%의 이자로 수익을 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 이 업체들은 한국의 이자율이 66%일 때 많이 들어왔다. 지금은 (돈을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 그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하나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사채업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한때는 연예인들도 사채 광고에 나왔는데 지금은 이미지 관리상 이를 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안으로 만든 것이, 무대리 같은 사례. 사람 대신 재밌고 웃긴 캐릭터를 등장시켜 친근하게 만드는 것. 광고 카피도 '친구 친구 러시앤캐시'아닌가. 우리는 당신의 친구이고, 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 그러나 돈을 빌린 이후엔 텔레비전 광고의 이미지가 아닌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제1, 제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이들은 결국 이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신용카드에 대한 소득공제 폭을 줄이고, 체크카드 공제폭을 신용카드보다 높게 설정했는데, 이는 신용카드를 한 장씩은 다 가지고 있고, 제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화낼 만한 조치이지만, 신용카드보다 체크카드 사용을 권하는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다만, 기왕에 체크카드 사용을 권하려면 신용카드 공제폭을 줄이지 말고 유지하는 한편 체크카드 공제폭을 기존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유리지갑 직장인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충당하고, 덜 돌려주려는 정부 입장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 이에 대해서는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 세금은 저소득 직장인들이 아니라 고소득 직장인과 부자들에게서 거두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단 한 분을 봤는데, 그 분은 한 번 만들어봤더니 자기가 제한 없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잘라버렸다고 한다. 확실히 결제가 쉽기 때문에 사고픈 물건이 있을 때 더 고민하지 않고 카드를 사용하게 되는 경향은 있다. 그러나 가급적 체크카드를 사용하려고 한다. 공제폭이 신용카드보다 커서가 아니라-그 공제나 이 공제나 어차피 얼마 못 받거나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갚아야 할 돈의 액수가 커지고 뒤로 밀리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일단 잔고가 없을 땐 신용카드를 쓰더라도 잔고가 다시 생기면 '선결제'를 하는 방식으로 총 금액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래야 카드값 내는 날 타격을 덜 받게 된다.  

  카드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강의를 들은 다음 날 카드사에 전화해 한 장을 없애긴 했지만, 아직도 내겐 세 장의 카드가 있다. 그 중 한 장에 몰아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나머지 두 장은 예비용이다. 요샌 신용카드 할인이나 혜택이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 없애기는 힘들다. 개인이 스스로 절제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면 아예 카드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망각하라.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또 문자가 왔다. "수수료 없는 대출, 땡땡 실장입니다. 고객님은 현재 700만 원 이상 가승인 상태입니다." 매일 몇 건씩 받는다. 댓가 없이 줄 거 아니면 보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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