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오브 더 시 에프 그래픽 컬렉션
딜런 메코니스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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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기까지 하고 결혼을 여섯 번이나 한 헨리 8세의 여성 편력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소설로도 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런 헨리 8세 기행의 희생자로 그와 결혼한 왕비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자녀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가 결혼을 취소하고 다시 결혼하고 또 이혼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을 꼬아놓은 덕에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이복 언니 메리 1세에 의해 런던탑에 유폐되기까지 했다.
나 또한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들, 그리고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책을 찾아 읽었던 적이 있기에, 저자가 메리 1세가 미래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유폐한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그래픽노블 <퀸 오브 더 시>에도 관심이 갔다.

책은 실물을 보니 생각보다 큼직하고 무게감 있어서 더 좋았고, 대장정을 떠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픽노블의 주인공 마거릿(애칭 매기)은 갓난아기 때 부모도 없이 배를 타고 알비온 왕국의 작은 섬에 있는 엘리시아회 수녀원에 와서 자란다.
마거릿이 살고 있는 섬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엘리시아회 수녀 여섯 명, 수녀원에서 일을 하는 모녀 세 명, 신부 한 명, 여기에 마거릿까지 총 열한 명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섬에 찾아오는 외부인이라고는 (사고를 제외하고) 일 년에 두 번 레지나 마리스호를 타고 와서 수녀원에 보급품을 전달하고 수녀원으로부터 편지나 자수를 가져가 전달해주는 선장과 선원들뿐이어서 마거릿은 섬에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마거릿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인지, 윌리엄이라는 또래 남자 아이가 섬에 온다.
다만 윌리엄은 마거릿처럼 부모 없이 홀로 섬에 온 게 아니라 엄마인 캐머런 부인과 함께 왔는데, 윌리엄은 캐머런 영주의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알비온 왕국의 에드먼드 왕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영지를 빼앗기고 살던 캐머런 성을 떠나 엄마와 단 둘이 변방의 섬에 있는 수녀원에 오게 된 것이다.
마거릿과 윌리엄은 서로 섬에서 유일한 또래 친구로서 사이좋게 잘 지냈고, 예전의 생활을 잊지 못한 캐머런 부인은 섬의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결국에는 마음을 열고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윌리엄은 섬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마거릿은 어렸을 때부터 남매처럼 함께 자란 윌리엄을 떠나 보내야만 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 뒤에는 또다른 만남이 있다는 말대로 윌리엄이 떠난 뒤에 섬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인물이 찾아오는데, 바로 알비온 왕국의 전 여왕 엘리노어다.

사실 엘리노어는 책을 펼치면 마거릿보다 앞서 만나게 되는 인물로, 여왕의 자리를 위협 받으며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충신이 왕궁에 남아 첩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할 증거로 스스로의 머리칼을 뜯어내며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어 눈도장을 쾅 찍었기에 그 등장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섬에 도착한 엘리노어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리 감옥 생활에 이골이 났으며 한편으로는 조건 없는 애정을 원하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엘리노어가 왜 ‘전 여왕’이 되어버렸을지 궁금할 텐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에드먼드 왕의 장녀이자 엘리노어의 이복 언니인 캐서린(케이트)이 엘리노어를 쫓아내고 왕좌에 올랐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에드먼드 왕와 첫 번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에드먼드 왕이 첫 번째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화하는 바람에 수치스럽게 쫓겨나야 했다.
그 뒤에 에드먼드 왕은 두 번째 왕비와 결혼했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노어가 에드먼드 왕의 뒤를 이어 여왕이 되었지만, 캐서린과 그가 전통성 있는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엘리노어를 여왕 자리에서 몰아내고 감옥에까지 가두었다가 섬에 있는 수녀원에 보낸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캐서린으로서는 빼앗겼던 자기 자리를 되찾은 셈이지만 이 이야기는 캐서린이 아닌 엘리노어(정확히는 엘리노어와 함께 있는 마거릿)의 입장에서 전개되므로 캐서린이 악인으로 그려진다.

아무튼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퀸 오브 더 시>는 16세기 영국 메리 1세가 미래에 여왕이 될 이복 동생 엘리자베스 1세를 유폐한 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만큼, 그 유명한 영국의 헨리 8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캐서린은 메리 1세를 바탕으로, 엘리노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바탕으로,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 에드먼드 왕은 헨리 8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야기 속 인물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려진 복식과 외형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 8세 또는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를 알고 이 그래픽노블을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그래픽노블을 읽더라도 즐기는 데에 문제가 없지만, 헨리 8세의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흥미로울 테니 한번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일까, 섬과 마거릿에 대한 진실과 그들에게 찾아온 위기가 재미를 주면서도 은근히 현실적이었고, 지극히 인간적인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을 것만 같았다.
엘리노어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으니 마거릿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마거릿은 선하고 순수하면서도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상상력과 철 없는 면 또한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한 여자아이가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에서 자란다면 이런 아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물개 가죽을 입고 동족과 살다가 인간 어부와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물개 가죽을 잘 숨겨놓는 한 행복하게 함께 살지만 (이 부분이 꼭 <선녀와 나무꾼> 같았다) 결국 자신을 부르는 바다로 돌아간다는 신비로운 하얀 물개 셀키 이야기와 같이, 책 곳곳에 녹아든 동화적인 면이 또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마거릿이 엘리노어로부터 체스를 두는 방법을 배우면서 등장하는 체스를 소재로 사용하는 부분과 이 한 권의 그래픽노블을 마무리하는 방식까지 마음에 들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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