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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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동화 같은 문장과 묘사가 함께한 소년의 성장 소설.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에 밑줄을 몇 번이고 긋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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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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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지 않고, 또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원치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 책 <우주를 삼킨 소년>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엘리 벨 또한 상처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엘리에게 상처가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엘리를 사랑했다.



엘리는 호기심 많은 열두 살 소년인데 그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소설에서는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을 가지고 있다.

엘리의 그런 면모를 형성한 데에는 성장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엘리의 아빠는 술독에 빠져 살았고 엄마는 마약에 빠져 살았으며, 새아빠 라일은 엄마를 마약에 빠지게 한 사람이자 엄마를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게 한 사람이고 마약 거래 일까지 한다.
한 살 많은 엘리의 형 오거스트는 여섯 살 이후로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지만 몸짓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결코 무지하지 않으며, 엘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는 이웃 슬림 할아버지는 교도소를 탈출한 전설의 탈옥수였다.

주변 인물만 보아도 엘리가 어떤 나날을 보냈을지가 눈에 그려져서 안쓰러운 마음이 생기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아빠 라일로 인해 마약 범죄 조직과 얽히면서 엘리의 엄마는 감옥에 갇히고 엘리는 손가락을 잘리는 일도 겪었다.
이렇게 소설에는 엘리 나이의 아이가 마주하기에는 무거운 일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놓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에요?”
(...)
“난 좋은 사람이야.” 슬림 할아버지가 말한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기도 하지. 누구나 다 그래, 꼬마야. 우리 안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다 조금씩 있거든. (...)”

p.223



놀랍게도 <우주를 삼킨 소년>은 이 소설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트렌트 돌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소설 속 엘리가 범죄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 부분에서 이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 그 유명한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우주를 삼킨 소년> 홍보 문구 속에 등장한 것에는 둘 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공통점 또한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날 병원에서 네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 물었지, 엘리. 나도 그 생각을 해봤다. 아주 많이. 그저 선택의 문제라고, 그때 말해줬어야 하는데. 네 과거도, 엄마도, 아빠도, 네 출신도 상관없어. 그저 선택일 뿐이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말이다. 그게 다야.”

p.351



사실 67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은 읽기에 적은 분량이 아니고 거기에다가 밝은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이 마냥 무겁거나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말로는, 엄마가 아빠에게서 도망쳤을 즈음부터 형이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형은 여섯 살이었다. 엄마가 어린 내게는 아직 말해줄 수 없는 어떤 일에 심하게 빠져서 한눈파는 사이, 우주가 엄마 아들의 말을 훔쳐 갔다고 한다. 우주가 엄마 아들을 훔쳐 가고 불가사의한 A급 외계 물체와 바꿔치기했단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그 외계 물체와 2층 침대를 함께 써야 했다.

p.21



먼저 작가가 저널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삼킨 소년>은 우리가 저널리스트 하면 떠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장으로 쓰였다.
마치 시와 동화 같은 문장과 묘사는 엘리가 마주한 힘든 현실도 마치 꿈을 통해서 보는 듯 만들었다.
또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엘리를 응원하며 엘리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이 소설을 계속해서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난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할 거예요, 슬림 할아버지. 좋은 사람은 무모하고, 용감하고, 본능적인 선택으로 움직이죠. 이게 내 선택이에요, 할아버지. 쉬운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거죠. (...)

p.627



아름답고 또 내 마음을 흔들어 밑줄 긋고 새겨두고 싶은 문장들도 많았는데, 나는 호주(오스트레일리아)와는 거리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쭉 살았고 엘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엘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내면도 성장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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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 국내최초 초판 무삭제 완역본 데일 카네기 초판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임상훈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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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고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도 읽고 싶었는데,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국내 유일 1948년 초판 완역본’으로 출판되었다고 해서 더 풍부하고 원서에 가까운 글을 읽고자 이번에도 같은 출판사의 책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처음에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자기관리, 즉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가꾸고 경영해야 하는가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려주는 책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책은 ‘걱정’이라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

살면서 걱정 한 번 안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걱정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도 그들만의 크고작은 걱정거리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있어도 잘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걱정에 매몰되어 일상이 힘들어지고 삶까지 휘청이게 되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괴로운 적이 있다거나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있다면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데일 카네기가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책에서 마음 속에서 걱정을 몰아내는 방법으로 걱정할 시간도 없이 바삐 사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우리도 알고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데일 카네기는 책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명사들의 말을 참고하고,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학생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 극복 방법을 제시한 뒤 그를 실천한 결과를 알아보며 걱정 극복 방법을 나누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말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부터 명사의 경우까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데일 카네기가 이 책에 담아낸 조언들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검증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이 수십 년 동안 스테디셀러로 널리 읽힌 것도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도움을 받았다는 방증인 셈이다.


