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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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덧없음을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외치고 있다. 본인도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작품의 초반에는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려니 생각했다. 새벽, 우유부단한 베르나르가 사랑하는 조제에게 전화를 걸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베르나르가 원하는 조제가 아닌 조제의 새로운 애인, 자크가 베르나르의 전화를 받게 되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는 통속극의 주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연애소설에서 볼 수 없는 작가만의 차가운 시선이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있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내가 있음에도 옛 연인을 사랑하는 남자, 베르나르.
옛 사랑을 보낸 뒤 새로운 사랑을 확신할 수 없어 마음이 복잡한 여자, 조제.
남편만을 바라보며 그의 사랑을 원하는 젊은 부인, 니콜.
사랑 그대로만을 볼 줄 아는 조제의 새로운 사랑, 자크
매력적인 여배우를 사랑하게 된 중년의 남편, 알랭.
남편의 마음을 알지만 짐짓 모르는 척 하는 중년부인, 파니.
치명적 매력으로 타인의 마음을 손쉽게 얻는 여배우,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순박한 시골 청년, 에두아르.
베아트리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능력남, 졸리오.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9명의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작품을 읽기 전부터 유명한 '조제'는 일본영화를 통해 자주 언급되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익숙한 조제와 공감대를 함께 하면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조제가 아닌 베르나르의 마음으로 공감대를 옮겨가고 있었다. 나에게는 베르나르의 마음이 가장 와 닿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아내가 있지만 조제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베르나르는 결단성이 없는, 내가 싫어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조제를 그토록 사랑하면 아내에게 더 이상 몹쓸 짓을 그만하고 태도를 분명히 하란 말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으로 베르나르의 답답한 태도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베르나르야말로 우리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작품의 말미에 베르나르와 조제는 만난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그와 새로운 사랑을 확신한 그녀의 대화이다.
베르나르 입장에서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겠노라는 의미로 던진 의미심장한 말이고, 조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사랑하는 감정이 세월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가를 인정하는 말로 나는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원에서 자칫 조금이라도 금을 밟게 되면 아름다운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된다. 차라리 원 밖으로 나오면 지옥탈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 밖으로 나오기란 매우 어렵다. 내가 아닌 타인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인간의 사랑은 덧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덧없다"는 "무의미하다"가 아니다. 『한 달 후, 일 년 후』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랑을 바라본 작품이다. 작가의 시린 시선으로 1957년에 태어난 이 작품은 지금 읽어도 전혀 구태의연하지 않다. 앞으로 50년 뒤에 읽게 되더라도 『한 달 후, 일 년 후』는 그 반짝임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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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배회자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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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배회자』는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시드니 샐던'이나 '존 그리샴'은 알지만 작가 '제임스 페터슨'은 『한밤의 배회자』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제임스 페터슨'은 꼭 기억해야할 작가가 되었다. 1억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또 글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글이든 초반에는 공감대를 형성하느라 독자의 입장에서 크든 작든 지루한 기분이 들게 된다. 지루함이 금방 떨쳐지면 책을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이고 지루함이 점점 커지면 그 책은 손에서 놓게 된다. 바쁜 요즘을 살아가는 독자이기에 누구나 한번쯤은 후자 쪽을 경험했으리라. 하지만 작가 제임스 페터슨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다. 그는 이러한 지루함을 차단해버리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2장 이내의 분량으로 각 플롯을 구성하여 총 13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의 장면(씬:scene)을 각 장으로 분리시킨 느낌이 든다. 이런 구성은 처음부터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효과를 주는 듯 하다.
현장에서 뛰고 싶은 열혈 부서장 린지, 린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항상 그녀에게 도움을 주는 검시관 클레어, 좌충우돌 성격만큼 사건을 한 눈에 바라보는 기자 신디, 이번 시리즈에서 어머니를 잃게 되는 전도유망한 변호사 유키. 네 여인들은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의 붙박이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린지의 현장 동료로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재코비 경위, 출중한 외모에 능력까지 두루 갖춘 꽃미남 컨클린 형사. 이 두 사람도 빼놓으면 섭섭한 인물이다.

