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존 켄드릭 뱅스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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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죠니 뎁이 나오는 헐리웃 영화로도 친근하지만

어릴 때 동화책으로 봤던 기억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고전인데 사실 책으로는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어서 언젠가는 꼭 완역본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던 차에 앨리스의 또 다른 버전인 듯 싶은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란 제목을 봐서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는데 앨리스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풍자 소설이었다.

앨리스를 비롯해 모자 장수, 하얀 기사, 삼월 토끼 등이 출연하는데,

엉망진창 나라는 모자 장수가 만든 모든 게 시의 소유인 독특한 설정의 나라였다.

1907년에 나온 작품이라 아마도 이후에 태동할 공산주의 사회를 묘사한 듯 싶은데, 그런 점에서 보면 

전체주의 국가를 풍자한 조지 오웰의 고전 '1984'의 아버지뻘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시의 공유재는 황당하게도 치아였다. 멀쩡한 사람들의 치아를 공유재로 삼아

치아가 없거나 약해서 제대로 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요구하면 치아를 가진 사람들이 견과류를 대신

깨줘야 한다는 기발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었는데 치아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몸의 일부도 공유로

만들다니 좀 억지스런 발상이지만 나름 재미있긴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열차도 엉뚱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잠시 '설국열차'도 떠올랐지만 엉망진창 나라의 열차는 아예 움직이질 않아 과연

열차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사고가 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역설하는

모자 장수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선거에서 무조건 이기기 위해 시유제 조직 내에 상당수의 유권자를 고용한다거나

향기로운 가스를 만든다고 불이 붙지 않는 가스를 만들지 않나 엉망진창 나라는 뭐 하나

파격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모든 게 시의 소유가 되자 도둑이 사라져 경찰이 차나 마시고,

전화를 하면 모든 내용이 검열을 받으며, 시를 남발하고 아이마저 시의 소유물로 삼아 괴상한

방법으로 훈육되는 이런 엉망진창 나라를 보면 도저히 이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산주의가 모두가 평등하고 모든 걸 공유하는 유토피아로 상정되었지만 현실 세계에선

가난한 독재사회가 되고 말았던 것처럼 이 책에서 묘사한 엉망진창 나라는 제목 그대로가 되고

말았는데 작가의 선견지명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이상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언어유희도 그렇고

중간중간에 삽입된 귀여운(?) 삽화도 인상적이었는데 대부분 왼쪽 페이지에는 소설의 내용을 싣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용어 해설이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실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요즘 우리나라 꼴이 딱 엉망진창 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어떤 지도자가 어떤 제도를 시행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앨리스와 친구들을 활용한 풍자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는데 앨리스 시리즈를

제대로 숙지하고 나서 봤다면 좀 더 아기자기한 재미를 놓치지 않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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