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아사이 료 지음, 곽세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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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일본 MZ세대 작가의 기수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아사이 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근년, 에세이가 번역 출간되어서 나도 모르게 이번 책도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소설이었다. 제목이 에세이스럽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마존 재팬에서 제목을 접하고 "죽을 이유(시니가이)"가 뭐지, 삶의 보람(이키가이)도 아니고, 죽을 보람이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카아이의 반의어로 작가가 만든 말이라고 했다. 독자 별점도 무척 높고 평이 좋았던 것 같아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스포 포함]

이야기는 간호사로 일하는 20대 여성 유리코와 친한 친구가 전학 가서 의기소침해진 그녀의 열 살 이상 터울이 지는 남동생 쇼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유리코가 일하는 병원에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도모야라는 청년과 그 청년의 절친한 친구로 날마다 곁에서 간병하는 유스케라는 청년을 보고 유리코는 동생 쇼타를 유스케에게 소개해준다. 유스케는 쇼타에게 언젠가 또 좋은 친구를 만날 거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러고 나서 이어서 유스케와 도모야의 긴 우정 혹은 대립의 서사가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에 걸쳐 이어진다. 홋카이도의 초등학교로 전학 간 마에다 가즈히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친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유스케와 도모야의 우정이 신기하다. 유스케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때로는 강압적인 태도로 아이들을 주도하는 편이고 도모야는 늘 침착하고 조용하게 제 할 일을 하는 타입이다. 가즈히로가 좋아하는 <제국의 법칙>이라는 만화책의 사령관의 모습에 심취한 유스케는 그 흉내를 내며 남자아이들을 이끌려 한다. 학교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던 행사들이 줄줄이 '다칠 위험'을 구실로 폐지되어 분개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면서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특히 대학생이 되어서도 유스케는 자신이 살아갈 이유,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무언가에 맞서 대립각을 세우고 선봉에 서서 이끌고 있다. 도시 전설처럼 인류는 '산족'과 '바다족'의 대립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둘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이 청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것을 연구해온 것은 다름 아닌 도모야의 아버지였다. 도모야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유스케와 도모야는 상극이므로 결코 친해질 수 없다고 한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일부러 유스케와 교제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홋카이도 대학의 여러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자신이 살아갈 의미, 보람, 이유를 제 자신에게 증명하듯이 무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모야는 아버지의 황당무계한 이론에 심취하여 사기꾼 집단으로 제 발로 들어간 유스케를 구하러 갔다가 유스케가 밀치는 바람에 머리를 다치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청력이 돌아오며 병실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고 과거를 회상하며 대립에 대해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생각한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누군가와 대립한다는 거."

...

"단, 중요한 건 그 마음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413, 414쪽)

도모야와 같은 바다족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많은 여자친구 아야나의 말이다. 아야나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처럼 여자아이들 중에서도 유스케 같은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립, 혹은 경쟁, 다름을 부인하지 않는다. 경쟁상대가 있을 때 수영 결과가 더 좋게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을 갈라 그음으로써 존재를 확인하는 거이 아닌, 그렇다고 완전히 섞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것도 아닌, 따로 존재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해볼 순 없을까? 그것만으로는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에 부족한 걸까?'

(430쪽)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대립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나가면 돼. 그걸로 충분해. 그렇게 살다 보면 대립의 원인이었던 '다름'이 실은 우리를 이어주는 '결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내가 유스케를 생각하면 할수록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말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야.'

(431쪽)

대립하고 비교하며 존재의 의미,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은 비단 어느 한 세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밟고 군림하려는 심리, 나는 너와 다르다는 우월감,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하고, 그 관심을 잃을 것 같으면 또 다른 이슈를 급조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외롭고 불안하고 누군가의 따뜻한 품을 그저 그리워하는 모습이 우리 속에 모두 공존한다.

뭘 말하고자 하는지 2/3 지점에 가서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그전까지는 잘 읽히기는 하지만 뭘 말하려는지 다소 혼란스러웠는데 역시 시대와 사람을 통찰하는 예리한 시각을 통통 튀는 감각으로 풀어내준 것 같다.

전향적, 저돌적인 산족과 일견 평온하거나 혹은 세계에 무관심해 보일 수도 있는 바다족의 개념도 흥미로웠다. MBTI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이 일부 녹아 있는 것 아닐까? 과학 실험에도 대조군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다름을 앎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식물인간 상태의 도모야의 대사처럼 '결속'을 위해 사용하면 좋으련만 인간의 본성일까 상처받고 자존심이 손상되는 걸 피하고 싶어서일까 "어쩐지. 그래서 난 쟤가 생리적으로 싫더라..."라고 말하며 피하고 싶은 심리는 나이가 들며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다양성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각 사람을 '속성'으로 묶어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소속 집단을 파악하고 더 알려 하지 않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것이 차별의 속성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꼰대화'인 것 같다.

저자의 나오키상 수상작 <누구>를 읽을 때도 그들 속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고 숨이 막힐 때도 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유스케의 등장부터 "어휴, 딱 질색이야."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솟은 것을 보면 난 바다족에 속하나 싶기도 했다. 대립과 다름에 관해 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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