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그건 비단 나의 지난 연애에서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패착이기도 했다. 당신과 내가 만난 건 기적이에요. 거기에다 당신과 내가 게이일 확률을 곱해버리면 그 기적은 무한대가 되어버렸다. 그 환상이 사그라들 때쯤 혹은 그 환상이 일방적으로 폐기되었을 때 패착은 집착으로 변해버린다. 끝은 천차만별로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끔찍했다. 이번에는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확실히 좀 다르지 않은가, 아니다 우린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다른 거 하나 없이 우리 뻔하게남들처럼 오래 하자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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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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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건 오직 한 사람이 날 거부한 것이었지만 나는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건 잘 구별이 되지 않을까. 그 마음이 나를 괴물로 만든다는 것을알면서도 왜 애써 구별하지 않았을까. 비슷하게 생긴 사람 둘이붙어먹는 것도 참 못 볼 꼴이죠, 라고도 언젠가 내게 말했을 때, 그건 나를 떼어놓기 위해 돌려 했던 말이라고 생각했지 자기부정이었다는 생각은 왜 못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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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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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나날들에 대해 기억해야 할 순간이 왔다.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날들은 쓰지 않아도 되는 날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잠시 후 쓰지 않으면 살지 않았다, 고 말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건 비약이었다. 쓰지 않으면 살지 않았다고 말해버리는 건 어쩐지 내 삶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를 절하하는 건 얼마든 좋았지만, 내 삶을 할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살지 않았 다고 한 번쯤 우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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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범우문고 62
F.사강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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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폴르에게 묻는다. 왜? 어째서? 아무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비겁하다고 거짓말이라고 정말 그래도 괜찮냐고 수백번쯤 따져 물을 것이다. 절대 괜찮지 않다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라고 어깨를 잡고 흔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폴르라면 폴르가 내 친구라면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결말이다.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런 선택을 하고야 마는 이유,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를 잘 안다. 그래도 늘 그렇듯 말리고 싶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삶이 이정도에서 멈출거라고 대충 만족한척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선택이 포기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냐고 다시 생각하라고 계속 반복하며 저 지치는 삶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한동안 말을 멈추지 않을테고, 열심히 설득하겠지.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고 부디 내 말들이 악담으로 그치기를 바라며 입을 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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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폴르와 내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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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가들
정영수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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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그런 생각들. 모두 하나의 주인공인 듯도 하다. 같은 주인공들이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서 이런저런그런 이야기들을 말한다. 그 이야기들은 한결같아서 새롭다. 색다를 것이 없어서 새롭고 내게도 있었던 일이라 새롭다. 그 이야기들이 모두 희비극이라 지겹다. 우울하고 비밀스러워서 지겹고 머리를 긁게 되서 지겹다. 이 지겹고 새로운 반복들이 저마다의 삶에 가득할텐데 그것이 결코 명쾌한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을텐데 하는 생각들은 않기로 했다. 해봐야 소용없다. 이리저리 튕겨 다니다가도 결국은 한자리로 돌아올 생각에 사로잡힐 이유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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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같음과 다름, 사람의 같음과 다름을 발견하고 깨닫고 의식하고 인지하고 상기시키는 모든 이야기들을 읽어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인데 그 증명을 위해서는 별 수 없이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강요하진 않았다. 내게 질문한 사람은 나뿐인데도 별 수 없이 계속 읽고야 마는 것은 대단한 착각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종종 그 대단한 착각들을 연료로 삼기도 한다. 바쁘다. 누구도 모르게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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