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일 또 만나
윌리엄 맥스웰 지음, 최용준 옮김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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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워커> 의 전설적인 편집자인 저자가 70대 무렵 자신의 10대 시절 친구에게 보내는 뒤늦은 사과 편지 같은 성격의 소설. " 안녕, 내일 또 만나." 라는 말로 무심히 헤어졌으나, 그 날 이후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다시는 이런 인사를 나눌 수 없었던 친구를 추억하면서 더불어, 그는 어떻게 됐을까, 그 슬픔속에서 살아남긴 했을까 라는 연민과 미안함, 그리고 당시 자신도 어려서 그를 잘 이해하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저자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져 있던 작품이다. 비극적인 운명앞에 아무 힘없이 휩쓸려 버리고 마는 어린 시절의 초상을 담담하게 그러나 통찰력있는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 특징. 전직 편집자답게 군더더기 없이 상황을 묘사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1982년 <전미도서상> 수상작품으로 아름답고 사려깊으며 신사다운 품위가 배여 있다.  60여년전에 일어난 끔찍스런 사건을 그 수많은 세월동안 잊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있다가 자신이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고 생각했을 노년에 사건의 실체를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해서 풀어놓은 점 또한 인상적이다. 70대이기에 가능한 10대 시절의 자신들--혹은 이 세상의 모든 10대들--에게 보내는 할아버지다운 위로가 담겨있는데, 그들을 향해 애잔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 작가의 인간에 대한 연민이 내내 마음을 울렸다. 만약 당시에 저자같은 할아버지가 그들 주변에 있었다면 무지에서 비롯된 고통은 적어도 덜했을지 모르나, 나이를 먹는다고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니, 그런 바람 자체가 허황된 것이었을 것이다. 해서 어찌보면 저자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얻지 못한 구원과 위로를 --그렇게 갈구했으나 어디에서도 얻지 못했던--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할아버지가 되서 자기 자신에게  들려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친구와 자신에게 보내는 뒤늦은 위로편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요즘 보기 드문 감동적인 소설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한가로이 들 수 있는 얇은 중편집으로, 어렵지 않은 단어로 빚어내는 아름다운 문장의 성찬을 음미하실 수 있으실 것이다. 더불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19세기 미 서부의 분위기는 아마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듯. 이 책이 아직까지 영화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시각적인 영상미가 뚜렷하다. 글을 읽다보면 눈앞에 저자의 마을이 그대로 그려진다. 주인을 기다리는 애처로운 개의 모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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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콩고로 가는 길 1
레드몬드 오한론 지음, 이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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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왔다, 콩고의 무벰베~~~정식 이름하야 모켈레음벰베. 이 괴수의 존재에 흥미를 느끼고 진짜 실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일본 와세다대학의 괴짜 외에 또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그 사람의 기행문이 이렇게까지 잘 썼을 줄은 몰랐다. 그래, 너도 콩고에 다녀왔드나? 무벰베 보려고~~ 라는 심정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몇 페이지 읽어 내려간 후 정자세로 고쳐앉아 보게 된 책이 되겠다. 무엇이 전세계의 글쟁이들을 무벰베로 끌어 들이는가는 모르겠으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무벰베가 호기심과 글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는 것을 말이다. 것도 헉소리가 날만큼 엄청난 글재주를 가진 사람들을...하여 일본 글쟁이에 이어 영국 글쟁이까지 가세해서 들려주는, ' 과연 무벰베는 있을까요 없을까요? ' 의 결정판. 20세기에 이렇게 완벽한 모험기행서가 나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책이다. 왜 아직까지 이 책의 존재에 대해 한마디로 들은 적이 없을까 궁금했을 정도로. 물론 그 이유는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정도 짐작하게 되긴 하지만서도, 적어도 1편만 봤을때는 이보다 완벽한 기행문은 없다고, 나발을 동네방네 불고 싶어지게 하던 작품이었다.

