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출구 1
허새로미 지음 / 봄알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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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쯤 서러운 일이 다시 생겼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도 문자로 상황을 설명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거면 연락하지 말라는 내 말에, 기어이 다시 한번 나에게 그 말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고 그다음 서러움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순도 높은 서러움이 나를 에워싸며 그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닌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고 왜 창피해야 하고 왜 쪽팔려야 하는 거지...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을 차단하기로 했지만 기어이 그 말들은 내 귀에 끈덕지게 들러붙어 나를 괴롭혔고 나를 그렇게도 많이 울렸다. 그 말은 나의 모든 상황이 안정화로 접어든다 하더라도 따라붙을 말이었다. 이제껏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했던, 하지만 자발적으로 수고했다거나 고맙다고 말 한마디 듣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그 대상이었다. 이전에도 서운한 일이 생길 때마다 표현에 서툴러서 그런 거겠지, 원래 그랬으니까, 공감에 부족한 사람이니까 하고 그를 미워하지 않기 위한 이유들을 지어냈다. 하지만 그것과는 명백하게 달랐다. 응당 부모라면 자식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 깨어졌다. 농담처럼 나는 부모의 부모라고 생각하고 내뱉은 적이 있는데, 그게 진실로 수렴되어버릴 것 같게 되자 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서러움이 길게 갈 것 같다.

마침 j한테 전화가 왔고, 나는 엉엉 울었다. 혼자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 j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또 상황을 설명하면서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었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서러움이 나를 옥죄어온다. 그날 j는 퇴근이 좀 늦을 예정이었고, 나는 집에 혼자 있기가 싫어 카페를 가기로 했으나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감금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 혼자만 외로운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그래서 난 가장 안온한 나의 공간에서 집에 있는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를 꺼냈고, 아메리카노를 휘휘 저었고, 풍성한 로즈마리 대신 듬성듬성한 올리브를 올려놓고 보면서 내 슬픔들도 듬성듬성해져 거리가 멀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던 책이 있었지만 내가 이날 읽기로 한 것은 전전날에 도착한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라는 책이었다. 딱 시의적절하게 나를 찾아왔네. 싶어서 서글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책에 대한 내용을 어렴풋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읽고 싶었고, 그래서 읽기가 두려웠다. 책을 읽다가 내 알몸을 내보이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감도 나를 후려쳤다.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머리를 먼저 뉘어야 했다. 하지만 머리를 비울 방법을 나는 몰랐고, 그렇다면 차라리 더 깊이 들어가 버려 이 문장들이 지끈거리는 두통을 조금이라도 벗겨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가 아닌 모부라는 단어 선택만으로도 알았다. 아, 페미니즘. 언젠가부터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들은 일부러 거부하고 있다.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인데, 그 부분을 깊이 알고 싶지 않다. 다만 멀리서 응원을 하는 선택지를 택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1부에 있었다.

8.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원래 특별한 거라고들 하지만 내 엄마는 아들을 ‘영혼의 동반자’ 같은 걸로 여겼다. 부계와 얼굴부터 체형까지 닮은 나와는 달리 엄마의 무언갈 날 때부터 좀 더 많이 지닌,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하늘이 점지해준 엄마의 사랑.

나 역시 어릴 때 엄마에게서 남동생과의 차별을 수시로 받았다. 의사가 아빠에게, 자칫하다 산모가 죽을 수 있으니 아이를 포기하라고 권유했지만 엄마는 끝까지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 내 남동생이었다. 남동생은 세 누나에게 둘러싸일 아이였는데, 바로 위 두 누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더라 하고 옆에서 주워듣기만 했고, 나는 그 사실들을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남동생은 엄마의 보호와 보살핌과 넓은 아량과 배려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여러 차별들을 겪으며 남동생을 지독히 미워했다. 어느 날은 동생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느 날은 자고 있는 동생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기도 했다. 엄마의 차별이 심할수록 나는 남동생에게 더 야박해졌고,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너는 애가 참 못돼 처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분고분했던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의 머리통이 둥그렇게 변하면서는 반항이 시작되었다. 나는 입으로 싸웠고, 남동생은 나를 때렸고 그 자리는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다. 당시 엄마가 내게 내뱉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니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 걔는 순한데 그냥 때릴 리가 있냐.” 그 말을 들으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던 나를, 공포스럽게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안다. 남동생이 미웠다기보다 차별하는 엄마가 미웠고, 엄마가 사랑하는 남동생을 어떻게든 괴롭히고 싶어 안달 났었다는 것을. 아무리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부모도 사람이기에 더 예쁘고 덜 예쁜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혹여라도 우리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면 단 한 명의 자식만 두겠다고 했다. 모든 사랑을 그 아이에게만 다 쏟아붓겠다고 다짐했었던 이유였다.

