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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루이 알튀세르 자서전
루이 알튀세르 지음, 권은미 옮김 / 이매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추후에 읽을 예정인 <알튀세르 효과>는 최근 출판된 도서이다. 아주 묵직한(870페이지 분량) 서적으로, 루이 알튀세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제시한 연구내용에 대해 후세 학자들(프랑스 철학자들이 작성 한국 철학자가 번역 및 추가 작업)이 새롭게 해석하여 제시한 도서이다. 루이 알튀세르라는 학자를 내가 알게 된 동기는 이른바 사상관련 도서를 찾아보면서이다. 구조주의 4인방인 푸코, 레비스트로스, 라캉, 바르트 외에 추가적으로 구조주의에 들어 갈만한 인물이 바로 루이 알튀세르인 것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루이 알튀세르와 저 위의 인물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거의 비슷하다. 푸코는 알튀세르의 지도받는 학생이었고, 라캉은 알튀세르 초빙으로 프랑스 최고의 교육기관 고등사범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 외에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 20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최고의 사상가들과 교류한 알튀세르는 프랑스 지성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사실 20세기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친 후에 세계적으로 철학과 사상의 조류는 프랑스 구조주의, 그리고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간 것 같다.
20세기 나치만 아니라면 독일의 관념철학과 분석철학 그리고 독일에서 영국으로 추방된 마르크스주의까지가 독일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전쟁이 바로 알튀세르의 인생을 모든 것을 빼앗고, 그를 알튀세르로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읽은 알튀세르의 저서는 <재생산에 대하여>와 <철학에 관하여>이다. 재생산이란 자본주의사회구조에서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 사회적 토대를 유지하는 것과 그것으로 인한 군중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연구하고, 철학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를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1990년 알튀세르가 죽을 해가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된 시기다. 그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고, 가톨릭신자였으며,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를 중심으로 홉스, 로크, 몽키스키외, 루소, 헤겔 등의 철학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을 가게 된 동기 역시 전쟁이다. 전쟁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내가 <철학에 관하여>란 책을 읽을 때 그는 우연성에 초점을 맞추어 관념적인 사고와 유물론적인 현상이 부딪혀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는 충돌이론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주의에서 그런 이론을 제시했는가? 철학은 사실 철학이란 도서로 존재하여 교과서처럼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철학이란 하나의 실천적인 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철학이 된다. 실천하지 않은 철학은 철학적 가치를 가진 게 아니라 그저 관념 안에서 흩어지는 안개일 뿐이다. 행동을 위한 사유, 사유로서 보여주는 철학적 가치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려운 말일 수 있고, 간단한 논리일 수 있다. 그가 왜 마키아벨리를 생각하는가? <군주론>이란 서적에서 군주는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공포의 대상이 되더라도 증오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국민과 혹은 국민이 존재하는 국가라는 하나의 사회에서 국가를 보는 관점이 현실적 조건 경제적 상황 등을 제대로 간파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토대와 상황적 조건에 의해 구성되어진다. 관념론적인 요소는 어떤 운동을 위한 하나의 지표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자체는 운동이 될 수 없다. 운동을 하기 위해 관념론적인 요소가 반드시 옳다고 볼 수만은 없다. 현실적 조건과 상황, 그리고 그 현실을 타파해 가야하는 주체들의 요건들이 바로 새로운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래 말하지 않았나? “철학자 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만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해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석을 한 후에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스피노자적인 가치관이란 자신의 틀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봐야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루이 알튀세르의 사상을 파고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나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은 연구라고 본다.
루이 알튀세르의 서적인 <철학에 관하여>는 1980년 알튀세르의 아내 엘렌느를 정산착란 상태에서 살해 후 후견인 보호 아래서 저술했던 도서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인 파리고등사범학교 출신이면서 교수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을까? 그런 자신이 자서전을 저술하면서 왜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고 하는 것일까? 상당히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일들이다. 보통 자서전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성장기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적고, 거기에 있었던 특별한 일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사건이나 인물을 정리해간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적이나 이상을 제시하나, 알튀세르는 그런 식의 책은 아니다. 보통 나도 그렇지만, 대다수 지성인들은 자서전을 좋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서전에 들어가는 내용을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도 살며시 보여주나, 마지막은 자화자찬으로 종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알튀세르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과 다른 책이라고 밝힌다. 루소의 <고백>은 인류 학문에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다 보여주고, 거기에 대한 자신과 반성과 성찰을 보여준 책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연구에서 <고백>의 영향은 엄청나다고 하다. 인간의 심리는 모순적이면서도 역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루소의 <고백>과 같은 자서전이 아닌 다른 식의 자서전으로 발간한다.
