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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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로 경찰소설의 진수를 보여줬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이 책은 그의 전공인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 아닌 밤털이 전문인 도둑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금은 예상밖이라 할 수 있었다.

법조인이 될 거라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마카베는 쌍둥이 동생이 엇나가자

어머니가 불을 질러 가족이 모두 죽은 이후 도둑질을 일삼게 된다.

결국 이나무라 부부의 집에 숨어 들었다가 체포되어 2년간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마카베는

체포될 당시 이나무라 요코에게서 느낀 살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교도소에서 출소한 밤털이 전문 도둑 마카베와 그에게만 목소리가 들리는 죽은 동생 게이지가

들려주는 7편의 단편을 실은 이 책은 도둑이 주인공이란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나  미야베 미유키의 '스텝파터 스텝'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두 작품이 좀 더 코믹하고 아기자기한 설정이 많은 반면

이 책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물론 죽은 동생이 떠나지 않고 마카베의 주변을 맴돌고 있으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요코하마 히데오의 사실감 넘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먼저 마카베가 체포되었던 사건에 숨겨진 진실 속에는 한 여자의 기구한 인생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여자에게 거머리처럼 빌붙어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자와

그녀를 애처롭게 여기는 남자의 얘기가 마카베의 의해 밝혀진다.

한편 마카베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히사코를 모른 척 방치하고 있어 남의 말 할 사정이 아니었다.

물론 게이지와 얽힌 이런저런 사정이 있긴 하지만 자신 때문에

어린이집에서의 도난사건의 도둑으로도 몰리고 맞선 본 이상한 남자 때문에

곤혹스런 일도 겪게 만드는 건 모두 마카베 탓이라 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손을 씻고 히사코와 함께 새출발을 할 수 있음에도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한 여자를 사랑했던 동생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질없는 밤도둑질을 계속하는 마카베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대부분 마카베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마카베가 도둑이다 보니 여러 가지 제한이랄까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식인데

진실이 드러나도 왠지 후련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마카베가 산타 할아버지로 변신해 불쌍한 아이에게 선물을 전달해주는 에피소드는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살려 선행을 한 가장 훈훈한 얘기였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단정적으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이 작품에선 '64' 등의 경찰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도둑이 주인공인 점과 죽은 쌍둥이 동생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게 결정적인 것 같은데

좀 색다른 설정 속에서도 아기자기한 얘기들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역시나 그의 스토리텔링의 힘은

어떤 얘기로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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