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오브 더 시 에프 그래픽 컬렉션
딜런 메코니스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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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기까지 하고 결혼을 여섯 번이나 한 헨리 8세의 여성 편력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소설로도 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런 헨리 8세 기행의 희생자로 그와 결혼한 왕비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자녀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가 결혼을 취소하고 다시 결혼하고 또 이혼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을 꼬아놓은 덕에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이복 언니 메리 1세에 의해 런던탑에 유폐되기까지 했다.
나 또한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들, 그리고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책을 찾아 읽었던 적이 있기에, 저자가 메리 1세가 미래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유폐한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그래픽노블 <퀸 오브 더 시>에도 관심이 갔다.

책은 실물을 보니 생각보다 큼직하고 무게감 있어서 더 좋았고, 대장정을 떠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픽노블의 주인공 마거릿(애칭 매기)은 갓난아기 때 부모도 없이 배를 타고 알비온 왕국의 작은 섬에 있는 엘리시아회 수녀원에 와서 자란다.
마거릿이 살고 있는 섬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엘리시아회 수녀 여섯 명, 수녀원에서 일을 하는 모녀 세 명, 신부 한 명, 여기에 마거릿까지 총 열한 명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섬에 찾아오는 외부인이라고는 (사고를 제외하고) 일 년에 두 번 레지나 마리스호를 타고 와서 수녀원에 보급품을 전달하고 수녀원으로부터 편지나 자수를 가져가 전달해주는 선장과 선원들뿐이어서 마거릿은 섬에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마거릿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인지, 윌리엄이라는 또래 남자 아이가 섬에 온다.
다만 윌리엄은 마거릿처럼 부모 없이 홀로 섬에 온 게 아니라 엄마인 캐머런 부인과 함께 왔는데, 윌리엄은 캐머런 영주의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알비온 왕국의 에드먼드 왕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영지를 빼앗기고 살던 캐머런 성을 떠나 엄마와 단 둘이 변방의 섬에 있는 수녀원에 오게 된 것이다.
마거릿과 윌리엄은 서로 섬에서 유일한 또래 친구로서 사이좋게 잘 지냈고, 예전의 생활을 잊지 못한 캐머런 부인은 섬의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결국에는 마음을 열고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윌리엄은 섬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마거릿은 어렸을 때부터 남매처럼 함께 자란 윌리엄을 떠나 보내야만 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 뒤에는 또다른 만남이 있다는 말대로 윌리엄이 떠난 뒤에 섬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인물이 찾아오는데, 바로 알비온 왕국의 전 여왕 엘리노어다.

사실 엘리노어는 책을 펼치면 마거릿보다 앞서 만나게 되는 인물로, 여왕의 자리를 위협 받으며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충신이 왕궁에 남아 첩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할 증거로 스스로의 머리칼을 뜯어내며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어 눈도장을 쾅 찍었기에 그 등장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섬에 도착한 엘리노어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감옥 생활에 이골이 났으며 한편으로는 조건 없는 애정을 원하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엘리노어가 왜 ‘전 여왕’이 되어버렸을지 궁금할 텐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에드먼드 왕의 장녀이자 엘리노어의 이복 언니인 캐서린(케이트)이 엘리노어를 쫓아내고 왕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에드먼드 왕와 첫 번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에드먼드 왕이 첫 번째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화하는 바람에 수치스럽게 쫓겨나야 했다.
그 뒤에 에드먼드 왕은 두 번째 왕비와 결혼했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노어가 에드먼드 왕의 뒤를 이어 여왕이 되었지만, 캐서린과 그가 전통성 있는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엘리노어를 여왕 자리에서 몰아내고 감옥에까지 가두었다가 섬에 있는 수녀원에 보낸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캐서린으로서는 빼앗겼던 자기 자리를 되찾은 셈이지만 이 이야기는 캐서린이 아닌 엘리노어(정확히는 엘리노어와 함께 있는 마거릿)의 입장에서 전개되므로 캐서린이 악인으로 그려진다.

