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절판


계몽사상가 루소는 사람들이 세상과 타인을 속속들이 볼 수 있을 때 투명한 사회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자신은 보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비대칭적 시선의 확장은 규율 사회와 감시 사회를 낳았다. 파놉티콘이라는 건물에 구현된 감시의 원리는 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규율 사회의 기본 원리인 파놉티시즘으로 탈바꿈했다. -25쪽

기든스는 푸코가 이 둘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주목하지 않고 단지 감옥에서 죄수를 통제하는 방법과 작업장에서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법을 동일시한닫는 점에서 푸코를 비판했다. 파놉티콘과 같은 건축물은 물리적 감금이 허용되는 감옥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고용주와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만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기든스의 비판의 요지였다. -54쪽

규율을 주입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사용했던 것은 당시 널리 보급되어 있던 시계였다. 시계는 노동자들을 근면하고 유능한 공장 노동자로 만든 중요한 메커니즘이었다. 공장에 시계가 도입되면서 작업은 생체 리듬이 아니라 시계의 시간에 맞춰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공장주가 시계를 독점하고 시간을 속여서 더 작업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정확한 시간의 중요성을 체화한 다음엥는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초과 노동에 대한 초과 수당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제 시간은 '때우는' 것에서 소비되고 사고 파는 것으로 변했다. '시간은 돈'이라는 식의 시간 관념이 중요해지면서 공장에는 작업 시간표와 작업량을 체크하는 표가 도입되었고, 이는 다시 규율과 시간 관념을 더욱 강화했다. -58-59쪽

전자건강보험증은 잠정적으로 포기되었지만 2002년 초 정부는 홍체나 얼굴형과 같은 생체 인식 전자 정보를 포함한 생체 인식 여권을 추진하기 위해 그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선진국은 추진하고 있는데 뒷짐만 지고 있다가는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 논리다. 흥미로운 것은 전자주민카드를 추진할 때에도 정부는 이러한 핵심 기술에서 선진국에게 밀리면 안 되고, 오히려 이를 빠르게 추진함으로써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사실이다. -78쪽

2001년, 삼성 그룹은 참여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린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아직 기업에 의한 직원의 전자 메일 감시 등에 대한 법률적 규정이 없어 이러한 감시가 광범위하게, 직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91쪽

포스터는 자발성에 근거한 슈퍼파놉티콘이 파놉티콘을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회 전체를 관장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포스터의 수퍼파놉티콘은 가상 세상을 통한 파놉티콘의 권능 강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상 파놉티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디즈니월드에서 수많은 관광객에 대한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한 쉬어링과 스테닝은 그곳 통제의 특징을 "방문객의 자발적협조"라고 규정하면서, 파놉티콘식의 속박과 감시를 통한 통제가 아니라 미묘하고, 협력에 기초하고, 강제 없이 느슨하게 퍼져있는 통제의 네트워크가 현대 사회의 통제의 특성임을 지적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통제가 가능한가? 디즈니월드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이 "리얼리티쇼"의 세상이다. 여기에서 관광객들은 현란한 이미지를 구경 잘하고 즐기기 위해서 통제에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이를 조금 일반화해보면, 현대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부추기는 수만 가직 상품에 대한 현란한 이미지에 시선과 관심을 고정시킴으로써 통제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는 것에 만족한 나머지 보여지는 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102-103쪽

푸코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스펙터클의 사회"가 "감시 사회"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전자 파놉티콘의 사회에서는 "스펙터클"(보는 것)과 "감시"(보여지는 것)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현재는 스펙터클과 감시가 융합된 세상이다. 우리는 보여짐으로써만이 아니라 보는 과정에서도 감시와 통제의 네트워크에 포함된다. -103쪽

