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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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마메를 말하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외로운 여자였다.
어린 시절에는 ‘증인회’ 신자였던 부모에 의해 자신 역시 종교적 의무를 다하기를 강요받아 따돌림보다 더한 ‘없는 존재’ 취급을 받을 만큼 철저히 혼자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와 외삼촌 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지만 여전히 애정에 굶주려 외로웠다고 토로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 시절 자신에게 당당히 따스한 손을 내밀어준 ‘덴고’ 와 처음으로 모든 것을 공유할 만큼 친했던 친구 ‘다마키’였다.

하지만 아오마메에게 외로움이란 무서우리만큼 끈질긴 숙명이었나보다. 덴고와는 그때의 기억만 고스란히 간직한 채 헤어져 가슴속에서만 그리워하고 다마키는 가정폭력의 피해로 자살을 해버렸으니 그녀는 또다시 홀로 남겨진 셈이다.
만약, 그들이 어떻게든 그녀의 인생 테두리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면 아오마메의 인생은 적어도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받거나 세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어느 누구나 그녀의 테두리안에 들여놓으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 역시 사람이다. 누군가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말이다.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혹은 평범한 삶이 주는 위안이 힘이 되고 사람냄새 그리워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는 남자와의 하룻밤 섹스를 통해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공유’하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다시금 기억해내고 우연히 알게 된 경찰관 ‘아유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다른 누군가를 살해하는 여자가 경찰관을 친구로 두게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오마메에게는 아유미라는 존재가 경찰관이라는 대립적 존재이기 이전에 자신의 외로운 삶에 거침없이 뛰어 들어와 준 그저 고마운 존재였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냉정한 척 관심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유미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다시 혼자가 된 아오마메.

 이런 식으로 그녀는 여러 번 주변인물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결국 예전보다 더 차갑게 돌아서고 만다. 그나마 유일하게 그녀를 지탱해주었던 ‘덴고’에 대한 사랑만을 남겨둔 채.
그래서 그녀는 이제껏 다시 만난 적 없는 덴고를 위해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았던 것은 아닐런지. 
그야말로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마지막 보루였으므로.

 

 

덴고를 말하다

 

덴고는... 그래도 세상과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 남자였다.
아오마메처럼 깊은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 하지만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며 일탈을 꿈꾸면서도 쉽게 단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성장하고 어느 순간에는 집을 쫒겨나더라도 결국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수금하는 일은 싫다고 당당하게 거부한다. 그리하여 자유와 자립에의 첫 걸음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독립을 한 후에는 수학강사로써 살아가지만 자신의 소설을 쓰기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즉, 그에게는 아오마메와 달리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스스로가 원하고 무언가를 목표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삶이 무의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연상의 걸프렌드 야스다 교코라는 한 여자와 지속적으로 애정을 주고 받는 일이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그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자유로워 진 점을 보면 그는 그렇게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오마메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그녀의 세상에서 고독하게 살아갔다면, 덴고는 이와는 달리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면의 상처는 상처일 뿐이고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것을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두 개의 달이 존재하는 세상일지라도 그는 끝까지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거리가 너무도 많다. 리틀피플, 공기번데기라는 오묘한 소재부터 두 개의 달, 편협한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썰로 풀어낼 것들이 여기저기 종합선물셋트처럼 놓여있다. 
그렇지만 난 딱 두 사람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인물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려 노력했다.
그리하여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관계와 존재를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 역시 발견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디에서든 속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인간. 그래서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좀 더 나은 세계를 찾아보자고 결심하고 뛰쳐나가게 되지만 그곳 역시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가듯이 불안한 마음으로 양쪽 세계에 발을 담그지만 한 곳에만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또 다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헤맨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단절을 택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숙명이라면 받아들이자.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이다. 결국 세상을 연결하는 것도 닫아버리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라면 덴고처럼 끊임없이 타인과 혹은 낯선 세계와 조우하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진짜 나의 세계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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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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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두 글자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눈물과 그리움을 내포하는 말이 아닐까?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아픔, 상처를 듬뿍 안고서 세상의 모든 자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 ‘엄마’라는 두 글자가 나는 너무 너무 아프고 사랑스럽다.

