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아 대논쟁 2 - 정의론 & 제도 히스토리아 대논쟁 2
박홍순 글.그림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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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롤스, 노직, 아도르노, 겔렌이 직접 한 말이 아닌 이 책의 저자가 각 학자의 입장이 되어 새로 쓴 대화체 문장입니다. 각 학자가 직접 한 말은 큰 따옴표로 별도로 표기합니다. 이 책은 두 가지 논쟁-롤스와 노직의 정의론 논쟁, 아도르노와 겔렌의 제도 논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밑줄그은 이 주)-0쪽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 1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선되거나 폐기되어야 합니다. 정의는 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원리여야 합니다. (롤스)-15쪽

어떻게 ‘사회’를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만으로 인간의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상식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사회란 그 구성원 상호간에 구속력을 갖는 어떤 행동 규칙을 인정하고, 대부분 그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느 정도 자족적인 조직체라고 가정해보아야 합니다. 개인을 넘어서는 자족적인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협동이 필연적입니다. (롤스)-16쪽

이 모든 것을 폭넓은 의미에서 사회 협동적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서로가 얼마만큼 어떻게 기여하였는가를 구분하기 어려운 곤란함이 일차적인 이유겠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부가 기득권을 비롯한 역사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생산 결과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요. 그러므로 이러한 복잡하고 확인할 수 없는 변수들을 배제할 때 공정한 사회계약이 도출될 수 있겠죠. 사회계약론이 고도로 추상화된 자연 상태를 상정하여 계약의 원칙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로크나 루소 같은 사상가들도 ‘자연 상ㅇ태’라는, 공정한 계약을 위한 가상의 상태를 설정했지요. 저도 그들이 말한 ‘자연 상태’에 해당하는 ‘원초적 입장’을 제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원초적 입장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원시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공정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론적으로 추상화된 상태인거죠. (롤스)-22-23쪽

로크에 의하면 자연은 기본적으로 인간 모두의 공유물이지만 인간 자신, 즉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력은 그 개인의 배타적인 소유물입니다. (중략) 이러한 소유권이야말로 노동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일차적이고 중요한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개인의 생산 활동을 전제로 할 경우 당연히 정의로운 사회란 소유권적 권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직)-24쪽

롤스에게 정의로운 국가란, 최소 수혜자를 위한 차등이나 불평등이 공정한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나라를 뜻하며, 한 사회의 불평등한 제도도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일 때에만 허용될 수 있다. 즉, 최소 수혜자들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 어떠한 제도도 자유의 이름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34쪽

노직은 사회에서 재화의 분배 양식은 모든 것을 분배하는 중앙기관의 활동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화의 분배는 무수한 개인적 교환의 결과이다. 중앙의 분배가 없는 상태에서는 롤스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분배적 정의의 문제도 있을 수 없다. 그 대신 개인의 소유 형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노직은 정의의 문제는 소유권적 정의로 정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6쪽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가들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에 대한 사회계약론자들의 기본적인 정의가 뿌리 깊은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개념을 마치 중립적인 개념처럼 여기고 이에 근거하여 사회 원리를 구성하고자 하는데, 이는 첫 단추부터 이미 잘못 끼우고 있는 오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53쪽

재화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의 산물입니다. 생산 과정에 대한 기여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익은 그 기여도에 따라 나뉘어야 합니다.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소득 수준만을 고려하는 차등의 원칙은 생산 과정에 대한 기여도라는 중요한 문제를 무시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직)-73쪽

노직 선생의 도덕이란, 소유권에 기초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한 사회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회체계가 어떤 불행과 불평등을 낳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사회적인 의미에서 도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져버립니다. 사회적인 도덕이 사라진 자리에 약육강식의 논리, 강자의 논리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롤스)-75쪽

롤스 선생이 나의 논리를 ‘강자의 논리’라고 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결과의 정당성은 불평등의 규모에 따른 게 아니라 취득 수단과 과정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의의 원칙은 개인의 소유권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교환의 공정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정한 교환을 보장하는 것이 곧 시장이라고 봅니다. 롤스 선생이 주장하는 차등의 원칙에 대한 재분배는 오히려 개인의 권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사회 정의에 대한 침해에 해당합니다. (노직)-85쪽

시장의 규칙도 사회계약의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이 결국 주장하는 것은 소유권과 교환의 절차가 정의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인데요, 소유와 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 논리 자체에는 불평등을 완화시키거나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히려 불평등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이 그다지 중립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롤스)-86쪽

제도는 이렇게 불안정한 인간이 상호간에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찾아낸 형식이라고 봐야 해요. 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한계에 의해 내적으로 형성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제도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며, 인간은 이 제도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문화라는 것도 그렇잖아요. 불안정한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상호관계의 표현물이 문화잖아요. 그러한 문화도 전체적으로 제도들의 구성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겔렌)-132쪽

인간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실현을 하는 존재입니다. 자기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동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 이성이 인간을, 단지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자율적 존재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아도르노)-132-133쪽

제도를 인간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과 별도로, 모든 경우에 제도적인 영역 안에서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상식을 깨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아웃사이더는 제도 안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 취급을 받습니다. 아웃사이더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멸당하지 않기 위해서 제도가 정한 틀 내에서 경솔하지 않게 처신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개인이 제도에 대해 무저항 상태에 이를 때 사회는 그를 신뢰할 만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합니다. 개인의 반항을 질식시킨 다음 백기를 든 개인들에게 항구적인 자비를 베푸는 통합의 기적은 바로 파시즘의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제도는 불가피한 범위 내에서만 인간에게 요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용인되어야 합니다. (아도르노)-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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