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숙소는 언제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만약 도둑이 든다 해도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사장의 숙소로 들어서던 이상재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
현관에서 바로 시작되는 좁은 거실의 정면 벽에 이런 붓글씨가 세로쓰기 두 줄로 붙어 있었다. 이상재는 그 문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애국심이 대단하다는 정치부장의 말을 떠올리며,
「사장님께서 손수 써붙이신 겁니다.」숙소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에 사무용 소파, 방에 한쪽짜리 옷장이 전부였다. 검소를 넘어 초라하게까지 보이는 그 숙소에는박태준의 정신만이 가득차 있었다. 이상재는 박태준이란 사람의 심층깊이까지 다 안 것 같은 기분으로 숙소를 나왔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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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선배님은……, 고시를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으세요??
김선태는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이 말을 꺼냈다.
「허! 자네가 결국 그걸 묻는군. 글쎄에 ……,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후회 안 한다고 하면 형편없이 둔감한 놈이 될 것이고, 후회한다고 하면내 인생이 한없이 초라하게 될 거고……. 그게 반, 반이라고 해둘까?
키엘케고르가 말했지 아마? 인생은 어차피 후회다. 결혼하라, 후회할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후회할 것이다. 출세해 보라, 후회할 것이다. 출세를 외면하라, 후회할 것이다. 인생이 이런 거니까 다 자기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지. 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게 흠이었고, 공부깨나잘한 게 두 번째 흠이었지. 이 나라 농부의 태반이 그렇듯이 우리 아버지도 힘없고 가난한 농사꾼을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기고 아들만은 출세시켜 권세를 누리기를 바라셨지.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그 소원을 마누라가 이어받아서 내 꼴이 이리 됐어.」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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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새가 허공에 그 발자국을 새기지 못하듯이 인간사 그 무엇이 영겁 속에 남음이 있으랴."
언젠가 읽었던 불경의 말씀이었다. 불경은 역시 진리의 바다고, 석가모니는 비교할 자 없는 지고한 현자였다. 그 허무의 철학은 극점에 이른미학이고,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결과론이었다. 그러나 인간 군상들은나날의 생활 속에 묻혀 현실만 크게 볼 뿐 그 허무의 가르침을 쉽게 망각해 버렸다. 그 허무의 가르침의 핵심은 현실을 작게 보고, 과욕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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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그 일 때문인가? 그렇다면 관두는 게 좋아. 일단 달리기 시작한기차는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고, 충고란 그동안 있어 온 우정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잖아?」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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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는 겨우겨우 몸을 가누며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문 앞에 기대 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묻고 있었다.
서너 번째 사람이 11시 반이라고 하며 바쁘게 걸어갔다.
「이봐, 인생이란 말야 때론 눈물이고 때론 한숨이고 때론 막막함이고. 그러다가 바람으로 사라져가는 거야. 그 사이사이에 빛이고 영광을 끼울려고 몸부림들 치는 거지. 그래 봤자 물거품이고 티끌이기는다 마찬가지야. 이 박만길의 말 알아듣겠어?」김선태와 어깨동무를 하고 뒷골목을 벗어나며 그 남자는 마치 시를읊듯 가락을 넣고 있었다.
「일만 만 자에 길할 길 자, 이름은 참 기똥찬데 말이죠.……..」「왜 고시엔 16번씩이나 떨어졌냐 그거지? 가난하고 무식한 농사꾼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욕심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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