 

어릴 때 나 역시 엄마 앞에서 울부짖었다.

엄마처럼 절대로 살지 않겠노라고.

조금 더 철이 든 지금

나는 엄마의 눈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되내인다.

난....엄마처럼 절대 살지 못할거라고.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서 온 몸을 내주지 못할꺼라고.

그건 나에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래서 엄마가 너무 존경스럽다고.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갑자기 다가와 또 한번 나의 가슴에 커다란 아픔과 치유를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엄마’라는 가장 흔하디 흔한 소재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였고, 책을 읽는 동안 자꾸 주관화되는 시선을 거둬들이려고 많은 애를 써야했다.

그녀는 네 엄마가 아니야. 소설속의 허구일 뿐이야라고 애써 부정하지만 자꾸만 오버랩 되어 눈 앞에 나타나는 나의 시간들과 엄마의 기억들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내 엄마 역시, 그녀의 엄마였으니.

집 나간 자식을 위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도록 온 짐을 가득 이고, 안고 상경한 그녀가

지난날 내가 공항에서 출국 전 마주한 내 엄마였다.

수화물의 무게가 정해져 있어서 가져가지 못한다고 공항에서 버럭대며 짜증을 내버린 내 앞에서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트렁크를 열어젖히고 빈틈을 찾아 그녀가 며칠 동안 준비했을 물건들을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무겁지 않은 것들이라 괜찮을꺼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3년만에 바로 그 공항에서 엄마를 다시 만났다.

홀쭉해진 얼굴, 이젠 뽑기엔 엄두가 안날 정도로 늘어버린 흰머리들.

그리고 처음 보는 검버섯 핀 그녀의 손이 내 짐들을 낚아채는 순간 ‘내 엄마’에게 돌아온 사실이 실감이 났다. 3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헌신적인 엄마와 철없는 딸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주일 째 소식이 없는 엄마. 하지만 그들은 곧 깨닫는다. 이미 그들의 생활에서는 몇 년째 부재중인 엄마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가 그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한 인간으로서, 한 명의 여자로서 엄마를 보살피고 바라보지 못했다. 엄마의 ‘자리’에 있기만을 강요하고 그 자리의 엄마만을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그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기 시작했고, 시간이 점점 흘러 이제는 ‘박소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존재를 느끼고 자신 안에서 새로운 엄마를 형상화 시켜나가는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 몰랐을 낯설고 가여운 엄마를 기억해 내며 지금 그녀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스레 느끼기 시작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미가 낳은 자식은 신문에 소개되는 작가가 되고, 제대로 공부해 보지 못한 어미가 기른 또 다른 자식은 대기업의 직원이 되고, 약사가 된다.

그리고 누구의 엄마로만 불려 졌을 그 어미가 어떤 남자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절대로 잊지 못하는 소중한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젊은 여인을 데려왔을 때 말없이 집을 나간 여인이,

어느 날 훌쩍 떠났다가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돌아온 남편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 그 여인이 말이다.

 

서울역에서 한 순간에 사라진 그 엄마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식들에게 자신과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의 부재를 통해 자식들의 가슴에 생길 생채기들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만약 그녀가 어느 아침에 거짓말처럼 ‘죽음’으로 가족들과 이별을 했다면 그녀의 가족들은 생로병사의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와 작별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순간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억속에 오롯이 묻혀있던 엄마를 다시 꺼내보지도 못한 채,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죄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미안해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자식들이 갑자기 그녀를 보내고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엄마를 떠나 보내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그녀의 자식들이 엄마를 잃고 찾아다니는 과정을 통해 이제 성인이 되어버린 그들이 제대로 기억속의 엄마와 마주하기를 바랬다.

나는 너희를 너무도 사랑한 엄마인 동시에 그녀 역시 자신의 엄마가 필요한 철부지 딸이였노라고.

한 평생 핍박한 삶 속에서 여인의 삶을 포기한 채 엄마로만 존재 했음에도 누군가에게는 한 여인으로 기억되는 여자였노라고.

