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온 여인 - 합본 나남창작선 55
박경리 / 나남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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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추리소설적 기법과 인간본능을 탐하며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사랑과 적의를 다르고 있어 재미를 더한다.생활의 빈곤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가정교사 일을 해야만 했던 성표에게 의문의 집 '푸른 저택'은 그에게 처음부터 물음표 투성이로 다가온다.저택의 여주인인 신비의 오부인,비서 일을 담당하는 영희 그리고 다리는 저는 어린 소년 찬이.
 
가정교사 자리를 얻기 위하여 첫날 저택을 방문하며 받은 이상한 기분과 그 여인을 탐구하기 위하여 찾아온 그의 친구 영태로 부터 그 여인에 대하여 조금씩 베일을 벗듯 전해 듣는 이야기와 의문의 일들,그리고 그의 여동생 정란의 동거남 세형의 일로 인하여 엮이게 되는 영태와 푸른 저택의 사람들과의 일들 속에서 영태는 정란을 첫 만남에서 그녀를 맘에 두고 가수로 데뷔 시키기 위하여 추천한 작곡가인 나성구씨가 찬이의 외삼촌이며 그의 여동생이 오부인이 사랑한 사람을 빼앗아간 나의화이다.
 
오부인은 강사장 동생과의 사랑에서 그 사랑마져 의화에게 빼앗기고 둘은 서로 어쩔 수 없는 결혼이란 관계로 엮여지지만 밤마다 강사장은 오부인이 아닌 영희를 찾아가 사랑을 나눈다.그런 둘의 관계를 알면서도 영희라는 아가씨를 내보내지 않고 감싸며 한집에서 생활하며 자기만의 사랑을 이루려는 오부인은 성표를 택하지만 성표는 받아 들이지 않는다.
 
찬이의 엄마가 나성구씨의 누이동생 의화라는 것을 안 성표는 나성구씨를 동생의 일로 찾아 갔다가 둘의 음악적 교감이 통해 오페라에 출연하게 된다.의화는 오랜 외국생활을 접고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와 찬이와 해후를 나누는데 그의 음악선생님인 성표에게 마음을 둔다. 그런 사실을 알고는 오부인은 더욱 의화에게 감정을 품는데 강사장의 사업은 기울어 모든것을 잃게 된 상황이 되었다. 오부인은 모든 재산을 현박사 앞으로 해 달라며 그녀의 교묘한 살인을 알고 그녀를 사랑하는 현박사에게 부탁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한편 정란은 가수로 약간의 성공도 하고 감옥에 들어간 세형도 무사히 나오고 엄마가 돌아와 찬이도 푸른 저택에서 나와 엄마와 살게 되어 성표도 푸른 저택을 나와 친구와 함께 생활을 하며 지낸다.그러던중 오부인은 강사장의 사업이 완전히 기울자 '마지막'을 현박사와 구상하지만 현박사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자 성표에게 꼭 한번 자기에게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혼자 하시오,혼자. 입은 다물어 드리지.오부인의 입도 막아두어야 하니까 내 입도 자동적으로 다물려질 것 아닙니까? 내가 할 일을 오부인이 그 시각에 하면 되잖소? 장갑을 끼고 말입니다.' ㅡp514
 
그녀는 마지막 ,그녀가 짜 맞추어 놓은 각본에 어긋났지만 그녀의 손으로 직접 강사장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성표와 운전수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미간에 권총을 쏘아 자살을 하고 만다.
 