16. 가족이 하는 말을 곧이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를 겁주는 사람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오랜 세월을 불안에 떨지 않고 보낼 수 있었을까. 그 얘기를 딸들에게 하고 싶다. 원가족을 벗어나 김장철에 김치 얻을 데가 없고 명절에 전화할 데가 없어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종류의 외로움은 골백번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라. 책임의 이행을 요구하라. 사랑을 구걸하지 말라. 사랑을 인질로 잡은 어떤 관계도 나를 살리는 관계가 될 수는 없다. 그 밖에도 세상이 있다고, 훨씬 넓고 깊고 무섭고 가슴이 뛰는, 그리고 정말 생각보다는 친절한 진짜 세상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다.

원가족에서도 떨어져 보기도 했고 현재는 j와 결혼해서 잘 살고도 있지만, 나는 이제야 혼자 살 자신이 생겼다. 부모와 살 때나 j와 살 때 모두 집을 나가고 싶었던 적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혼자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해본 적도 없고, 혼자 살아보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다. 지금의 생활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안온함과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그런 마음이 생긴다. 앞으로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혼자 산다는 것은 실행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제야 혼자서도 나는 잘 살 수 있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변화다. 아마 이 마음이 10년 전의 내게도 있었다면, 나는 원가족에서 벗어나 혼자 살았을 텐데.

책에서도 말한다. ‘그래도 가족이잖아’라는 해괴망측한 문장이 주는 뾰족함에 대하여.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싶어서 씁쓸한 웃음을 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자그마치 삼십 년이다.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가질 수 없을뿐더러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에 대한 동경은 이제까지 했으면 됐다.

85. 복수하기 위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접촉하는 것이 서로에게 해롭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나는 원가족과의 거리를 멀찍이 두고 넓혀나가기로 했다. 내가 힘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더 이상 나는 나 외의 사람들을 변호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과 연락을 지속하면서 미움이 깊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어쩌면 그게 내가 내 안에 있는 병을 키우지 않는 지름길일지도 몰랐다. 그들을 여전히 미워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했으면 한다.

2부를 읽을 때는 공감을 하지는 못하고 물 흐르듯 책장을 빠르게 넘겨나갔다. 곳곳에서 남성에 대한 혐오를 발견했고 그것은 엄마가 남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끼는 차별성이, 훗날 작가가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화석화되며 일반화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억측을 하게 했다. 여성과 남성을 꼭 자로 재듯 그어놓고 서술한 부분들을 보면서 결국은 같은 인간인데 싶으면서도, 문득 가치관을 형성함에 있어 유년시절에 내가 처해있던 환경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언젠가부터 경험의 다소(多少)와 유무(有無)가 인생을 살면서 크게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이 많아도 본인이 경험한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 그 안에서 타인의 경험을 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은 타인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결핍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게 생각을 하는 것. 하지만 많이 어렵다. 우리가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聖人)도 아닌데.

_책 속의 문장

13. 내가 집을 나오기 직전 아빠에게 들은, 최후의 버튼을 누른 마지막 한마디는 “너 피해의식 있다”였다. 나는 이 단어가 여자들에게 어떤 감정적 족쇄를 채우고 어떤 상처를 무효로 만드는지 책도 한 권 쓸 수 있다. ‘너에게 피해의식이 있다’는 건 피해를 지우는 말이다. 아주 흔하게 너 미쳤다는, 예민하다는, 별스럽다는, 까다롭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내면을 파헤치면 ‘아무것도 되묻지 말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는 뜻의 말이다. 이 무서운 세상에 딸이 갈 곳이라고는 가족밖에 없는데 가족을 의심하다니 너에게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15. 이제는 안다. 딸이 겪는 가족은 아들이 겪는 가족과는 다르다. 마치 같은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이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그 미묘한 차이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그렇게 얻은 기억들은 극복하기 힘든 결절이 된다. 마땅한 내 것을 달라고 말하면서도 송구해하는 비굴한 인간이 되거나 파워 게임에 귀신같이 능한 학대자가 되기 딱 좋은 토양이다.