지난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자신의 것을 모두 퍼주고도 한없이 더 주고 싶은 아낌없는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위대한 ‘엄마’였노라고.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존재를 불러낸 자식들은 그런 기억들 속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좀 더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지난 시간들 앞에서 후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현실앞에서 엄마의 자식이었을 그들의 원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고통스런 시간들을 감내하면서 조용히 그 상처들을 치유해 나간다.

이런 시간들 조차도 그들을 위한 엄마의 배려였음을 나는 안다.

 

책을 읽는 순간에도,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도 가슴 한 켠이 왜 그리도 아파오는지...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바라본 빨간 표지의 ‘엄마’라는 두 글자에 급기야는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한때는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듯 그런 인생을 살지는 않겠다고 큰소리 쳤음에도 난 아직까지 그녀가 쳐 놓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이미 나를 지키기 위해 헤질대로 해져 너덜너덜 해지고 낡은 울타리일지언정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더 강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그늘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야 함을 알지만 누군가의 보호막이 되어 지켜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 두려움 앞에서 이제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치기 보다는 엄마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당신이 내게 있어 얼마나 위대하고 큰 존재인지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고맙다구요.

언제까지라도 내 엄마로 계셔 달라구요.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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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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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일본 미스터리물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한 겨울이 되면 달짝지근한 로맨스물을 읽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뜨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막 쪄낸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읽는 추리소설의 맛이 훨씬 짜릿할 수도 있으니까.

이 책의 저자 구라치 준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란다. 그런 만큼 아직 마니아는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 만난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다음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1996년에 발표되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라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들었다는데 이 점만 보자면 일본에서는 이미 검증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암튼, 재미는 둘째 치더라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설렁설렁 읽었다가는 그가 왜 범인인지를 추론하는 작가의 생각을 읽는 것 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작가는 살인 용의자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져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거나 포함시키는 치밀함을 보인다.

게다가 이 책이 좀 특별해 보였던 부분은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장마다 독자들에게 힌트 같지 않은(?) 힌트를 건넨다는 거다. 보통 이런 식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모인다.
나중에 나올 피해자와 범인 역시 이 가운데 있다.
관리동의 구조는 종반의 추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주의가 필요하다.“<p.75>

  "만찬이 시작되자 화제가 UFO까지 뻗어나가면서 이야기꽃이 핀다.
사건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루해하지 말 것.
중요한 복선 몇 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p.93>

 
오호~ 이 저자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독자들이 어느 부분에서 좀 지루해 할 것인가도 치밀하게 염두해 두고 썼다는 말인데... 사실 앞부분(등장인물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나오고, 산장에 모이기까지의 과정)이 필요이상으로 길다 싶어 좀 지루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저자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니 갑자기 잠이 확~ 깨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또 친절하게 이 부분에서 중요한 단서나 복선이 깔려있으니 한 번 찾아보라는 짧은 문구로 읽는 내내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니 이 저자 굉장히 영악하다고나 할까?^^. 허나 나처럼 맹한 독자라면 그가 아무리 힌트를 찾아보라고 해도 쉽사리 보이지를 않는다. (나...뭐가 문제인 거야?;;)

 

“간소한 저녁 식사 후
가즈오는 호시조노와 수사 회의를 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복선이 하나 깔려 있다.
놓치지 말도록“<p.265>

 
부동산 개발회사 사장은 자신이 구입한 산장에 프로모션을 열어 손님을 끌려하고 이 프로모션을 기획하기 위한 회의에 세간에 화제가 되는 인물들을 초대한다. 대리석 조각 같은 얼굴로 밤하늘의 별을 설명하며 뭇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명 남자 연예인과 그의 매니저, <해피 발렌타인 두근두근 ♡작전><바람이 불면 소녀의 마음은 연분홍빛>과 같은 좀 거시기한 소설을 써서 여학생과 여성독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여류작가와 그의 비서, 일본의 유명한 UFO연구가, 철없이 발랄하기만 한 2명의 여대생, 부동산 회사 사장과 그의 수행비서 이렇게 9명은 산장에 모여 특별한 날을 보내게 된다.

