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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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이라는 말이 점점 실감나는 요즘이다. 정치권이야 이미 검은 돈이 가장 활기를 띄는 곳이니 말할 필요 없고, 물질 만능주의 정신이 윤리도덕적인 면까지 변화시키는 게 문제다. 10억을 벌수만 있다면 나쁜 짓을 해서 감옥을 다녀와도 좋다는 초등학생들의 설문조사를 그냥 허허 웃고만 지나갈 수 있는지...오늘 읽은 이 책을 보니 생각보다 더욱 끔찍한 미래가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이 커지는 느낌이다.

 

사실, 이 책은 소재만으로도 읽고 싶게 만든 파격적인 줄거리를 가진 책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사회에서는 돈 많은 노인들이 값을 쳐서 젊은 몸을 대여(렌탈)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엔더라고 불리는 7,80세의 노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돈으로 10대의 몸을 빌려서 생활한다는 건데 처음에는 상상력이 좀 뛰어나는 정도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책을 점점 읽어나가면서 왜 이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거지?라는 의문을 스스로가 품게 되었다. 즉 소설치고는 너무도 그럴듯한 이야기에 넋을 잃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과학기술적으로도 왠지 조만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야기의 아귀가 하나 하나 들어맞아 가는 과정들이 섬뜩할 정도였다. 거기에 스릴러와 반전까지... 정말 간만에 쉬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간 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역시 인간의 욕망을 위해 완벽하게 복제된 또 다른 인간의 삶을 조명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각성을 요구한 바 있었다. 이처럼 예전에도 클론이라 불리는 인간복제 소재를 가지고 우리가 가진 그릇된 욕망을 끔찍하게 표현한 책들이 꽤 있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만다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거대한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를 주축으로 하면서 돈만 있으면 영원한 젊음마저도 거래할 수 있음을 비꼬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댄 멋진 소설이지만 결코 소설로만 즐길 수 없는 이 묵직한 기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삶이 소설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점점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 때문에라도 더 깨름직함을 던져주는 이 소설, 스릴러가 가미된 한 편의 멋진 공상과학 소설이기는 하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다가올 미래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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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생각하라 -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아르네 네스.존 시드 외 지음, 이한중 옮김, 데일런 퓨 삽화 / 소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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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에서는 편식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책을 고를 때는 유독 편식이 심한 편이다.ㅠㅠ 정말 재미있어서 읽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주로 소설과 에세이 같은 문학이나 자기계발서에 치우쳤고 좀 더 독서이력이 붙기 시작하면서는 예술, 경제 경영서, 인문학 쪽으로도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 과학이나 철학, 정치 관련 도서는 아직까지 범접 할 수 없는 세계의 어떤 것으로 여겨져 독서 편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내가 의외로 관심을 가지고 한 번씩 찾아 읽는 도서가 있다면 자연과 환경에 관한 책들이다.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갖자는 의도가 1차였고, 또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를 마구 훼손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자꾸 상기시켜보자는 나름의 의도가 2차였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너무도 심각한 지구의 안전과 미래를 확인하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체념이 먼저 들어 책을 읽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뚜렷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에서 자꾸 암담한 환경의 현재모습을 들추어 내다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는 시도 자체도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사실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책들을 몇 권 읽으면서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었다. 즉 우리가 지금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혹은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거창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전문가의 몫으로 남기고 조금이라도 해를 입히지 않는 행동을 스스로 찾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매우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예를 들어 1회용 젓가락이나 종이컵을 쓰지 않는 일이 아주 작은 행동 같지만 이미 습관이 된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소한 일 조차도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쓸 수 있는 1회 용품들의 개수를 한달, 일년, 이년...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리 적은 숫자가 아님을 금새 알게 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1명, 2명...이렇게 늘면 바로 그 일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연보호의 시작이 된다고 믿는다.

 

오늘 읽은 이 책은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만큼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읽는 이러니 이렇게 해야한다, 저러하니 앞으로 이렇게 하면 안된다와 같은 어조가 아닌, 연설이나 시, 에세이를 통해 자연과 지구를 노래한다. 열대우림을 묘사한 스케치 같은 그림들은 부록처럼 여겨도 좋을 만큼 순박하다.