아무튼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퀸 오브 더 시>는 16세기 영국 메리 1세가 미래에 여왕이 될 이복 동생 엘리자베스 1세를 유폐한 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만큼, 그 유명한 영국의 헨리 8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캐서린은 메리 1세를 바탕으로, 엘리노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바탕으로,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 에드먼드 왕은 헨리 8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야기 속 인물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려진 복식과 외형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 8세 또는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를 알고 이 그래픽노블을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그래픽노블을 읽더라도 즐기는 데에 문제가 없지만, 헨리 8세의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흥미로울 테니 한번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일까, 섬과 마거릿에 대한 진실과 그들에게 찾아온 위기가 재미를 주면서도 은근히 현실적이었고, 지극히 인간적인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을 것만 같았다.
엘리노어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으니 마거릿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마거릿은 선하고 순수하면서도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상상력과 철 없는 면 또한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한 여자아이가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에서 자란다면 이런 아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물개 가죽을 입고 동족과 살다가 인간 어부와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물개 가죽을 잘 숨겨놓는 한 행복하게 함께 살지만 (이 부분이 꼭 <선녀와 나무꾼> 같았다) 결국 자신을 부르는 바다로 돌아간다는 신비로운 하얀 물개 셀키 이야기와 같이, 책 곳곳에 녹아든 동화적인 면이 또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마거릿이 엘리노어로부터 체스를 두는 방법을 배우면서 등장하는 체스를 소재로 사용하는 부분과 이 한 권의 그래픽노블을 마무리하는 방식까지 마음에 들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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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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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잠깐이라도 좋으니 과거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든, 돌이키고 싶은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서든, 인생의 치트키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주고 싶어서든,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 때문이든 말이다.
참고로 나는 이 모든 이유로 과거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면 고객이 과거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과거여행사를 통해 과거로 간 인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보였다.

책 속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과거여행사 이름은 히라이스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이라는 뜻을 가진 웨일스어라고 하니 과거여행사 사명으로 이렇게 모순적이면서도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이다.
런던에 본부를 둔 히라이스는 전 세계에 단 다섯 지점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히라이스 서울지점 사무실을 통해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의 명함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사람들은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히라이스 서울지점 사무실에 찾아간다.
히라이스 사무실에는 캡틴이라고 불리며 돈을 좋아하는 지점장과 세일러라고 불리는 사원들이 일하고 있고, 가성비 좋은 도깨비 여행 상품부터 테마 상품과 비싼 프리미엄 상품까지 준비되어 상담을 통해서 상품을 선택하고 금액을 지불하면 세일러가 설정해주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원하는 과거로 갈 수가 있다.
과거로 떠나기 전에 가고자 하는 시대에 사용되는 화폐로 환전을 하고 옷을 대여받아 시대에 맞는 복장을 갖추는 과정도 필요하다.
만약 혼자 과거로 가는 것이 걱정된다면 인솔자 동반 옵션을 이용할 수도 있으니, 실제로 과거여행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탄탄해보이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구멍으로 생각되는 부분 또한 있었다.
가령 과거로의 여행은 국내 한정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서양으로 떠나기도 하는데, 아무리 시대에 맞는 옷을 걸치고 외국어를 하더라도 한국인과 서양인의 외형적 차이가 분명히 날 것이고 하물며 과거로 갔으니 서양인들 사이의 동양인으로서 시선을 한몸에 받을 듯한데 자연스럽게 외국인들과 섞이는 것은 이질적으로 보였다.
또 과거로 가는 이동수단인 엘리베이터 조작에 있어서도 탑승 후 이동하고자 하는 연도를 설정하는 정도만 나오지 세세한 날짜와 시간 설정 그리고 장소를 설정하는 방법은 나오지 않아서 세세한 설정을 좋아한다면 이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딸이라니....”
“선보지 마. 결혼하지 말라고.”
“왜?”
“결혼하면 불행해지니까.”
“어떻게... 불행한데?”
“엄마 속으로 낳은 자식이 과거로 와서 그 결혼을 말릴 만큼.”
(...)
“엄마는? 그러니까... 내가 네 미래의 엄마라며?”
“응.”
“나는 어떤데?”
“무슨 말이야?”
“내 딸로 태어나서 사는 게 너도 불행하니?”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나는 아까보다 더욱 할 말을 잃었다.

p.121-122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복수를 위해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또는 반대로 엄마와 아빠의 만남을 막기 위해서, 지적 호기심 때문에, 후회되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등등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가지각색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지만 모두 우리가 한 번쯤 생각했을 만한, 공감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에 이야기에 이입이 잘 되었다.

