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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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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연말에 발생했던 금융 대공황20세기 초에 세계 경제를 침몰시켰던 다른 미국발 대공황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대공황들이 상품의 과잉 생산과 시장의 과포화로 인한 실물 경제상의 수요-공급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것과는 달리 2009년의 금융대공황은 직접적인 발단은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모기지론의 부실화였지만, 본격적인 전개는 부실 모기지 채권이 파생 상품화되고, 그것이 다시 금융사들의 장부 속에 은닉됨으로써 발생한 실물이 아닌 금융 데이터상의 붕괴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사들의 장부 상의 천문학적인 부실 채권을 구제하기 위해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가 역시 천문학적인 달러를 신규로 찍어내 구제 금융으로 지원했고, 이렇게 뿌려진 어마어마한 달러들이 현재 전세계에 심각한 하이퍼 인플레이션 위협을 안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전세계의 경제계는 실물 화폐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선두에 올라서게끔 만들었던 금본위 제도를 미국 스스로 파기하고 아무런 제약이나 규제없이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내 뿌림으로써, 실물 화폐의 가치와 그 본질에 대한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되었고, 거기에 따라 2010년 이후 화폐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004년에 발간되었던 제프리 잉햄<돈의 본성>이 뒤늦게 번역되어 출간된 것도 화폐에 관한 이러한 일련의 관심과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화폐나 금융에 대한 책들과는 기본적인 시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은 사회주의적인 시각이 담긴 정치경제학과 사회학의 관점에서 화폐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잉햄은 화폐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인 가치의 저장 수단, 일방적 지불 수단, 가치 척도라는 점이 현재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상당 부분 맞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단적인 예로 화폐의 일반적인 인식인 가치의 교환 수단, , 개개인이 물건을 사고팔 때 지불되는 실물 화폐, 즉 현금(Cash)의 총량이 실제로 현재 전세계에서 운용되는 화폐 총량의 1%가 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99%에 달하는 대부분의 화폐는 온라인을 통한 전자 화폐의 성격으로 지불되고 교환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는 가치 중립적이라는 고전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화폐의 주조 역사 자체가 정치적인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만큼 화폐는 기간 구조적 권력이며 전제적 권력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화폐가 생산되는 현실의 과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권력의 원천이 된다는 자세한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2009년 발생한 금융대공황은 본질적으로 화폐의 경제학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쪽에서는 이러한 화폐의 사회적 의미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저자로 하여금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화폐를 연구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는 주류 경제학에서 화폐 이론이 발전해 온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화폐 수량설을 근본적으로 논박하고(1), 대안적으로 제시되었던 화폐에 관한 여러 흐름들을 개괄해 봄으로써 화폐가 지닌 사회학적 성격을 드러내며(2), 화폐에 대한 경제학적 개념을 독일 역사학파의 분석을 토대로 새롭게 확장시키며(3), 그 결과로 화폐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으로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각도에서 분석합니다(4). 2부에서 저자는 화폐의 역사적 기원과 자본주의적 화폐의 발전 과정, 자본주의적 신용 화폐의 생산 구조를 탐구하고, 화폐 체계의 무질서가 야기하는 인플레이션과 통화 해체의 문제들을 짚어본 후, 정보통신 시대와 유로화 시대의 화폐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을 검증해 봅니다.

저자는 그동안 정치적 성격을 띠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쳐 온 화폐에 대해 사회학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화폐 제도의 발전과 생산 과정 속에 숨겨져 있는 정치적 함의와 화폐 제도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불균형의 위험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데미지를 주는 지를 검증하고, IT 시대의 새로운 화폐가 어떻게 발생하고 성장해 나가는 지를 통해 미래에 화폐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예측해 나갑니다.

초보자들에게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경제학 교과서같은 서술이고, 정치경제학에 익숙치 않은 분이라면 저자의 시각 자체가 낯설 수도 있지만, 화폐에 대한 주류 경제학(프리드먼의 시카고 학파가 퍼트린)의 잘못되고 무책임한 시각을 비판하고 교정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책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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