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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평점 :
부모님은 베이루트에서 가장 큰 서점의 계좌를 갖고 계셨다. 그래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아무런 제한 없이 가져와서 읽을 수 있었다. 도서관의 서고와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한적인 지식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중략) 열 세 살 무렵에 독서 일지를 쓰기 시작해 1주일에 30시간에서 60시간씩 책으 읽으려 했고, 오랫동안 이런 습관을 유지해 왔다.
-p.378~379
올 한 해 제가 손꼽아 개봉하기를 기다렸던 영화는 바로 새롭게 시작하는 슈퍼맨 시리즈인 '맨 오브 스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흥행 성적이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보다 영 떨어지지만, 원조 슈퍼 히어로로서의 인기는 전세계적으로 여전합니다. 너무나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정의를 위해서 싸우기에 슈퍼맨은 종종 종교적 메시아로서 해석되기도 하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적되곤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학자들은 슈퍼맨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외계행성에서 지구로 와서 미국을 위해 헌신하는 슈퍼맨의 모습은 다양한 이유로 미국으로 이민 와서 자수성가한 이민자들을 상징하며, 이것이 바로 그토록 오랜 세월 슈퍼맨이 사랑 받는 이유라는 이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에 리뷰하게 될 책 『안티프래질』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이 시대의 슈퍼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바논에서 태어난 그는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파리 제9대학에서 금융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월가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다 2006년 철학 에세이스트로 전향해, 금융위기를 예측한 전작 『블랙 스완』(2007)으로 전 세계 언론의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으며 ‘월가의 이단아’, ‘월가의 현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부와 명예, 학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니다. 저자의 프로필만으로 얼어붙었던 저는 실제 책을 받아보고는 786페이지에 7권으로 된 구성, 용어설명과 부록에 주와 참고문헌으로 첨부된 어마어마한 두께에 압도당했습니다. 마치 자신을 패배시킨 것에 면역력을 가져서 점점 더 강해지는 괴물 둠스데이 앞에 선 슈퍼맨(그는 결국 둠스데이에게 그만...)의 심정으로 책과 정면승부를 펼쳐보았습니다.
게다가 에세이는 교과서와 상극이다. 에세이에는 더욱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탐구와 함께 자전적인 성찰과 비유가 혼합되어 있다. 나는 리스크와 관련된 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확률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중략) 따라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가 불확실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에는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서문 p.39에서
이 책은 저자의 의도에 의해서 7권의 책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각 권이 진화, 정치, 경영, 윤리, 철학과 같은 분야에서 '안티 프래질'에 대한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각 권의 내용들이 다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개념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읽어내기가 만만치는 않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머리 속에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이라는 단어만 수백번 반복한 느낌 밖에는 아무 것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패배를 인정하고, 두 번째부터는 철저한 준비와 체계적인 공략을 통해서 차근차근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책을 먼저 읽은 경험자의 입장에서 조언하자면, 이 책을 읽어내는 첫 번째 비결은 '용어'에 대한 이해와 숙지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안티프래질'은 충격을 받으면 깨어지기 쉬운 특성을 나타내는 '프래질'과는 반대로 오히려 더 강해지는 특징으로 저자가 창안한 개념입니다. 이 외에도 거의 원어를 한글로 옮겨놓은 듯한 다양한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책 말미에 용어설명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덮어놓고 내용으로 돌진하기보다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우선입니다. 그 다음에는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서문과 각 권의 제목들을 살펴보길 권합니다. 책에 대한 대략적인 모습이 그려지고, 그 후에 책을 읽어나간다면 한결 수월하고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안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함을 이루어내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중략) 아랍인들도 이런 생각을 다음과 같은 통렬한 문장으로 포현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실력이 없어도 된다. 그것을 글로 쓰려면 정복해야 한다.
-서문 p.27에서
이 책이 학술적인 논문으로 확장되기 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읽히기를 바란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방대한 분량과 저자 자신이 일반인은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복잡한 기술적 내용(심지어 관련 종사자를 위해서 번역자는 일부러 부록을 원문 그대로 실었다고 합니다.)때문입니다. 덕분에 저는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안티프래질이 과연 자연적인 혹은 사회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저자가 우리에게 주문하는 새로운 사상인지조차도 고민해야 했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책에 삽입되어 있는 예화인 토니와 네로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간하고, 기술적인 내용은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책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2013년 12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책일지도 모릅니다.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철도 민영화를 비롯한 민영화 이슈,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둘러싼 찬반양론, 장기간 대치하고 있는 여당과 야당, 불안한 북한 정세에 이르기까지 프래질을 넘어선 '슈퍼프래질'(충격을 받으면 자신만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전염시켜 연쇄적인 파국을 일으키는 현상을 묘사한 말로 제가 만들어 보았습니다)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이 책이 제안하는 바벨전략(이원적인 전략으로서 하나는 안전하고 다른 하나는 위험한 두 개의 극단을 조합한다. 일원적인 전략보다 더 강건하며, 때로 안티프래질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이 매우 현실적인 타협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제안하고, 수용하고, 거부하는 집단이 누구인지를 살펴봄으로써 누가 프래질이고 누가 안티프래질인지를 우리는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