『한밤의 배회자』는 캐딜락 안 시체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신원불명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이어 재규어 안에서도 시체가 나온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시립병원에서 원인모를 사망환자가 줄을 잇는다. 두 가지 사건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작가의 솜씨는 매우 대단하다. 두 사건 중 "한밤의 배회자"가 저지른 사건은 약물착오로 사망한 병원이야기이다. 린지와 재코비가 열심히 캐딜락 아가씨와 재규어 아가씨를 죽인 범인을 잡는 동안에도 나는 샌프란시스코 시립병원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악마가 누구일까, 하고 추리를 했다.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는 추리소설의 기본 원칙부터 가장 착하고 조용한 사람이 100% 범인이라는 최종 원칙까지 차곡차곡 머릿속에 정리했다. 하지만 작가는 가장 유력한 범인용의자인 가르자를 그가 잡힐 때까지 계속 의심이 들게 서술한다. 가르자가 정말 범인이었나, 이러다 끝까지 범인을 못 잡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진짜 "한밤의 배회자"가 붙잡혔을 때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한밤의 배회자"에 대해서 약간의 플롯을 덧붙인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한밤의 배회자』는 미국의 유명 시리즈인 CSI를 보는 것 같았다. 살인 현장이나 사체를 검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CSI가 떠올랐다. 이 점은 내게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다가왔다. 활자는 바로바로 머릿속에 영상화되었기 때문에 더욱 즐겁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제임스 페터슨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밤의 배회자』의 감독이 되어 본 것이다. 『한밤의 배회자』의 감독이 되고 싶은 독자는 도전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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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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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독일문학을 즐겨 읽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괴테, 카프카, 헤쎄와 같은 훌륭한 문호들이 즐비한 독일문학은 많은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고 그만큼 독자의 선택 기회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 "단편"은 짤막하게 지은 글, 쉽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큰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글은 방대한 분량의 장편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호프만의 『모래남자』를 읽은 후 "단편"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게 되었고 단편문학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단편을 찾기는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선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독일문학에서조차 단편은 변두리 장르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단편문학에 목말라하던 차에 창비에서 국가별로 단편들만 모아놓은 세계문학을 출간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가장 관심 있는 독일편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창비세계문학 독일편은 무려 1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17인의 단편 17작품!
괴테, 카프카, 헤쎄, 토마스 만, 크리스토프 하인처럼 익숙히 잘 알고 있는 작가, 그리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작품은 알고 있지만 이름은 몰랐던 작가를 만난다는 사실에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기대만발이었다. 그리고 17편의 단편을 흡수한 지금, 17인의 작가는 나의 기대를 200%이상 충족시켜주었다.

먼저 구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유럽 중부에 위치한 독일에 대해 아시아 동쪽 대륙 끝에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정확히, 제대로 알 길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들만의 역사가 등장하게 되면 나의 이해도는 상당히 낮아져 공감대가 떨어지는 경우가 간간이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옮긴이는 이에 대한 도움으로 괄호의 형식을 빌어서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준다. 책을 읽는 내내 옮긴이의 설명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옮긴이는 헤벨의 "뜻밖의 재회"를 제외하고 각주가 아닌 괄호설명을 선택했다. 나는 옮긴이의 설명을 환영하지만 각주는 비교적 좋아하지 않는다. 읽는 과정에서 각주가 등장하게 되면 내용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괄호설명은 각주에 비해 책 읽는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런 우리말 원어표기법을 사용한다. 이 독특한 표기법은 전부터 창비에서 선호하는 형식이고 이번 작품도 고수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으로 등장하는 "정직한 법관"은 괴테의 작품이다. 괴테의 작품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 작품은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쉽게 읽혀지지만 인간의 심리묘사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구체적이며 매력적이다. 왜 그를 세기의 천재 작가라고 부르는지 수긍이 가는 멋진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인 "기발한 페르머"는 장화 신은 고양이로 유명한 작가 티크의 작품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두 머리 속 나사가 하나씩은 풀린 것 같았다. 주인공 페르머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돈키호테형의 인간형이다.
클라이스트의 "주워온 자식"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 성향을 강하게 서술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짧은 약 2장 분량의 "뜻밖의 재회"는 강한 여운을 주는 작품으로서 눈 여겨 봐야 할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을 역사적 사건의 순차로 나열한 점은 정말 대단했다.
네 하인과 주인의 이야기인 "672일째 밤의 동화"와 믿음과 불신에서 반목하는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 집착증에 시달리는 "광고물 폐기자", 영화감독다운 의미심장한 반짝거림을 드러낸 "어느 사랑의 실험", 안타까움 백만 배 요르단 할머니 "개 짖는 소리" 등은 쉼 없는 인간의 심리묘사를 따라잡는 재미가 쏠쏠했다.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도 충분히 작가의 사고를 독자에게 전할 수 있다. 짧고 효과적으로 전해오는 작가의 생각은 장편보다도 강렬한 무언가가 있음에 확실하다. 창비에서 엄선된 다수의 단편으로 구성된 세계문학 독일편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5년의 긴 시간을 들여 작품을 엄선하고 작가의 문체를 살리기 위한 공을 들인 노력의 흔적이 역력히 눈에 들어오는 시리즈이다. 멋진 작가의 멋진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노력의 결과물을 선택하길 바란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작품인 만큼 새로운 세계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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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스토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11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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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일 줄이야!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의미의『심플 스토리』였다.
어느 날, 뉴스에서 우리집 담장보다 조금 더 높고 기다란 담벼락을 부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어린 나는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 라며 호기심과 궁금증에 물었다.
어머니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통일하게 되서 이제 더 이상 저 담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독일통일은 "독일"이라는 나라를 내게 처음으로 인지시켜 준 사건이 되었다.