"시간이 좀 빨랐구먼. 신성표 씨가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에 이 총성이 났어야 했으걸. 살인범 신성표! 연극의 차질이요.그것은 내 두뇌의 실수가 아니구 심장의 잘못인 것 같구먼.악마의 동반자는 신성표가 아니고 오세정이었던 모양이오." ㅡp516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마치 액자에 넣어 놓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산과 하늘과 잎 떨어진 수목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것은 막을 내리고 정지한듯 멈추어 섰다.성표가 지나온 일들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멈추어 진듯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 나도 정지하고 말았다.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것처럼 신비한 여인 오부인이 정체는 사랑한 남자를 다른 여인에게 빼앗겨 그를 죽이고 마는,그러면서 그녀를 택하고 그의 형과 결혼을 하는 아이러니.잘못된 사랑으로 인하여 모든것을 잃고 사랑을 소유하려는 그 소유욕에서 잘못은 빚어진듯 하다.가을에 온 여인 의화로 인하여 모든 잘못의 답은 풀어지고 성표에게 작은 흔들림이 된 '가을에 온 여인' 읽는 내내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약간의 스릴감을 맛보게 하여 흥미를 가지며 읽었던 작품이다.사람사이에서 애증의 골이 깊어질 수록 그 광기의 끝은 절망과 죽음으로 치닫는 그 마지막을 보여준 작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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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 개정판 나남창작선 58
박경리 / 나남출판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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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은 작가의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쓰여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전쟁으로 부모형제를 다 잃고 조만섭씨를 따라 낯선 땅 통영에서 정착하는 수옥,뭇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그녀의 외모때문에 그녀는 더욱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것 같다.수옥을 보고 첫눈에 반한 서영래는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음으로 인하여 수옥을 탐한다. 결국엔 그의 수중으로 들어가 갇힌 삶을 살다가 학수에 의해 그녀의 삶은 다시 자유를 찾지만 그가 군대에 끌려가기에 임신한 몸으로 그녀를 받아 들여주지 않는 학수 부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명화는 조만섭씨의 외동딸로 그녀의 엄마는 남편이 외지에 나가 있는 사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서 자살을 하고 만다.엄마의 죽음은 그녀의 결혼에 커다란 걸림돌로 자리하여 박의사는 응주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응주와 명화의 결혼을 반대하는 박의사는 사실은 그녀의 엄마의 죽음이 결혼에 문제가 된것이 아니라 아들의 연인을 사랑했기에 며느리로 받아 들일수 없음을 그녀에게 고백하고 만다.
 
명화와 결혼을 하기로한 응주는 아버지가 며느리감으로 내세우는 죽희와 명화와의 사이에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다가 명화를 택하게 되지만 명화는 그와 하룻밤을 함께 하며 하룻밤을 인생의 전부인듯 허물어져버리고는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완전한듯 하면서도 한가지씩 문제점을 안고 있다.완벽할것 같던 박의사가 아들의 애인을 사랑한다는 점이며 돈을 가졌지만 자식을 갖지 못한 서영래,누나들의 치맛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편력증처럼 방탕한 생활로 자신을 망쳐버린 문성재며 잘살던 집안이 망함으로 인하여 자신을 학대하듯 웃음을 팔면서 자기만족을 얻듯 하는 학자나 여린듯 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주먹이 먼저인 학자의 오빠 학수, 그리고 서울댁등 모두가 어부의 어망에 걸린 갖가지 고기처럼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은 여인이 주인공이듯 이 작품도 명화와 수옥의 대조되는 삶이 주를 이룬다. 완벽하진 않지만 가정의 울타리에서 부성애를 한몸에 받으며 부족함 없는 명화와 전쟁으로 가족이며 울타리를 모두 잃고 노리개처럼 남자의 목표물로 마음이 닫혀 있던 수옥은 학수를 만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말의 문도 열리듯이 두 여인들의 대조적인 삶은 통영을 배경으로 잘 들어나 있다.학수를 만나 안정을 찾은 수옥은 통영에서 안착하는 대신 사랑을 잃은,포기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사랑에 도피를 하는 명화의 삶은 너울처럼 출렁인다.
 
한편에서는 속에 불을 품고 있는것처럼 쓴소리를 서슴없이 뱉어내는 학자의 거침없음이 소설을 더욱 맛깔나게 해준듯 하다.
"나는 젊어요! 박 의사는 늙었어요! 누가 더 잘사나 두고 봅시다! 아들은 미치광이 딸하고 결혼하고, 뭐가 남아요? 마음대로 계산대로 되는 줄 아세요? 뭐가 남아, 벙어리 딸하고 청승맞게 늙어서 그 꼴 부럽지 않아요.조금도 부럽지 않단 말이예요!"
ㅡ202p
그녀는 그렇게 박의사에게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내고는 박의사 병원에서 간호원이 되겠다던 꿈을 저버리고 독설가가 된듯 술집에서 웃음을 판다.
 