28. 애초 가족계획을 세우기 전에, 투입하되 거둬들이지 못한 만큼 가엾고 허무해지는 그들 자신의 인생과 자식 사이에 어떻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아파트 사기 전에 대출 이자 계산해보는 정도만큼의 진지함으로도 염려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28.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있지도 않은 며느리나 사위에 손자까지를 끼워넣은 가족사진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재생산에 성공한 당당한 자신의 미소를 상상한다. 그렇게 마치 남들도 다 가졌다는 집이나 차처럼 가족을 갈망한다. 내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에 반드시 있을, 당연하다는 듯이 약속받은 그 가족을.

29. 가족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와 겹칠 수밖에 없다. 혈육에 대한 애정을 다른 거룩한 것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 터무니없는 기대에 다치는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65. 매일 매시간 매초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부터 너무도 잘못 안 나머지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전부 잘못이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로 깨어 있는 시간 모두를 보냈다. 아니 깨어 있지 않은 시간에도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를 생각했다.

69. 책은 조금 읽고 술은 많이 마시고 밤공기는 더 많이 마셨던, 핑계도 없이 만난 그 사람들이 나를 살렸다.

88.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저주와 앙심을 품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자기방어에 가깝다.

91. 내가 지금 아는 것은 가족을 용서하고 가족에게 이해받고 딸로서 어떤 승인을 얻으려는 노력을 온전히 포기한 후에 내가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상상해온 고급하고 성스러운 용서와 사랑 같은 장면은 나에게 영영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혼자서 그들을 이해하려 분투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평화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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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든 우리가 있어
김혜정 지음 / 리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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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마다 비울 것들을 찾곤 한다. 비움을 시작하며 들이는 것을 적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단지 나의 착각이었음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보다 돈을 적게 썼으니까, 이번 주엔 택배도 거의 안 왔잖아-라고 했지만, 하루에 한 개의 물건을 비우면 꾸준하게 하루에 두어 개의 물건이 집으로 들어왔다. 이는 집에 들어오는 물건을 기록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그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것을, 시시때때로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그래도 환경에 대한 책을 꾸준하게 읽으며 경각심을 번쩍번쩍 일으켜 세우자는 내 취지에 맞게 책을 고르게 되었다.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매우, 무척이나 무겁게 다가오는 책, 작가 이력 밑에 '지구라는 별 위에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을 위해 앉아서 눈물만 흘리기보다는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그렸습니다.’라고 쓰여있었던 책, <어디에든 우리가 있어>

 

 

 

빛나는 도시를 위해 빛을 잃는 사람들

그들의 아픔이 강이 되어 흐른다.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선행학습을 해야 하는 책이었다. 핵 발전, 비자림로 도로 확장,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 케이블카 설치,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500년 된 가리왕산의 원시림이 훼손된 것 등에 관한 내용들도 짤막하게 한 페이지 정도에 담아내었다. 그것들을 보며, 그야말로 눈앞에 “이건 명백하게 니네들이 잘못한 일이야.”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씩 그 사실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당혹스러움과 혼란스러움에 그 사실들을 자꾸만 옆으로 밀어냈다.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애처럼, 아니야. 잠깐만 내 말 좀 들어줘-라고 하다가 금세,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 그래, 맞아. 우리가 그랬지. 내가 그랬어. 하고.

 

 

 

우리가 만나기까지 오백 년이 넘게 걸렸어.

나는 너희들의 현재이자 과거이고 다가올 미래야.

나를 지켜줘. 내가 너희를 지킨 것처럼.

 

 

 

최근에 동화사를 다녀왔다. 그곳에는 여러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는데, 바로 ‘구름다리 사업’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다녀온 이후에 찾아보니 철회가 되었다고 한다. 그 어떤 이유보다 수행 환경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조계종의 동의가 좀처럼 내려지지 않았고, 동화사 소유 부지 매입이나 사용승인 없이는 현실적으로 사업 추진이 어렵기 때문에 철회를 한 요인이 컸을 테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여 철회를 위해 반대를 해준 많은 이들의 덕택으로 많은 나무들을 살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지 모른다. 동화사는 개인적으로 많이 뜻깊어서 더욱 기쁜지도.