책에 수록된 단편 중 <시한부 소녀의 모험>에서는 나만큼이나 영화 <타이타닉>을 인상깊게 본 것 같은 시한부 소녀가 과거로 가서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에 올라타는데, 그곳에서 잭을 만나고 둘이 함께 타이타닉을 누비며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 영화를 본 독자로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주인공이 잭을 만날 수 있다는 건지 의아할 텐데 그 의문은 소설을 직접 읽으며 확인해보시라!)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를 통해서 어느 시대 어느 장소든 갈 수 있지만 ‘시간법’은 꼭 지켜야 하는데, 죽은 자를 살려내거나 과거인을 죽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비롯한 몇 가지가 있다.
온라인에서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아기 히틀러(이토 히로부미나 이완용이 이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를 죽일 거나는 질문을 봤었는데 시간법에 따르면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니 아쉬워 할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하지만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 <과거여행사 히라이스>에도 자신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역사 속 인물들,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라느니 하는 유언비어로 죽음 이후에도 오랫동안 억울한 시간을 보낸 마리 앙투아네트와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장국영의 죽음을 막겠다며 영웅 심리로 무장한 채 과거로 떠난 이도 있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여러 단편과 에필로그 두 개로 구성되어 있어서 속도감 있게 읽혔고,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와 한 단편에서 등장했던 인물의 흔적을 다른 단편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다만 이 소설은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에 이은 고호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인데도 간혹 매끄럽지 않은, 아래처럼 어색한 문장을 읽게 될 때가 있었다.


(...) 점원은 요즘 유행이 뭐가 좋고 옷 재질이 이러쿵저러쿵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내 눈에는 빨간 에나멜 구두와 레이스 달린 망사양말을 신고 있는 마네킹이었다.

p.170


사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도 그렇고, 같은 단어의 반복된 사용이나 어색한 조사나 수식어 사용, 그리고 주어 서술어의 불일치 때문에 매끄럽지 않은 문장을 읽게 될 때가 있어 (이에 대해서는 모든 서평에 언급하지는 않았다) 책 내용이 좋으니 조금만 잘 다듬었다면 책의 완성도가 많이 높아졌을 텐데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 떠올려보려고 하니 의외로 번역서에서는 이런 문장을 본 기억이 없다)

이런 문제는 글을 쓰는 작가와 작가의 글을 받아 읽고 교정교열하는 일을 담당하는 출판사 편집자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나은 책을 기대해본다.


“후회란 놈은 꼭 이렇게 뒤통수를 친단게. 앞에서 오믄 을매나 좋아. 사람이 살믄서 후회를 어찌 안 하고 살겠느냐마는 자네는 그래도 후회를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가는 인생을 살진 말어. 그것만 명심해두 자알 산 거시여.”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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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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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고 무겁다는 역사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보다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도 그러한 책 중 하나다.
남의 일기처럼 재미있는 글이 또 있을까?
조선시대에 쓰인 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실제로 조선시대에살았던 인물들이 쓴 일기를 통해 조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다만 그 시대에 점잖게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계층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모두 양반이 쓴 일기로 구성되어 있어 주로 양반의 생활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 책에 수록된 일기에 한 가지 특성이 부여되는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기에는 개인적인 일화에 더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은 내면까지 적혀있지만 양반들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을 고려하고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자의 일기라 하더라도 허락 없이 읽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같은 독자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조선시대 일기와 그에 대한 해설 모두 현대적인 표현으로 적으며 독자와의 거리를 확 좁히려고 신경썼다는 것이다.

본문은 양반들의 일기와 그 일기를 해설하는 저자의 글, 그리고 해당 내용의 이해를 돕는 조선시대의 제도나 문화를 설명한 상자 안의 글,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었는데, 앞서 말했듯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로 풀어내어 독자가 가볍게 읽으면서 조선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뉴비, 고인물 파티, 국룰, CEO 같은 단어로 조선시대 일기 속 상황을 설명하고, 조선시대의 관청에서 일하는 관리의 직함에도 대리, 차장, 과장을 썼을 정도다.