 
파시,사전적 의미로는 물고기가 한창 잡힐때 바다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이지만 이소설은 살아남기 위하여 파닥파닥 대지위에서 뛰는 인간들의 시장같다.절망과 아픔을 간직한채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숨을 쉬듯 생명이 느껴진다.작가의 소설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활력있게 소설속을 누비고 다니며 마치 재래시장에 온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살아 있음을,진솔한 삶을 질박하게 잘 보여준다.시장만큼 삶의 다양성과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또 있으랴.아름다운 통영의 앞바다와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명화 응주 학자 학수 수옥 순이 서울댁 조만섭 박의사 경주 죽희 윤선생 서영래 용주 문성재 선애 닻줄 김서방등이 있기에 소설은 더욱 생명력이 느껴진다.독자의 입장에서는 명화와 응주가 잘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명화를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움이 여운처럼 남겨졌다.작가의 소설은 해피엔딩보다는 비운의 결말이 더 많은듯 하다. 독자의 바람을 저버리면서도 어쩌면 새로운 삶을 독자 스스로 연장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 복선처럼 깔린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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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전장 나남창작선 40
박경리 / 나남출판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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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과 시장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사람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사라져가는 민심을,사라져가는 인민들의 불길을 억지로라도 되살리기에는 오직 승리가, 사람과 상품의 소모를 막아줄 결정적인 승리가 있을 뿐이라고 기훈은 생각한다. ㅡ 244p
 
해방과 육이오,그 장엄한 역사의 드라마 밑에 깔렸던 내 젊음이 요즘에 와서 더욱 선명하게 한떨기 들꽃같이 눈앞에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늙어가기 때문이겠다.마지막 장을 끝낸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족들 몰래 울었다.
                                                             ㅡ작가서문중에서
 
작가는 마지막 장을 끝낸 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고 했는데 난 마지막 장을 덮으며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백치같은 여자 이가화와 컴니스트로서 인민과 사상에 충실한 기훈의 사랑이 마지막 순간 무참히 두 방의 총탄앞에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라며 작가에게 수정을 요하며 따져들고 싶을만큼 마음이 아팠다.질곡의 시간을 모두 이겨내고 마지막 거머쥐려 한 자유가 한순간 무너짐이 해방과 육이오를 견디어온 세대들의 아픔처럼 전이되는듯 했다.
 
연안으로 교사생활을 하러 갔던 지영은 육이오가 터짐으로 간신히 서울 집으로 내려와 가족들과 함께 하지만 모두가 피난을 가고 빈 거리엔 식량이며 약품등 모든것이 모자란 가운데 그래도 가족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로 잘 버티어 간다.그러던중 남편 기석이 공산당 입당원서를 냈다는 이유로 잡혀가고 기석을 빼내려는 노력도 잠시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고 만다. 전쟁통에 옆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던 어머니 윤씨를 잃고 이모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다.
 
한편 가화는 우연히 만난 남자 기훈을 찾아 지리산으로 산사람이 되어 찾아온다.여리면서도 백치 같았던 여자가 사랑 하나로 낯설은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산생활을 이겨낸다는 것은 아마도 사랑의 힘이겠지만 그녀에게는 어쩌면 기훈이 마지막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전장후의 세대이기 때문에 전쟁의 배고픔을 잘 알지는 못한다.그저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정도이지만 그 시대를 이겨나온 세대들은 정말 잊지 못할 아픔이고 배고픔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전설같은 시간들이다. 사실적인 표현들은 작가가 그 시대를 체험하고 살아왔기에 더욱 실감나게 그려나간듯 하다.
 
시장과 전장의 그 의미로 지영과 기훈의 삶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아 있다.자기들이 속해 있는 세계에 어울려 들어가지 못하고 겉도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두 인물은 육이오라는 그 시대를 대표하듯 그들의 아픔의 시간들이 질펀하게 전개된다.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려는 지영의 험난한 여정속에서 인간들의 살아있는 숨소리가 느껴지듯 작가의 섬세함이 소설속에 녹아나 있다.
 
박경리의 소설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빠져든다.토지21권도 그렇지만 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파시등 주인공들의 삶이 멀리 먼 이야기가 아닌 내 주위 사람들이 주인공이며 내고향의 이야기처럼 질박하면서도 소박하다.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것처럼 짧은 대화속에도 인간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편으로 남자들의 이야기인듯 하면서도 여인들,어머니가 주인공이 되어 그시대를 그리고 있다.이 소설에서는 지영과 가화의 서로 다른 삶이 주인공일지 모른다. 가정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힘과 한남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순애보적인 사랑인 가화의 험난한 삶이 육이오,시장과 전장이 들려주고픈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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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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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길은 언제나 돌아오기 위해서 있다.누구도 끝까지 걸어간 이는 없다.
서 있던 자리에는 없어진 내가 있다. 나는 이미 그다.
나와 그가 이제 만난다.달라진 것은 없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길.   ㅡ下200p
 
