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1disc)
윤종빈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성격상? 혹은 직업상? 나는 새것보다 옛것을 더 좋아한다. 반질반질하고 윤기 나는 신제품보다 먼지 묻고 때가 조금은 껴 있는 헌 문건에 눈길이 잘 간다. 타고난 성격인지 자라면서 자연스레 길러진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 삶이 과거형과 잘 어울린다는 것만 안다. 그래서 (학문이라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역사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내게 팍팍 잘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가고, 그런 이야기를 다룬 책이나 영화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범죄와의 전쟁’은 부산의 8~90년대를 다룬 조폭영화다. 노태우 前대통령에 의해 전격적으로 시행된 조폭과의 전쟁. 나는 이런 주제에도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ㅎㅎ 여기에 덧붙여 최익현(최민식 분)이 보여준 한국인 특유의 서열 나누기(무슨 파인지, 몇 대 손인지...)는 그런 분위기에 자주 접했던 내게 진한 웃음을 남겨주었다. 여기에 PK출신인 내게 익숙한 사투리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남자들의 의리는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본인에게 충분히 감정적 공감을 자아내게 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진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위와 같은 주제에다가 무료해질 때면 나오는 자극적 장면은 눈을 스크린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연출력이나 시나리오 탓을 하기도 하지만 나같은 아마추어 관객에게는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영화로 보여진다. 사실 스토리가 단순하기는 하다. 세관 공무원이 먼 친척 건달과 손잡고 불법적으로 이권을 침탈하고 사회 부조리를 양산하다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복잡한 스토리의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무난함 속에서도 분명 훌륭한 영화는 탄생한다.

평이한 영화가 살아나려면 내가 보기엔 캐릭터가 확실해야 한다. 바로 이 영화가 여기에 부합되지 않을까 싶다. 최익현, 최형배, 김판호, 검사, 여사장, 꼴통, 무인 등의 역할이 상당히 조화롭게 잘 버무러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쓰며 여기저기서 본 영화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각 캐릭터의 핵심 요소들이 포스터에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사 이치도 그렇지 않은가! 다 자신의 일만 제대로 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영화를 통해 평범의 이치 하나를 깨우친다.

배신이 난무하는 건달들의 세계! 여기에서도 의리 있는 한 꼬봉이 눈에 띈다. 위의 꼴통 박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조연인 그에게 눈길을 준 것은 아마 나뿐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최형배를 배신하는 최익현이 죽음의 위기에서 모면하자 한 마디 한다. “내가 이겼어” 먼 손자뻘 되는 건달 형배를 검찰에게 넘기는 함정을 판 그가 배신을 하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기 싫은 남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적어도 내겐 이 두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 싸우고 찌르는 씬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가 남지 않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2012년 2월 7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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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7-02-0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년 전에 그일을 아직도 하시는지 쌩뚱맞게 궁금해지네요

knulp 2017-02-07 22:24   좋아요 0 | URL
당연히 하고 있죠^^ 직업도 그런 일인 걸요. 저는 옛 것이 좋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