‘만물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연과 친구인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행동하는 저자들이 각각 개성 넘치는 글들로 책을 꾸몄는데, 근본 뿌리는 하나다. 우리는 지구의 관리자가 아니라 지구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 흙, 땅, 물처럼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니 지구가 아프면 그 일부인 우리 인간이 아프고 파괴되는 걸 자연스런 흐름으로 깨닫자고 주장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왜 우리는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외의 사실은 우리가 환경과 지구의 위기에 대해 가지는 무감각과 냉담은 무지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지구의 파괴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절망 자체를 회피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불안을 자극하는 데이터를 자동적으로 걸러냄으로써 그런 불안한 심리를 벗어나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다. 지구환경이 날로 악화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면서 생각하면 더 괴로우니까 일단 피해버리자는 심리가 무관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처럼 생각하라』는 책의 제목처럼 만약 우리가 인간 역시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 부분이라는 걸 지속적으로 인식한다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길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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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문쾌답 - 답이 없는 시대 필요한 것들
오마에 겐이치 지음, 홍성민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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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대답하는 행위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문제에는 해답이 있다고 배워왔건만 그건 단지 교과서 속의 이야기 일뿐,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면 오히려 답은 없을 수도 있고, 하나일 수도 있고, 혹은 셀 수 없이 많아 이것이 답이다라고 선택하기조차 힘이 들 때도 많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질문이거나 새로운 나만의 답을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답이 있다 혹은 없다로 귀결하려 하지만 여기 이 책의 저자는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는 그 자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라고 외친다. 또 이러한 행위야말로 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무기라는 그만의 통찰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짧은 단문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360도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책이 두껍지도 않고 위, 아래 공간 없이 빽빽하게 내용이 꽉 차 있지도 않다. 오히려 한 페이지에 서너줄에 불과한 짧은 문장들이 놓여 있을 뿐. 그래서 누군가는 이 책을 참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꺼라 단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읽은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단지 하얀 종이에 새겨진 활자를 접한 것일 뿐.

바꿔 말하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편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야 간신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이야기를 그 짧은 문장 속에 함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들이다.

 

명확한 답이 없을 때가 기회다.

전문가에게 물어도 흡족한 답을 얻지 못할 때에는 ‘상식’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P.96>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은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온몸에 상처를 입어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P.236>

 

구글에 검색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본다. <P.266>

 

이렇게 저자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고하지 않고 쉽게 답을 찾으려 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또한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을 파악하지 않고 답만 찾으려 하는 일을 어리석다 말한다. 통찰력의 부재, 사고력의 마비는 지적인 태만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커다란 벽 앞에서 쉽게 좌절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고를 멈추지 말라며 다독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또 수시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구하라 말한다. 그래야만 이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는 통찰력을 배우고픈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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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프랑수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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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고전작품은 쇼핑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조르주 상드의 1840년대 작품이다. 사생아 프랑수아의 고단했던 삶과 사랑에 눈뜨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신파적이면서도 애절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읽혀졌다.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사생아’의 뜻을 찾아보면, ‘혼인 관계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대받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의 일부 기독교국가에서는 일부일처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어서 이러한 사생아의 탄생을 탐욕과 부정의 열매로 규정해 비인도적인 학대도 심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생아 프랑수아 역시 고아원에 버려졌으나 그를 키웠던 여인은 젖을 뗄 무렵 사망하고 그는 또 다시 50세의 노처녀 자벨에게 맡겨진다. 자벨이 프랑수아를 키우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에서 사생아들에게 지급하는 약간의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또 심부름꾼으로 쓸모도 있고 해서였다. 그렇다고 아무런 온정도 없이 그저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프랑수아를 맡은 건 아닌 듯 보였다. 중간에 그를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수아는 사생아에 대한 개념조차 모른 채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천하게 생각하여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언젠가 자벨 역시 자신을 다시 고아원으로 보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라서(진짜 버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으니) 더더욱 누군가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로 극심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모습들이 그의 행동, 말투에 하나하나 베어 나왔고 나는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 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극에 달했다.

 

“프랑수아, 벌써부터 그렇게 무조건 참기 시작하면 정말 한이 없을 거야.”

그러자 프랑수아가 펄쩍 뛰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

 <p.46>

 

프랑수아는 자벨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친절한 우리 엄마! 엄만 왜 내게서 떠나려고 해?

내가 엄마가 보고 싶어 슬픔에 잠겨 죽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기에 엄마가 날 이렇게 미워하는 거야?...(중략)

엄마, 날 그냥 있게 해 줘. 이렇게 빌게, 응? 항상 엄말 도울게.

엄말 위해 일할 테야.

내가 맘에 안 들면 날 때려도 좋아. 나 아무 소리도 안 할게.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하더라도 날 보내진 말아 줘.“

<p.55>

 

아...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버려지지만 않는다면 때려도 좋고, 죽도록 일만 시켜도 좋으니 제발 다시 양육원에 보내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아프게 상상되었다.