레드몬드 오한론, 우리나라에선 한없이 생소한 작가이지만, 영국에서는 꽤나 명망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 말이 믿어지는 것이 이 사람 글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왠만한 글에 눈썹 하나 까딱않는 나조차도 혀를 내둘렀으니 말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쓴단 말이냐 하면서. 거기에 어쩜 그리도 완벽하게 미치셨는지... 마흔이 넘는 나이에 전재산을 탈탈--말그대로 전재산!--털어서 콩고로 여행을 나선다. 단지 무벰베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혼자가면 왠지 위험할 것 같아서(?) 보험삼아 친구 하나와 같이 떠났는데, 그의 친구 역시 한가닥하시는 분이다. 첫날부터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이 여행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그는 미국 동물학자 래리 섀퍼다. 콩고는 처음이고 하도 정세가 심상치 않아 현지 가이드를 붙였는데, 그는 오래전 무벰베를 실제로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콩고의 생물학자 마르셀링 아냐냐다. 사진기를 갖고 있었건만, 무벰베의 갑작스런 출현에 너무 놀라서 찍지를 못했다고 주장하는 마르셀링의 말에 레드몬드는 이번만큼은 자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꼭 사진을 찍어 보이겠다는 야심찬 결심과 함께. 하여 의기양양하게 시작할 줄 알았으나 첫발자욱부터 난항 투성이인 텔레 호수 가는 길, 래리의 표현에 의하면 " 완벽한 악몽을 꾸고 있는 듯" 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여정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단지 악몽과 다른 점이라면  자진해서 들어갔다는 점과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다는 것이겠지만서도. 하여 이성적인 문명사회에서 하루 아침에 야생의 정글속에 뚝하니 떨어진 두 백인은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벅차다는 수준이 아니라, 하루 하루 벌어진 일들을 소화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아니 돌을 씹는 듯 삼키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들이 알몸으로 부딪치게 된 아프리카의 모습은 과연 어떤 정경을 하고 있을까? 어느것 하나 잊지 않는 포토제닉 메모리를 가진 작가의 눈을 통해 날 것의 아프리카가 그대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데, 이제 문제는 당신이 이걸 받아들 수 있겠는가 아닌가 라는 것일뿐...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의 " 엄청난 걸작" 이라는 칭송이 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책을 읽다보면 오한론의 모험이 눈앞에 펼쳐지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그 모험이 동참하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하여 오한론이 느끼고 들었고 보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모든 것을 하나하나 낱낱이 적어놓던데, 어제 했던 말조차 기억나지 않는 나로써는 그가 어떻게 이 책을 써 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상상력으로 써낸 것이라면 오히려 존경심이 덜해질 듯 싶게 생생하기 그지없는데, 문제는 도저히 상상만으로는 이런 책을 써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여 읽는 내내 오한론에 대한 경외심을 숨길 수 없었다. 아, 물론 이에는 부수적인 역효과도 있어서, 그렇게 여행 자체를 완벽하게 복사해 내다보니 작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이 여행의 객관적인 모습을 독자들이 유추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색다른 묘미도 있었다. 그러니까, 오한론, 이 아저씨가 다른 점에서는 완벽하게 똑똑하신데 구멍이 하나 있었으니 인간성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어느순간에서도 잃지 않는 그런 양반이라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나이브한 성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기에 취약한 호구. 그렇다보니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진실을 끝까지 혼자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벙벙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묘한 찜찜함으로 남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목적만 두고 봤을때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작품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고 나니 녹색 모자를 쓴 남자(오쟁이진 남자란 뜻)는 사실 오한론 같이 순진한 사람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끝까지 철저히 믿는 사람들 말이다. 바로 우리네 평범한 보통 사람들처럼.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주변인들이 넌지시 건네준 암시를 나쁘게 해석하는 센서가 없다. 그저 주변인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할 뿐이지. 그렇다보니 여행 내내 잔소리를 해대고, 불평을 하고, 냉소적인 말만 틱틱하던 래리가 책이 끝날 즈음이 되면 사실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좋은 친구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어느정도 냉소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처를 덜 받는 방어막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어막 없이 여행길에 오른 오한론이 바보같다는 뜻은 아니고. 나라도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 것 같진 않으니까. 미지의 곳에 뚝 떨어져 누군가를 믿고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면 누구라도 불신의 스위치를 끄게 될 것이다. 그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말이다. 해서 마지막에 가서야 레드몬드는 이 여행은 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래리의 말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쉽게 말해 무벰베는 없었다.

