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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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이 읽어냈다. 소설 치고는 읽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내 오랜 독서습관인 ‘정독‘ 탓이다. 가끔은 속독이나 건너뛰기가 필요한데 그게 잘 안된다. 너무 또박또박 읽으려 한다. 모르는 단어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반드시 사전을 찾거나 앞으로 되돌아가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니 다 합쳐 1000쪽이 넘는 소설을 읽는데 그만큼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한 지인은 하루키 글의 주인공들이 나약하고 무기력해서 그의 글을 읽고나면 우울증 걸릴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다. 주인공들의 삶을 따라살고픈 유혹을 종종 느낀다. 그들의 나약과 무기력 그리고 현실도피성을 느끼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멘시키가 주인공 ‘나‘의 의지를 부러워한 것처럼.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나‘는 우선 요리를 잘한다. 요리사 수준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을 쉽게 해낸다. 둘째, 음악에 조예가 깊다. 클래식과 특히 재즈에. 아마도 하루키의 취향이겠지만. 반면 일본소설임에도 일본음악은 전혀 나오질 않는다. 셋째, 주인공 곁에는 중요한 조력자들이 나온다. 상당한 매력을 지닌 그들은 소설에서 비중 있는 한켠을 차지한다. 일상에서 쉬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외에도 자질구레한 것들이 있지만 소개할 수준은 아니다.

<1Q84>이후 7년만의 장편소설이라는 이 책은 기존의 책들에 비해 공간이 상당히 좁다. 설정된 장소 대부분이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이다. 조금 넓혀도 이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들이다. 그래서일까? 하루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도회적 이미지가 약하다. 오래된 그림, 클래식 음악, LP판, 구식 자동차, 사당 등 상세히 묘사된 것들이 대체로 그렇다. 그 흔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도 안나온다. 물론 자세히 뜯어보면 생활방식은 도시적이지만 그 강도는 약해졌다.

위와 같은 특징들이 있는 반면 이 책은 강한 비판받기도 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무의미해 보이는 성관계 장면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자의 신체에 대한 묘사가 적잖이 등장한다. 특히 가슴에 대한.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평이다. 확실히 전작에 비해 성적 표현이 많아졌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상실의 시대>에서 했던 것보다는 많이 약해졌다. 확실히 하루키에게는 ‘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주제임 두드러진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이런 하루키의 글이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하지 않다는 점이다. 초판에 40만부를 찍었다는 그의 글이 현재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정작 20대들에게는 널리 읽히지 않는단다. 어느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루키는 아재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배경이나 디테일들이 서서히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1949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도 무시 못할 이유가 될는지...

그럼에도 나는 하루키가 좋다. 그의 상상력과 글쓰기 방식에 끌린다. 현재 한국에는 초판에 40만부를 찍는 작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출판사의 홍보나 농간에 넘어같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분명 하루키의 글에는 힘이 있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그래서 믿고 사 보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맹목적 매니아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판이 비판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저 그가 오래도록 글을 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좋아하던 작가의 죽음이나 절필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독자들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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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8-0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knulp 2017-08-01 13: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그저 순간적 제 생각을 옮긴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