 

 

 

곧, 식목일이 다가온다. 새로운 묘목을 심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있는 나무들을 지켜야만 한다. 인간의 욕심으로 모든 자연을 훼손하면 안 됨을 알아야 한다. 집에 있는 식물이 조금만 주눅 들어있거나 토라져있어도, 얘가 도대체 왜 이럴까 생각하게 된 나는, 세상의 나무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인간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마셔 산소로 내뿜는 나무들의 기특함에 우리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며 응원해야만 한다. 가장 최근에 리나가 수명을 다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집의 온도가 문제가 된 것 같은데 겨울을 이겨냈다면 따듯한 봄을 함께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서운함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책에는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들에 관해서도 나온다.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로 물어다 주는 새, 물에 떠있는 비닐봉지를 먹으려는 곰, 기형인 발을 가지고 있는 비둘기,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갈매기, 닭장에서 알만 낳게 되는 닭, 겨울 외투가 되는 너구리, 그리고 우리를 떠날지도 모르는 사과...

우리 함께 살자. 사람도, 식물도, 동물도. 함께 어우러져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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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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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이전에 월간 에세이에서 작가의 글을 읽었다. <감을 따면서>라는 에세이. 읽는 내내 좋아하지도 않는 감을 입안 가득 물고 달큼한 향을 마음껏 향유했다. 책이, 나오겠구나,라고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간 소식이 나왔을 때 나는 우두망찰했다. 좋아했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그 기분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만 만들었던 그 기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가히 짐작하게 한 시간이었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미워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새 책을 쓰신다면 나는 그 책을 사지 않겠노라 다짐도 했었으니까.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가득 쌓아두고 바라보고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과 위로가 깃들어 있기에 그 책들만 소중히 간직하겠다, 버리지는 않겠노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신간 소식을 듣고는 미워하면서도 좋았고, 좋으면서도 미웠다. 도대체 이게 무슨 멍청한 마음인가 한다. 어쨌든 글을 쓴다. 그 글을 읽는 것은 선택이겠지만,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래, 반갑다는 말로 모든 것을 포괄할 수밖에 없겠다.

 

 

내가 좋아했던,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기 이전에, 아버지에 관한 책인 것 같았다. (읽어보지 않았으니 같았다,고 말할 수밖에.) 그렇게나 싫어하는 박 모 씨의 소설 중 아버지가 주제여서 그 책을 오래도록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후 다른 책을 읽고 그 사람이 정말이지, 구구절절 싫어져서 그 책도 이제 내 곁에 없지만 사실이 그랬다. 엄마에 대한 책은 시중에 우후죽순 나오는데, 왜 아버지에 대한 책은 없는 것인가,에 대해 혼자 서러웠다. 그런데 다름 아닌 이 이가, 아버지에 대해 쓴 것이었다.

 

 

 

나, 헌이는 딸을 잃고 늙은 부모에게 연락을 몇 년간 하지 않다가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에 J시를 찾는다. 아버지와 조우한 나는 밤마다 어딘가에서 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다녔고 아버지의 흔적들을 찾아내어 그 시절들의 아버지와 만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따금 죽은 것들을 찾았다. ‘너 본 지 오래다.’라던 앵무새 참이를 찾는 날이 있었고, 고모를 찾는 날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이미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던 아버지가 가여워 마음이 싸해졌다.

 

 

 

68.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69. 나는 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좋았고나.

아빠와 내가 처음 충돌했을 때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였다. 내가 가고 싶다는 것과 아빠가 가라는 곳은 달랐다. 아빠가 반대하는 이유는 내가 가고 싶다는 곳은 아빠의 바람처럼 ‘추울 때면 따뜻해서 일하고, 더울 때면 시원한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단지 시선의 차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식물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고, 나중에는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어디에 취직할 수 있냐고 하기에 그 대답을 했었는데, 그것에 대한 아빠의 첫 마디는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응원을 해주었던가. 다만 기억이 나는 건 물 대신 우유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먹다 남은) 우유를 줘본 적이 있는데 땅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다 죽더라고... 이걸 응원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조금 어리둥절해진다.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

-봄에 모판에 볍씨를 뿌릴 대는 이것이 언지 자라서 심고 키워서 추수를 하나 싶어도 하루가 금세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이런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났지, 가 그래,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로 인정(혹은 수긍 혹은 체념) 하는 시간들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지만, 또 아직도 길을 걷다가도 울컥울컥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지만 그때의 시간들은 어쩔 수 없음을 아는 일은 짧아졌다. 헌이를 위로하려 아버지가 건넨 말들에, 느닷없이 내가 위로를 받는 일이 많았다. 나는 작가가 쓴 문장들에 기어들어가 몸을 옹송그리고 그렇게 우는 일이 많았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으며 그렇게 빚을 졌는데, 또 이렇게 신세를 진다. 신세를 지는 일을 미안하게 하지 않고 그저 감사하게 만든다.

