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세계사 - 미래 역사를 결정할 19가지 어젠다 10년 후 세계사 1
구정은 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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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염병, 테러, 금융 위기 등은 비단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IS에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며 최근 파리에서 일어난 IS 테러를 보면서 친서방 정책의 우리 나라도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올해 초에는 중동 국가에서 발생한 메르스가 우리 나라에 상륙하여 한 때 국가를 일대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미국 등 서방 나라의 금융 위기는 우리를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중국의 거대한 소비 시장은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게 만든다.  

 

이 책은 우리의 이야기와 빠르게 겹쳐지고 있는 현재 세계사를 얘기하면서, 10년 후에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개선방안은 있는지 얘기하고자 한다.   이 책의 두 저자는 현재 경향 신문 국제부 기자들이다.  냉철한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재 세계 상황은 세계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의 1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에서는 일자리, 빈부 격차, 도시 집중화 현상, 지구 온난화와 기후 재앙, 고령화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분야를 전망한다.

"제로아워" 계약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최저 근무시간 기준 0시간.   고용주가 호출할 때 원하는 시간 동안만 일을 해주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이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상당한 노동인구가 있다고 한다.   계약직, 비정규직, 파견 노동과 간접고용노동에서 이젠 더 악조건의 5분 대기조 "제로아워" 계약직..

 

세계적 브랜드 업체들이 내놓는 패스트패션이 대세이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를 애용하면서도 왜 가격은 싼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업체들은 싼 납품가를 내놓는 하청업체에 수주를 주고, 하청업체는 납품가를 낮추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쥐어짤 수 밖에 없다.   값싼 물건이 사실은 동남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저임금의 대가였던 것이다. 

 

2부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나아갈까"에서는 미국, 중국, 아프리카, 유럽 등 대륙별 국제 정세의 변화를 최대한 쉽게 풀어 조망한다.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은 분쟁의 덫, 천연자원의 덫,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부패한 통치의 덫에 걸려 헤어나오기 힘들기만 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할 때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은 무시한 채 열강등 멋대로 국경을 나누어 분쟁의 씨앗을 남겼고, 해안지대가 없는 내륙국은 국가 경제까지 막혀버린다.  천연자원은 부정축재의 수단이 되었고, 통치자는 자신의 부만 축적하기 바쁘다.   원조국들도 자신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원조할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다.  중국의 원조도 주로 자원을 가진 나라에 맞춰진 것으로, 옛 식민제국의 수탈의 행보와 닮아 있다. 

 

유로화 도입으로 하나가 될 것만 같았던 유럽 연합 EU..  위기 앞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EU의 약한 고리 PIGS(포트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자국의 이득을 챙기기 급급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국민의 '반이주민 정서'로 EU 탈퇴 의사도 비추고 있다.   한 지붕 열아홉 가족이 사용하는 유로화는 경제적인 목적 보다는 철저히 정치적인 산물이었기에 경제적인 위기 앞에서 구조적인 모순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막강한 파워의 중국상시적인 저성장의 시대, 이른바 '뉴노멀' 에 접어들었다.   중국판 뉴노멀 '신창타이'라고 불린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여전히 성장률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면을 제외한 다른 면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강대국이다.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에 세계가 함께 신음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리더십을 담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세계가 중국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도 중국은 그 대답을 알지 못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

 

미국 남미부터, 중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내정에 교묘히 개입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2003년 부시 행정부의 무분별한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경제적 쇠퇴를 가져왔다.   셰일가스 혁명과 안정된 고용시장으로 미국은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전쟁의 상당 부분을 민영화하여, 국방 업무가 현대판 용병 회사 '민간군사회사'로 이전했다.  자국 군대의 인명 피해를 꺼리고 있어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데 전쟁과 폭력을 사고파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3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는 존엄사, 기계와의 전쟁, 과학윤리, 과거사 문제 등 앞으로 계속 논란이 될 미래의 화두를 고민해 본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 난민과 노동자들.  터키 해안에 떠밀려온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소녀의 비극을 발단으로 유럽 국가에서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파리 테러범 중에서 난민으로 위장하여 잡입한 것이 밝혀지면서 유럽 각국은 난민 수용에 거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충분히 이해가는 상황이지만 테러로 인해 난민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원 부국 카타르에는 동남아 빈국,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이주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와 있어, 동남아 자국엔 막상 일할 젊은이가 부족한 실정이다.   첨단 정보 시대에 맞춰 세계적으로 움직으로 엘리트층와 달리 안착하지 못하고 지구를 떠도는 난민과 노동자들.. 