비록 무벰베는 없으나, 당시의 콩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바로비터로써 이 기행문은 제 역활을 다한다. 작가의 꼼꼼하고 세심한 눈에 잡힌 콩고는 인간을 제외하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싶게 찬란하다. 완벽한 기행문이다. 그외엔 다른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날씨와 곤충과 전염병과 미신, 그리고 무지하고 야만적인 인간들에 레드몬드가 인간 ATM인양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원주민들과 더러운 위생, 그를 속이는 사람들속에서 레드몬드는 여행이 끝날 즈음 슬슬 정신줄은 놓아간다. 그의 정신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의 혼동과 혼란은 방어막없이 아프리카를 접한 자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그가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결국 이 책을 써 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정신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재산을 털어 무벰베를 보러 떠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포용력이자 의지가 아닐까 한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이 출간된 후에도 친구 래리는 오랫동안 이 책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고 한다.  죽음보다도 더한, 이토록이나 끔찍한 여행을 하고 나면 누구라도 그런 심정이 되지 않을까 싶어 래리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본격적으로 몸으로 부딪히는 정통 모험서를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이런 기행문은 아마도 전에도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왜냐면 이건 전적으로 무모하고 대범한 오한론, 그이기에 가능한 글이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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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말을 기억해둬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아이를 학대하는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단 것을.--극중 변호사가 기자에게 내뱉은 말.


 2001년 미국 3대 일간지중 하나라는 보스톤 글로브내 <스포트라이트> 팀이 카톨릭 성직자 추문을 밝혀내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보스톤 글로브에 새 편집자가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마티 바론, 유대인으로써 천주교 일색인 보스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그는 당시 떠들썩하게 소송중이던 성직자 성스캔들을 파볼 것은 <스포트라이트>팀에 지시한다. 그간 그 문제가 종종 제기되어 왔었고, 제보도 여럿 있었지만 그때마다 묵살되어 오던 것이 보스톤 글러브의 실정. 묵살 된것은 별 게 없기 때문이었겠지 하던 기자들은 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안이했음을 알게 된다.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변호인들, 피해자 단체들과 만남을 가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카톨릭 교단 내에서는 나쁜 양 한마리의 문제로 치부하는 성직자 아동 성추행 문제가, 사실 조직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이 없으신가? 만약 그 나쁜 양이 어쩌다 나온 한마리가 아니라, 전체의 6%를 차지한다면 우린 그걸 나쁜 양 한마리의 문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건 전적으로 시스템의 문제이며, 그걸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런 범죄가 계속되겠다는 것까지 추리해 낸 스포트라이트팀은 최선을 다해 이일을 밝혀 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곤 놀랍게도, 성직자의 아동성추행이 계속되어온 관행이며, 바티칸을 비롯한 카톨릭 기관은 이를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은폐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된다. 왜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라는 물음에 피해자중 하나는, 우리가 내내 말을 했음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다고 일갈을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나의 순진함이 깨지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하! 모먼트였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었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세상이 일순간에 달라 보이는 경험을 내게 선사해줬다.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데 내가 그때까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모든 단서들을 누군가가 열심히 흘려줬는데도 내가  제대로 꿰맞추지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걸 깨달으면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분...바로 내게 그런 기분을 선사한 장면은 피해자중 한 사람이 " 이 모든 것은 순결 서약에서부터 시작된 것" 이라는 말을 했을때였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니 당연히 성욕을 느낄 것이고, 그걸 풀 기회조차 막아 놓았으니 다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피해자들 대부분이 남녀를 불문하고 가난한 집 아동들인 것도 그때문이라고. 성직자들이 그들을 고른건 그들이 쉽게 나서서 성직자들을 고발하지 않을 것이라는걸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진하고 가난하며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행해지던 이 추악한 짓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일종의 패턴으로,  사제와 바티칸, 교구민과 피해자 가족들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 충격이었다. 그렇다. 단지 동성애나 소아성애증에 걸린 사제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성직자들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는 하나의 패턴이었을뿐. 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그리고 기이한 해결방식이라는 말인가. 그 섬뜩함에 히드라 머리를 본 듯 나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두번째 장면은 샤샤라는 기자가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그만 눈을 돌리고 말았다. 공포 영화도 아니고, 잔인하거나 야하거나 하는 장면 하나 없이, 그저 옷을 다 차려 입은 두 사람이 까폐에서 만나 차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데도, 도저히 눈을 뜨고 바라볼 수가 없더라. 결국 외면한 채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서야 볼 수 있었다. 이런게 가능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서,  인간이야말로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싶더라.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보다 더 경악스러웠던 것은 기사화한다는 기자들에게 그저 모른척하라고 주문하던 카톨릭계 인사들과 아예 성추문 전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던 바티칸의 위선이었다. 순진하고 어린 피해자들이 무한정 늘어날 것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멈추려 하지 않았다. 잠잠해진 다음에 다른 곳으로 전출을 시켰을 뿐...카톨릭이라는 것이 결국엔 거대한 사기 집단이자 성범죄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해온 일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들은 떳떳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떤 장한 일을 해왔다고 한들, 한 어린 아이의 고통스런 눈물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이들을 자랄 뿐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잊혀질 것이라면서 단순히 별것 아니라고 하던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틀린 것이냐. 카톨릭이 세계적으로 신자가 줄어든다고 하던데, 현대인들의 믿음 없음을 탓하기 전에 어쩌다가 어린 아이들의 영혼을 짓밟는 가해자가 되었는지 심사숙고해볼 수는 없는 것인지 싶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라면, 이제와서라도 바꾸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것이 위선을 떨면서 뒷방에서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떳떳한 일이 아닐까.

