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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 여인의 초상화 속 숨겨진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9월
평점 :
여성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끈다.
그림 속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성이 책을 읽는 그림을 모아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Women Who Read Are Dangerous)>를 흥미롭게 보았고, 이번에도 그림 속에 숨겨진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를 펼쳤다.
그림 속 여성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화가와 모델의 관계와 같은 그림의 배경을 알아야 하니 책을 읽으면서 그림 속 여성 개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알게 되며, 저자가 그림을 분석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그림을 보다 자세히 뜯어보게 된다.
덕분에 그림을 보고 더 깊고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자 미상의 <폼페이 여인의 초상>이라는 책의 첫 번째 그림부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한순간에 화산재 아래에 묻혀버린 고대 도시 폼페이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폼페이 유적지에서 딱딱하게 굳은 화산재에 덮인 채 발견된 이 그림 속 여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얻게 된 멋진 수확 중 하나다.
크고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시상을 떠올리는 듯한 그림 속 여자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 기원전 630~580)인데, 그는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사회 지도층 남성들 사이에서는 동성애가 성행할 정도로 남성 중심의 고대 그리스에서 인기 있는 시인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사랑 노래 아닌 것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오래 전 다른 작가들이 신과 영웅 그리고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대에 사포는 사랑과 그리움 같은 개인의 마음을 노래했고, 그의 고향 레스보스 섬에 여성 예술 공동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사포가 동성애를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레스보스(Lesbos)섬 사람들이라는 뜻의 ‘레즈비언(Lesbian)’이 사포로 인해 지금처럼 여성 동성애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니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호메로스와 견줄 만큼 명성도 있었으며 시인을 싫어했던 플라톤도 칭송했다고 하니 사포의 시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중세에 그의 시가 음탕하다는 이유로 이곳 저곳을 잘라내며 조각조각나서 단 한 편을 제외한 다른 시들은 온전하지 못하다니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으로서 성공하여 행복했을 것만 같았던 사포의 삶은 사랑의 상실한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비극적이었던 것은 레스보스 섬의 문학 공동체가 해체되고 여성들이 노래하던 서정시가 남성의 문화로 귀속되었다는, 사포의 죽음 이후였다.
이렇게 사포에 대해서 읽을수록 내가 지금까지 사포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 의아해서 사포의 시와 명성이 지금 시대에까지 온전하게 전해지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지금이라도 사포에 대해 알게 되어 다행이며 다른 사람들도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리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 or 1656)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다.
적장을 유혹해서 그가 잠이 들었을 때 목을 베어 유대 민족을 구했다는 구약 성서 속의 여인 유디트는 여러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려낸 소재이지만,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다른 남성 예술가가 그린 유디트와는 전혀 다르다.
적장을 유혹한 것에 초점을 맞춰서 관능적으로 그려지거나 아름다움에 집중해서 그려진 유디트와 달리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강인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만약 유디트가 실존했다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유디트가 탄생하는 데에는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아르테미시아가 열일곱 나이에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미술 스승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타시를 성폭행이 아닌 재산훼손혐의로 고발했으며 아르테미시아의 순결 여부가 재판의 쟁점이 되었다는 것을 보면 1600년대 로마가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아르테미시아에게 고통이었던 재판 과정을 거쳐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재판에 승소했지만 타시는 감옥에 고작 몇 개월만 있었을 뿐 오히려 이전보다 그림 주문을 많이 받았으며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와도 화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르테미시아에게는 온갖 추문이 따라다녀서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림에 서명을 할 수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목을 베는 유디트>는 예전부터 내게 강렬한 인상을남겼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도 알고있었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더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가 유디트 그림을 여섯 번이나 그렸다는 것이다.
책에는 1610년과 1620년에 같은 구도로 그려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있기 때문에 비교해볼 수 있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이 작품 속 유디트에는자신의 얼굴을 그려넣고 홀로페르네스에는 타시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하니 그 심정을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그래도 후에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가서 여성이 화가로 활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시대에 귀족의 후원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갔고 화가로서 성공했다고 하니 정말 잘됐지만, 그 끔찍한 경험 이전의 아르테미시아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 서글퍼진다.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보여 주겠어요. 당신은 카이사르의 용기을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아르테미시아는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베는 유디트>를 처음 봤을 때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강한 인상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그림을 보았다.
바로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다.
전에 <세상의 기원>에 대한 글을 읽어서 그림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림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그림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조각상 중에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다비드상도 남성의 성기가 그대로 드러나있으며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별 충격을 받지 않았고, 생각해보니 여성의 성기가 이렇게 드러난 미술 작품은 처음 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세상의 기원>을 보고 받은 충격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회화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해서 여성의 몸도 미화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보이는대로 그리면서 그동안 미술이 아름다움의 일부로 소비한 여성의 몸에 대한 통념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행보는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으며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그림 뒤의 이야기를 읽고 여성의 성기만을 그린 <세상의 기원>이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서평에서 소개한 그림은 세 작품이지만 정말이지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여러 사실과 그림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었다.
몇 개 그림의 선명도가 아쉬워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완벽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그러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 상쇄할 만큼 내용 면에서 만족했기 때문에 과연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구나 생각했다.
서평 속 그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면 이 책을 읽으며 더 많은 그림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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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