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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그마 ㅣ 세계 2차 대전 3부작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전쟁은 기회의 장이다." 언듯 들으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가치관이지만, 오늘날까지의 역사
를 들여다 보면, 이처럼 당연한 말도 없다. 전쟁이란 행위로 인해서, 일부 상인들을 포함한
각 국가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기치를 높이며, 국가의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또
한 전장터에서 죽어가는 '남자'를 대신하여 '교육받은 여성'들이 각 사회 전반의 일터에 투입됨
으로서, 과거의 여성상이 파괴되고, 현대적인 여성상이 등장하게 된 것도 전쟁이 가져다준 또
다른 사회의 변화이자 새로운 기회의 장 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시대상을 표현한' 이 소설은 하나의 주제가 없다. 아니... 도리어 당시 전쟁의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는 가치관, 즉 당시의 사회, 빈곤, 군사적 의미, 전장의 모습, 여
성들의 사회진출, 의욕, 야망 등이 버무려진 비빔밥과 같은 모습이 이 책의 진정한 주
제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근대전의 정수였던 세계2차대전을 그리는 이 소설 또한, 그러한 새로운 가치관과, 변화
에 대한 이야기가 그 주를 이룬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을 괴롭히는 나치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첩보부대' 그 속의 지식인들은 나치의 암호기인 '에니그마' 그 중 최고의 난
이도를 자랑하는 '샤크'의 비밀을 깨뜨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물론 주인공이자, 암호해독가인 토머스 제리코도 그 단체에 소속된 인물로서, '샤크'가 품은
그 비밀에 매료되면서도 그것을 푸는데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전장의 비밀
은 그 가치가 순간의 찰나에 드러나고, 또 사라진다. 때문에 제리코를 포함한 많은 지식인들
이 며칠을 고생하며 풀어낸 실마리는, 어느날 하루하침에 쓸모가 없어지고, 또 그 가치를 상실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스스로의 스트레스로 인해서, 망가지고
또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중 제리코도 점점 '암호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망가
진다. 식사도 불규칙하고, 목욕조차도 하지않는 나날... 그러던 그에게 한 여성 '클레어'가 나
타나고, 결국 그는 그녀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클레어도, 제리코가 속한 암호부대에 소속된 정보 전산원(오퍼레이터)로서, 현대적인 매력과
지성을 갖춘 인물로 그려진다. 때문에 제리코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라
면, 자신이 하는 일의 비밀조차도 그녀에게 털어놓을 각오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작
스럽게 그에게서 사라지고, 또 점차 제리코의 주변에서는 그녀가 '혹시 독일의 스파이가 아닐
까?' 하는 의혹과 경멸이 섞인 이야기등이 오가며, 한때 연인이였던 제리코에게도 의심과 의혹
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클레어가 스파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이 매달리
는 '샤크'의 비밀을 푸는 은밀하고도 중요한 일을 뿌리치고 클레어를 찾는것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애초부터 영국 정보부의 수사관들을 포함한 정부요원들이 제리코 자신을 눈
여겨 보고있다.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닥친 과제를 푸는데 모든 열성을 다한다.
이때 제리코는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닌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 학자가 된다. 실제로 그
는 독일 유보트의 암호체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연합군 수송함대를 미끼로 삼자는 의견을
낸다. 물론 군인들은 수천명의 인명을 희생시킬 그 작전의 위험성을 말하며, 그에게 '미쳤
냐" 라는 질책을 쏟아내지만, 학자인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제안은 나치의 비밀을 끄집어 내
는 가장 확률높은 제안이다.
이처럼 제리코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타리를 하는 가장 섬세하면서도 위태로운 '천재' 로
서의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숫자와 암호를 헤체하는 탁월한 천재이지만,
사랑앞에서는 바보가 되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는 한 사랑을 놓치고, 암호의
세계를 선택한다. 그러나 그가 온 힘을 쏟았던 그 암호의 존재 또한, 결국 전쟁이 끝나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물거품처럼 그 가치가 사라진다. 결국 한 명의 천재는 그 시대의 순간
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재능과 인생을 퍼부은 셈이다. "허무하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도리
어 그 허무가 더 나을수도 있다. 저 바다 건너의 '한 천재 물리학자'는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
악에 의해서 평생을 괴로워 했다고 하니까...
정직하지 못했던 시대, 파괴의 시대, 거짓이 넘치던 시대,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
하려고 하였던 한 천재의 이야기... 이처럼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제이코의 이야기 또한, 에
니그마는 해독기가 필요한 복잡하고, 또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