(...)
집안일은 머리를 쓰지 않고도 기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문제였어요. 그러다 보니 걱정을 멈출 수 없었지요. 어느 날 침대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게는 매일 매시간 나를 정신적•육체적으로 바쁘게 만들어줄 새로운 일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큰 백화점의 판매직원으로 취업했지요.
제가 바라던 대로 되었어요.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손님들은 가격, 몸치수, 색상 등을 물어보며 저를 한시도 놓아주지 않았어요. 일일이 응대하느라 딴생각을 할 겨를이 1초도 없었지요. 밤이 되면 다리가 아파서 쉬어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눕자마자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걱정에 쓸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어요.

p.85-86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은 걱정을 극복하고, 그에 앞서 걱정과 피로를 예방하고, 보다 활력 넘치고 의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정리해서 ‘풍부한 사례들’과 함께 알려줌으로써 우리를 자극한다.
그러니까,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은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책에서 말하는 바를 실행하고 싶게 한다는 것이다.
책의 중간중간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도 걱정을 극복한 32명의 이야기가 모여 수록되어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례들은 우리가 조언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할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책을 덮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도록 격려한다.
실용적인 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번에도 데일 카네기가 본문에 앞서 알려준 이 책을 잘 활용하기 위한 9가지 제안에 따라 책에 담긴 조언을 실천하면 걱정과 피로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보다 가볍게 그리고 행복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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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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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한 여자가 교도소에서 렉스헴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그 여자는 스물 일곱에 교도소에서 복역중으로, 자신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고 무죄를 호소하고 렉스헴 변호사에게 변호를 해달라고 간청하면서 여러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신문 1면을 차지한 헤더브레 저택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녀가 헤더브레 저택에 사는 엘린코트 부부가 낸 입주 아이 돌보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을 때부터 편지를 쓰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세세하게.

소설의 배경이 되는 헤더브레 저택은 소설의 주인공인 로완 케인이 거주하던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한참 가야 하는 스코틀랜드에 있었고, 기차역에서 또 차를 타고 개울을 지나고 숲을 지나야 하는 외진 곳에 위치했다.

헤더브레 저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오래된 저택에는 으레 사연이 있듯 엘린코트 부부가 들어와 살기 전에 그 집에서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건축가 부부인 엘린코트 부부가 빅토리아풍 저택을 뜯어 고치고 최신 기술을 적용하면서 헤더브레 저택에는 빅토리아 시대와 21세기가 이질적으로 혼재한다는 것이다.

헤더브레 저택은 빅토리아풍 저택이면서도 스위치 버튼 대신 스위치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음성 인식 기술과 인공 지능(AI) 기술이 적용되었으며, 집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해 두었고, 홈 관리 앱으로 저택 내의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하우스라는 점을 작가 루스 웨어는 영리하게 이용했다.

요즘에는 인공 지능이나 음성 인식 기술이 적용된 전자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우리집에도 내 목소리를 인식하는 전자제품이 있는데, 이런 기기가 적적함을 덜어줘서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집안에 듣는 귀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오싹하게도 느껴진다.
작가 루스 웨어는 최신 기술이 주는 이러한 느낌을 소설의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 잘 활용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로완은 면접 끝에 헤더브레 저택에서 네 아이, 열네 살 리안논, 여덟 살 매디, 다섯 살 엘리, 18개월 아기 페트라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
리안논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로완은 주로 나머지 세 아이들을 돌보는데, 엘린코트 부부가 박람회 때문에 로완이 입주하고 바로 집을 떠난 데다 자신을 거부하는 매디와 엘리 때문에 입주 아이 돌보미 일을 시작하는 날부터 고생을 했다.

아니, 차라리 이것 뿐이었다면 아이를 돌본 경험이 많은 로완이 그렇게 고생한 건 아닐 테다.
문제는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이라는 책제목에 걸맞는 이상한 일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디? 왜 그래?”
“여기 오지 마세요.” 매디는 여전히 제 시선을 피하면서 속삭였어요. “여긴 안전하지 않아요.”
“안전하지 않다고?” 전 가볍게 웃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안전하지 않다고요.” 매디는 살짝 화가 난 듯 울먹이며 말했어요. 고개를 어찌나 세차게 가로젓는지 매디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어요. “다들 안 좋아할걸요.”
“누가?”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매디는 저한테서 떨어져 나가 맨발로 잔디 위를 달려가 버렸어요. 매디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
매디가 도망치듯 달려가며 외쳤던 말이 뜬금없어서 제대로 들은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제대로 들은 것 같은 거예요.
‘유령들이요.’ 매디의 울먹이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어요. ‘유령들이 싫어할 거예요.’