루소는 자신의 죄와 과오를 보여주고 성찰한다고 하겠지만, 알튀세르는 그것을 넘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분석하고자 하는 학문적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단순히 자서전으로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자신이 어릴 시절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르기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제3자의 관찰을 집어넣고, 자신을 어떻게 주변에서 대응이 이루어졌는지까지 나온다. 하지만 모든 시작점은 역시 전쟁이 문제인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점이나, 한국에서 정신병이나 우울증, 과대망상증 같은 심리적 혹은 정신적 증세를 가진 사람에 대해 매우 불편하게 바라본다. 한 마디로 무슨 정신과에 다니는 순간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많이 줄어든 편이나, 솔직히 대규모 전쟁을 거친 국가로 본다면 한국인에 가해진 트라우마는 매우 심각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가 만일 다시 사회에 나가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더 이상 일상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도 1960년대 알튀세르가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를 말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전쟁이 중요하다고 한 점은 세계 1차 및 2차 대전은 수많은 유럽인들을 충격과 공포로 밀어 넣었다. 기존의 전쟁의 백병전 중심으로 총과 칼, 그리고 대포로 이루어진 공격이나, 20세기부터는 폭격과 화학전이 도입되던 시기다. 총과 칼은 눈에 보이는 적만을 놀리지만, 폭격과 화학전은 눈에 보이지 않은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준다. 전쟁의 판도에 따라 달라진 전쟁에서 알튀세르의 아버지 샤를르는 자신의 동생 루이와 같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샤를르는 전쟁 중 잠시 휴가를 받아 돌아오나, 자신의 하나밖에 없던 동생 루이는 비행작전 중 공중에서 산화하고 만다. 문제는 루이 알튀세르의 어머니는 알튀세르의 삼촌 루이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삼촌 루이는 죽고, 샤를르만 돌아와 어머니와 혼약하고, 다시 전쟁터로 나갔다. 어머니는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루이의 죽음에 충격 받고, 그 와중에 샤를르와 결혼, 결혼식 후 첫날밤이 사랑이 아닌 강간처럼 이루어진 점, 자신이 이때까지 모은 재산을 그가 탕진했다는 점에서 모든 것이 뒤틀어져 버렸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의 저자는 루이 알튀세르이고, 아버지 이름은 샤를르 알튀세르, 그리고 삼촌의 이름은 루이 알튀세르이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죽은 삼촌의 이름 루이를 받아들인 어머니의 환상이 되어야 했던 아이다. 어머니가 바라본 알튀세르는 아들이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예전 연인이던 루이의 대체용으로 취급당해야 했다. 살아있는 2명과 죽은 1명의 계약 아래 알튀세르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은 결국 그의 우울증을 야기했다. 삼촌의 영향은 컸다. 파리고등사범학교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삼촌 루이는 학자 같은 인물이었고, 매우 감수성이 넘치던 청년이었다.
그런 요소를 조카에게 물려준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알튀세르에게 우울증이 되었고, 청년과 장년 그리고 노년까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평생의 굴레였다. 아내 엘렌느의 교살은 참으로 끔찍하기 보단 아련했다. 아내 역시 우울증에 시달렸다. 죽기 전 보름 넘게 집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누가 와도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있었다. 아내는 나치가 프랑스 점령할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그녀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병으로 둘 다 돌아갔다. 우울증에 걸린 부부, 게다가 자살할 충동을 느껴도 자살할 용기가 없던 엘렌느는 알튀세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내의 목과 어깨를 마사지를 하는 도중, 알튀세르는 아내의 목을 졸라 죽인다. 그런데 문제는 고의가 아니라, 안마 도중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의 동공은 풀어지고, 맥박이 없었다. 미친 듯이 당직의사실에 가서 이 사실을 고한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병원에 수용될 때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그때 알튀세르는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몰랐다. 노년의 찾아온 불행, 그것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우울증과 정신착란 증세였다. 어머니에게서 시작한 과오, 어머니를 벗어난 수용소 생활과 혹은 외할아버지와 함께한 농촌생활이 행복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알튀세르, 물론 그 후로 활동하지만, 알튀세르라는 이름은 어떤 사회적으로나 신분에 대한 꼬리표가 달려 다녀야했다. 그의 자서전은 그런 기존의 자신이 마치 도처에 존재하는 쇠사슬에 묶여있는 인간이 아니라 본인 그 자신이고자 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고 거기서 자신을 분석하여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22장을 보면 마지막 문단 쪽에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고 한다. 그는 1918년생, 1980년대에 저술했다면 60이 넘은 노년이란 점에서 그의 새로운 시작은 나이보다는 그가 자신이란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점에 스스로 선언을 한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상당히 겁이 많았다는 사실, 그리고 여성의 성적인 매력에 집착하면서도 한편으로 거기서 얽매이는 것을 싫다는 것도 나온다. 한 인간이 가족에서 시작된 편력이 이렇게도 지독한 것인가? 아내의 죽음에서 결국 아내를 죽이게 된 원인은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자살적 충동을 아내에게 이어진 것이다. 아내 역시 죽음을 생각했고, 그녀 역시 죽음으로 얼룩진 인생이다. 알튀세르의 삼촌 루이의 죽음, 그리고 엘렌느 역시 레지스탕스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조직의 오해로 추방된 사건 등등, 인간의 상처란 쉽게 아물지 못하는 것 같다.
알튀세르는 항상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의 탄생, 가족이 움직이는 형태, 그리고 살아가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들, 자신은 살아있는 인간이나 죽은 인간을 대신해야 했던 존재, 처음부터 살아있던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자신,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분석했기에 그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은 계속되어 그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