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이 책을 읽은 건 뜻하지 않은 일에 속한다. 원래 이번 주 독서를 해야 할 책은 '하늘의 뿌리'였는데 그 책은 너무 길거니와 우선 도대체 속도가 나지 않았다. 600페이지를 넘기는 '하늘의 뿌리'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배경사건을 주로 보여주는데 그 대화는 사건의 정황과 경과 그리고 인물의 심리까지 빼곡히 몇 장씩 진행된다. 로맹가리의 복잡하고 깊은 시각을 따라잡으며 그 대화체의 문장들을....ㅠㅠ.

 그러다 이 책으로 돌아섰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에 '하늘의 뿌리'를 한쪽으로 제쳐두고 이 책을 사왔다. 이 책은 언젠가부터 나를 유혹해왔고 이제야 그 유혹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 책은 350페이지를 조금 넘는다. 글쓰기에 대한 책치고 분량이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 읽고나면 글쓰기에 대한 방법서로서 꽤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면이 잘 설명되어 있다고 누구나 느낄 것이다. 

 처음부터 124페이지까지는 스티븐 킹의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가 자전적인 소설처럼 펼쳐진다. 이 부분을 통해 스티븐 킹은, 작가는 태어나지만 끊임없이 쓰면서 자신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요지를 펼치는 것 같다. 그리고 본격적인 글쓰기 안내는 125페이지부터 시작된다. 내게 꼭 필요한, 알면서도 자꾸 잊게 되는, 중요한 키워드와 설명을 페이지 관계없이 나의 쉬운 말로 요약해 보겠다.

 

 * 어휘 ㅡ 어휘력을 키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해결될 일).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 한다. 낱말에도 무게가 있다. 정성의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 수동태, 부사 ㅡ 한사코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어설픈 동사를 만들지 마라.

 예) "그 총 내려놔." 하면서 지킬은 이를 갈았다.

      "입맞춤을 멈추지 말아요!" 하고 셰이나가 헐떡였다.

    그냥 그는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라고 쓰는게 낫다.

 

* 문단 ㅡ 은 그 내용 못지않게 생김새도 중요하다. 문단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문단에는 주제문이 있고 부연 설명이 뒤따른다는 규칙.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소설의 문단 구조는 자유로운 편이다.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도 된다. 나중에 다시 고쳐도 되니까....

 

* 문장 ㅡ 단문이 좋다(장문이 의미를 어렵게 할 때). 허나 때로는 미완성 문장으로 멋진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만 쓰다보면 글이 너무 딱딱해져 유연성을 잃게 된다.

 

* 독서 ㅡ 좋은 책은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인물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텔레비젼은 백해 무익한 물건. 독서할 시간을 빼앗는다. 바보상자를 꺼버리면 작품의 질은 물론 삶의 질까지 향상된다. 독서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많이 읽고 많이 써라,는 우리의 지상명령.

 

* 집필 ㅡ 일단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서 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목표량을 정해놓으라. 시간을, 단어 수를 정해놔라.

집필실 안에는 전화조차 없어야 좋다.

초고를 쓴 후에는 오랫동안 묵혀둔다.

어느 적당한 날 그 원고가 어느 고물상에서 구입한 골동품처럼 낯설어 보인다면 수정으로 들어간다.(스티븐 킹은 6주후가 자신에게 좋다고).

이 스토리에 일관성이 있는가? 그 일관성을 시처럼 우아하게 만들려면?

반복되는 요소들은? 혹시 그 요소들이 어울려 어떤 주제를 이루고 있지 않는가?

그 의미를 강조하는 몇몇 장면이나 사건들을 덧붙이기.

오락가락하는 부분들을 삭제하기(통일성).

스토리의 진행 속도(따분한 부분들은 지워버리기, 군더더기 잘라내기),

배경 스토리를 만족스럽게 처리했는지 가늠하기.

 

* 무엇을 쓸 것인가 ㅡ 쓰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단, 진실만을 말해야한다.

 

* 플롯 ㅡ 은 중요하지 않다.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므로 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뿐. 플롯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럴듯한 어떤 상황만 있으면 플롯 따위는 의미를 잃고 만다.

 

* 결말 ㅡ 왜 결말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딘가에서 끝나게 마련인데.

 

* 묘사 ㅡ 묘사가 빈약하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하고 근시안이 된다. 

지나치면 온갖 자질구레한 설명과 이미지 속에 파묻히고 만다. 중용을 지키는 겻이 요령.

그리고 어떤 것은 묘사하고 어떤 것은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이것도 독서의 이력이 알려준다). 독자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만들려면 인물의 겉모습보다 장소와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비유 ㅡ 직유법을 비롯한 여러가지 비유적 표현은 소설의 주된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상투적인 직유나 은유나 이미지 따위를 사용하지 말라. 이러면 작가가 게으르거나 무식해 보일 뿐.

 

* 대화 ㅡ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말해주는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게 성격을 드러낼 때가 많다. 주인공의 입을 빌리면 똑같은 내용을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평소에 남의 말을 열심히 주의해서 들어라. 억양, 리듬, 사투리, 속어 따위.

 

* 등장 인물들 ㅡ 현실 속에는 나쁜 놈도 없고 절친한 친구도 없고 고결한 마음을 가진 창녀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악당도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때로는 악당들도 연민을 느
낀다. 그리고 때로는 착한 인물도 옳은 일을 외면하려고 노력한다.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말고 보여줄 것(그날 애니는 마음이 울적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는 표현은 실패한 것. 대신 실감나는 묘사를 할 것).

 

* 주제와 상징 ㅡ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그 저변에 깔린 패턴이 찾아지면 그 때 상징이나 주제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다듬어낸다.

 

* 창작교실이나 세미나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 341쪽ㅡ 초고를 수정했던 그대로를 보여준다. 정말 유용한 페이지다. 

 

 이외, 스티븐 킹은 오전에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쓴다. 이천 단어 목표. 후에 낮잠을 자고 일을 보고 저녁에는 책을 읽는다고.

 책의 말미에서 작가는 '인생론'을 썼다. 이 책을 쓰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일을 자세히 쓰고 있다. 솔직히 마지막엔 대강 훑어내리다 책장을 덮었다. 따라서 그의 인생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이 그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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