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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평점 :
현 국가 정책이나 사상에 어긋나는 표현을 하면 몰아세운다.
공산주의자냐고?...종북이냐고?...좌빨이냐고?...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그렇게 몰아가는 기득권 꼴통 보수(?) 주의자들(사실상 범죄자들)에 의해 철처히 망가졌고 무너졌다. 그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현대 역사가 교육되어 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시민은 무지한 개 돼지로 남아주길 바란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관용과 용서가 필요치 않음을 우리는 지난 국정농단과 기득권 세력들의 갑질 사건, 관피아 군피아 등으로 보아왔다. 20세기 현대사를 바로 알고 역사의 오류 반복이 아니라 적폐 청산과 시민 정신 고취로 사회 정의를 바로 세워 나가야 함을 이 책을 통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유유상종...이 떠오르는 서문으로 시작된 책이다.
"...저는 누구를 쉬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문제 아동'은 '문제 소년'이 되고, '문제 청년'이 됐습니다. '문제 기자'가 된 후, 증상은 더 심해졌습니다. 기자 생활을 할수록 이 땅의 기득권은 친일파 일당이거나 독재자 패거리 그리고 이들에게 빌붙은 자들뿐이라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출세했다는 사람을 만날수록 실망은 더 컸습니다. 이른바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추하고 역했습니다. 거의 돈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힘 있는 자에게는 일단 대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약자 편에 서도 기울어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을 테지만...."
이러한 주진우 기자가 함세웅 신부님을 만남으로 더욱 성숙한 대듬으로 발전해가는...그리고 그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정의를 세우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함세웅 신부님과 전국을 돌며 역사[서울], 정치[부산], 민주[대구], 통일[대전], 신념[광주]에 관한 톡 콘서트 그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 속의 주요 내용을 보자.
1.역사[서울]
"...그런데 딱 세 분만이 속죄를 했다고 해요. 목사님 한 분, 정치인 한 분, 문인 한 분. 이분들이 카메라 앞에서 말했어요. "아, 제가 잘 몰랐는데 우리 할아버께서 그런 일을 하셨다니 정말 잘못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분들께 사죄합니다." 저는 이게 우리의 시대정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자기 아버지까지도 친일인명록에 빼지 말고 넣으라면서 자신의 잘못을 속죄했고요. 이런 분들이 우리 민족정기의 중심이 돼야 하는데, 김무성 씨나 박근혜 씨 같은 분들이 보인 태도는 정말 부끄럽지 않나요?" 이러한 내용등으로 친일청산과, 민주주의를 욕되게 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등범죄자를 범죄자로 인식하게 하자는 주장, 그리고 남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한 방산비리 청산의 중요함을 이야기 한다. 나아가서는 노동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는 재벌구조 개혁과 시장 만능주의를 통제해야함을 주장하고 있고, 지지율과 득표율의 동일화로 합리적인 선거제도를 이뤄야 함을 강조한다.
2.정치[부산]
YH사건(10대 수출품이었던 가발회사 YH무역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급 클로징)->노동자들의 노동조합결성->사측의 지장퍠쇄->파업강행->YS가 총재로 있던 신민당상서의 농성->위와 같은 사건 진행을 저지하기 위한 국가의 공권력 투입으로 한 여공의 사망->언론의 외면->YS의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박정희의 지시로 국회의 YS 징계 동의안 날치기 제명->1979년 10월 부산대, 동아대 학생들의 박정희 독재 규탄 시위 발발->부산 위수령 선포->부산시민들의 시위 합세와 정부청사 습격 파괴->부산 계엄령 선포와 천 명+ 시민의 연행->마산대와 경남대 학생들의 시위 참여->마산 위수령 선포(1979년 10월 20일)->김재규 중정부장의 혁명 조짐 사태파악과 보고... 이렇게 진행된 부마시민항쟁으로 인해 결국 박정희 시대의 막을 내리지만 또다른 군부가 권력을 이양하고 여러 사건이 이어진다.
1980.5.18 광주민중항쟁
1980-1981 서울 학림사건-조작, 날조된 공안사건(세미나 하던 대학생들을 간첩으로 조작)
1981.부산 부림 사건-조작된 간첩단 사건(야학이나 학생운동 하던 대학생들을 고문해 자백하게 만든 경찰과 정보기관의 날조 사건-노무현 대통령이 담당 변호인으로 나섰던 사건. 영화 [변호인] 참고.
이러한 사건들로 유지된 군부정권이 1987년 민주항쟁으로 무너지지만 YS 와 DJ의 단일화 실패로 인한 군부정권 연장. 6.29 선언으로 확정된 대통령 직선제의 실행에도 불구 노태우 당선.