 

 

323. 삶에는 기습이 있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

그래, 그래도 살아내는 것이 인간이고, 312.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 나는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신념에 대한 완고함이 없어지고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들을 지나왔으니,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삶이구나 한다.

 

 

 

‘바다 중심’이라는 리비아로 파견근무 간 오빠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가 나무 궤짝에 있었다.

 

169.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돼주지는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햇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185. 늘 말햇드시 아비는 바라는 게 업따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것으로 되엇따

231. 다지나간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들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 입장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아주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요즘 나의 아버지는, 아니 나의 아빠는, 사는 게 재미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타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대전에 가서 아빠랑 식사라도 한 끼 하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 오늘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아빠랑 통화를 한다. 화장실을 갈 때 거리가 있기에 그 사이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산책할 때 전화를 하기도 한다.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건 아니고, 요즘 몸은 어떠냐, 지금은 어디냐, 식사는 하셨냐, 어제는 술 또(!) 드셨냐, 주말에는 맛있는 것 좀 먹고 하셔라, 맨날 똑같은 말들 반복이다. 자꾸 전화를 그렇게 하다가 너는 회사에서 짤려도 할 말이 없다고 아빠는 나한테 말을 하면서도,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나는 오늘 아빠에게 택배 상자에 건전지와 라면, 껌, 과자, 장갑, 커피 따위를 넣어 보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보내는 의례적인 일이기도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멀리에 사니 택배로 대신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일을 내가 꾸준히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좀 더 저렴하다는 것은 둘째고, 내가 어릴 때에도, 하물며 성인이 되어서도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아빠의 손에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들은 언제나 반가웠던 기억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두어 달에 한 번씩 아빠에게 택배를 보내면서 종내는 그것들을 갚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나 그때의 반가움을 아빠도 느껴보았으면 싶기도 하다고 보기 좋은 개살구를 열심히도 빚어본다.

 

그런데 오늘은 아빠한테 성질을 부렸다. 뇌경색 때문에 약을 드셔야 해서 병원에 가는 날이었는데 간 김에 안과를 들르시라 말씀드렸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럴까? 그래야겠다.라고 말을 해놓고, 다녀왔냐고 물으니 아니 안 갔어, 그거 예약해야 하는 거 아니여? 라고 말씀하시며 또 한숨을 쉬게 만들었고, 다음번에 피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오만 얼마를 내라고 하더라. 하기에 왜? 라고 물었더니, 몰라. 다음번에 돈 안 받으려는 모양이지.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런 아빠에게 나는, 대학병원 시스템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많이 나왔으면 왜 많이 나왔는지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안과는 초진이라 예약이 안 될지도 모르고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간 김에 가보면 좋았잖아!!!!!!! 가서 다음 진료에 맞춰서 예약하고 오든지!!!라고 성깔을 있는 대로 부렸다. 그랬더니 아빠는 말을 안 하길래, 내 쪽에서 먼저 끊어!!!!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뚝 끊었다... (휴)...

 

 

 

 

아버지가 나직한목소리로

너는 언제 가냐? 물었다.

-가야지.

-……

-보내야 되는데 함께 있으니 좋아서.

-인자는 가보거라.

-……

 

우리 아빠 같아서, 보고 한참을 울었다.. ... 성질 드러운 못난 딸, 내일 또 전화드릴 예정이다...

 

 

 

 

 

+ 사과를 프랑스어로 뽐므라고 하는데, 주인공 이름이 뽐므이고, 어쩌다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를 읽어보아야겠다. 요즘 읽는 책에 자꾸 등장하는 사과들이 그렇게나 반갑고, 또 애절하다.

 

++ ‘~하겠는’은 ‘~할 것 같은’의 동의어인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모른 척을 하게 된다.

