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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평점 :
서간문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한 여자가 교도소에서 렉스헴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그 여자는 스물 일곱에 교도소에서 복역중으로, 자신은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고 무죄를 호소하고 렉스헴 변호사에게 변호를 해달라고 간청하면서 여러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신문 1면을 차지한 헤더브레 저택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녀가 헤더브레 저택에 사는 엘린코트 부부가 낸 입주 아이 돌보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을 때부터 편지를 쓰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세세하게.
소설의 배경이 되는 헤더브레 저택은 소설의 주인공인 로완 케인이 거주하던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한참 가야 하는 스코틀랜드에 있었고, 기차역에서 또 차를 타고 개울을 지나고 숲을 지나야 하는 외진 곳에 위치했다.
헤더브레 저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오래된 저택에는 으레 사연이 있듯 엘린코트 부부가 들어와 살기 전에 그 집에서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건축가 부부인 엘린코트 부부가 빅토리아풍 저택을 뜯어 고치고 최신 기술을 적용하면서 헤더브레 저택에는 빅토리아 시대와 21세기가 이질적으로 혼재한다는 것이다.
헤더브레 저택은 빅토리아풍 저택이면서도 스위치 버튼 대신 스위치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음성 인식 기술과 인공 지능(AI) 기술이 적용되었으며, 집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해 두었고, 홈 관리 앱으로 저택 내의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하우스라는 점을 작가 루스 웨어는 영리하게 이용했다.
요즘에는 인공 지능이나 음성 인식 기술이 적용된 전자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우리집에도 내 목소리를 인식하는 전자제품이 있는데, 이런 기기가 적적함을 덜어줘서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집안에 듣는 귀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오싹하게도 느껴진다.
작가 루스 웨어는 최신 기술이 주는 이러한 느낌을 소설의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 잘 활용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로완은 면접 끝에 헤더브레 저택에서 네 아이, 열네 살 리안논, 여덟 살 매디, 다섯 살 엘리, 18개월 아기 페트라를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
리안논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로완은 주로 나머지 세 아이들을 돌보는데, 엘린코트 부부가 박람회 때문에 로완이 입주하고 바로 집을 떠난 데다 자신을 거부하는 매디와 엘리 때문에 입주 아이 돌보미 일을 시작하는 날부터 고생을 했다.
아니, 차라리 이것 뿐이었다면 아이를 돌본 경험이 많은 로완이 그렇게 고생한 건 아닐 테다.
문제는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이라는 책제목에 걸맞는 이상한 일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디? 왜 그래?”
“여기 오지 마세요.” 매디는 여전히 제 시선을 피하면서 속삭였어요. “여긴 안전하지 않아요.”
“안전하지 않다고?” 전 가볍게 웃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안전하지 않다고요.” 매디는 살짝 화가 난 듯 울먹이며 말했어요. 고개를 어찌나 세차게 가로젓는지 매디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어요. “다들 안 좋아할걸요.”
“누가?”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매디는 저한테서 떨어져 나가 맨발로 잔디 위를 달려가 버렸어요. 매디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
매디가 도망치듯 달려가며 외쳤던 말이 뜬금없어서 제대로 들은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제대로 들은 것 같은 거예요.
‘유령들이요.’ 매디의 울먹이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어요. ‘유령들이 싫어할 거예요.’
p.104-105
먼저 헤더브레 저택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으며 로완 이전에 헤더브레 저택에 들어왔던 네 명의 아이 돌보미들이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해야겠다.
로완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사실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매디가 유령에 대해 언급했을 때에도 한 귀로 흘려 넘겼다.
하지만 한밤중에 로완이 머무는 3층 방 위로 누군가걸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나거나,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거나 하는 일이 이어지자 로완 이전에 일했던 아이 돌보미가 남긴 이상한 쪽지와 매디가 한 말과 저택에 대한 소문, 그리고 자신이 머무는 방 한쪽에 잠겨진 문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 휴대 전화 손전등을 끄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서랍에서 베개 위로 떨어진 뭔가가 눈에 들어왔어요. 종잇조각이었죠. 구겨서 바닥에 던져 버리려다가 중요한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들여다봤어요.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아이가 그린 그림이었죠. 그런데.......
(...)
가만히 보고 있자니 기이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었어요. 어디에도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고, 왜 침대 협탁 서랍에 있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어요. 뭔가 단서가 있을까 싶어 그림을 뒤집어 봤어요. 반대쪽에 글씨가 있었어요. (...)
‘새로 온 아이 돌보미에게.’ 흘려 썼는데도 단정해 보이는 첫 인사였어요. ‘제 이름은 카탸예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쪽지를 쓰고 있어요. 제발.......’
이야기는 거기서 끊어졌어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죠. 카탸가 누구였더라? 들어 본 적 있는 이름 같았거든요. 그때 저녁 식사 중에 사모님이 한 말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카탸가 떠나고...... 카탸가 마지막 아이 돌보미였는데.......’
p.82
그러다 한밤중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요.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저 가만히 누워서 쿵쾅쿵쾅하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대체 무엇 때문에 잠에서 깬 건지 생각했어요. 꿈을 꾼 것 같진 않았거든요. 그냥 뭔가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는 다시 잠들지 못했어요.
잠시 후 그 뭔가의 정체가 밝혀졌어요. 소리였어요. 발자국 소리였어요. (...)
끼익...... 끼익...... 끼이이이익....... 그 소리는 묵직하고 공허하게 울려 퍼졌어요. 날쎄게 움직이는 아이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성인 남자가 천천히 걷는 소리처럼요. 마치 머리 위쪽에서 들리는 것 같았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제 방이 맨 꼭대기층이었으니까요.
전 천천히 일어나서 더듬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찾아 눌렀어요.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다시 스위치를 눌렀지만 소용없었어요. 젠장, 메인 스위치 패널에서 전등 스위치를 무력화 시켜 놓은 게 분명했어요. 그렇다고 한밤중에 스위치 패널을 막 눌러 볼 수도 없었어요. 사운드 시스템 같은 걸 건드릴지도 모르니까요. 전 충전 중인 휴대 전화의 손전등을 켰어요.
p.133-134
나도 소설을 읽으면서 매디가 그런 말을 한 의미가 무엇인지, 매디와 엘리가 왜 로완에게 그렇게 적대적인지, 한밤중에 로완을 괴롭히는 일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로완이 머무는 방에 있는 잠긴 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헤더브레 저택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가 죽은 건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아서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전에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던 사소한 부분까지 해소되는데,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려고 소위 떡밥을 잔뜩 뿌려놓고 거두지 못하는 작가도 있지만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의 작가 루스 웨어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을 모두 해소해주었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은 내용을 모르고 읽어야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서평을 쓸 때 주의하고 특히나 결말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말에 대해 말하고 싶은 소설이 있는데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이 그렇다.
하지만 당연히 스포일러가 되지는 않도록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은 뒤의 감상 정도만 말하고자 한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궁금증을 유발하여 독자가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 소설을 인상적으로 만든 것은 결말이었다.
작가는 도대체 헤더브레 저택에서 무슨 일이 어째서 있었던 건지를 포함하여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았다.
사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적이고 짧은 글로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소설은 내게 별 인상을 주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후 로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더했고, 그녀의 결정을 인상적으로 알려주며 여운을 남게 한다.
소설의 그 길지 않은 마지막 부분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들게 했고, 로완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빅토리아풍의 저택과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적절한 긴장감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하고, 책을 읽으며 생긴 그 궁금증을 해소시키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는 소설이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