깊은 여운과 생각할 거릴 남겨준 수작이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먹먹해서 애를 먹었다.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걸 알고서 보니, 도저히 담담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냉정하게 언급만 하려 한 것도 그때문이다. 언급했다시피,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자연스럽다. 군더더기 없는 것이 아주 맘에 든다. 드라마틱한 장면이 별로 없음에도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몰입해서 보게 만든다는 점도 장점. 배우들의 연기는 다 출중해서 누구 하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없다. 그 중 가장 눈에 뜨이는 배우를 꼽으라면 마티 바론 역의 리브 슈라이버였다. 그간 연기를 잘 한다는걸 별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역에는 딱이다. 이성적이고, 난센스가 끼여들 여지가 없는 머리좋고, 논리적인, 불필요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목표물에 향해 달려가는 건조한 편집자 역을 훌륭하게 해내서 작품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준 듯하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팀장 역의 마이클 키튼 역시 자신의 전성기를 다시 되찾고 있는 듯하다. 젊은 시절의 그를 좋아했던 나로써는 그의 이런 귀환이 매우 반갑다. 그리고 열혈 기자역의 마크 버팔로...왜 한국인들이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토크쇼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던데, 마크~~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건 당신이 선한 역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랍니다.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의 선한 눈빛과 현직 헐크다운 욱함이 영화의 생기를 살려내지 않았는가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샤샤 기자역을 맡은 레이첼 맥아담스는 욕심내지 않는 훌륭한 팀웍을 보여주었고, 경험주의자적인 냉소와 따뜻한 인간애가 공존하는  변호사 역의 스탠리 투치 역시 자신의 몫을 십분 해내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총체적으로 말해 연기의 어벤져스들이 모여서 꽤나 근사한 영화 하나를 만들어냈다고 보면 된다. 이 추악한 세상, 원래 그렇게 돌아가고 있던 것이니 더이상 문제 삼지 말자고 하는 대신, 이 추악한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나선 그들의 용기와 신념에 박수를...만약 우리의 세상이 좀더 나은 것이 되었다면 아마도 그런 이들의 보이지 않은 열정과 이성때문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더불어 자칫 선정적으로 흐르 수 있는 소재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하지만, 사려깊은 톤으로 연출해 준 감독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의 연출 덕분에 이 영화가 더욱 더 진정성있게 다가왔다. 성직자 추문 피해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기를. 영화 말미에 자막을 읽어보니, 바티칸은 이 사건 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우리가 내내 떠들었지만 당신들은 듣고 있지 않았다는 피해자들의 말은 여전히 진행형인 모양이다. 이 영화가 상영된 후에라도 과연 얼마나 세상이 달라져 있겠는가 싶어 암담한 심정이다. 그저 바라건데 더이상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일그러진 욕망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없기를.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 아니겠는가. 방관자나 방조자 역시 가해자 못지 않게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던데, 과연 나는 어떤 어른일까, 이 밤에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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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깊은 영화소개 잘 읽고 갑니다.