 

과거를 통해 역사를 성찰한 독일과, 과거 청산 작업으로 국내의 통합을 이룬 만델라 정부의 남아공과, 반성과 사과가 충분하지 않은 일본의 예로 역사를 얘기한다.  일본은 중국에 맞서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의 원조로 평화법까지 개정하고 있지 않은가..

 

"성공의 역사든 실패의 역사든, 공정한 것이든 부정한 것이든 과거를 아는 것은 콤플렉스나 양심의 가책 없이 현재를 대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훌리오 발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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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개정판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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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북클럽에서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함께 읽었다.  이 책에 수록된 역자의 말에서 에밀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를 짧게 언급하고 있었다.  "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사건 때 에밀 졸라가 신문 '로로르'에 발표한 글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읽은 바가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으므로 다시 유시민 책을 펼쳤고 내친김에 완독하였다. 

 

이 책은 유시민 작가가 쓴 첫 단행본이다.  작가는 최근 발행한 <글쓰기 특강>에서 요약, 발췌로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조언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의 인세로 독일 유학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의 문장이 너무 장황한 서술이라 고치고 싶은 부분이 많다고 하였지만, 다시 읽어봐도 독자가 세계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씌여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는 드레퓌스 사건 이외에도 제정 러시아 시대의 피의 일요일, 사라예보 사건으로 발발한 세계 1차 대전, 러시아의 10월 혁명, 대공황과 이에 따른 세계의 움직임, 중국의 대장정, 아돌프 히틀러와 나찌당의 만행,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립, 베트남 전쟁, 말콤X로 본 흑백 갈등, 일본의 역사왜곡, 소련해체와 독일 통일, 핵과 인간, 그리고 우리의 미완의 4.19혁명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친 굵직한 세계적인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어 세계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가 있다.   세계 1차, 2차 대전의 발발 원인과 진행, 그리고 종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사회주의 체제가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에서 혁명을 완수하였는지, 그간 단편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단편들이 맞추어져 큰 그림이 그려지는 듯 하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가 갑자기 무너져 소련이 해체되고 독일이 통일된 것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이스라엘 정부의 갈등부터 평화 협정을 맺는 내용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드레퓌스는 프랑스의 유태인으로 평범한 욱군 장교였다.  1894년 9월 어느날 드레퓌스는 독일의 스파이로 몰려 재판정에서 종신형에 처해진다.  글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반역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정보국 피카르 중령이 우연히 진짜 스파이를 알아냈지만 윗선에서는 그대로 묻어 버리려고 했다.   드레퓌스 재판을 다시 하자는 재심 요구파는 양심 곧은 지식인과 법률인, 공화주의자와 진보적인 정치가들, 몇 신문사들이었고, 재심 반대파는 왕정복고주의자와 옛 귀족들, 드레퓌스를 감옥으로 보낸 군부, 유태인 박해에 앞장서는 가톨릭 사제, 보수파들, 군국주의자들이었다. 

 

재심요구파의 힘이 초라한 가운데,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가 신문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졸라는 드레퓌스를 죄인으로 만들어 잘못을 감추려 한 군부와, 엉터리 증언들, 군사재판을 무섭게 꾸짖었다.   한사람의 글이 이처럼 막강한 힘을 떨친 일은 드물 정도로 에밀 졸라의 글은 큰 힘을 떨쳤고, 에밀 졸라는 주위의 권유로 영국으로 망명할 수 밖에 없었다. 

 

에밀 졸라 덕분에 재심이 열렸지만 정상을 참작하여 종신형 대신 십 년형에 처해지고, 에밀 졸라는 다시 펜을 들었고 양심가들의 거센 항의도 이어졌다.  정부와 군부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드레퓌스에게 무죄가 아닌 특별 사면을 내렸다.   드레퓌스는 5년만에 석방되었고, 끝내 1904년 재심을 청구하여 무죄를 선고받게 된다. 

 

"어떤 학자들은 드레퓌스사건이 20세기를 열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관과 철학이 충돌한 데서 빚어진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는 19세기 막바지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은 낡은 세계관이요, 다른 하나는 20세기에 문명사회를 이끈 철학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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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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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시인 '네루다'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이 소설은 흥미롭다.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위대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하면서 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썼다.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이번에 북클럽에서 함께 읽기로 하여 소장하기로 했다.  이 소설은 사실적 배경에 허구의 인물을 가미한 익살과 해학이 넘쳐나는 재미난 소설이다.  역시 다시 읽어보아도 이 소설은 칠레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메타포가 인상적이다. 

