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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실 - 슬픔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는가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박현숙 옮김 / 청미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묵직한 책이다.
그래서 회피하고 싶어서였을까?
출간되자마자 주문해서 받아놓고, 이웃 님 몇 분께 이벤트로 나눔까지 하고,
정작 나는 이제서야 읽었다.
결론은 생각보다 더 좋다, 였다.
제목이 '모친 상실'이다 보니 역시 모친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애증이 혼재된 모자 관계의 경우,
모친을 잃고 난 뒤의 심리 반응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29쪽)
"부모로서의 역할은 다했지만 자녀를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했던
지배욕이 강한 모친이었기 때문에,
모친을 떠올리면 마음이 우울하고 성인이 될 후로는
모친과 거리를 둔 사람도 막상 모친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된다.
제멋대로였지만 악의는 없었던 모친, 그런 모친을 멀리하며
외롭게 만들어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104쪽)
우리 모녀의 경우, 애증이 혼재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임감 강하신 양친은 얼마나 서로 사랑하며 사셨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을 지킨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만 41년의 세월 정말 앞을 보며 달려 오셨다.
그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철도 관련 공무원이셨던 아빠는 집에 계셨던 기억이 별로 없이, 늘 단신부임이셨고,
엄마는 아빠의 빈자리까지 홀로 채우며, 시어머니와 아이들 셋을 건사하셨다.
내가 아이들을 낳아 키워보니 하나둘도 힘든데,
셋을, 게다가 어른까지 모시며 키워냈다는 것은
정말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객관적인 사실을 두고 보면 경탄을 금치 못하겠으나, 엄마와의 관계는 늘 대화가 막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다른 사람들의 모든 게 부러우셨다. 그리고 우리를 탓하셨다.
나는 반장에 뽑혀서 와도 하기 싫다며 기권하는 위인이었다.
리더십이 없다고 얼마나 시달렸는지... (평양 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마는 거지...)
나름대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딸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늘 엄마에겐 부족했다.
늘 전교 상위권의 성적이어도 아빠 고생하신다며 몇 등 더 높게 부풀려 아빠에게 말했고,
없는 사실까지도 꾸며서 지인들에게 자랑하곤 하셨다.
엄마가 뭐라고 어떻게 꾸며서 말을 해 놨을지 모르니, 자연히 아빠와도 소통의 단절,
동네 아줌마들에게도 인사 외에는 뭘 물어보셔도 대충 흐리고 지나갔다.
이제 나이드시니, 미주알고주알 엄마와 수다떠는 살가운 딸이 또 부러우신가 보다.
유감이지만, 그건 해 드릴 수가 없다.
그건 어떤 모녀가 기나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아온 세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부채의식"이 내 삶을 이끈 면도 없지 않아
능력에 부칠 만큼 노력하며 살아왔고 그만큼 충실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엄마와 대화를 하면 다음 말이 막힌다.
타인에 대한 깎아내림, 험담...
부모님께 예를 다하여 대하고는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
다만 부모님이든 누구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또는 나 자신이 '돌연사'이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똑같은 모친의 죽음이라고 해도 예기치 못한 돌연사의 경우와
위중한 병환으로 죽음을 준비해온 경우에는,
유족이 받게 되는 충격에 크게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겪은 유족의 충격이 크고
스트레스 반응 또한 강하다는 건 당연한 예측이다."(52쪽)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다 보니,
모친으로서의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게 된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추호도 없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장성하여 죽음과 삶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을 때,
그때 나도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염세적인 면이 없지 않아 20대 때는 이제 죽어도 별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킬 것이 많아지니 생에 대한 집착도 가지게 된다.
"대상 상실을 경험한 사람은 상실감에 좌절하지 않도록
두 가지 대처 행동을 적절히 번갈아가며 취해야 한다.
즉 상실이라는 괴로운 현실을 직시하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업과,
괴로운 일은 일단 잊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적응 행동,
이 두 가지 행동을 유연하게 취하는 것이다."(143쪽)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애도의 시간을 갖되,
앞으로 살아가야 할 힘도 새로이 하며 적응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만약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아마 아이들이 아직 어린 상태(미성년자)에서 내가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면,
목표 지향적인 나의 성격이라면 애도는 일단 미뤄두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여러 방도를 먼저 해결할 것 같다.
가령, 금감원 사이트에 들어가 가용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을 먼저 파악할 것이고,
내가 일할 수 있는 자원을 극대화하겠지.
그리고 아이들의 정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양가 부모님(생존하신다면), 내 동생, 교회 등
정서적 자원도 최대한 파악해 둘 것 같다.
그리고 나 혼자여도 되는 시간에 "애도"에 온전히 빠지겠지.
만약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 남편이 죽는다면,
그땐 온전히 남편에 대한 추억과 애도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마흔에 딱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를 맞은 기분이다.
책을 읽으며 가끔 덮고 생각해 보며, 지금의 삶이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함을 깨닫는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단순하고 순진한 결론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