1990년 YS의 3당 합당
함세웅 신분님의 YS 와 DJ 두 사람 모두의 자기 욕심과 집단적인 탐욕 때문에 국민 모두가 시련을 겪고 있음과, 그들을 뽑은 우리 국민들도 책임이 있고 자성해야 함을 이야기 한다.
현행 국회의원 수 300명을 가능한한 500명 까지로 늘려야 함을 주장하는 신부님의 말씀은 타당하다 느껴진다. 1948년 제헌국회 때의 10만 명당 한 명의 국회의원 비율이라면, 인구 5천만인 현 시점에서 500명의 국회의원이 400조 가까운 연간 예산감시와 사법부, 행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말하고 있고 적극 동의 하는 바이다.
또 다시 등장하는 대한민국 정치 개혁 과제를 논의하는 부분이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진다.
첫째, 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한 친일 잔재 청산
둘째, 독재 잔재, 유신 잔재 청산
셋째, 분단 세력 타파로 남북의 일치와 화해 지향
넷째, 신자유주의 타파로 대기업 친화정책을 깨고 청년실업 해결
다섯째, 선거 제도 개혁. 승자독식을 합의제 민주주의로 개선(현행 낙선자를 지지한 사표를 정치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하자는 주장)
3.민주[대구]
민주 얘기는 4.19의 원인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시작한다. 일요일이었던 2.28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 박사의 유세 현장에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경북고와 대구의 모든 고교학생들에게 등교 지시를 내린 정부를 향해 2.28 대구학생의거가 일어났다. 그를 시작으로 마산의 3.15 부정 선거 항의 시위와 결국 4.19로 까지 이어진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시민혁명으로 일궈낸 장면 내각제를 살리지 못하고 이듬해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민정이양을 내세운 박정희 독재정권이 시작되고 시민 탄압의 시대로 접어들게 됨을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는 바이다.]
근래 들어 다시 언급되는 인혁당(인민 혁명당) 사건(간첩조작사건)의 발단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의로왔던 검찰의 기소 거부(검찰 항명 사건)으로 인해 결국 12명이 실형 1년-3년을 선고받고 끝나게 됨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1974년 제 2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만들어 내며 걸출한 인재가 많았던 대구 지역의 개혁적 진보세력의 뿌리가 뽑히게 되는 사건으로 이야기 한다. 법정 문서까지 조작해 만들어낸 8명의 인혁당 관련자를 1974년 7월 사형언도.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의 사형 확정과 17시간 만의 사형 집행...그리고 고문의 흔적을 보여지지 않게 하기위한 불법적 강제 화장까지...2002년 참여정부 들어서야 무죄 판결을 받고 국가 배상금을 받았지만 이명박 정부때 또다시 배상금 환수조치를 당해 20% 이자금까지 물려 아직도 치유받고 있지 못한 인혁당 사건 관련 가족들 이야기를 하며 대구 지역의 예전과 같은 시민 의식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프랑스 혁명을 예로 들며 1880년대 들어서나 100여 년의 시간 뒤에 완성이 된 혁명을 우리는 유신에서 벗어난지 40년이니 2050년 정도에는 그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거란 소망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한국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부패를 군대의 군수 산업이라고 꼽고 있다. 군인 출신으로 단위부터가 다른 군수 산업을 통해 비행기, 군함등을 들여오며 커미션을 빼돌려 스위스 계좌를 언급하며 5.16군사반란이 없없으면 훨씬 더 앞설 수 있었을 것을 한탄하고 있다.
또 한가지 박정의에 대한 비판을 신의 없음을 꼽는다. 일제강점기 교사->만주사관학교 입학과 충성혈서->일본 육군사관학교 입학을 하며 창씨개명 두 번(다카키 마사오->오카모토 미노루). 그랬던 박정희가 일본패망이후 바고 광복군으로 기어들고 귀국 후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쳐 육군 소령진급. 여순 사건시 군대 내에서 남로당 활동하던 동료를 팔아 사형을 면하고 살아남아 신의 없음을 인증해버린 인물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고, 그럼에도 대구 경북 분들이 박정희를 좋아하고 따르냐는 질문에 함세웅 신부님은 진실 소명의 중요함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건 역사와 진실을 왜곡해서 자기들이 필요한 방식으로 만들어 선전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나라를 팔아서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한 사람은 매국노입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죽였으면 독재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판하고 처벌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매국과 독재를 감추려 하니까 산업화 세력이라고 미화하고 국민을 현혹하는 거지요. 많은 분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친일 매국 행위와 독재의 실체를 잘 모르는 거죠. 배경을 잘 모르는 거고요."
