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품절


"우리들이 진보한다는 것의 잣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의 풍요에 뭔가를 더 주는데 있지 않다. 그것은 아주 적게 가지거나 거의 못 가진 사람들에게 견딜 만큼 마련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것이다." (프랭크린 델라노 루즈벨트)-9쪽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출발선을 같게 하자"라는 '형평성'의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찾고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물론 초기 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주의라는 큰 복병을 만나게 되었고,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 셈인데,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것이 '형평성'이라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으로서는 '평등(equality)'을 포기하는 대신 형평성이라는 보다 완화된 가치에 동의를 해준 셈이다. 그리고 그 형평성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바로 교육이다. 최소한 안정적 시장 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선진국 정부와 국민들이 합의한 내용은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에까지 형평성을 적용하는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제도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따라서 "동거하는 주제에 대학은 뭐하러 다녀?"라고 말을 한다면 이건 이 사회의 근간을 깨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 되는 셈이다.-46쪽

현재의 시스템에서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도 나의 해법은 해법이다. 두 번째는 등록금 융자와 같은 개인융자로 비용을 지출하고, 나중에 고소득의 연봉으로 빚을 상환하는 방법이다. 전형적인 인간자본론 이론에 따른 해법인데, 만약 대학 졸업 이후 고소득의 연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평생 초기 출발 때의 빚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개인의 삶을 전체적으로 디자인하면서 위험부담이 상당히 큰 방식인데, 투자 이론에서는 이를 '위험선호도'가 높다고 표현하고, 이러한 행위를 '위험감수형 행동'이라고 부른다. 세번째 해법은 부모의 재정에 기대는 것인데, 이는 세대 간 소득 이전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나 동거와 같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50쪽

'세대'라는 용어는 이런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세대 담론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것이 '역사성'과 '공간성'이라는 구체성을 추상성에 덧붙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금 20대'라는 개념은 매년 20대가 갱신되기 때문에 '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물'과 같은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21세기 초반이라는 특수한 구체성을 부여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들이 세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보편주의적 접근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맥락이라는 또 다른 매력 때문이다.-77-78쪽

마케팅 세력이 아닌 어른들은 10대가 독서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예산과 제도를 비롯한 많은 지원을 해주겠지만, 마케팅 세력은 10대들에게 주어진 용돈을 독서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하도록 계속 유도할 것이다. 작지만 이 두 가지 힘의 싸움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나머지 힘들 사이의 균형을 결정할 가장 큰 요소이다. 마케팅 세력과 비마케팅 세력은 10대의 용돈이라는 1318 시장에서 그야말로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여기에 한국의 미래가 걸려있다.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는 지표는 간단하다. 10대들이 상대적으로 책을 사는데 더 많은 용돈과 에너지를 지출할지 아니면, 1318 마케팅 세력을 지시하는 화장품과 소비재를 사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셈이다. -142쪽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 명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평균은 119만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원이 된다. 그나마도 세전 금액이다. 따라서 하루 8시간을 일하는 20대 비정규직이 한 달에 확보할 수 있는 경제력은 그보다 적다. 이 임금을 기준으로 한 달에 50만원을 저축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죽음과 같은 삶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10년을 모으면 6천 만원이고, 20년을 모으면 1억 2천만 원이 된다. 그리고 50대가 되었을 때, 그나마 비정규직 일자리조차 남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본다면 20대는 평균적으로 전세는 물론 결혼도 하기 어려운 세대이다. 결혼을 해서 손에 얻는 돈은 중산층이 자녀 한 명에게 들이는 사교육비 정도이다. 아니, 이들도 전부 그만한 돈을 들여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아닌가? TV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사들이고, 잡지가 시키는 삶의 방식을 채택한다면, 20년 후에 1억 2천만 원의 자산 대신 그만큼의 빚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20대, 그들이 바로 '88만 원 세대'이다. -143쪽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 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즉, 대학 국유화를 쟁취한 뒤 다음 단계로 진화했던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우리의 386은 대학개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청사진이나 의미 있는 노력을 개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의 68세대들이 공교육 체계를 대학까지 연장시키면서 다음 세대들이 보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20살에 독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반면 우리나라의 386은 학벌주의와 경제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은 차이점은 세대원들끼리 서로 지원하며 일종의 경쟁력을 가지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지금 10대와 20대가 맞게 된 조금 황당한 상황들은 사실 이 386세대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177-178쪽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학번 중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 시절에 대학생 정원을 대폭 늘리면서 운 좋게 대학원만 졸업을 하고도 대학교수가 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교수가 된 상태에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8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많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박사과정에 진학하거나 유학 붐을 만들며 교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문은 잠깐 동안만 열렸고, 석사학위만 가지고도 교수가 될 수 있는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박사를 수용할 수 있는 대학교수직이나 연구직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박사들 특히 인문학이나 특수전공을 가진 사람들은 후에 개인적으로 아주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사람들에게 발생한 운명을 우리나라에서는 '고학력 실업'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일이 유럽에서도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걸 '과잉 교육'이라고 불렀다.-182쪽