네 이웃의 범죄 ㅡ만이 아니란 말이죠...^^;

이네사 2016-02-10 12:46   좋아요 1 | URL
네, 그런 이야기랍니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요즘은 그런 영화를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심심해했었는데, 간만에 발견한 여성주의 영화. 이 아니 반가울쏘냐다. 80여분에 달하는 짧은 영화지만, 해야 할말은 다 한 듯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영화, 내용에 들어가보면...36년을 함께 한 연인과 사별한 레즈비언 엘은 한때 유명한 시인이었던 전직 교수다. 현재는 올리비아라는 젊은 애인과 목하 열애중이었지만 아침 나절에 심하게 싸운뒤 그녀를 내쫓아 버린다. 감상에 젖어 있는 엘 앞에 나타난 귀여운 손녀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면서 도움을 청한다. 600달러만 빌려 달라고 하는데, 이걸 어쩌나, 하필이면 엘에게는 현금도 카드도 없는 상태였다. 집에 있는 비상금을 탈탈 털어봐도 500달러정도가 모자라는 상태. 오늘 저녁까지 돈이 필요하다는 손녀의 말에 엘은 주저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돈을 빌리러 나서게 된다. 하루가 모자라는 시간 동안 돈을 빌리러 돌아다니면서 엘은 손녀에게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의도치 않게 보여주게 되고, 그 과정속에서 엘 역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데...

흠...바람직하게 나이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던, 내가 엘 나이가 된다면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던 성숙한 영화였다. 페미니즘이 시동을 한 이후로 두 세대가 흘렀던가? 이제 젊은 시절 페미니즘을 주장하던 세대들이 늙어서 젊은 처자들을 안스럽게 바라보는 시기가 되었다. 다시 말해 요즘 젊은 처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그들에겐 영화속에 엘같은 그랜마를 가진다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축복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엘이 그저 까칠하고 냉소적인, 성질 더러운 레즈비언에 불과할지 모르겠으나, 편협과 부정의속에 오랫동안 고통받고 살아온 한국 여자로써 나에겐 엘같은 그랜마를 그려낼 수 있는 현재의 시대상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위선적이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때론 내가 말을 하는 것인지, 누가 한 말을 따라 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주절 주절 말을 해댄다. 그것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건 아니건 간에. 그런 관습에서 벗어나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엘이, 가장 고집스럽고 불친절하며 퉁명스러워 보이는 엘이 사실은 가장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 그것만으로도 인생 잘못 살지 않았다는 증명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엘이 그런 사람일 수 있던 것은 그녀가 평생 투쟁을 하면서 살아온 투사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그닥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중년의 전직 교수이자 시인을 보면서 흐믓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적어놓고 싶다. 요즘 나온 영화들 중에서는 비교적 짧은 상영 시간을 가진 영화지만, 공감가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젊은 애인을 찾아가 왜 자신이 그녀와 헤어지는걸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과 전남편과의 대화에서 난 늙은게 좋아, 젊은 애들은 멍청해, 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하나는 나라도 그럴 것 같아서 그랬고, 다른 하나는 이미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 이런 어른이 된다면 나이 든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나이 드는 것에 관대해지는 느낌이었다. 제발 바라건데, 부디부디, 이런 현명한 어른으로 늙어가게 하소서, 나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페미니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출연진들의 연기가 좋다. 아마도 자신들의 이야기라서 별 과장없이도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기에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랜마 역을 맡은 릴리 톰린의 연기를 언급안하고 넘어가긴 아쉽다. 역 그 자체로, 어쩜 그리도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들던지...연기가 아니라 그녀의 일상 생활을 따라가는 듯 흥미로웠다. 그녀가 내뱉는 대사들이 좀처럼 얌전한 할머니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나름 파격적인 (?) 대사들이었는데, 어찌나 맛깔나게 구사를 하던지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런걸 보면 인격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언어로도 감출 길이 없는가 보다. 손녀의 난데없는 방문 덕에 하루 일정의 인생 되돌이 투어를 마친 엘이 마지막에 짓던 흐믓한 미소.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 봤을때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 헛산게 아니란 뜻이 아닐런지.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 매우 깜찍하고 영리하며 아름다운 작품이다. 딱 내 취향 저격의 영화.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발칙한 영화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으나, 이 정도 수준이 발칙하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이니, 극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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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루이스의 책 <빅 쇼트>가 영화화된다고 했을때 반가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했었다. 왜 < 라이어스 포커>가 아니고 빅쇼트인가요? 라는 것에 대한 것.  왜냐면 책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작품성이나 재미면에서 월등히 <라이어스 포커>가 우월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서프라임 모지기 사태라는 엄청난 사태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빅쇼트가 선택되었는가 보다 짐작을 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빅쇼트>에 명배우들이 줄줄이 출연을 하지 뭔가. 아쉬움을 단박에 잊어 버리게할만한 그런 출연진이라서 흥분할 수밖엔 없었다. 하여 커져버린 기대감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보게 된 결과는...