p.104-105


먼저 헤더브레 저택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으며 로완 이전에 헤더브레 저택에 들어왔던 네 명의 아이 돌보미들이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해야겠다.
로완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사실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매디가 유령에 대해 언급했을 때에도 한 귀로 흘려 넘겼다.
하지만 한밤중에 로완이 머무는 3층 방 위로 누군가걸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나거나,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거나 하는 일이 이어지자 로완 이전에 일했던 아이 돌보미가 남긴 이상한 쪽지와 매디가 한 말과 저택에 대한 소문, 그리고 자신이 머무는 방 한쪽에 잠겨진 문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 휴대 전화 손전등을 끄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서랍에서 베개 위로 떨어진 뭔가가 눈에 들어왔어요. 종잇조각이었죠. 구겨서 바닥에 던져 버리려다가 중요한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들여다봤어요.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아이가 그린 그림이었죠. 그런데.......
(...)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기이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었어요. 어디에도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고, 왜 침대 협탁 서랍에 있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어요. 뭔가 단서가 있을까 싶어 그림을 뒤집어 봤어요. 반대쪽에 글씨가 있었어요. (...)
‘새로 온 아이 돌보미에게.’ 흘려 썼는데도 단정해 보이는 첫 인사였어요. ‘제 이름은 카탸예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쪽지를 쓰고 있어요. 제발.......’
이야기는 거기서 끊어졌어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죠. 카탸가 누구였더라? 들어 본 적 있는 이름 같았거든요. 그때 저녁 식사 중에 사모님이 한 말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카탸가 떠나고...... 카탸가 마지막 아이 돌보미였는데.......’

p.82

그러다 한밤중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요.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저 가만히 누워서 쿵쾅쿵쾅하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대체 무엇 때문에 잠에서 깬 건지 생각했어요. 꿈을 꾼 것 같진 않았거든요. 그냥 뭔가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는 다시 잠들지 못했어요.
잠시 후 그 뭔가의 정체가 밝혀졌어요. 소리였어요. 발자국 소리였어요. (...)
끼익...... 끼익...... 끼이이이익....... 그 소리는 묵직하고 공허하게 울려 퍼졌어요. 날쎄게 움직이는 아이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성인 남자가 천천히 걷는 소리처럼요. 마치 머리 위쪽에서 들리는 것 같았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제 방이 맨 꼭대기층이었으니까요.
전 천천히 일어나서 더듬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찾아 눌렀어요.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다시 스위치를 눌렀지만 소용없었어요. 젠장, 메인 스위치 패널에서 전등 스위치를 무력화 시켜 놓은 게 분명했어요. 그렇다고 한밤중에 스위치 패널을 막 눌러 볼 수도 없었어요. 사운드 시스템 같은 걸 건드릴지도 모르니까요. 전 충전 중인 휴대 전화의 손전등을 켰어요.

p.133-134


나도 소설을 읽으면서 매디가 그런 말을 한 의미가 무엇인지, 매디와 엘리가 왜 로완에게 그렇게 적대적인지, 한밤중에 로완을 괴롭히는 일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로완이 머무는 방에 있는 잠긴 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헤더브레 저택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가 죽은 건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아서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전에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던 사소한 부분까지 해소되는데,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려고 소위 떡밥을 잔뜩 뿌려놓고 거두지 못하는 작가도 있지만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의 작가 루스 웨어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을 모두 해소해주었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은 내용을 모르고 읽어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서평을 쓸 때 주의하고 특히나 결말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말에 대해 말하고 싶은 소설이 있는데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이 그렇다.
하지만 당연히 스포일러가 되지는 않도록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은 뒤의 감상 정도만 말하고자 한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궁금증을 유발하여 독자가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 소설을 인상적으로 만든 것은 결말이었다.
작가는 도대체 헤더브레 저택에서 무슨 일이 어째서 있었던 건지를 포함하여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았다.
사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적이고 짧은 글로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소설은 내게 별 인상을 주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후 로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더했고, 그녀의 결정을 인상적으로 알려주며 여운을 남게 한다.
소설의 그 길지 않은 마지막 부분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들게 했고, 로완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빅토리아풍의 저택과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적절한 긴장감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하고, 책을 읽으며 생긴 그 궁금증을 해소시키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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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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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수상자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 <시녀 이야기>는 드라마와 그래픽노블 등으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을 여러 권 적어두고도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책을 읽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보니 그렇게 됐다)
<시녀 이야기> 그래픽노블을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 <먹을 수 있는 여자>가 내가 처음 읽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이 되겠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소설은 처음으로 출판된 마거릿 애트우드의 장편 소설이기도 했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최근에 출판되어 작가가 비교적 최근에 쓴 소설인 줄 알았는데 1960년대 초반 내내 써서 1965년에 탈고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탈고한 지 4년이 흐른 뒤인 1969년에 책이 출판되었을 때에는 북미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여자>를 페미니즘 운동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작가가 소설을 썼던 시기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기 이전이었으므로 ‘프로토페미니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메리언 매캘핀은 시모어 서베이스라는 설문 회사에서 근무하며 친구 에인슬리와 함께 살고 있고 또 피터라는 잘생긴 수습 변호사 남자친구가 있는, 평범한 캐나다 여자다.