 

 

 

 

 

 

책 속 밑줄

 

16.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와 헤어지게 될 때 가끔 그 때의 내 목소리를 듣는다.

 

20. 어떤 물건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버리지도 없애지도 누구에게 준 적도 부숴버린 적이 없어도 어느 시간 속에서 놓치고 나면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고 희미해진다. 그랬지, 그랬는데, 라는 여운을 남겨놓고.

 

데뷔작의 첫 문장, 어디다 뒀던가.

 

59. 그때 어렴풋이 짐작했다. 나는 불완전한 채로 어디서든 무엇인가를 쓰고 지우고 있으리란 것을. 마침표를 찍은 후에도 나는 내가 쓴 글을 끝도 없이 수정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62.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76.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92.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92. 벌써 육년이 흘렀구나.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아도 갈길을 못 가고 헤맬 것잉게…… 언진가 소 새끼 한마리가 젖을 빨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분질러지더니 주저앉아 걷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앉은뱅이가 되더라.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93. 차마 버리지 못해 저장해 놓은 깨진 것들은 바닥까지 비워내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조차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103. 어떤 사실들은 때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라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끝내 사실일까? 싶은 의문과 회의가 든다. 어떻게 그런 일이? 싶어서 우연이나 조작에 의한 것처럼 보였고 어떤 형식에 맞추기 위해 도식을 끌어온 것처럼 여겨지며 상상에 의한 허구가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진다.

 

213. 사람 만은 곳에는 뭐든 할 일이 있는 거니까 나 한 사람 일할데 업겟나 시픈 배짱이엇는데 막상 아는 사람 하나 업는 곳에 서게 되니 한걸음 내딛는 것도 불안하더라.

 

404.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416.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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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1
김승옥 지음 / 더클래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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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은 읽어본 분들 사이에서 호평을 자주 들었기에 언젠가 읽어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다렸다. 책을 읽기 전부터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대를 하며 따듯한 차를 한 잔 타두고 평소와 다르게 예의를 갖추기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 어쩐지 나는 자꾸만 답답해졌고 책을 덮고 싶었고 급기야 책을... 버리고 싶었다.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깊은 절망과 같은 한숨을 내쉬었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도.대.체,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에 대하여 전과 다르게 책에 대한 내 마음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타인의 서평들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 한 권의 책에서, 여러 편의 이야기에서, 반감을 느꼈고 증오를 느꼈고 혐오를 느낀 직후였으니까.

 

 

 

 

마음을 가다듬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차분히 마음을 달래보고자 하였지만, 쉬이 달래지지는 않았다. 천천히, 하나씩,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무진기행> : 어둡던 자신의 청년을 상기시키는 무진, 희중은 현실에서는 능동태로 살고 있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무진에서의 생활에서도 문장이 죄다 수동태라는 걸 느꼈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라는데, 그 안개는 결국 그의 몽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가 지어내는 꿈. 왜냐하면, 무진에서는 11.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으니까.

 

<생명연습> : 두 사람의 이야기다. 유학을 가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를 강간하면서 사랑이 식어감을 느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학을 떠났던 남자는, 삼십 년 후 그 여성의 부고를 듣는다. 아버지가 사망 후에 아버지를 닮은 남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급기야 죽이자고 나와 누나에게 말하던 형의 종말.

 

<서울, 1964년 겨울> : 우연히 만난 세 남자. 그중 한 남자는 급성 뇌막염으로 사망한 아내의 시체를 돈을 주고 팔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 돈을 다 써야겠다고 하지만, 돈은 남았다. 남은 돈은 불이 난 곳에 던져 버렸다. 밤새 같이 있어 달라던 남자의 부탁을 거절한 두 사람은 다음날 전날의 그 남자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야행> : 같은 은행에서 일하는 남편을 사칙에 의해 부당한 일을 겪게 될까 봐, 남편이라 부르지 못하는 여자. 그런 지리멸렬한 삶을 살던 어느 날, 한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려가 강간을 당한 여자는, 이후로도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주기를 기다린다. 130. 그 여자가 바라는 것은, 그렇다,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속임수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게, 해방이었을까. 세상은 다양성이 존재하기에 틀린 것이 없고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지만, 그걸 다르다고 인정하게 된다면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역사(力士)> : 창신동 판잣집 생활을 하다가 양옥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청년의 이야기로, 양옥집에서의 생활을 빈 껍데기의 생활, 방향이 틀린 생활, 습관적인 생활이라며 이중성을 못 견뎌 하지만, 창신동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창신동에서 만난 서씨를 생각한다. 재산이자 가보, 영광으로 내려온 그의 힘은 막노동에서 보수를 좀 더 벌게 하는 것일 뿐이지만 그는 그것을 택하지는 않는다. 동대문 성벽의 금고만 한 돌덩이를 드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 힘이 유지되고 있음을 명부의 선조에게 알리고 있는 게 전부였던 서씨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163 “내가 틀려 있었을까요?” 누구에게나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있기에 나는 그 청년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해볼 수도 있었다.

