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부터 21일까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열렸다. 기지개 모임의 지현씨가 카톡으로 알려주어 이렇게 진지한 영화제가 일산에서 열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간이 된다면 여러 편을 보고 싶었지만 며칠간 군산에 다녀오느라 영화관람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도 한 편이라도 꼭 보아야겠다는 사명감과 폐막을 하루 앞둔 영화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어제 (20일 저녁) 다녀왔다. 

  그렇게 해서 보게된 영화가 맘바르 피에레트. 이 영화는 여러 부문 중 프런티어 부문에서 경쟁하는 7편의 영화 중 하나였다. 맘바르 피에레트는 카메룬 두알라시의 뒷골목에 자리잡은 너무나 허름한(벽지가 발리지 않은, 사면이 시멘트 벽으로 막힌) 작업실에서 옷을 만드는 재봉사이다. 아직 어린 두 아들과 늙은 어머니가 그녀의 가족이다. 남편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남편은 집에 오지 않고 돈을 보내지도 않으며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피에레트는 그러나 남편을 기다리거나 찾아다닐 여유가 없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키웠으며 어머니를 모시는 가장으로 살아왔다.

 다행히 그녀는 옷을 잘 짓고 동네 여인들은 그녀에게 옷을 맡기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재봉틀 실력이 정말 출중했다. 옷을 맞추어주고 동네 여자들의 신세한탄까지 들어주면서 그녀는 그런대로 자신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폭우가 쏟아져 그녀의 집 바닥은 물에 잠기고 아들과 그녀는 물을 퍼낸다. 가게에 나가보니 가게도 물난리에 옷감이 떨어져 젖어있고 다 만들어놓은 고객의 옷들마저 젖어있다. 그녀는 옷을 널어 말리고 옷감을 정리한다. 

  불행은 연이어 벌어진다. 피에레트가 오토바이택시(오토바이를 태워주고 운임을 받는)를 탔다가 강도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영화의 본질은 다큐이지만 픽션이 가미된 것. 다큐영화는 이제 점점 다양한 방면의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영화들이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픽션이 가미되기도 하고 미학적인 표현과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단다.

  피에레트는 낙담하고 절망한다. 아들은 새학기가 되어 학교에 가야하고 돈 쓸일이 태반인데 강도까지 당해 한푼도 수중에 있지 않으니... 아들에게 네 통장을 헐어서 일단 학교에 갈 준비를 하자고 그녀가 청하자 아들은 대답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 가게에 나가 일을 하려하자 재봉틀이 없다고 가게주인의 딸이 말한다. 그녀는 어쩔줄 몰라하며 재봉틀이 없는 걸 의아해하고 가게 주인인 듯한 여자가 재봉틀이 한쪽에 방치돼있어 몰랐다고 말하며 가져다준다.

 그런데 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는 전기를 공급해주는 마을 남자에게 가서 일을 해야하니 전기를 공급해달라고 사정한다. 그러나 남자는 쳐다보지도 말을하지도 않는다. 피에레트는 하는 수없이 돈을 건네고 가게로 돌아온다. 그녀는 완전히 상심해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그녀는 복지국에 가서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지도 와보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무슨 도움이라도 혹시나 받아보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그런데 복지국 여직원이 피에레트에게 말한다. 결혼신고도 하지 않고 살았으니 아이들이 있다해도 남편은 법적으로 그녀의 남편이 아닌 것이라고. 피에레트는 망연자실하여 돌아온다. 손님들이 와 간신히 말린 옷을 가져가며 수고료를 준다. 피에레트는 캐나다에서 온다던 남자친구를 기다리다가 상심한 친구와 춤을 추러 간다. 음악에 맞춰 두 여자는 신나게 온 몸을 흔들어댄다. 피에레트는 절망하여 쓰러질 여유가 없다. 다시 일어서서 일을 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이렇게 줄거리 하나하나를 다 쓰는 내가 참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 순식간에, 금방 다 잊어버리니까, 건망증이 심각하니까 이렇게라도 기록을 해 놓아야 나중에 기억할 방법이 될 테니까. 


  이 영화는 백석 CGV에서 상영되었는데 넓은 극장에는(5관) 7명의 관객이 전부였다. 좋은 영화를 싸게(8,000원) 볼 기회가 있는데도 텅 빈 좌석을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 관람 전에 극장 입구를 지나는 길에 보니 외국영화감독과 한국인 패널이 앉아 상영 후 대담같은 걸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나무 계단에 앉은 참여자들이 열 명이 간신히 넘을 듯 한산한 모습이었다. 진지한 다큐멘터리에 일반인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고 영화쪽이나 예술을 하려는 젊은이들만이 소수 모인것 같아 안타까웠다.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은 외롭다. 세상의 변방을 다루려는 사람들은 묵묵히 자기 길을 가야하는 징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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