거기에다 저자는 일기에 담긴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이어서, 예컨대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지금 또는 과거에 오랜 시간 시험이나 취업을 준비한 독자는 문과 과거에 계속 낙방하여 무과로 전환하면서 과거 준비에만 총 12년을 보내고 또 수년의 기다림 끝에 관직을 받은 노상추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책에 수록된 사진 자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저자가 조선시대 일기를 필사한 것이고 (그러니까 실제 조선시대 일기 사진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그림이나 문서의 사진 자료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인데, 저자 개인으로서는 자신이 필사한 자료가 책에 수록되는 일이 의미가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실제 일기의 사진 자료가 들어갔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공정한 시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부정행위가 관례까지 되어버린 난장판 과거시험, 오랜 기간의 공부 끝에 어렵사리 과거에 급제했지만 그 이후 관직을 받기까지 또 기다림의 시간, 그렇게 드디어 관리가 되었으나 겪어야 하는 곤욕스러운 신고식, 수령과 양반 사이의 투쟁, 온갖 이야기에 권위 있고 멋있게 등장해서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턱도 없는 출장비 때문에 자신과 수행단의 의식주를 해결하느라 애쓰며 지방 파견을 가야만 했던 암행어사(‘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 라는 제목에서 암행어사가 되는 일은 그만큼 기꺼운 일이 아니었음이 느껴진다), 투옥과 유배 생활, 할아버지가 쓴 손자 육아일기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는 가족간의 갈등, 부동산에 큰 관심이 쏠린 지금 읽어 더 재미있던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마냥 을이었을 것만 같았는데 실은 양반을 사칭하거나 중간에 횡령하며 꼼수를 부리기도 했던 노비들의 이야기까지, 생각밖의 조선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인데, 사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는 이전 저작 외에는 역사와 관련된 이력이 보이지 않아 책을 읽기 전에는 전문성면에서 조금 걱정했지만, 저자는 전문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문 검수 등에는 고전번역교육원의 교수와 선생의 도움을 받아 책을 집필했다고 했고, 책 말미에 정리된 참고문헌과 도판출처도 그런 걱정은 덜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각 일기에 담긴 이야기에 저자의 해설까지 더해지니 ‘역사 드라마보다 재밌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라는 문구에 맞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조선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재미있고 부담없이 가볍게 읽으며 조선시대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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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미술관 - 캔버스에 투영된 과학의 뮤즈
전창림 외 지음 / 어바웃어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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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문을 문과, 이과, 그리고 예체능으로 나누곤 하고, 사람 또한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으로 나누면서 서로의 사고방식 차이를 재미삼을 정도로 이런 분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그만큼 문과와 이과는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게 하는, 거리가 있는 학문으로 생각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그래도 문과와 예체능은 한데 묶이기도 할 정도로 거리감이 없는데 반하여, 문과와 이과는 정반대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나름대로 여러 예술 분야 도서를 읽고 또 살펴봤지만 과학과 미술의 조합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때문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는 출간 소식이 보일 때마다 눈길이 가며 ‘대작’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과연 각종 추천 도서와 우수 도서 목록에 오르는 시리즈가 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아직까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지 않았는데 이번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그러니까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 <미술관에 간 수학자>, <미술관에 간 의학자>, 그리고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이 다섯 권 중 호응이 좋았던 내용을 묶은 <과학자의 미술관>이 출간되었고, 이 소식을 보고 ‘내가 이 책으로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으려고 지금가지 안 읽었나보다’ 했다.

<과학자의 미술관>은 단순히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일부를 묶은 것이 아니라 양장본으로 재탄생 시키면서 디자인과 내용에 더욱 신경을 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를 활용하여 미술작품 안에 숨겨진 과학을 표현한 책 커버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그 커버를 벗기면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모나리자와 미술관을 옮겨 놓은 듯한 목차를 보며 책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었고, (단권으로 출판된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내 눈으로 직접 비교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판형을 키우면서 명화 도판 크기도 키웠으며 책 말미에 있는 ‘History of Science and Art’ 코너도 <과학자의 미술관>에 추가된 부분이라고 하니 내용도 보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저자들은 화학공학, 수학, 의학, 물리학 등을 전공하고 교수나 의사로 활동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고, 특히 전창림 교수님은 미술과 화학의 접점을 찾는 일을 꾸준히 해오셨기 때문에 글이 더욱 기대되었다.