 
오현우, 나이는 서른 두살 먹었구 시골 중학교에서 교직을 갖구 있었고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잠깐 징역 살구 강제징집으로 전방에서 군대생활도 했다.그가 윤희를 만나 단숨에 말해버린 그에 대한 사실들.그는 지하조직 활동을 하고 광주항쟁이후 수배지가 됨에 따라 잠수하기 위하여 시골,갈뫼로 내려가 윤희와 함께 밀월의 시간처럼 잠깐의 동거생활을 한다. 과수원 뒷켠의 창고같은 건물을 그들만의 작은 보금자리로 새롭게 고쳐 텃밭도 일구고 작은 화실까지 꾸며 윤희는 그림도 그리며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삼개월여,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들 이었고 그시간동안만 서로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한윤희,아버지가 빨치산였기에 좀더 오현우라는 인물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아버지의 무너진 삶으로 인하여 가정을 엄마 혼자서 꾸려 나가는 강인함을 옆에서 학습이라도 하듯 그녀의 삶도 부모님을 닮아 간다.짧은 시간동안 현우와 동거생활를 하면서 임신을 하고 그가 무기수로 들어 가면서 혼자서 딸아이를 낳고 갈뫼에서 키우다 학교를 보내기 전 엄마의 집으로 들어 갔다가 동생 영희의 호적에 올린다.그녀는 혼자서 딸을 키우며 대학원에 들어가 화실을 열고 생활을 하다가 송영태라는 학생운동가를 만나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영태는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지만 그녀는 늘 현우의 빈자리를 느끼면서도 누구에게도 그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한편 독일에 유학을 가서 이희수라는 환경친화적인 그의 생각에 공감하며 사랑에 빠지지만 뜻하지 않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를 잃고 귀국한다.
 
그녀는 귀국후 대학교단에 서기도 하면서 생활을 하다가 불치의 병에 걸렸음을 알고 그녀의 생활과 딸 은결이의 이야기며 모든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어 놓아 현우가 보게 한다. 그녀는 가고 없는 빈 공간에 만기출옥을 하여 이상향 같았던 갈뫼를 찾아가 그들의 먼 추억을 더듬던중 발견된 그녀의 노트와 그림,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히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ㅡ下308p
 
 
"당신은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80년대,그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지만 나의 정원을 찾았을까,그리고 우리의 정원을 찾았을까? 윤희가 독일 유학에서 머므르고 있는 동안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로 거듭날때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하나 보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장벽은 튼튼하게 유지하게 되고 있다.치열하게 시대를 살다간 최미경,한윤희 그리고 많은 이들이 꿈도 펼치지 못하고 흔적없이 사라라져간 아픔의 시간뒤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찾기 위하여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을까.
 
소설의 겉표지 색상부터 연한 연두빛,봄빛이다.그것은 희망인듯 하다. 그 시대에 난 중학생이었다. 선생님으로 부터 몇몇 학생들에게 대학생언니 오빠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라며 선생님께서 잠깐 말씀해 주신것들이 믿기지 않았지만 연일 최루탄에 흐려지는 뉴스를 접하면서 옆에서 구경하듯 했지만 그래도 그 시대를 거쳐와서인지 더욱 와 닿는 소설,갈뫼의 생활은 그들의 이상향 같은 곳이기도 하면서도 우리가 꿈꾸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현우와 윤희 은결에게는 그곳은 새로운 꿈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어머니의 자궁같은,꿈이 탄생하는 모태이기도 하다.만기출옥이후 윤희도 없는 빈세상,모든것이 끝인줄 알았던 현우에게 갈뫼는 그의 18년의 감옥생활과 같은 딸 은결을 선물해 주었으며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해준 곳이다.
 
암흑의 시간을 살아왔기에 지난 시간이 더욱 아름답고 값지고 소중하고 간직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오래된 정원'을 소유하게 만드는 것일까. 오랜 시간 비워온 아버지의 빈자리에서도 '저 이제 가야 해요,아버지. 자주 만나요.' 하며 아버지를 인정해준 은결,암흑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그에게 남은 딸 은결은 그에겐 새로운 출발이고 희망이다. '당신은 그곳을 찾았나요?' 그녀가 그에게 반문하듯 남긴 말들은 봄빛같은 생활을 하던 갈뫼의 생활처럼 평화의 시간들일까.아픔의 시간,옹이를 하나 더 만들면서 나무는 더 단단해지듯이 값진 댓가를 치루었기에 아마 현우에게도 은결에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희망,평화는 더욱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정원의 꽃들은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다.
 
