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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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瞻星) 정호승은 시인이다.

시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이기에 그의 시집을 읽은 적은 없지만,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으로 읽었다. 일반 독자들은 이런 산문집으로 정호승을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시인이다. 80년대 중반 가수 이동원이 불러 큰 인기를 얻은 <이별노래>가 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곡이란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박종철 열사를 생각하며 썼으나 김광석의 목소리에 실린 <부치지 않은 편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도 사용되었고, 시인이 쓴 시 중에서 그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단 한 편의 시로 꼽는다는 <산산조각>은 추미애 장관이 최근 인용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에세이로는 7년 만에 낸다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시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산문으로도 큰 인기를 얻은 저자가 시와 산문이 한 몸인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인데 그래서 이 책은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인 동시에 '정호승의 산문이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저자가 고른 시 60편이 실려 있고, 거기에 대한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정호승은 이 책이 시 해설집이거나 평론집이 아니라 했으니 본인의 시에 대한 해설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한 편의 시가 쓰였는가' 뒷배경에 대해 주로 말한다. 대부분 창작의 기원을 밝히지만, 저자의 《한마디》 시리즈처럼 향기로운 그의 산문은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제격이다.

저자는 이제 70대에 접어들었다. 평균 수명은 연장되었으나, 아무래도 이젠 다가올 찬란한 미래보다는 지나간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는 나이이고, 이제는 '인생은 이런 거다' 후배들에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연령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산문집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상당하다. 추억 돋는 장소 섬진강변 정자 섬호정과 경주 불국사, 시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정호승 시의 모성적 공간 범어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의 원작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바친 찬사, 무덤을 찾을 정도인 윤동주에 대한 사랑,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에 대한 애정, 백두산 여행 등을 그의 시 60편과 함께 읽다 보면 거의 600쪽이 한달음이다.

또한 내용의 많은 부분은 직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할애된다. 어느덧 노년이 된 저자는 무뚝뚝하지만 늘 소나무 같은 사랑을 보여준 아버지와 궁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시를 습작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진혼곡을 바치며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부모님 외에 법정 스님,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황순원, 시인 천상병이 추억 속의 인물로 등장하며 이외에도 저자를 문인의 길로 이끌고 격려한 은사들, 땅 위의 직업이 얼마나 축복받은 지를 알려준 이름 없는 광부, 우리 사회의 사표(師表) 김수환 추기경이나 훈맹정음을 만든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박두성, 아들의 성화에 의해 기르게 되었지만 17년이나 함께 한 바둑이까지 많은 인연들이 정호승의 일생을 이룬다. 더불어 시인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 20여 장도 곁들여져 저자에겐 추억의 앨범을 넘기는 듯한 회고록의 성격도 띤다.

"인생에는 형식이 없다. 인생에 형식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쓴맛을 보지 않고는 결코 단맛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 P 187

"나도 누군가가 나를 때려주어야만 내 존재의 종소리를 낼 수 있다. 내 삶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종으로서 내 존재의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 P 261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이전 산문집 《한마디》 시리즈를 인상 깊게 읽은 기존 독자는 물론 새로운 세대의 누구라도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이끌 책이다. 아울러 웃다가 울다가 책을 읽는 동안 얻게 되는 인생의 지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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