『심플 스토리』는 독일통일 후 동부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스물 아홉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인물 역시 많은 에피소드의 개수만큼 다양하다.
특별한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전형적인 구성도 아니다. 매번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르다. 그 인물들마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은 부수적인 구성 소재일 뿐이다. 또한 엉킨 실타래처럼 '구성 소재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타고난 젊은 이야기꾼"이라고 극찬을 받은 잉고 슐체는 그 명성 그대로 여러 화법을 작품에서 활용하고 있다. 일인칭 시점의 여성적인 어조로 사용하다가 다른 장으로 넘어가면 삼인칭 시점의 남성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화법을 따라가는 것은 일관된 시점의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로써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흔한 독일 인사조차 모르는 무식쟁이인 나에게 많은 인물들의 이름은 작품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를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서독 위주의 통일 아래에서 동독인들은 흡사 지금 우리의 88만원세대를 닮아있다.
경제위기 이후 사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주위만 겉도는 88만원세대와 통일 이후의 모든 방면에서 기존의 동독의 것들을 인정받지 못한 동독인들은 "부적응자들"이다. 슬프게도 우리와 그네들의 상황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등장인물과의 공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듯하다. 만약 여기까지가 작품의 끝이었다면 무뚝뚝할 정도로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잉고 슐체라는 작가를 나는 부정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적응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적응하려는 자"도 있다고 말한다. 작지만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두면서 『심플 스토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끝을 맺는다. 잉고 슐체, 그는 다행히도 부정적인 작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심플 스토리』를 읽으면서 (내 입장에서) 나는 꽤 많은 노력을 들였다.
생소하고 어색하기만 한 독일 이름을 종이에 쓰고 이름만으로는 그 성별을 구별하기가 어려워 성별까지 기입하였다.
한번 등장했던 인물들이 재차 등장하였기에 그들의 이름과 성별을 메모한 것은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포기할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중도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스펙터클한 사건 하나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심히 부족하여 『심플 스토리』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심플 스토리』는 오래두고 마시는 술처럼 여러 번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깊은 이야기를 제대로 음미하고자 나는 다시 한 번 책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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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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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셀러"라고 일컫는 소위 인기 있는 책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항상 곱지만은 않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인기 있는 책들을 멀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들 좋아하는데 나 한명쯤은 그 대열에서 이탈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는가. 대신 서점에서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책들을 찾고 고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지루한 낚시 끝에 월척을 잡은 것 같은 기쁨이 든다. 이 기분을 즐기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현재는 자본의 논리가 통하는 세상이고 책시장도 이 "자본"이라는 놈이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제 거대 마케팅 없이는 책의 성공은 어렵게 된 실정이다. 자본 없는 가난하지만 좋은 책은 독자에게 선택받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마저 "절판"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사라진다. 난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 중에서도 선택하기 쉬운 문학 분야의 책만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책편식이 심한 나 자신이 안타까워서 가끔은 문학 이외의 다른 분야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선택하지 못해서 문학 분야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니 나의 책편식은 고치기 힘든 습관이 되었다.

 김경집 님의 『책탐』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여러 분야의 서적을 주제에 따라서 두 권씩 묶어 소개․비교하고 있다. 『책탐』에서 등장하는 책들은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최근 것들로 이뤄져 있다. 『책탐』은 인문학분야의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문학자인 작가의 문체는 군더더기가 없고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잔잔하고 매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첫 장부터 시작해서 끝장까지 쉼없이 읽어갈 필요는 없다. 4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고 그 주제마다 여러 소주제로 이야기하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로 읽는 분야를 탈피하고 싶은 때 원하는 챕터를 찾아 읽으면 되는 "고르는 재미가 있는" 활용도 200% 책이다.
 
 『책탐』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베스트셀러를 "변두리적 좌파"(작가의 말을 빌리자면)의 시점으로 대하는 나와 필자가 닮아있다는 사실에 왠지 김경집 작가와 의기투합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느라 무아지경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소주제가 하나씩 끝나갈 때마다 내가 몰랐던 작품들을 많이 소개받아 흡족하기까지 했다. 출간되자마자 '누워'있지 못하고 책장에 '꽂히는' 책을 저자는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로 '꽂히는' 책들 중 보석을 찾는 작업을 '등뼈 찾기 순례'라고 부른다. '등뼈 찾기 순례', 참 멋진 이름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등뼈 찾기 순례'에 동참하길 바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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