너희들은 어디로 날아가느냐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누구로부터 떠나왔느냐
모든 것들로부터
그들이 함께 있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
조금 아까부터
그러면 언제 그들은 헤어질 것이냐
이제 곧
 
1993년에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있던 무렵 운동시간에 나가 하염없이 시멘트 담벽 안의 비좁은 공간을 맴돌면서 문득 무릉도원 이야기와 샹그릴라 전설이며 하는 것들을 생각하던 중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섬인 유토피아까지도.그러나 나와 내 벗들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미래나 예견에 사로잡힌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실 변화를 끌어내는 시대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 휩씁리며 헤엄쳐가던 하찮고 가냘픈 개인의 나날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에른스트 블로흐의 말투로 얘기하자면 <오래된 정원>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 될 것이다. ㅡ작가의 후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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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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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증거와 증인이 있어도 권력앞에서 무참히 짓밝히는 '부총리 유희서 살인사건'을 읽으며 선조의 아들을 비호하는 편협함을 보고는 지난 역사의 이야기지만 부모가 자식을 두둔하는 잘못된 사랑에 대해 너무 안타까웠다.바른길이 무엇이며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왕마져 자식을 감싸며 오류를 범하는 것이 지금도 행해지고 굵직한 사건을 장식하는 이야기들처럼 한참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안협 구 소사 살인사건'은 소문이 나쁘다 하여 본인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무참하게 친형제와 문중의 사람들이 합세를 하여 구 소사를 죽인이야기는 여자이므로 당해야 했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었나 싶다.사람의 목숨보다 일개 문중의 명예가 더 값진 것이었는지 의문이 든다.아무리 여인의 절개가 중요한 시대라 하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그렇게 죽어간 여인들도 많을 것이다. 안타깝게 죽은 영혼은 죽어서도 자기의 안타까움을 말하듯 과학수사,<무원록>에 의거하여 자기 죽음의 억울함을 말해주었으니 갇힌 사회,유교와 남성의 사회에서 여인들이 당해야 했던 말못할 억울함이 어떠했을까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노비 덕금 살인사건'에서는 노비는 일개 물건취급을 당하며 주인에게 개죽음을 당해도 누구하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고 참견하지 못함이 정말 안타까웠다. 권력을 가지고 재산이 있는 양반들은 여종을 자기의 물건처럼 취급하다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듯 죽음에 이르게 하고서도 뉘우침이 없이 권력과 재산을 남용함이 얼마나 파렴치한가.
 
 
조선은 남성들의 나라
 
아호탐육 ㅡ 굶주린 호랑이가 고기를 탐내듯이
백로규어 ㅡ 백로가 물고기를 노리듯이 여종을 훔쳐보고
노호청빙 ㅡ 여우 같은 늙은 아내가 잠들었는지 확인한 뒤에
한선탈곡 ㅡ 추운 날 매미가 껍질을 벗듯 여종의 옷을 벗긴다.
영묘농서 ㅡ 고양이가 쥐를 놀리는 것처럼 희롱하고
창응포치 ㅡ 무서운 매가 꿩을 낚아채듯 여종을 덮친다.
옥토도락 ㅡ 옥토끼가 방아를 찧듯이 사랑을 나누고
여룡토주 ㅡ 용이 구슬을 토하듯이 정액을 배설한다
오우천월 ㅡ 소가 달을 쳐다보듯이 헐떡거리면서
노마환가 ㅡ 늙은 말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성여학의 <속어면순>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ㅡ188,189p
 
 
그시대에도 과학수사를 위한 바탕이 되는 책이 있었던듯 하다.<무원록>에 따랐다지만 자세한 기록과 그 기록이 지금까지 잘 보전되지 못한것들이 많으니 조선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는 기록이 너무 부족하면서도 보전이 미흡한 면이 너무 크다. 지금처럼 기계의 발달은 아니어도 억울함을 없애고자 초검,복검,삼검으로 나누어 시행을 하고 초검과 복검의 결과가 일치해야 그로써 사건을 종결할 수 있었다니 선조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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