 

<차나 한 잔> : “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 “저어, 나가서 차나 한잔 하실까요.” 같은 말이지만, 두 문장의 어투와 심경은 다소 다르다. 차나 한 잔 하자는 것은, 일종의 추파로,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을 여실히 그려낸다. 208. 앞으로 다가올, 아직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무서워져서 그는 울음이 터질 뻔했다. 현재 우리의 삶이 당시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미래에 대한 안개는 언제쯤 걷히는가.

 

<그와 나> : 서울행 기차칸에서 ‘감고 있는 눈꺼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양심’에 대해 언급하던 남자,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

 

<염소는 힘이 세다> : 234.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그러나 염소는 며칠 전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아저씨는 우리 집의 밖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아저씨는 힘이 세다. 힘이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246. “너 왜 그러니?” 누나의 입에서 짜장면 냄새가 풍겨 나왔다. “더러워”하고 나는 말했다. “더러워, 저리 가!” 누나가 내 양쪽 어깨를 자기의 두 손으로 아플 만큼 눌러 쥐었다. “아무것도 아냐. 나도 취직할 수 있을 뿐인걸.” 누나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나는 힘차게 어깨를 흔들어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사람들을 비켜가며 빨리빨리 걸었다.

 

<건(乾)> : 빨치산들의 습격이 있었고, 그날 빨치산 하나가 죽었다. 그 시체를 치우기 위해 아버지와 형과 형 친구들, 그리고 내가 동원되었다. 지나가는 윤희 누나를 보며, 270. “저거…… 우리…… 먹을래?” 내가 좋아하는 윤희 누나에게 형의 말을 전달해야 했던, 무서운 음모에 가담했던 날.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 그것은 이젠 내 고정관념 중의 하나이다. 혼잣말로 하는 남자의 고정관념들을 따라가 읽는다.

 

<다산성> : 벌레, 이 어둡고 두꺼운 대기층의 밑바닥에서 촉각을 허망하게 내휘두르며 몸을 꿈틀거리고 있는 두 마리의 못생긴 벌레

 

<서울의 달빛 0장> : 탤런트였던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점과 이후 알게 된 인공유산에 대해, ‘아내는 나에게 도깨비들이 실컷 뜯어먹다 싫증이 나서 던져준 썩은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증오를 지니게 된다. 445. 처녀가 아니니까 외설스럽다.던 이야기는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다. 난생 처음 보는 음부의 추악한 모습에 나는 구토증을 느끼면서 여러 여자와의 성관계에서 아내의 음부를 잊지 못한다. 마치 아내의 음부가 고향이라도 되는 것처럼.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역사>와 <차나 한 잔>이었다. 하지만 반감으로 압도되고 그로 인해 부담스러운 단편들에 좋았던 단편들이 묻혀 부정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문장들이 담백하거나 유려하다 따위의 것들은 전연 느끼지 못했고, 나에게 이 책은 여성이라는 성이 얼마나 짓밟힐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양하게 읽히기만 했다. 1960년대 시대상은 이따위 일들이 만연했었나 보다,에서 그치지 못하고 그에 따른 불편함에 욕지기가 낮게 흘렀다. 윤간, 강간, 겁탈, 능욕, 성매매가 아니면 그리도 쓸 이야기가 없었나 싶기도 했다. 마치, 사랑을 잘못 배운 소년에서 그치게 된 한 남성의 일대기를 읽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욕구를 방출하고 쾌락을 느끼기 위해 이 책이 쓰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피어오르며 씁쓸하다 못해 간담이 서늘해졌다. 같은 이유로 나는 더 이상 박범신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이유였다.

