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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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교수가 쓴 <탄소 사회의 종말>(부제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이하 <탄소 사회>) 제목을 보고 과거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 석탄이나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사회를 회고하면서 한 시대의 종말을 통해 '다음 세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전망하는 책으로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었다. 지은이는 인권학자였고 <탄소 사회>는 부제에 오히려 집중한 '사회와 인권의 관점에서 설명한 기후위기 입문서'다.(사실 그렇게 보자면 <탄소 사회의 종말>이란 제목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작명이 아닌가 싶다.)

우선 도입부 '들어가며'에서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을 따지는 대목부터 뼈 때리는 통찰을 제시한다.

"코로나19가 왜 발생했는가? 가장 단순하게는 박쥐, 천산갑 같은 야생동물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 사슬로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병원균이 소수의 생물종에만 집중되지 않는 '희석효과' 덕분에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해질수록 병원체의 확산효과가 커진다.

유엔환경계획 UNEP은 산업형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가축이 매개 역할을 하여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연구도 발표했다. 이런 공장식 축산의 배후에는 자본주의의 거대 농축산업이 있다.(···)

또 지구화로 이주, 여행, 운송이 급증해 바이러스의 이동이 용이해졌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수렴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 P 10

모든 이를 마스크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결국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으로 알았던 무지한 날 일깨우는 신선한 도입부다.

인권학자인 저자는 일반인들이 별로 시급하지 않게 생각하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집요한 질문 5가지를 던지며, 그걸로 책의 5부를 구성했다.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거다. 하지만 이게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냐고 한다면, 의견은 엇갈릴 수 있다. 중요도에서나 우선순위에 있어서나.

조효제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내내 상기시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뚜렷한 사시사철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봄 · 가을이 없어졌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여름은 또 왜 이렇게 습하고 비가 많이 오는지 마치 동남아 지방의 기후와 점점 닮아가는 듯하고, 지루한 여름이 끝났다 싶으면 가을 옷을 입을 새도 없이 바로 날씨는 쌀쌀해진다. 우리에게도 이상 기후변화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서 앞으로의 여름은 항상 비 피해, 폭우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이 됩니다." - 환경학자 김해동, P 35

타고 다니는 오래된 SUV가 저감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미루고 미루다 얼마 전 장치를 달았다. 10여 년 전 차를 살 때는 경유차가 좋다 뭐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차를 못 바꾸는 신세도 서러운데 노후 경유차라 시내에 진입하면 벌금을 물린데나 뭐라나. 아직도 쌩쌩하기만 한데. 이 사례 역시 매연 절감이라는 환경 이슈, 탄소 사회의 종말에 대한 가장 피부에 와닿는 사례가 아니겠는가.

화석 연료에 의존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끝없이 팽창했고, 그 결과가 한계에 다다른 작금의 기후위기를 유발했다. 주로 선진국이 위치한 북반구는 이미 성장의 과실을 따먹고 '불공평한 혜택'을 입었기에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데, 기후 문제가 발생하자 전 세계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며 아직 발전이 더딘 남반구에게도 공동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기까지 해서 세계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과거에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생태 비용을 외부화할 수 있었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이제 남반구까지 이런 양식을 본받았으므로 외부화할 수 있는 '외부'가 사라졌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 P 99~100

"인류의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인구를 가진 북반구 선진국들이 '대기의 식민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함부로 배출하면서 개도국들도 함께 사용해야 할 대기환경을 미리 선점해버린 것이다." - P 100

"더욱 충격적인 것은 196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개 회사가 전체 온실가스의 3분이 1 이상을 뿜어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 12개가 국영기업이고 나머지는 민간기업이다.(···)

누적분 상위 10위 회사는 사우디아람코, 셰브론, 가즈프롬, 엑손모빌, 이란국립석유, BP, 로열더치셸, 인도석탄, 페멕스, 베네수엘라석유 순이었다." - P 113 

이러한 '북반구 대 남반구'의 갈등은 개인의 차원으로 가면 피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 이주민, 주거 환경이 열악한 주민, 유색인종 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부자들은 위기가 닥쳐도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수 있지만 이런 약자들은 우선적으로 피해의 직격탄을 맞는다. 개발도산국에서는 기후위기가 문제가 되어 가장이 실직하게 되면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된다.

"예를 들어 2011년 열대성사이클론이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섬을 두 차례 연이어 강타하여 큰 피해를 초래했다. 그 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이클론 이전보다 무려 300퍼센트나 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이상기후 때문에 가뭄이 장기화되어 농사를 망쳤을 때 농부들이 심리적 대응책으로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흔히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 P 184

이게 세대 이슈로 넘어오면 이기적인 현재 세대가 근시안적인 행동으로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래세대의 '불확실한 효과'를 위해 오늘 나의 '확실한 이익'을 양보하기는 어렵다." - P 128 

결론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파렴치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실제로 분쟁과 갈등을 부추긴다는 사실 또한 이제는 상식이다.

'역사상 최초의 기후갈등'으로 소개되는 수단 다르푸르를 시작으로 시리아, 예멘 같은 곳에서 일어난 분쟁은 환경 요인과 정치 요인이 결합되어 무장 충돌로 이어져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전 세계에서 국제 평화 유지 인력이 제일 많이 파견되어 있는 10개 나라 중 8개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소말리아, 콩고,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다르푸르), 아베이(남수단)가 그런 나라들이다." - P 276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그 저변에 깔려 있다.

"원래 건조한 중동 지역에 기후변화로 강수량과 저수량이 더욱 줄어든 상태인 데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공평한 물 통제 정책까지 더해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으로 비교하면 팔레스타인은 80.9리터에 불과한 반면, 이스라엘은 245리터에 달하는 실정이다."  - P 265

이쯤 되면 환경과 기후 이슈는 무기나 다름없다.

또한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는 2007년 펴낸 「기후변화 결말의 시대」 보고서를 통해 예상되는 기후위기에 대한 세 가지 섬뜩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2040년까지 1.3도 상승할 경우, 질병 창궐, 경제 충격, 국가들 간의 자원 전쟁, 지정학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둘째, '극심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40년까지 2.6도 상승할 경우, 팬데믹 만연, 난민 급증, 광신적 종교 활동, 무장 충돌, 핵전쟁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셋째, '재앙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2100년까지 5~6도 상승할 경우, 인간 사회에 상상 불가능한 결과가 초래되고 기후 붕괴와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동시다발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한다." - P 266


"현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늦지만 마지막인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를 경제성장과 바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김아진(초등학생), P 299


책의 내용은 논문까지는 아니어도 보고서 수준으로 시종일관 빡빡하고, 동어반복인 느낌이 많아 다소 지루했고, 그래프나 도표, 통계 같은 시청각 자료도 전혀 없기에 읽는 맛은 덜했다. 기후위기를 논하면서 재미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건가?

<탄소 사회>를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문제는 심각한데,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해서 의식이 깨어 있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기후위기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또한 심각성은 느끼지만 일개 개인이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정말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의 영향력 있는 정상들과 석학들이 모여 해법을 제시하고 더 늦기 전에 이를 정확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문제 제기에만 그치지 않고 5부 '전환을 위한 여섯 가지 제언'을 통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도 제시해 놓았다.

꼭 기후위기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분이 아니라도, 여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많은 걸 얻어 갈 수 있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책이다.


"그러나 희망은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의 창조물임을 기억하자. 한편에 과학의 법칙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연대심, 정의감 그리고 창의적인 적응력이 있다. 양쪽 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나오며, P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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