4.통일[대전]
통일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통일을 원치 않는 반통일 세력을 보수파라 지목하고 있는 주진우 기자의 모습을 아래 인용구로 확인해 볼 수 있겠다.
"우린 남북이 갈려 있습니다. 덕분에 퇴물이 된 비행기도 사와야 하고요. 중간중간 미국 군수업체한테 뇌물도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병 1만 명 증원도 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1년 국방비가 38조 원에 달합니다. 북한 국방비는 1조 원가량인데요. 북한은 핵무기도 있고, 인공위성도 쏘아 올립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 우리가 진답니다. 38 대 1인데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정부나 군이 국방비에서 빼먹는 돈이 지금의 절반만 돼도 이렇지는 않을 거에요. 아니, 군대만 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무능해지는 건가요? 천안함 사건 때도 제대로 된 증거조차 못 찾았잖아요? 세울호 때는 한 명도 못 구하고, 돈은 돈대로 줘 사람도 줘, 그런데도 맨날 두들겨 맞기만 하니...... 그러면서 누가 이걸 비판하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하잖아요. 종북이라고, 북한으로 가라고 하면서요. 중략. 사실 남한 정부 입장에선 분단 덕분에 돈을 맘껏 빼먹을 수 있죠. 미국 또한 분단 덕분에 우리한테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미국 또한 분단 덕분에 우리한테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통일해서 38조 원을 안 쓰게 되면 어디서 이 돈을 빼먹을 거예요?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죠. 이렇게 보면 북한 군부가 반통일 세력입니다. 우리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반통일 세력입니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분단을 극복하는 자세에 대한 함세웅 신부님의 이야기도 와닿는다.
"통일은 이미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물리적으로 정치적으로는 분단이 되어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이미 남북을 넘나들고 있구나. 중략. 다만 문제는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는 거죠.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사람들을 제거해가는 겁니다."
함세웅 신부님의 로마 유학중 한국전쟁 이전에 유학온 선배들로 부터 들었다는 말씀이 "한국전쟁을 북이 단순히 남침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거 미국이 유도한 전쟁이라고 쓴 미국 학자들도 있다" 하는 것이었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던 신부님의 말씀을 계속 인용해 보자면..."1949년에 미국의 군사고문단이 한국에서 철수해버려요. 북쪽에서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요. 비판적인 학자들은 이걸 전쟁 유도용이라고 본 거죠. 미국은 전쟁을 통해 번영하는 나라인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너무 빨리 항복을 해버렸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놓은 무기나 폭탄들을 소화하고 당시 침체돼 있던 미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선가 전쟁이 터져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가 적소다,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게 한국전쟁이다." 이러한 선배의 말씀이 처음엔 의문으로 다가왔지만 결국 이해의 폭을 더 넓혀야 함을 깨닫게 되었음을 말씀한다. 이러한 이해의 한계가 생긴 것을 한반도에서 정부가 주는 통제된 소식 속에서만 살아왔기에 그렇다고도 말씀하고 있다.
5.신념[광주]
2017년 9월 현재까지 37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5.18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발포 명령자를 아직 밝혀내지 못한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사건 전개를 아래와 같이 나열해 본다.
10.26 사건으로 재판받던 김재규 재판 진행중이었던 같은 해 박정희의 심복이던 전두환과 노태우의 정치권 영향력 향상을 꾀하던 것을 차감시키려 정승화 참모총장이 그들을 변방으로의 인사 발령을 시도하나 12.12 정변으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심복인 노태우와 함께 정승화 참모총장을 김재규와 한패로 규정하고 체포하는 군사 바란을 일으킨다.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국회 중심으로 정치를 끌고 나가려던 김대중, 김종필 등의 정치인들은 그 시점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사회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문익환 목사님을 비롯한 원로분들과 성직자 분들의 국회해산과 총선 국면을 지지하며 유신 타파를 원했던 국민들과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결국 5월 전두환의 전국적 계엄령 포고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갔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조작된 사건인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 재판을 받게 되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광주의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낸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오늘날에도 그 민주화 정신이 광주에 계속 살아 숨쉬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함세웅 신부님의 정의를 품고 꿈을 안고 힘을 안고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아름다운 미래, 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현실의 모든 고통, 개인적 역사적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 자체가 이러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목적이 중요하지만 목적보다는 목적을 이루는 그 과정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와 의로운 세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 자체가 뜻이 있고 아름다우며 후대를 위한 큰 선물임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