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정의의 조건 問 라이브러리 1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절판


법은 여러 사람이 이루는 사회에 없을 수 없는 자유와 그 한계를 밝히는 일을 한다. 법이 특히 중요해지는 것은 합리성과 일관성의 규칙에 입각하여 자유의 테두리를 넘어 경계선을 범하는 사람들에게 제제를 가하는 일에 있어서이다. 이 때의 법률판단에는 일반적 명제만이 아니라 낱낱의 사람의 사정에 대한 검토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학의 교육에는 문학과 철학 등의 교육이 필수적이다. -4-5쪽

그러나 여기에서도 인간에 대한 일정한 도덕적 윤리적 이해가 없을 수가 없다. 타협의 제도에도 인간의 삶에 대한 일정한 가치적 선택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원하든 아니하든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사람이 살 만한 사회를 생각하는 데에서 핵심적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시장과 시장의 규율과 도덕윤리 中)-23쪽

동정심은, 정의의 동력이 되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선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의 심리를 나타낸다. 또 그것은 자기의 이익과 맞부딪치게 될 때, 그것을 넘어서기 어렵고, 또 어떤 경우에나 ‘이익의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 작용하기 어렵다. 흑백 인종갈등에서, 근본적으로 백인은 흑인에 대하여 공동체적 관심, 또 그러니만큼, 동정심을 가질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동정심이 언제나 차단된 것은 아니었지만, 백인의 동정심은 흑백의 상하질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정심은 보이지 않게 흑백 인종차별의 제도를 지속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몇 가지 연구를 종합한 바발렛의 결론은 백인의 동정심이 흑인의 기본권의 요구에 있어서 분개심에 의하여 대치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억압적 사회제도가 무너질 수 있었다.-53-54쪽

(복수심과 분개심의 차이에 관해)
전자는 권력관계에서의 부당한 불균형을 바로잡아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자존심에 관계되고 후자는 "외적으로 받아들여진 기분과 가치와 규칙의 관점에서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하는 감정이다. 앞의 감정은 구체적 개인에 가해진 구체적 상해를 바로잡겠다는 행동에 이어지는 데 반해, 이것을 전체성으로 즉, 보다 넓은 것으로 열어놓는 것이 분개심이다. 바발렛에 의하면, 분개심은 "수긍할 수 있고, 바람직하고, 타당하고, 정당한 결과와 절차를 벗어난 데 대한 감정적 인식"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복수심’을 특정한 상해행위보다는 ‘상해가 일어나게 된, 손상된 권리의 장’, ‘상해의 일반적 형식’을 향하게 된다. 말하자면 분개심이 상해가 일어나게 하는 체제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게 하고 행동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54-55쪽

그(바발렛)는 ‘복수’를 ‘복수심’으로, 이것을 다시 ‘분개심’으로 대치한다. 이것은, 개인의 심성에 일어나는 것이면서도, "외적으로 받아들여진 기준과 가치와 규칙의 관점"을 포함하는 복수심이다. 그러나 이 기준과 가치와 규칙이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될지 또 보편적인 것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어떤 인간의 심성적 특징도 그 자체로 사회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3자의 관점 또는 더 적극적으로 이성의 여과과정을 거처ㅣ고 그것이 다시 제도화됨으로써만 규범성을 획득한다. -64쪽

분개심은 완전히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도 그 자체만으로는 삶의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거기에 어떤 대중적 가치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분히 사회를 발전시킬 긍정적 가치보다는 부정에 입각해서 성립하는 가치이기 쉽다. -65쪽

‘고귀한 개인’은 그 자신의 값어치, 자신의 존재의 충만함에 대하여 천진하고 무반성적인 의식 - 자신의 존재가 우주에 뿌리하고 있다는 듯, 깨어 있는 매순간을 풍부하게 하는, 막연한 자아의 존재에 대한 천진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존심’이 아니다. 자존심은 이 ‘천진한’ 자신감이 줄어든 것을 경험하는 데에서 나온다. 자존심은 자신의 값어치를 억지로 ‘부여잡고’ ‘잃지 않으려는’, ‘쥐어 잡음’의 표현이다. 고귀한 사람의 천진한 자신감은, 근육에 그 긴장감이 자연스럽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그 실질 그대로 그리고 모양 그대로 받아들인다. (계속)-85-86쪽

(이어서) 그럴 도리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것을 기뻐하고, 그로 인하여 세계가 보다 사랑에 값하는 것이 된다고 느낀다. 그의 천연스러운 자신감은 특정한 자질이나 재능이나 덕성에 기초한 평가에서 나오는 ‘복합물’이 아니다. 그것은 당초부터 그의 본질과 존재를 향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우월한 자격을 가졌거나 타고난 자질을 가졌거나 또는 다른 어떤 점에서 낫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한 인정은 자신의 값어치에 대한 천진한 의식을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 그 자신감은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고 업적이나 능력에 의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다. (셸러)-85-86쪽

사과는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는 일이고, 되돌아봄은 반성작용의 일부이고, 자신이 관계된 일이지만, 제 3자적 관찰자 ‘사리에 밝은 관찰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을 말한다. 상징적 사과는 당초부터 과거사에 대한 반성적 회고의 일부를 이룬다. 이 반성에는 처음부터 제 3자 개입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제3자가 할 수 있는 일의 핵심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과라기보다는 당사자들에게 그러한 사과와 화해를 권고하는 일이다. 권고에는 권고자와 당사자들 간의 관계에 의한 정당화가 필요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당사자가 아니면서 사과한다고 할 때, 그 근거는 한국과 베트남 간의 문제라면, 권고자가 한국이나 베트남인이 과거의 사건에 책임을 느끼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사과는 사과에 대한 권고이면서 자신의 사과이기도 하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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