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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 프라미스 - Eastern Promis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죠?"라는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뭘 알겠느냐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한다. "난 그저 운전사일 뿐이요." 글쎄...정말 그럴까? 과연 감독은 "단지 "운전사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일까? 살짝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광폭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운전수를 향해 관객의 의혹에 찬 눈길이 머물면서 영화의 이야기를 풀려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14살의 소녀가 병원으로 실려 오면서 시작한다.아기를 낳고 소녀가 곧 사망하자 그녀를 가엾게 생각한 조산원 안나(나오미 왓츠 분)는 그녀의 신원이라도 알 생각으로 죽은 이의 가방을 뒤진다.딱 열 네살 소녀가 사용할만한 깜찍한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것은 해독이 불가능한 러시아 언어,안나는 러시아 이민계인 삼촌에게 번역을 부탁한다.빙퉁맞은 삼촌은 남의 일에 괜시리 끼어든다면서 안나를 못마땅해 하고, 소녀의 가족에게 아기를 넘겨주고 싶은 안나는 소녀에 대해 알려줄 사람을 찾아 일기장안에 있는 명함속의 장소를 찾아간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유명한 러시아 마피아의 대부가 사는 곳,겉으로는 평화로운 식당이었지만 실은 정체를 숨긴 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맘껏 채우고 있던 곳이었다.아리따운 금발의 안나에게 다가가 "여기는 당신이 올 곳이 못된다."고 협박처럼 조언하는 이 남자,바로 대부의 아들의 운전수인 니콜라이다.전문 살인 킬러인 그는 러시아 액센트가 배인 어눌한 영어로도 능숙하게 여자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다.그의 정중한 친절이 헷갈리는 안나는 그에게 묻는다.어떻게 이런 사람들하고 어울리냐고...그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나는 그저 운전수일 뿐이오.오른쪽으로 가라하면 오른쪽으로 가고,왼쪽으로 가라면 왼쪽으로 갈 뿐이죠."글쎄...그게 과연 정확한 대답일까? 겸손한 그 대답 아래 뭔가 숨겨진 것이 있다고 생각되는건 왜 일까?
일기장을 번역해낸 삼촌은 식겁해서는 절대 이걸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안나를 질책한다.하지만 이미 일기장의 사본이 마피아 대부의 손에 건너가 있는 상태...일기의 내용을 알게된 안나는 끔찍스러워 하면서도 분노한다.14살 러시아 소녀가 어떻게 청운을 꿈을 믿고 영국으로 오게 되었는지,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처절하게 적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일기를 통해 그 소녀가 강간당한 날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강간범을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지만,문전에서 쫓겨나고 만다.마피아의 대부는 일기장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삼촌을 제거할 것은 운전수에게 명령하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 삼촌은 실종 되고 만다.
운전수가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한 점을 높이 산 마피아의 대부는 그에게 별을 달아주려 한다.마피아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승급심사를 받는 장면,운전수는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며 설레는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하지만 사실 이것은 마피아 대부가 파놓은 죽음행 티켓이었음을 그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는데...-->비고 모텐슨의 연기력이 돋보이던 장면중 하나다.승급을 위해 벌거벗다시피 서있는 그,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감수하던 그가 차마 인간성만은 버리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장면이었다. 고지가 바로 앞에 서 있는 자의 긴장감과 굴욕감, 수치심과 연약함,그리고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라는 내면의 갈등을 앉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보여 주던데,과연 이걸 모텐슨처럼 해낼 수 있는 배우가 있을지 의문이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온화한 식당 주인과 공손한 운전수처럼 보이는 그들,과연 그들의 속마음도 겉모습과 같을까?어찌 우리같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그들의 속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를 연작으로 내놓고 있는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으로 2005년의 <폭력의 역사>를 인상적으로 본 사람들에겐 반갑게도 비고 모텐슨이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전작보다 쌈빡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빼어난 줄거리 전개에,누구를 믿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주는 긴장감, 어눌한 액센트의 발음을 썩 잘 소화해낸 비고 모텐슨의 연기가 너무 진짜같아 흥미진진하게 본 영화다.담배를 혀에 대어 끄는 장면이라든지,문신을 새기는 장면,사우나 장 안에서의 싸움 장면들은 어떻게 저렇게 만들수 있지 궁금할 정도로 사실감 넘치던데,요즘 영화들은 어찌나 현실 같은지 영화 보기가 좀 겁이 난다.이보다 더 폭력이 난무하는 <핏빛 자오선>이나 <로드>같은 소설들이 영화화되면 어떻게 될른지 미리부터 걱정스럽다.공포 영화 못지 않은 피벅범 영화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사견으로 <로드>의 아빠 역으로 비고 모텐슨이 참 잘 어울릴것 같던데,누가 캐스팅 되었는가는 모르겠다.<핏빛 자오선>의 판사 역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딱 제격이긴 하지만 하려고 들지가 미지수다.내가 바르뎀이라도 고사하고픈 역이니까...음,리뷰가 옆으로 샜다.어쨌거나 폭력에 그다지 혐오감이 없으신 분이라면 재밌게 보실 수 있는 마피아 이야기로, 대부로 나오는 아민 뮬러의 연기도 역시나 였다.<뮤직박스>나 <샤인>에서보다 늙은 티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속과 겉이 다른 악마의 연기를 그만큼 매력적으로 해내는 배우도 드물지 않는가 한다.여전히 악소리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