 


 

 

지금이라면 이런 내용들이 결코 쉽게 출간되지는 못했을 텐데, 단지 한국문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들을 당연하다 여겼던 멍청한 사고방식을 지녔던 시대에 쓴 글들이 독자들에게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이 책을, 지금의 20대 혹은 30대의 남성이 썼다고 해도 아름답다고 말하며 읽을 수 있겠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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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선생님만 아는 초1 교실 이야기
김도용 지음 / 생능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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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아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어른들이 써내는 아이들의 일상은 궁금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겠다.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하셨고 저녁을 드셨고… 그런 단어들에 눈살이 꽤 자주 찌푸려지기도 하고,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과장된 표정, 행동, 말을 할 때는 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들에 관심이 많아서 멀리서 관찰(관음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는 걸 좋아해서, J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가 미루고 미루었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매우 만족스럽게 읽었기에 비슷한 주제에 기웃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 쓴 1학년들의 기록’이랄까. 그런데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는 겁에 질렸다. 잘 읽을 수 있을까_ 싶어서. 그런데 이 책, 아침마다 힐링하면서 읽었다. 귀여운 친구들이네!라며. (참고로 구성은 조금 아쉬운 편이었다.)

 

학생 : 선생님, 저 같이 사는 오빠(이 표현도 이상하지만)가 몇 살이게요?

나 : 14살?

학생 : 아니요.

나 : 그럼 14살보다 많아요? 적어요?

학생 : ….

나 : ….

학생 : 12살이에요.

그래, 수의 크기 비교는 아직 어렵지.

 

 

학생1 : 뱀 어떻게 써요?

나 : 모둠 친구 중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학생2 : 저요!

학생3 : 선생님은 ‘뱀’ 모르는 거 아니야?

 

 

나 : 편지 쓰면서 힘들었던 사람?

학생1 : 저요!

학생2 : 저요!

나 : 그러니깐 더 소중한 거예요. 편지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은 여러분을 키우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학생1 : 맞아요. 우리 엄마는 저 키우느라 힘들어 죽겠대요.

학생2 : 우리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안 키우려고 했대요.

 

 

학생1 : 너 왜 아침에 나랑 같이 안 갔어?

학생2 : 아침에 전화 안 했잖아?

 

 

크큭 거리며 웃어댔다. 귀여운 친구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이라고 해도,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소위 말해 까진(?) 애들도 있을 것 같고... 그런 것들이었는데, 웬걸. 그 반대였다. 교가는 학교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더니 계속 불러서 학교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짝짓기 놀이에서 한 명을 내보내야 이기는 게임에서, “한 명이 빠져야 하는데 그럼 떨어진 사람이 속상할 것 같아서 못했어요.”라며 세 명 모두 아웃당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친구를 여럿이서 안아주는, 여자 화장실을 쓴 남학생의 이유는 고작 여자화장실이 더 깨끗해 보여서라는, 화장실에서는 얼룩이 없었는데 교실에 들어오니까 묻었고, 교실에는 OO이가 있었다는, “사물함에서 색연필이랑 종합장 가져오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선생님께 색연필과 종합장을 내밀더라는, TV 모니터의 글씨를 크게 해주었더니 “선생님, 글자가 가까워졌어요!”라는, 학교를 다니는 12년 중 가장 순수한, 초등 1년생.

하지만 역시 세대 차이는 세대 차이인 건지, 아이들이 코딩을 배우고 로봇과 같은 공간에 있기도 하고, 친구에게 왜 카톡을 안 하냐고 묻기도 하고, 교가를 유튜브로 듣기도 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나는 마냥 신기했다.

 

 

이 책은 1학년이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96일째, 그 기록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사회생활 미리 보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학교에 와서 사회생활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이들을 텍스트로 읽는 것만으로도 흐뭇했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다. 작지만 중요한, 어쩌면 우리 삶의 시작이며 전부일지도 모르는 일들을 배우게 되는 1학년. 이를테면 시작종이 치면 교실에 들어오기, 차례 기다리기, 친구와 대화하기,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자기 물건 정리하기, 화장실 사용하기 등. 우리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믿고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다. (하지만 예쁘다와 못생겼다는 말에 대한 접근은 농담이어도 좀 자제하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가 매일 들리던 그때를 기억하고, 그때가 조속히 오기를 바라며.

 

 

띄어쓰기 134. 히에 다가 미음히에다가 미음

오탈자 137. 쓰레받기 버리고, 가방 매세요.가방 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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