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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평점 :
*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전부터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살로니카의 아이들>에도 관심이 갔다.
심지어 아이들의 필독서여서 어릴 적 나도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쓴 작가 미치 앨봄이 오래 전부터 쓰고 싶어했던 소설이라는 것과, 그동안 책을 읽으며 생긴 윌북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에 대한 믿음이 더해지니 기대도 됐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중에도 느꼈지만,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고 나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때이며, 장소 배경은 그리스의 살로니카, 많은 사람들이 테살로니키라고 부르는 곳.
그곳에는 5만 명의 유대인이 살았기에 유대인 비율이 높았고, 나치가 유럽을 쓸어버렸을 때 마찬가지로 휩쓸린 데였다.
그간 적지 않은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당시 그리스에 살던 유대인은 생각지 못했다. (작가는 이를 알리기 위해 이 작품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가슴에 노란 별을 달았고, 가게에 출입을 금지 당했으며, 원하는 종교를 믿을 권리와 재산과 집을 빼았기고, 게토로 쫓겨나고, 기차 화물칸에 실려 강제 수용소에 갇히고, 가족과 헤어지고, 선별 당해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거나 끔찍이도 열악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겪어야 했던 일들은 유럽의 다른 유대인과 마찬가지였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세상에는 네 가지 방위가 있어요. 그리고 계절도 네 가지고요.
수학의 기본 셈법도 네 가지이고 지구계 또한 지권과 수권, 기권, 생물권 네 가지로 분류되죠. 성서에는 에덴동산의 주변에 강 네 줄기가 흐른다고 적혀 있어요. 천국에는 네 갈래 바람이 불고요. 카드 한 벌에는 네 가지 무늬가 들어 있어요. 자동차 바 퀴는 네 개, 테이블의 다리도 네 개죠.
4는 토대예요. 4는 균형이죠. 4는 모든 누를 거쳐 완전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만루 홈런을 뜻해요. 우리가 출발한 곳, 다름 아닌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죠.”
이야기의 중심 인물은 네 명인데, 그중 셋은 살로니카 한 동네에서 함께 놀며 자란 십대 초중반의 아이들이다.
주인공 니코는 열두 살을 앞두었던 소년으로, 금발에 파란색 벽안의 호감 가는 외모 덕분에 유대인으로 의심 받지 않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이 아닌 독일이 추구하는 아리아인의 외형이었기에 시대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니코는 특이하게도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설사 자기에게 불리할지라도 진실만을 말하곤 했던 것이다.
또다른 중심 인물인 세바스티안은 니코의 형으로 열다섯 정도 되었고, 니코와는 반대로 어두운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다.
그는 니코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속이 비뚤어져 있었는데, 늘 동생이 자신보다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세바스티안이 짝사랑하는 소녀까지 그랬다.
그 열두 살 소녀의 이름은 파니고 마지막으로 소개할 아이다.
소녀는 검은 머리칼에 예쁘장했지만, 니코와 달리 여자이기에 그런 외모는 전쟁 상황에서 도움은커녕 위험이 될뿐이다.
이 세 아이들 외에 남은 한 명의 중심인물은 뜻밖이다.
우도 그라프라는 나치 장교였으니까 말이다.
이 자가 니코의 인생을, 아니, 수많은 살로니카 거주 유대인의 인생을 직접적으로 송두리째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그는 히틀러를 늑대라고 부르며 히틀러의 말도 안 되는 사상을 추종했고,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처리하며 히틀러와 함께 독일을 위대하게 만들어 그 옆에서 승승장구 하기를 꾀했다.
그래서 니코가 동네에서 거짓말하지 않는 아이로 알려져있다는 걸 알고 아무것도 모르던 소년을 이용해먹은 것이다.
유대인이 의심 없이, 지체 없이 열차 화물칸에 타도록, 강제 수용소행을 새로운 정착지행이라고 니코를 속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이 거짓을 말하게끔 일을 꾸몄다.
니코는 우도 그라프의 말을 믿고 기차 플랫폼을 쏘다니며 기차를 타고 가면 일자리도 얻을 수 있고 가족과 다시 함께 살 수 있다고 했고, 이 유대인 소년의 말을 믿은 사람들은 여기에서보다 나은 생활을 기대하며 화물칸에 몸을 실었다.
그들 중에는 니코와 친분이 있는 이웃과 친구뿐만이 아니라 가족도 포함되었고, 자신이 한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스스로 이웃과 친구와 가족을 수용소로 보냈다는 걸 알고, 그 누구보다 진실과 가까웠던 소년은 남은 평생을 거짓으로 점철되어 진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인 니코 크리스피스로 살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속, 죄를 용서받기에 충분할 만큼 탑이 새하얘질 때까지 칠하고 칠했던 죄수처럼, 그리고 그 이야기가 준 교훈처럼, 그는 용서 받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내게 되었다.
이야기는 위 네 인물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전개된다.
속죄 길을 걷는 니코, 가족과 절멸 수용소로 간 세바스티안, “여기서 벌어진 일을 세상에 알려달라”는 임무를 받고 수용소행 열차에서 탈출하게 된 파니, 그리고 나치 우도 그라프.
네 사람이 홀로코스트를 대하는 태도도 각기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 한데, 세월이 흘러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이이며 진실의 친밀한 친구였던 니코는 거짓뿐인 사람이 되고 세바스티안이 진실을 좇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작가가 집필을 하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참고하고 관련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자료를 꼼꼼히 조사했다는 게 곳곳에서 느껴지는 작품이었고, 비단 당시 모습이나 이들이 겪었던 일들 뿐만이 아니라 행동과 심리에서도 그 흔적이 느껴졌다.
또, 이 작품의 큰 특징 중 하나인 문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진실’이라고 소개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 때문에 문체가 신선했는데, 의외로 잘 읽히고 몰입도 잘 되었다.
책장을 좀 넘기다 보면 훌쩍 수십 장을 읽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들을 이야기는 마음 놓고 믿어도 좋아요.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이야기이고, 저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까요.
(…)
저는 여러분의 힘으로는 따돌릴 수 없는 그림자이자, 여러분의 마지막 표정을 비춰줄 거울이랍니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고개를 숙여 제 눈길을 피한 채 평생을 보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장담하건대 여러분이 마지막 순간에 마주 보는 건 바로 저예요.
저는 진실이거든요.
그리고 이것은 저를 망가뜨리려 했던 소년의 이야기예요.”
이처럼 의미 있는 이야기인 데다 실화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하고 완성도 높은 소설이니 흠잡을 데가 없었으며, 특히 얼마 전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소식이 있었기에 더욱이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