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뿌리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아, 로맹가리, 정말..... 질린다. <하늘의 뿌리>를  읽으며 몇 번이나 속으로 씹었던 말이다.  623페이지가 너무 두껍다는 뜻만은 절대 아니다. 무난하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을 수 있었다면 600페이지를 넘겨도 뭐라 하지 않겠다. 어쨋든 나는 꽤 의리있는(누구를 향한, 또 무엇에 대한 의리인지는 따지지 않겠지만) 독자니까. 그런데 이 책은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 문장들이 연속된다. 흥미를 끄는 데도, 궁금증이 이는데도, 쉽게 읽히지 않으면서 사람을 놓지 않는 악마적인 문장들... 누군가 리뷰에서 한 달 간 읽었다고 했는데 수긍한다. 나는 2월 12일부터 3월 7일까지 읽었다. 그 중간에 숨이 막혀 다른 한 권의 책을 읽었고 한권은 아직도 읽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너무 과시하는 것 같아 일견 부럽고 일견 짜증난다. 뭐 이쯤 로맹가리를 성토하고.....

 

하지만 로맹가리는 매력이 충분하다. '하늘의 뿌리'는 우리가 간직하고 버릴 수 없는 이상이며 끝까지 간직해야 할 책무다. 그런 드높은 이상을 아무데서나 만나기는 어렵다. 그러니 뭐랄까. 일종의 경건한 의무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 책의 끝을 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해서,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위한다. 

 

 

 성과

 

 1. 어려운 책에 대한 두려움 타파

 2. 로맹가리를  이해하겠다(?)

 3. 자연보호가 생태계나 자연환경에 대한 보호를 넘어선 인권이 되는 이유.

 4. 대화체로 소설의 중요한 서사를 가볍지 않게 다 풀어낼 수 있다(도스토예프스키도). 묘사가 간혹 끼어있긴 하지만 381쪽까지 생드니의 회고적 술회가 이어진다.

 5. 내 인내심 테스트, 합격(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6. 독립운동을 했던 당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해.

 7. 독자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들의 공통점 ㅡ 미나와 모렐, 생드니, 파르그신부, 페르 크비스트, 밥콕 대령, 필즈, 유세프 등: 외로움, 상처, 어떤 이상, 동정과 연민을 아는 정서, 이루어지지 않을 목표를 지닌, 현실의 탐욕에서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를 지키는, 박애적인, 가장 약한 것들을 지키는, 이 세계의 안락함을 거부하는, 이런 인물이 독자에게 호의를 끌어내고 감정을 이입시킨다. 감동을 자아낸다.

 8. 작가는 안과 밖을, 인간의 내면과 외양과 행태를 묘사해야 한다. 역사와 철학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다.

 9. 주제가 되는 부분을 여러 번 여러 사람의 말로 드러냈는데, 필요이상으로 주제를 설파하는 것은 독자를 짜증나게 한다. 두세 번으로 족하다. 숱한 인물을 창조해냈는데, 다 쓸모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생드니의 회고는 과하게 길고 중복되는 부분도 많았다. 퇴고 때는 불필요한 단락은 아까워 말고 잘라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준다.

 

줄거리는 적지 않겠다. 엄청나게 밑줄을 그은 부분도 베껴적지 않겠다. 하늘의 뿌리는, 하늘을 파아랗게 간직하려면, 땅 밑에 뻗어있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 그 위의 하늘이 맑고 푸를 수 있다는, 역설적이지만 사실은 너무나 적나라한 유기체적 진실만을 말해야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닷새만인가, '최악'으로 기록되던 먼지들이 가라앉고 초록 바탕에 둥근 스마일의 '보통'이라는 예보가 스마트폰에 떴다. 너무 반갑다. 그래서 더이상의 감상은 접고 강아지와 놀이터에 나가 놀 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ipaltree 2019-03-1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읽으신 것 같네요. 로맹 가리는 이래저래 흥미있는 인물입니다.~~

lea266 2019-03-12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닌것같아요 누군가 두분 정도는 읽으셨을 듯.... 고맙습니당 앞으로도 함께 문학의 주변을 서성거리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