다른 세대와의 경쟁에서 20대는 서로를 소외시킬 확률이 높은데, 여러 가지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단결하고 뭉치도록 배우고 또 그렇게 살아온 앞의 세대와는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에서 인사권을 가진 세대는 유신 세대이지만, 곧 그 권한은 386세대로 넘어갈 것이다. 이 상황에서 별도의 그룹을 만들지 않을 확률이 높은 20대의 아주 일부가 윗세대에게 '포섭'되어 대다수의 20대를 소외시키는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연공서열제가 사라진 상탵에서 발생할 첫 번째 일이 바로 이것인데, 사회적으로 새로운 균형 상태가 나타날 때까지는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언젠가 자신들에게 인사권을 비롯한 경제적 권력이 쥐어질 날을 기다리면서 버티는 것이 대부분의 20대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 패턴이라 할 수 있다. 이걸 밖에서 보면 '20대가 20대의 적'이라는 상황으로 해석될 것이다. 20대에게 주어진 승자 독식 게임에서 사실 세대 간 경쟁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매우 거칠고 불행한 승자 독식 게임이다. -191-192쪽

불행을 비교하는 것처럼 비참한 일도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극단적인 승자독식 체제로 흘러가면서, 승자와 패자만 나뉘는 것이 아니라 패자들 사이에서도 또다시 변종 승자독식 게임이 벌어지게 된다. 젊은 세대 내부에서 극소수에 해당하는 승자들이 갈리고 나면 패자들끼리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지는 것이다. 여성, 고졸 이하 학력자, 지방대학 출신, 전문대 출신 등등의 집단이 벌이는 경쟁이다. 실업 문제와 비정규직의 여성화라는 문제는 '패배한 다수 가운데' 에도 계층이 나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여성이면서 지방대학 출신일 수 있고, 남성이면서 전문대 출신일 수도 있으므로 각 집단은 독립적인 게 아니라 중층적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때 벌어지는 승자독식 게임은 '패자부활전'의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개미지옥 게임'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 -197-198쪽

현재의 20대가 맞게 된 사회적 고통들의 원인은 20대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 경제 구조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직접적인 요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결국은 한국 경제의 영광의 30년 동안 화려하게 활동했던 중소기업이 지난 5년 동안 붕괴하게 된 것과 사회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 경제의 독과점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하나는 생산자본에서 발생한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통자본에서 발생한 일이다.
-241쪽

중소기업의 붕괴는 단기적으로는 20대 실업과 10% 미만의 소위 '우아한 직업'에 대한 과잉 경쟁을 만들어내고, 구조적으로 90% 정도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원치 않았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자신이 원해서 간 것이 아니므로 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게다가 기존의 경제조직에서 완전히 내몰린 사람들이 자영업에 대한 창업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미 유통에서도 대형 할인매장과 편의점을 중심으로 독과점화가 거의 완료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90%의 젊은이들에게는 불만족 상태에서 '메뚜기'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2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