책은 프롤로그, ‘화학자의 미술관’, ‘물리학자의 미술관’, ‘수학자의 미술관’, ‘의학자의 미술관’, 특별부록인 History of Science and Art 그리고 작품 찾아보기 순으로 구성되었는데, 화학, 물리학, 수학, 의학 중 미술과 가장 떼어놓을 수 없는 분야는 ‘화학’이 아닐까 싶다.
회화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장은 ‘화학자의 미술관’이고, 화학 작용으로 인한 작품의 변색과 독이 된 물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연금술사와 산소 같은 화학에 대한 이야기와 미술 작품에 분석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화학자의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화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림 속 상징을 통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 또한 상당하다는 게 느껴졌다.

다음 장은 ‘물리학자의 미술관’이고, ‘화학자의 미술관’에서 회화를 다루었다면 ‘물리학자의 미술관’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다루고 빅토르 바자렐리, 조지아 오키프, 잭슨 폴록,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추상적인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리고 ‘물리학자의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물리학자가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존에 내가 미술 작품을 보는 것과 이렇게 다르구나를 느낄 수 있었는데, 클로드 모네 그림 속 물결을 보며 파동에 대해 생각하고 수면을 보고는 반사와 투과를 떠올리다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미술 작품을 이런 시각으로 볼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세 번째 장 ‘수학자의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원근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미술의 기초를 쌓는 데 도움이 되었고, 미술 속 수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황금비율에 대한 내용도 빠지지 않고 다룬다.
또 유명한 고대 수학자들을 한 점의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 <아테네학당>을 현대의 수학자가 지나칠 수 있을리가 없었으니, <아테네학당>을 함께 보며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를 비롯한 고대 수학자들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물리학자의 미술관’과 ‘수학자의 미술관’ 모두에서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다루어서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각자 어떻게 보았는지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장 ‘의학자의 미술관’을 읽기 전에는 의학과 미술이 이렇게 책이 쓰일 정도로 관련이 있나 싶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더욱 주목을 받은 페스트(흑사병), 스페인 독감, 에드가 드가와 빈센트 반 고흐 등 많은 예술가들이 즐겼지만 뇌세포를 파괴하고 환각을 일으키는 압생트 같은 익숙한 소재부터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질환인 농축이골증처럼 처음 보는 질병에 대한 지식을 통해 내가 몰랐던 그림의 배경과 예술가에 대해 알아가며 의학 또한 미술 작품과 예술가를 깊이 이해하게 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술을 마시면 왜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는지, 와인은 건강에 좋다고 하던데 얼마나 마시면 되는지와 같이 독자가 궁금해 할 생활 밀착 의학 정보를 알려주는 건 덤이다.

이렇게 본문이 끝나면 <과학자의 미술관>에 추가된 특별부록인 ‘History of Science and Art’로 간단한 시대별 미술의 특징과 대표 작품 그리고 과학사를 한눈에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책은 그림과 사진 자료도 중요한 법이다.
그래서 명화 도판 크기를 키웠다는 소식이 반가웠는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 자료도 여럿에 심지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 자료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명화 크기가 워낙 크다보니 책의 한 페이지를 그림으로 가득 채워도 작은 부분까지 속속들이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사실 일부는 그 이전에 선명도가 아쉬웠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부분을 큰 그림에서 떼어 확대한 부분도로 어느 정도 보완했다.

또한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자료뿐만 아니라 과학 지식을 설명하는 그림과 사진 자료들을 적극 활용해서 특히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물리학과 수학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과학자의 미술관>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을 보며 시야를 넓히고 싶고, 또 과학과 미술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고 싶지만 <미술관에 간 지식인> 다섯 권을 다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독자에게 좋은 선택지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이미 읽었어도 이렇게 예술적인 디자인에 튼튼한 양장본으로 과학과 미술, 이 두 분야 융합의 결정체를 소장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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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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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영혼, 사후세계, 초자연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초 영국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철학적 사유가 담긴 책으로, 공포심을 자아내지는 않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읽지 못하는 독자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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