다만, 다음 날 발견될 시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로가 산장에서의 하룻밤에 들떠있다는 점이 좀 오싹할 뿐이다. 게다가 산사태가 나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는 신세가 된 이들. 그제서야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뭐, 많은 사람들이 반전이라고들 하지만 난 중반 이후부터 범인을 대충 예상했기에 범인이 드러났을 때 그다지 놀랍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책도 많이 읽다보면 감이 오는 건지 결국 내가 생각했던 그가 범인이었긴 한데 나는 저자처럼 상황과 논리에 딱딱 들어맞는 추론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용의선상에서 소거해 나가는 과정 없이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추었다는 게 좀 엉터리이긴 하다. 사실 이 책의 묘미는 왜 그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범행동기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의 상상력을 탓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뭔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좀 강하게 남아서다. 그렇지만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이야기임에도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책장을 덮을 때 쯤 추리소설을 읽었을 때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묘한 청량감을 안겨주었고 나도 모르게 재미있었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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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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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빼빼로 데이. 누군가 나에게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평소였으면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받아서는 주머니에 넣어버렸을 터인데 이날은 날이 날이니만큼 망설임 없이 금빛 포장지를 벗겨 입안에 쏙 넣어버렸다.

그리고는 오래된 습성대로 뭔가 입속에 남아있는 느낌이 싫어 바로 달짝지근한 초코덩어리를 힘껏 깨물어본다. 그 순간 알싸한 위스키의 맛이 순식간에 입안에 퍼져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제서야 입속에 들어간 이 까만 물체가 인지되기 시작하고 온몸의 감각이 마치 이 놈 하나에 연결된 듯한 순간이다.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순간에 당하고 마는 그런 위스키초콜릿.

위스키 초콜릿을 베어 물고는 어이없게도 여러 권의 책들이 떠오른다. 장르는 추리소설.

왜냐구? 바로 이런 반전의 맛이 있기 때문이지.

 

사실, 요즘 소설들은-특히 추리소설물- 글의 재미보다는 반전이라는 포인트에만 너무 매달리는 것 같아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가끔 스킬이 부족한 작가를 만날 경우 이야기의 초반부터 뭐가 반전일지, 어떤 식으로 줄거리가 전개될지 거의 99% 예상 가능하기에 책을 읽는 내내 몰입도 안 되고 실망감으로 가득 차 오히려 반전이 없는 것 보다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한 동안 누군가 스포일러가 어쩌구 반전이 저쩌구 해도 그냥 시큰둥했는데 얼마 전 읽은 이 책에 많은 독자들이 반전의 묘미를 언급했다.

호~ 그래?라는 약간의 기대감으로 읽어 나갔고 별 5개를 빵빵하게 줄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 뒷통수를 한 대 때리는 작가의 펀치는 제대로 맞았다고 인정한다.

 

이러하니 이 책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써 놓는 것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줄거리만 살짝 언급하자면, 경제적 이유로 스트립댄서가 된 나미코는 자신에게 첫 눈에 반한 재벌남 스기히코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른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행운의 여신이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이 재벌남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미코의 시아버지가 살해당하고 그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남편 스기히코가 지목된다.

즉, 아버지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한 결과 재산은 물론 경제적 지원마저 끊어버리겠다는 엄청난 폭언을 들은 아들이 순간 자제력을 잃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무시무시한 패륜범죄가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사형선고가 내려진 남편을 구하기 위해 위증마저도 서슴치 않았던 나미코는 새로운 변호사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여기까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팩트이지만 이걸 한꺼풀 벗겨보면 새로운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양파 껍질처럼.

