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는 다쿠미에게, 미즈가키는 가도와키에게, 아침드라마 같은 표현을 쓰자면 애증을 품고 있다. 고와 다쿠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이다. 다쿠미는 고가 포수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멋진 공을 던질 수 있고, 고는 다쿠미의 공을 받을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끼니까. 그런데 점점 구력이 세어지고, 점점 더 살아 움직이는 다쿠미의 공을 받으면서(요코테와의 첫 시합) 고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물론 쾌감도 함께였지만. 여전히 다쿠미의 공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여 나중에 다쿠미의 실력을 자신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고를 비집고 들어왔다.

애초에 다쿠미에게 세심한 배려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하여튼. 고는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쿠미에게 투사하기도 하고, 잠시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해지지만, 공을 주고 받는 그 순간의 느낌은 부정할 수 없기에 배터리의 형태는 유지된다. 요컨대 둘은 서로에게 너무 집중했다. , 서로라고 하기에, 다쿠미는 조금 다르지만. 다쿠미는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으면 받아주는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포수따위라고 말할 정도니까, 타인에게 대단한 관심이 있지는 않다(후에 다쿠미는 너는 건너편에 있는 누구라는 존재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듣는다). 고 역시도 타인 중 하나였다. 무시도 아니지만, 필요 이상의 관심도 없었던 것. , 도도한 공주님. 상처받는 것은 공주님에게 빠져 있는 족속들 뿐.

마침내 고는 무척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고등학교에서도 과연 야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싫다, .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다고 인정한다. 그런 태도야말로 다쿠미에게 받아들여진다. 그저 진심이면 충분하다.

가이온지가 고에게, 요시사다가 다쿠미에게, 고가 다쿠미에게

하라다는 네가 아니라도 던질 수 있을까?”
, 나가쿠라가 아니면 던질 수 없는 거야?”
내가 아니라도 던질 수 있어?”
  

그리고 다쿠미는, 던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던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최고의 투수가 되겠다고. 고는 다쿠미의 말에 힘입어, 배팅 연습 때 처음으로 다쿠미의 포수 자리를 요시사다에게 양보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걸음씩 나아간다. 언젠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오로지 같이 살아갈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563쪽에 나오는 어느 문단이 좋다! 
  

ps. 다쿠미도 슈고도 모두 천재지만, 다쿠미는 좀 더 날것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거부하고, 자신의 투구에 한치의 의심도 없으며,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가차없다. 비합리적인 모든 권위에 반항한다. 게다가, 다쿠미의 투구가 점점 완벽해질수록, 그가 맛보는 고독감도 깊어진다. 어느 수준 이상에 올라간 자가 느끼는 외로움이랄까, 그런 인상. 다쿠미의 할아버지는 그런 다쿠미를 보고 '너무 일찍 완성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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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감상 : 너희들이 중학생이라고?(...)   

투수인 하라다 다쿠미가 닛타로 이사 와서 만난 운명적인 포수 나가쿠라 고. 그리고 닛타히가시의 야구부에 들어가 꼬박 1년간에 겪은 일들이 한가득. 야구소년(!)들을 다룬 작품인데다, 그 중심에는 다쿠미와 고라는 배터리가 등장하니, <크게 휘두르며>도 생각나고, '팀'으로 움직이는 형태는 얼마전에 읽었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도 떠올리게 하는, 하여튼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야구 소설/성장 소설/청소년 소설. 상도 받았고, 재미도 있고, 전형적인 요소와 피할 수 없는 요소들을 다 집어 넣으면서도, 무리하지 않은 호흡으로 쓰여 있다. 따라서 읽는 쪽도 즐겁다. 대략 한 시간에 한 권씩 해서 읽어치웠다.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읽으면서 푸하하, 했던 것은, 우리말이나 옆나라 말이나, 주어와 목적어의 과감한 생략으로 인해서 굉장히 닭살 돋을 법한 대사들이 난무한다는 점이었다. 아주 서로에게 고백할 기세. 그 시작은 고가 처음 다쿠미를 만났을 때 "나, 네가 좋아" 라고 폭탄선언(!)을 한 때부터다. 속뜻은 당연하게도, 다쿠미가 던지는 공이 좋다는 것이었지만-. 게다가 다쿠미의 공을 잡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기쁨의 표현은 손발퇴갤할 지경이다(ㅋㅋ). 그리고 마지막 권에서, 다쿠미와 정면승부를 벌일 타자 가도와키 슈고의 독백. "너만을 기다려왔다" 는 대목. ... 알면서도 여전히 풋-하고 만다. 그치만 좋아합니다(...) 더불어 다쿠미를 부르는 '공주님'이라는 호칭도! 

결말을 읽고 나서는,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낼 수 있는 최상의 결말. 어느 쪽이든, 또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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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 고양이 2012-01-1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배터리 좋아하신다면 배터리 팬카페에 가입하실래요?
팬픽이나 팬아트를 다루고 있는데, 만들어진질 어제오늘이라서,,,
별 건 없지만 방문이라고 부탁드립니다^^;;
http://cafe.naver.com/battery1210
 

물론 나는 쓸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음, 좋게 생각하면 나의 놀라운 무의식이 비슷한 종류의 책만을 골라 읽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그 결과물을 비교해 볼 때 아무래도 최근 내가 보고 싶은 내용만을 쏙쏙 발췌해버리는 느낌이 든다. 어떤 소설에서든 휴머니즘 어쩌고를 찾아낸다든가(...) 관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좋지만, 참고해 두시라고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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