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윤리 - 실천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의
피터 싱어 지음, 김희정 옮김 / 아카넷 / 2003년 12월
품절


각국의 지도자들은 자국민의 이익에 어느 정도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추론이 보여주듯이 지도자들은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우선권’이란 어느 선까지를 의미하는가? -27쪽

테러리즘은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 세계를 통합된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이웃의 활동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나라의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들의 활동도 우리의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는 법의 손길이 그곳까지 미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 전체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고서도 테러리스트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수단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 간의 입장 차이에 따라 정의가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건전한 전 지구적 형사 사법 체제가 필요하다. 또한 훨씬 더 어렵겠지만, 우리는 진정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로를 죽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강제력뿐만 아니라, 서로를 도우려는 의무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31쪽

원초적 선택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롤스는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사회에 속해 있으며 그 사회 내에서 정의를 이룩하는 원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가정한다. 그러므로 그가 규정한 조건 하에서 선택하는 사람들은 평등한 자유와 공평한 기회 균등이 보장되는 한도 내에서, 가장 못 가진 자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원칙을 정의의 원칙으로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할 때, 롤스는 "가장 못 가진 자"라는 개념을 자기 사회 내에 있는 자들로 국한하게 된다. -32쪽

윤리는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류의 행태와 감정에서 발달한 것으로 짐작된다. 집단의 다른 구성원에게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고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윤리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그 무엇과도 구분되는 인간만의 것이 되었다. 만약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하는 집단이 부족 혹은 국가라면, 우리의 윤리는 부족적인 차원 혹은 국가적인 차원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이 전 지구적인 청중을 만들어냈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 대해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윤리 창조를 위한 물리적인 토대가 된다. 이런 새로운 윤리는 과도한 수사학만 있었던 예전의 윤리가 결코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것이다. -37쪽

만일 다른 사람들이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일에 기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상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공동으로 식사하고 차례로 요리하는 체제에 있는데, 먹기는 하나 결코 요리하지 않거나 전체 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등하게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 변화에 관련된 상황이 아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서 선진국이 그간 보인 행태는, 부엌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겨우 반 잔의 물을 쏟은 당신이 더 이상의 물을 쏟지 않는다고 약속할 때까지 그 수도꼭지를 잠그거나 거기서 흘러넘치는 물을 닦으려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사람과 아주 유사했다. 이제 다른 선진국들은 수도꼭지를 잠그는 데 동의했다.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약속하기를 거부하는, 최대의 죄인인 미국을 내버려둔 채. -74쪽

거의 최저 수준의 생존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소득을 약간만 보충해 주면 그들의 복지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그들 이웃의 소득이 달러로 환산해서 훨씬 더 크게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세계 무역의 개시에 있어 더 중요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잘사는 사람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관점에서, 세계 무역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보다 세계의 못사는 사람들을 더 빈곤하게 만들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121쪽

도덕상대주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문화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윤리적 주장을 저해한다. 그 까닭은 만약 도덕성이 항상 사회에 따라 상대적이라면, 당신의 사회에서 온 당신은 당신만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고, 나의 사회에서 온 나는 나만의 기준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당신의 도덕 기준을 비판할 때, 나는 우리 사회의 도덕을 단순히 표현하고 있을 뿐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도덕 기준을 비판한다고 해서 당신이 나를 비난할 때, 당신은 당신 사회의 도덕을 단순히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사회의 도덕을 벗어나 다른 민족들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포함해서, 어떤 것에 대해 문화 횡단적인 혹은 객관적인 도덕 판단을 표현할 방법이 전혀 없다. -183쪽

공평주의에 대한 현대의 비판자들은 공평한 윤리를 옹호한다면 그로 인해 부실한 부모, 연인, 배우자, 친구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런 개인적 인간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다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방인보다 나의 아이, 연인, 배우자, 친구의 이익을 더 많이 고려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평 윤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을 잘못된 일로 본다는 것이다. 특히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인간관계를 소홀히 한다고 남성 도덕철학자들을 비난한다. -205-206쪽

미국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곤궁하다는 것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인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자식을 길러야 한다. 우리 아이가 높은 소비 수준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힘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그런 생활 방식이 환경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알도록 가르쳐주어야 한다. 연인과 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편향성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연인과 친구 관계는 공유하는 가치가 존재하는 곳에서, 아니면 적어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존중해 주는 곳에서 더 강해진다. 그 관계가 친구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공유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복리를 배려한다면, 우정이나 사랑이 요구하는 편향성은 큰 곤궁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심각한 방해가 될 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213쪽

세계화는 적어도 한 사회 내에서 우리가 정치적인 평등에 부여하는 만큼의 가치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사회 간의 평등에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23쪽

때로는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소득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상속자에게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는 잘사는 나라의 국민에게서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여, 자기나라 평균치에도 이르지 못하는 소득을 가진, 세계 최빈국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가난한 국가 내의 불평등과 국가 간의 불평등이 함께 감소될 것이다. -224-225쪽

"누가, 누구에게, 왜 해외원조를 하는가?"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알레시나와 달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했다. 즉 3대 최대 기부국인 미국, 프랑스, 일본은 성장을 촉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일 나라에 원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국의 전략적 또는 문화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나라에 원조한다. 미국은 중동, 이스라엘, 이집트 같은 우방에 원조액 중 상당한 금액을 할애한다. 일본은 유엔 같은 국제적인 모임에서 일본에 동조하여 투표하는 국가들을 선호한다. 프랑스는 자국의 예전 식민지 국가들에 압도적으로 할애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런 패턴과는 아주 다르게 원조한다 - 즉 가난하기는 하지만 주어진 재원을 오용하지 않을 합당하게 바람직한 정부가 있는 국가들에 원조한다. -244쪽

잘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못사는 나라에도 수많은 부자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도 또한 기부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가족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도 남는 소득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세계의 극빈자들을 돕기 위한 단체에 자신의 소득의 최소한 0.4퍼센트를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를 너무 낮게 잡는 것이 될 것이다. (중략) 보다 더 유용한 상징적인 수치는 소득의 1퍼센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빈곤을 반이 아니라 깡그리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에 거의 육박할 것이다. (계속) -247쪽

(이어서) 따라서 우리는 훌륭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공공 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해야 한다. 즉 풍족한 사회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사치품과 부질없는 것에 낭비할 만큼 돈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양식과 깨끗한 식수, 비바람을 피할 보금자리,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득 1달러당 적어도 1센트를 나누어주어야 한다.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 지구적인 의무를 공평하게 나누어 지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심각하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기부액이지 최적의 기부액이 아니다. -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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