메리언에게는 일찌감치 임신을 하게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은 뒤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인 클래라와 메리언과 함께 살고 있는 에인슬리라는, 상황도 성향도 정반대인 친구 둘이 있다.
습도가 높아 끈적이는 캐나다 공기 속에서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는 듯했지만, 어느 날 에인슬리가 메리언과 함께 클래라의 집을 방문한 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겠다고 선언을 하고 메리언의 또다른 친구 렌 슬랭크에게 접근하며 그 아이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을 거야.”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
“그러니까 결혼을 하겠다는 거야?” (...) 에인슬리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아맞혀보려고 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나와 알고 지낸 기간 동안 그녀는 확실하게 결혼반대주의자였다.
“그렇게 물어볼 줄 알았다.” 그녀는 재밌어하는 한편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아니, 결혼은 하지 않을 거야.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게 문제거든. 부모가 너무 많다는 거. (...)”

p.58


에인슬리는 짜증 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식으로 비꼬다니. 하지만 자기들이 아이한테 어떤 유전자를 물려주는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만 해도 다들 그렇게 맹목적으로 달려들지 않을 거야. 우리도 알다시피 인류는 지금 퇴보 중인데 그게 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열등한 유전자를 물려줘서 그래. (...)”

p.63


그렇게 에인슬리의 아이 계획으로 심란해진 데 이어 결혼 이야기는 꺼낼 것 같지 않던 남자친구 피터가 청혼을 하자 오히려 메리언의 속은 더욱 복잡해지고, 급기야 식이 문제까지 생기게 되는데...


“너 맛있어 보인다.” 그녀는 작품을 향해 말했다.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여. 너는 결국 먹히게 될 거야. 음식의 운명이 그렇거든.”

p.374


<먹을 수 있는 여자>라는 소설 제목도, 소설 후반부에 메리언이 여자 형상을 한 케이크를 만들어 퍼먹는 모습도 무척 자극적이다.
우리는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고, 음식을 보듯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소설의 제목과 메리언의 기행이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부엌에서 성상이나 쿠션에 얹은 왕관같이 성스러운 물건을 들고 행진하는 연극배우처럼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접시를 들고 나왔다. 무릎을 꿇고 피터 앞에 놓인 커피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당신은 나를 파괴하려고 하고 있지?” 그녀는 물었다. “나를 동화시키려고 하고 있지? 하지만 내가 대역을 만들었어. 당신이 훨씬 더 좋아할 만한 걸로. 당신이 처음부터 진심으로 원했던 건 이거 아니야? 내가 포크 가져다줄게.” 그녀는 밋밋한 목소리로 말했다.

p.376


앞서 말했듯 이 소설은 1960년대 초반에 쓰여졌기 때문에 그 시기 캐나다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회사에서는 결혼한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 반면 남성은 결혼을 한 쪽이 사회 생활을 하기에 더 유리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를 바라보는 시각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50년도 더 전인 1960년대 캐나다나 지금의 한국이 큰 차이가 있기는커녕 비슷한 부분이 더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지금 내가 서평을 작성하고 있는 2020년 12월 즈음이나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소설의 서평이나 책을 읽은 사람은 에인슬리를 보며 얼마 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뉴스 하나를 떠올릴 것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방송인 사유리 씨가 결혼하지 않고 일본에서 기증 받은 정자로 아이를 가지고 비혼모로서 출산한 일이다.
사유리 씨를 지지하는 수많은 응원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실소가 터져나왔다.
출생율이 낮아서 문제라고 말하고, 남자들 결혼 시킨다고 돈까지 쥐어주며 다른 나라 여자와의 매매혼을 장려해온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사유리 씨와 같은 방법으로 아기를 가지는 것은 불법이라니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소설을 통해 볼 수 있는 1960년대 캐나다와 내가 살고 있는 2020년의 한국이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소설을 읽고 나자 저자 서문에서 마거릿 애트우드가 한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초반부에 여주인공의 앞에 놓인 선택의 갈림길이 막판까지 그대로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 하지만 1960년대 초반에 캐나다의 젊은 여성들은 아무리 고학력자라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의 논조는 예컨대 지금보다 사회가 더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던 1971년보다 현재에 더 걸맞지 않나 싶다. 페미니즘 운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우리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착각의 늪에 빠져 있거나 페미니즘 자체를 고민하는 데 신물이 났거나 둘 중 하나다.
(...)
1979년 에든버러에서
마거릿 애트우드

p.10-11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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