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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노작가에게 강연을 듣는 듯.. 오에 겐자부로의 강연 내용을 경어체 그대로 엮은 책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청중의 입장에서 자신의 50년 독서와 집필의 인생을 진솔하게 강연한 것이라 그런지 편안하게 노작가의 얘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작가에게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미쳤던 고전들, 그 고전들부터 뻗어나간 책들을 읽고, 그 독서를 단서로 문학을 이루어나가는 인생. 50년 독서 인생이라지만, 노작가는 9살 어린 소년시절부터 책과의 인연을 얘기하고 있으니 70년 독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어린 소년 시절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반복해서 읽었다. 청소년 시절에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고 인간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결정적으로 인생의 나아갈 길을 정한다. 이 책의 저자 와타나베 가즈오가 프랑스 문학자고 도쿄대 프랑스 문학과 교수여서 불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 까지 한 것이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포, 랭보, 엘리엇의 시를 읽으며 그 문체에 감탄하며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길 원했다. 번역본과 원문을 대조하면서 읽는 습관으로 원문에서 느낄 수 있는 시적 감성을 얻을 수 있었고, 자신만의 문체로 첫 소설 <기묘한 일>을 쓸 수 있었다.
작가의 반평생일만큼 오랜 시간 소설가로서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시인겸 화가 윌러엄 블레이크.. 작가는 큰아이 히카리가 장애를 안고 태어나 힘들었던 30대 시절 블레이크의 시로부터 위안을 받고 이에 자극을 받아 소설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을 쓰게 된다. 작가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아이의 문제에 촛점을 둔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었다.
작가는 3년에 한 번씩 대상을 바꿔 한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는 독서법을 추천한다. 작가 자신도 48살부터 50살 때까지 단테의 <신곡>만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쓴 책이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작가와 작중인물은 오로지<신곡>을 읽는 것으로 성립된 소설이다.
작가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오래 친분을 유지하면서 문학적으로도큰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사이드의 책을 읽으며 사이드의 정신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지는 느낄 수 있었고,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정신이 되어 사이드와 함께 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책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책만 쓰는 인생, 책만 읽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책을 읽음으로써 글쓴이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발견하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에 맞닥뜨려서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게 되는 진정한 독서에 충실했던 작가 오에 겐자부로.. 이러한 독서로 그 자신만의 책의 숲을 넓혀 가고 그 숲 속에서 자신의 책을 읽어나가고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법을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책을 처음 읽는 것은 미로를 헤매는 듯 하지만 재독은 방향성을 갖춘 탐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재독을 해야 탐구가 가능하므로 저자의 정신과 만나는 것도 가능하겠지. 거기에 삼독을 해야 진정한 나를 만난다고 하지 않는가.
읽고 싶은 독서 목록은 많고 그 목록을 따라가기엔 시간 부족 집중력 부족이기에, 재독 삼독은 먼 길만 같다. 재독한 책은 어쩌다 간혹 있어도 삼독까지 한 책은 없으니 말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책이나 저자를 만나려면 작가와 같이 한 저자의 책을 꾸준히 읽거나 여러번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확장식 독서 욕구만을 갖고 있었다면 언젠가 작가가 말하는 독서법에 맘이 갈 때도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