 

민중 시인 네루다는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었으나 단일 후보로 아옌데를 추대하고 사퇴한다.  민중의 승리로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에 상류층과 군부는 반발하고 미국은 칠레가 좌경화될 것을 우려한다는 명분으로 1973년 피노체가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아옌데의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들로 칠레의 자립성이 높아지면 미국의 남미에 대한 개입이 좁아질 것을 우려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합법적으로 선 사회주의 정부를 군부가 무력으로 전복시킨 사건이었다.   이런 일련의 정치적 상황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네루다만을 위한 우편 배달부 마리오..   그는 태생은 게으르지만 네루다에게 매일 엄청난 양의 편지를 배달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위대한 시인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서 그의 시집을 들고 다니다 어느새 다 읽어버리고 마는 익살적인 인물이다.  마리오는 시인에게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메타포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는 시인의 운율에 빠져서 자신이 마치 배가 되어 그 운율 속에서 넘실거리는 배가 되는 것을 느낀다.  마리오는 결정적으로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시인으로서의 감성이 충만해진다.   그래서 시 낭송으로 대신한 사랑 고백을 매혹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다.  네루다가 자신의 시를 도용했다고 말하자 마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베아트리체의 엄마인, 과부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민초이지만 일상의 삶 그 자체가 메타포이다.  과부는 변변한 직업 없는 마리오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대시인과 어울리는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하는데, 네루다는 과부의 메타포 공격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네루다 씨. 메타포로 제 딸을 용광로보다 더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니까요!"

"지금은 겨울입니다. 부인."

"불쌍한 베아트리스는 그 우체부 때문에 완전히 맛이 가고 있단 말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알량한 무좀균뿐인 작자 때문에 말입니다.  발은 병균으로 득실거리는 주제에 주둥아리만 살아서 나불대죠.  주둥아리도 그냥 주둥아리가 아니라 칡넝쿨처럼 얽혀있죠.  가장 심각한 것은 뻔뻔스럽게도 제 딸을 꼬드기는 데 쓰는 메타포들이 당신 책에서 베낀 거리는 사실입니다."

"그럴 리가요!"

 

마리오는  온 세상이 메타포라는 것을 시인을 통해 알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따분한 일상 평범한 삶도 바라보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일 것이다.  마리오도 시를 습작하고 공모 까지 하게 된다는..

 

마리오가 네루다와 만나고 사랑에 성공하는 전반부는 유쾌하다.  대통령 선거와 쿠테타로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두 사람의 우정에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상황에 휩쓸리는 일련의 사건들로 분위기는 침울하다.  저자도 말하지만 유쾌하게 시작해서 침울하게 끝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를 오랜만에 봐야 겠다.  애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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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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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은 대부분 공포소설이다.   공포 소설 등 쟝르 소설은 문학적이기 보다는 상업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공포 영화는 즐겨 보는 편인데도 공포 소설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스티븐 킹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많은 그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된 것을 보면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스티븐 킹은 자신이 공포 소설만 쓰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사계를 썼다.  사계 중 <스탠바이미>를 읽어보고 스토리텔러로서의 그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유혹하는 글쓰기>가 비소설로서는 유일한 책이 아닐까.  이 책에는 자신이 어린시절 부터 작가가 되어 성공하기 까지의 자전적 얘기들과 자신의 글쓰는 방식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소설은 3개월이면 초고를 완성하였으나, <유혹하는 글쓰기>는 18개월을 넘긴 뒤에도 절반밖에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교통 사고를 크게 당해 몇번의 큰 수술과 재활 운동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고 당한 후 5주만에 다시 펜을 들었을 땐 앉아 있기가 고통스럽고 처음 글을 써보는 것 같이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하니..  이 책은 작가에겐 생사의 갈림길에서 전환기를 마련해 준 책이 되었을 것 같다. 

 

스티븐 킹의 자전적 얘기들은 그가 천생 작가로 태어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해준다.  그는 초등 1학년시절을 학교도 못가고 아파서 침대에서 보냈다는데 그 때 만화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에 빠져들었다.  창조는 모방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듯이, 만화책을 글로 베껴쓰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학창 시절엔 영화를 책으로 펴내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다.  

 

대학생 때 만난 아내와 결혼하여 변변한 직업 없이 세탁소에서 일하고 그후 교직을 얻어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밤에는 글쓰기에 매진했다.   아내가 글쓰기에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격려해 주었다니 아내의 역할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어쩌다 단편이 몇십 달러에 팔리던 때, 첫장편 <캐리>가 드디어 2500달러에 선인세로 출간되었다.  이 역시 쓰다 버린 원고를 아내가 주어다가 용기와 도움을 주어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40만 달러에 넘어갔는데, 그 절반인 20만 달러를 받기에 이른다.  아..  그 장면 묘사가 어찌나 절절한지 내 가슴도 벅차올랐다.  그가 아내에게 얘기해주고 아내가 주저앉아 우는 장면에선 나도 울어버렸다.

