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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평점 :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원제인 <Poor Economics>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뜻으로, 요즘 유행하는 단정적인 문장으로 새로 단 번역본의 책 제목이 상당히 논쟁적이죠?
사실 어지간히 박애주의적이고 경제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더라도, 과연 가난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죠.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실제 사회에서 접하게 되는 현실의 모습은 앞의 명제와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끼셨을 확률이 더 높을 테고, 대부분은 이런 명제에 ‘참’이 아닌 ‘거짓’이라는 판정 쪽으로 많이 기울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나 아주 오래 전의 농경 사회가 아니라, 현재와 같이 자본의 획득과 축적이 개인의 사회적 신분과 가치를 대변하는 고도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에서는 가난하다는 것은 합리적인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고전적인 노동 가치설이 통용되던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난은 근면하지 않기 떄문에 주어진 결과물이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절대로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자본주의는 과거와 같은 노동가치설이 아니라 잉여가치설 또는 자본가치설에 의해 자본이 스스로 가치를 증식해 나가는 구조로 진화하였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근면한 노동만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축적하기 힘들고, 부의 증식의 기본 형태가 투자나 재테크같은 합리적인 증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결코 가난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사실들도 가난과 합리적이라는 명제는 동의어보다는 반대말에 더 가까운 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나 돈에 대한 관념이나 실태는 합리적인 축적이나 소비와는 거리가 먼, 충동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 것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MIT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자 MIT의 빈곤퇴치 연구소를 설립해 운용하고 있는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두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주장은 무엇일까요?
저자들은 제3세계의 빈민국가와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한 엄밀한 리서치와 비교 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차근차근 논리를 펼쳐나갑니다.
제3세계나 빈민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은 커녕 기본적인 체력을 유지하기에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열량만을 섭취하고 있으며, 그러한 영양의 불균형과 질병이 노동에 필요한 의욕과 체력을 결정적으로 꺾는다고 말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에 걸쳐 극심하게 양극화된 영양 과다와 빈곤의 불균형을 균형으로 맞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원조와 같은 거시적인 방법 이외에 결핍된 필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한 영양제 공급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론도 효과적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의식주에 필요한 절대적인 수준이 충족된 이후의 잉여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되지 않는 잉여 자본을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이나 허례허식에 탕진함으로써 예금이나 자산을 축적하지 못하고, 그 결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자녀를 낳는 다산의 문제도 빈곤의 악순환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교육의 부재를 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지닌 적은 잉여 자본이나 자산을 낭비성 지출로부터 막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선택인 ‘넛지’에 의한 선택이 필요하고, 그러한 선택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근본적으로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험이나 소액금융, 자본의 운용 등의 방법론이나 정부의 정책적인 방향 제시도 역시 언급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5~60년 전에는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가난했으며, 현재도 이들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자원이 훨씬 부족한 대한민국이 심지어는 유래 드문 내란이라는 폐허를 딛고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굴지의 경제 대국으로 우쭉 설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교육 덕분이었음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 특유의 열정적인 교육열의 결과가 합리적인 사고와 노력, 그리고 자본과 기술의 축적의 근본적인 토대가 되었기에 현재와 같은 기적적인 경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의 논지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야 말로 지구촌의 극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가장 명백하고 확실한 본보기이고, 그 비결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으니까요. 이제는 우리가 그 경험을 아직 가난한 국가들에게 나누어줄 때입니다. 이런 책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최선진국인 미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바로 아직 우리가 나아갈 길이 멀다는 증거라고나 할까요?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