 

쉽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각기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만약 어떤 물건이 A라고 정의될지언정 내 프레임에서는 B로 보인다면 그건 언제까지나 B가 되고 나에게는 B가 진실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프레임 밖에서도 여러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 것도 아니기에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맹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점이 이 책의 저자가 정교하게 놓은 트릭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밤을 켜는 아이>라는 그림책을 본 적이 있다. 유난히도 밤을 무서워하는 남자아이는 밤이 되어 불이 꺼지는 걸 너무도 두려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둠의 아이가 나타나 밤과 인사를 시켜준다. 그때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어둠의 아이는 “불을 끄면 밤이 켜진다”라는 말을 했고 난 이 부분에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밤이 켜진다는 이런 표현을 생각해 낸 것이 얼마나 근사하고 멋지던지...

 

이렇게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작가는 이 한권의 추리소설에 그런 마음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 짜내는 기묘한 트릭이 난무하지도 않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정교한 사건의 단서가 곳곳에 자리하지는 않았어도 이 책은 분명 추리소설의 묘미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작가가 친절히 안내해준 길을 의심 없이 따라갔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뜨악하게 되는 경험이 오랜만에 즐거웠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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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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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는 츠츠이 야스타카로 이름만 들으면 누구?할지 몰라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쓴 작가라고 하면 대다수가 아~하고 감탄사를 연발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 시달소를 통해 처음 이 작가를 만났고 SF 소재에 아련한 로맨스를 절묘하게 엮은 것은 물론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간다라는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한 번쯤 고뇌하게 만든 대단한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만난 그의 또 다른 책 [인구조절구역]을 읽고 저자의 엄청난 상상력에 기염을 토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책의 리뷰를 쓰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언급한 기억이 있는데 그 만큼 단 몇 권의 책만으로도 독자들을 사로잡을 정도의 필력과 상상력을 완벽하게 갖춘 작가였다.

이번에 읽은 책 역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없던 흥미마저 생길 정도였는데 이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재력가의 형사 캐릭터라든가 경찰들이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범죄들을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손쉽게 해결하는 줄거리가 과연 츠츠이 야스타카로군 하는 생각이 들었던 반면, 전작들만큼 큰 감동이나 여운을 준 건 아니었다. 

소재자체는 꽤나 신선하고 특이했지만 그 소재를 가지고 탄생된 이야기는 좀 오버스럽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기존의 추리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반전이나 엄청난 사건의 비밀 혹은 그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의 감탄스런 추리능력이 결여되어 보여서인지 그건 정확하게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저 이전에 읽었던 추리소설들과는 뭔가 명확하게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일이 즐거운 하나의 이유는 좀처럼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 대부호의 아들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나쁜 짓해서 모은 돈을 그렇게라도 아들이 써주는 것이 빚을 갚는 길이고 고맙다며 훌쩍거리는 형사의 아버지 기쿠에몬, 어떻게 돈으로 사건을 해결하냐는 것이냐 반대하면서도 결국 그건 자네의 뜻이니..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간베 다이스케의 돈지랄(?)을 에둘러 허락하는 경찰 간부.-을 꼽을 수 있다. 어딘가 비현실적이면서도 과장된 면이 보였음에도 그들의 행태가 이 책에서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이 묘한 감정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고 경쾌한 웃음마저 툭툭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기쿠에몬은 한층 더 흐느끼며 말했다.
“넌 정말 착한 아이야. 형사가 되어 정의를 위해 싸우다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구나.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마음껏 싸워. 내 전 재산을 써도 상관없다. 그게 내 죄를 갚는 일이야. 돈은 얼마든지 쓰렴.”
기쿠에몬은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네가 내 죄를 씻어주렴. 너는 내 더러운 돈을 전부 쓰게 하려고 하느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천사야.”
결국 대성통곡으로 끝났다. [본문 중]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인이 제시한 몸값을 가볍게 투자(?)하고, 밀실살인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회사를 하나 차리는 부호형사. 어디 이뿐인가?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 범죄자 소탕에 나선 건 또 어떻고. 이러하니 저자의 상상력에 한계가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참, 이 소설은 좀 각색되어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얻은 전력도 있다고 하니 책의 인기가 일본내에서도 꽤나 높았던 건 분명해 보인다. 어딘가 논리적으로 설명될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와 신선한 상상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들이라면 기꺼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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