벤담의 파놉티콘은 푸코에 의해 현대 사회의 규율 메커니즘으로 탈바꿈했고, 푸코의 파놉티콘은 정보 파놉티콘과 전자 파놉티콘, 수퍼파놉티콘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19세기 이후 사회의 파놉티콘화와 더불어 의회, 언론, 시민운동과 같은 시놉티콘이 동시에 발전했으며, 정보 파놉티콘과 전자 파놉티콘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파놉티콘으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살펴보았다. "감옥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바로 감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았을 것"이라는 프랑스 작가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나 "현대사회=감옥"이라는 등식은 현대 사회와 조직에서의 통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127쪽

미래는 부자를 제외하고는 프라이버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던 과거와 비슷해질 것이다. ......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시골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았지만, 미래에는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1999년 5월 1일자 -130쪽

사람들은 약간의 편리함을 위해 프라이버시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 당첨될 확률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경품 때문에 성명, 주소는 물론 전화번호까지 쉽게 제공한다. 적립금이나 마일리지 보너스를 위해 멤버쉽 카드를 만들고, 이를 위해 자세한 신상 정보를 제공한다. 공공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이점 때문에 폐쇄 회로 텔레비전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무관심하다. 핸드폰 전화번호는 이미 자기 사무실 전화번호만큼이나 공적인 것이 되었다. 실명 등록을 권하는 국내의 어느 포털 사이트는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아예 회원으로 등록할 수 없는 곳도 있다. -133쪽

기술의 궤적은, 기술이 새롭게 열어주고 힘을 부여하는 사회 세력들과 그 기술 때문에 힘을 잃게 되는 사회 세력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그때 그때 형성되는 불안정한 균형에 따라 불규칙하고 가지치기식인 경로를 따른다. 이러한 상호 작용 때문에 특정한 기술이 특정한 궤적을 그리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를 들어 정보기술은 반드시 '글로벌 파놉티콘'을 낳게 되어 있다는) 자칫 비관적인 결정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기술의 궤적에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세력들 사이의 힘의 관계이지, 기술의 초기 디자인에 각인된 발전 방향성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명백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이지 못한 기술을 놓고, 이 기술이 가져올 수도 있는 미래의 역설적인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위험한 태도이다. 이럴 경우 기술의 궤적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궤적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기술과 사회 세력들의 다양한 개입 사이의 상호 작용이다.-139쪽

대부분의 데잍터베이스는 접근자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다른 패스워드를 지정해서 공개 정도를 차등적으로 결정한다. 파놉티콘이 시선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했다면, 전자 파놉티콘은 정보 접근의 비대칭성 때문에 가능하다.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권력을 가진 어떤 자가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나를 옭아매는 파놉티콘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역파놉티콘은, 가능하지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운동과 다양한 NGO들에 의한 행정 및 사법 권력에 대한 감시, 대기업의 횡포와 통신, 인터넷 기업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감시, 의정과 언론에 대한 감시, 시민운동의 또 다른 권력화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 감시,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통제에 대한 반대운동, 정보의 수집을 제한하는 강력한 프라이버시법의 입법화, 그리고 역감시를 위한 정보 공개권의 확보 등이 결합할 때에 역파놉티콘이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140쪽

각주 56)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태도이다. 영국에서 사람의 조작에 의해 작동되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연구한 한 보고서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조작하는 사람이 뚜렷한 이유 없이 흑인 남성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카메라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슨 가핀켈, <데이터베이스 제국>, 195쪽.-151쪽

각주 98) 해킹과 해커 문화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도로시 데닝은 인터넷을 이용한 운동을 액티비즘, 핵티비즘, 사이버테러리즘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액티비즘은 인터넷을 연대, 홍보, 출판,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고, 핵티비즘은 가상 연좌 농성, 폭탄 메일 등을 사용해서 특정한 웹사이트나 통신을 일시 마비시키는 것이며, 사이버테러리즘은 비행기 관제 시스템 같은 기간 시설을 마비시켜서 살상과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 중 핵티비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이버액티비즘의 일부로 간주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이버테러리즘으로 간주되는 등 그 경계가 가장 모호하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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