 

자전적 얘기 이후 글쓰기에 대한 창작론이 이어진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 낱말, 문법, 문장, 문단 등을 고루 갖춰 놓으라는 일명 "연장통" 이론을 펼친다.   자주 쓰는 연장들을 맨위 연장통에 놓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단다.  그는 플롯보다 직관에 많이 의존하는데, 그의 작품들은 대개 줄거리보다는 상황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작가 김연수도 <소설가의 일>에서 자신이 한 가수를 몇년간 좋아하게 될지 처음엔 알 수 없듯이 플롯도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스티븐 킹은 전문화된 지식이나 배경을 사용하기 위한 자료 조사는 지양한다.   소설은 배경 보다는 등장 인물이나 스토리에 더 우선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지 말고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보면 스토리 그 자체에 빠져 읽을 수 있는 것이겠지. 

 

스티븐 킹은 자신의 초고를 서랍속에서 6주간 숙성시켰다가 다시 읽어보라고 한다.  다시 읽어보면 명백한 허점들이 보이고 10퍼센트는 쳐내고 고칠 것이 있다고.   그의 이런 조언도 많이 읽고 많이 써보지 않는다면 가능할까.  스티븐 킹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을 슬쩍 피해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지만 글쓰기의 지름길은 역시 없는 것 같다.  많이 읽고 쓰는 것만이 방법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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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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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노작가에게 강연을 듣는 듯..  오에 겐자부로의 강연 내용을 경어체 그대로 엮은 책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청중의 입장에서 자신의 50년 독서와 집필의 인생을 진솔하게 강연한 것이라 그런지 편안하게 노작가의 얘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작가에게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미쳤던 고전들, 그 고전들부터 뻗어나간 책들을 읽고, 그  독서를 단서로 문학을 이루어나가는 인생.   50년 독서 인생이라지만, 노작가는 9살 어린 소년시절부터 책과의 인연을 얘기하고 있으니 70년 독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어린 소년 시절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반복해서 읽었다.   청소년 시절에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고 인간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결정적으로  인생의 나아갈 길을 정한다.   이 책의 저자 와타나베 가즈오가 프랑스 문학자고 도쿄대 프랑스 문학과 교수여서 불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 까지 한 것이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포, 랭보, 엘리엇의 시를 읽으며 그 문체에 감탄하며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길 원했다.   번역본과 원문을 대조하면서 읽는 습관으로 원문에서 느낄 수 있는 시적 감성을 얻을 수 있었고, 자신만의 문체로 첫 소설 <기묘한 일>을 쓸 수 있었다.  

 

작가의 반평생일만큼 오랜 시간 소설가로서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시인겸 화가 윌러엄 블레이크..  작가는 큰아이 히카리가 장애를 안고 태어나 힘들었던 30대 시절 블레이크의 시로부터 위안을 받고 이에 자극을 받아 소설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을 쓰게 된다.   작가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아이의 문제에 촛점을 둔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었다.

 

작가는 3년에 한 번씩 대상을 바꿔 한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는 독서법을 추천한다.  작가 자신도 48살부터 50살 때까지 단테의 <신곡>만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쓴 책이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작가와 작중인물은 오로지<신곡>을 읽는 것으로 성립된 소설이다.   

 

작가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오래 친분을 유지하면서 문학적으로도큰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사이드의 책을 읽으며 사이드의 정신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지는 느낄 수 있었고,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정신이 되어 사이드와 함께 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책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책만 쓰는 인생, 책만 읽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책을 읽음으로써 글쓴이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발견하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에 맞닥뜨려서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게 되는 진정한 독서에 충실했던 작가 오에 겐자부로..   이러한 독서로 그 자신만의 책의 숲을 넓혀 가고 그 숲 속에서 자신의 책을 읽어나가고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법을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책을 처음 읽는 것은 미로를 헤매는 듯 하지만 재독은 방향성을 갖춘 탐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재독을 해야 탐구가 가능하므로 저자의 정신과 만나는 것도 가능하겠지.  거기에 삼독을 해야 진정한 나를 만난다고 하지 않는가. 

 

읽고 싶은 독서 목록은 많고 그 목록을 따라가기엔 시간 부족 집중력 부족이기에, 재독 삼독은 먼 길만 같다.   재독한 책은 어쩌다 간혹 있어도 삼독까지 한 책은 없으니 말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책이나 저자를 만나려면 작가와 같이 한 저자의 책을 꾸준히 읽거나 여러번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확장식 독서 욕구만을 갖고 있었다면 언젠가 작가가 말하는 독서법에 맘이 갈 때도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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