브래트 피트, 크리스찬 베일, 라이언 고슬링, 스티브 카렐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을 해서 그런가 다행히도 책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줄거리는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2008년 일어난 서프라임 모지기 사태를 진작에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housing market는 절대 망할리 없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아니라고 말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그 상황을 이용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라는 것. 거대한 흐름에 꺼꾸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몸소 보여주면서, 그 불가능에 도전을 해서 큰 돈을 벌어드린 기회주의자라면 기회주의자들의 이야기. 문제는 이들이 베팅을 했던 것이 자본주의의 몰락이었다는 것이여서 사실 도덕적으로  본다면 탐탁치 않기는 하다. 다만, 서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이킨 주범이 따로 있는 마당에 그쪽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일 뿐이지. 영화는 포스터에서 보이는 네 명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천재 아스퍼거스로 인간을 대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마이클 버리는 인간 대신 아무 감정이 없는 숫자를 다루면서 안정감을 얻는 사람이다. 골방같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하드락을 들으며 펀드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모기지 보험 약관이 지나치게 두껍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껴 파보기로 한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게도 이것이 언젠가는 붕괴될 수밖엔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약관이 그렇게 두꺼웠던 것이 무리도 아닌 것이 그 적나라한 사기를 가리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주절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 말이다. 변호사가 아니면 파보지 않는다는 약관을 들여다 봄으로써, 서프라임 모기지의 사기성을 단박에 알아챈 마이클은 서프라임 모기지 붕괴 시나리오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이일로 그는 븅신에서부터 호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별명을 얻게 된다. 그 누구도 감히 그가 주장한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사람은 비단 마이클만이 아니라서, 메릴린치에서 일하던 마크 바움 역시 그에 대한 정보를 자레드 버넷에게 얻게 된다. 처음 반신반의하던 마이클은 뜨악한 마음으로 현장 조사에 나섰다가 대경실색하고 만다. 실제로 주택 시장은 버블이었으며, 그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붕괴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조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사태의 심각성에 질려버린 마이클은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가 두렵기만 한데...

걸출한 네 배우들이 그들 이름값을 했다고 보면 되는 영화다. 서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진행 상황을 매우 깔끔하게 설명해내던데, 서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설명을 들었던 사람들 모두, 들어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는걸 감안하면 이해하기 쉽게 전개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진실은 시와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를 졸라 싫어하지.> 라는 문구가 중간에 삽입되어 있던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더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외면받는 세상에서, 진실이 너무 끔찍할 시 우리는 사태 해결보다는 덮는 것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아무도 시를 좋아하지 않고, 아무도 끔찍한 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프라임 사태를 예견한 마크 바움( 스티브 카렐)과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가 자본주의와 금융권의 부도덕을 설파하지만서도, 그들의 눈물이 안스럽게도 현실은 여전히 사기꾼들을 옹호하면서 흘러간다. 사태를 촉발한 주범들중 거의 누구도 단죄를 받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속 마지막 멘트가 의미심장했다. 서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유발한 금융상품이 다른 이름으로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것...과연 우리 인간은 과거의 실수에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인지, 어쩜 그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일까, 궁금해진다. 결국 이 영화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의 재발을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런지...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괜찮은 영화였지 않는가 한다. 바라건데, 이런 과거를 통해 인간이 뭔가 배웠으면 하지만서도, 글쎄...그저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소는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다가 아닌가 한다. 보통은 영화보다 책이 더 재밌는 법이긴 한데, 이번만큼은 영화가 더 낫다. 하긴 이 배우들 가지고 재밌는 영화를 못 만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지도... 하여간 그럼에도 책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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