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러 & 엘륄 : 현대기술의 빛과 그림자 지식인마을 4
손화철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읽다보면 관심이 없던 인물에게도 관심이 생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닥 관심이 없던 사람이고, 한 명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듣보잡이었다. 전자가 제1의 물결인 농업 혁명과 제2의 물결인 산업 혁명에 이어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한다며 빨리 그 물결을 타라고 주문했던 엘빈 토플러이고, 후자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버린 현대 기술 속에서 인간 역시 기계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자율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했다고 본 자크 엘륄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익히 알고 있던 토플러보다는 듣보잡이었던 자크 엘륄에게 더 매력이 느껴졌다.

  이 책은 외견상 동일한 비중을 두고 두 사람을 양극단에 놓고 바라보지만, 실질적으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저자는 토플러보다는 엘륄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엘륄의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고, 엘륄의 시각을 이어받은 이후의 학자들이 하나씩 얼굴을 내민다. 울리히 베크나 허버트 마르쿠제, 포스트먼, 보르크만, 밴더버그 등은 엘륄과 비슷한 선상에서 과학 기술의 폐해를 지적한 인물들이다. 또 앞선 철학자로는 나치스에 가입했다고 하여 마르쿠제가 등을 돌린 스승 하이데거가 등장하는데, 과학 기술 철학은 하이데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봐야 할듯 하다.  

  "근대 사상가들은 존재자들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신비롭고 초월적인 질서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진리가 있음을 부인하고, 이성적인 인간 주체를 절대화했다. 존재자들이 진리를 인간이 밝혀내고, 그 상호연관성과 전체적인 질서까지 인간이 부여한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존재의 드러냄을 망각한 결과가 현대 기술이라고 보았다. 현대 과학 기술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근대 이후 인간은 과학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연뿐 아니라 인간 스스로도 과학 기술에 지배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엘륄과 마르쿠제의 기술 시스템이 인간의 자율성까지 지배했다는 주장과 닿아있다. 마르쿠제는 창의성이 희생된 이 같은 사회를  '일차원적 사회'라고 칭했다.  

  또, 포스트먼이라는 학자는 엘륄과는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는데, 엘륄이 현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사회나 문화, 윤리 등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데 비해, 그는 기술이 인간의 사회, 문화, 경제 등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한다. 엘륄의 부정적인 견해와는 달리 포스트먼은 현대 기술의 영향력이 어떤지 깨달으면 인간이 과학 기술에 지배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장하는 것이 '인간성의 상승'이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해당 기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누가 피해를 입는지, 그것을 통해 권력을 잡게 되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아직, 해결책 치고는 추상적이다. 보르크만은 우리의 삶과 괴리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없으니, 단순 반복적인 일은 기계에 의존하되, 창조적인 행위는 인간이 직접하게 하는, 포스트먼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이원적 시스템을 제안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창조성와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여기에 동의를 해야 보르크만의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난점이 있다. 어떤 일을 창의적인 일로, 어떤 일을 단순 반복적인 일로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사회 구성원의 몫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계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체험하려고 한다. 우리는 과거에 통화 음질이 좋고, 문자만 제대로 가면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휴대폰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MP3를 듣고, 휴대폰을 네비게이션으로도 활용한다. 근대까지의 기술이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면, 현대의 기술은 사람들의 욕구와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술 자체가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그 기술을 따라가느라 힘겹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된다. 과학 기술은 이미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이건 명확하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앞서 과학 기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여러 철학자들의 견해를 들어봤지만, 여기엔 아직도 답이 없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의 방향 설정에 있어 남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자신들의 일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규명해보아야 한다. 나아가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 경우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상상은 요순시대나 성경에서 묘사하는 천국의 모습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