하지만, 이들 모자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주인집 마님 마들렌은 프랑수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자신이 그의 어머니가 되어주겠노라고 선언해 버린다.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몰래 이들 모자를 도와왔던 그녀는 워낙 박애정신이 투철하고 심성이 착했기에 프랑수아가 두 번 버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그를 제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라 외쳤고 그녀의 이런 선언을 들은 프랑수아는 그때부터 오직 마들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라 각오한다. 마치 영화 브레이킹 던에서 늑대인간 제이콥이 르네즈미에게 각인되어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운명에 놓이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프랑수아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서서히 개척해 가는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평생 엄마로 모시고 아끼고 보호할 것이라 맹세한 마들렌의 곁을 억지로 떠나야 했지만 그는 한시도 그녀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며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고통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바로 이 부분부터 조르주 상드는 프랑수아를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비참한 운명을 살아야 했지만 그는 마들렌 못지않게 인정이 많고 온순하며 가장 인간다운 면을 보여준다. 물욕과 색욕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는 가진 것 하나 없지만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이 된 그의 모습은 완벽한 외모와 영리함까지 겸비했으니 더욱 매력적이기 까지 하다. 이 프랑수아라는 인물을 소설 전면에 내세운 작가는 그가 사생아임에도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라는 걸 부각시킴으로서 당시 사회의 편견과 잘못된 관행들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다만, 프랑수아가 한 여인에게 품은 연민과 애절함은 이해가 가지만 사랑으로 바뀌는 변화의 감정은 완급조절에서 아쉬움이 있다. 너무 급하게 감정선의 변화가 생겨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소설적 재미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남장여인으로 살아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던 저자 조르주 상드가 어떤 인물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싶었을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조르주 상드>

 

당시 상드가 남장여인으로 행세했던 건 여성의 작품은 출판하지 않는다는 당시의 사회적 차별에 항의하며 남성 문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겠다는 그녀만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는 평생 ‘사랑’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삶을 노래했으니 어쩌면 이 책의 주제가 남녀간의 질기고도 뿌리 깊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 조르주 상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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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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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바쁘게 쉼 없이 살아왔다. 알맹이는 없어도 겉이 화려하면 좋았고,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게 낫다 싶었다. 함께 달려가다 어느 새 주저앉은 경쟁자를 돌아보기 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여기며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왔다.

허나 참 이상하다. 그렇게 피똥 싸게 달려왔는데도 제자리다. 아니,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든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머리는 텅 비었고 뱃살만 뒤룩뒤룩 찐 채 뒤뚱거리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닌데 그럼에도 뭔가를 자꾸 꾸역꾸역 넣기 바쁘다.

아...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해서 못 견디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교양은 없이 정보만 받아들이고 깨달음 없이 지식만 채워놓은 꼴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정신적인 가치관이 없음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감성이 메마른 탓이리라. 아... 정말 총체적 난국이구나.

 

더 이상은 줏대 없는 인간으로,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회색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른 책이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이었다. 그동안 읽어온 책들 속에서 인생 참, 어렵다, 그래도 힘차게 살아보자는 가벼운 위로를 얻었다면, 이번엔 이렇게 살아보라 하는 진짜 알맹이가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유교정신을 숭상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구구절절 옳은 문장과 이론들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숙여질 때가 많았다. 수 십 페이지의 기나긴 연설보다 그 옛날 중국 사상가들이 툭툭 던진 한 두 구절의 문장이 진중한 깨달음을 줄 때가 많았다. 한때는 너무 옳은 말만해서 고리타분하고 사람을 질리게 한다 멀리했던 공자와 맹자 같은 사상가들의 가르침이 이제는 살아가는 혜안을 준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글자보다는 행간 사이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만큼의 나이를 먹어서였는지 모르겠다.

 

내 여지껏 중용이라 하면, 중간에 서서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딱히 그런 의도로만 해석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저자의 새로운 통찰이 가미되어 확장된 의미로 본다면 중용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맛과 멋이 느껴지는 인간적 매력을 만들어가는 어떤 것이다. 또한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도덕적 비전의 발현이기도 하다.

 

“공자는 <중용> 제4장에서 ”과(過)“ ”불급(不及)“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지혜롭다 자부하는 자들이 좀 지나치는 경향이 있고, 어리석은 자들이 못 미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지 과(過), 불급(不及)의 중간항목으로서의 중용(中庸)을 규정하거나 언급한 적이 없다...<중략> 여기 “과한 것이 불급한 것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라는 나의 번역은 “과한 것이나 불급한 것이나 다 비슷하다”라는 표현을 맥락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과한 것이 불급한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은 곧 공자가 “중용”의 덕성을 예찬한 것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공자의 근원적 관심은 “인(仁)”에 있었으며, “인(仁)”이란 주어진 삶의 사태를 감지하고 결단하는 심미적 감수성이며 그것은 근원적으로 상황적이며 역동적인 것이다. 어떠한 중용이라는 실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중용은 과,불급의 상대적 사태에 의하여 양적으로 결정되는 그런 덕이 아니다...<중략> “ - 본문 중 -

 

이렇게 그는 중용이라 여겨진 보편적인 정의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해석과 철학적 사유를 통해 보다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한다. 단어가 주는 언어적 뜻만 이해하기보다는 삶 여러 부분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된 보다 통합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는 중용을 읽고 “일상적 삶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중용”을 읽지 않은 것이니 이 책을 다 읽은 후 자신의 삶을 한 번 반추해 보라는 숙제를 독자들에게 내주었다. 책을 읽고 그 숙제를 완성하는 건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책을 몇 번이고 더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많이...많이 부족하다. 삶의 혁명을 가져오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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