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에 대한 리뷰를 언제 적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고민이 된다. 단순히 영화적 리뷰로 작성할 것인지, 조선의 성리학 계보에서 학문과 가계로 통해서 접근 해야 할 지 아니면 한국 천주교회사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도 고민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면 협찬자가 나온다. 거기에 전주에 위치한 전동성당이 협찬자로 나온다. 한국 천주교회사를 공부하면 이유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이해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정약전이란 인물은 성리학자이기도 하다. 한국의 천주교를 파고 가면 일반 신도들은 천주교회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대학교 학부 시절 지방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자는 아니나 친분이 생겨 학교성당에 가도 학생들과 대화하면 천주교회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나마 신부님은 잘 알고, 수녀님은 어느 정도 아는 수준이다. 또한 현실 고증으로 들어가면 다산초당이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에 위치하는데, 조선역사를 공부하여 임진왜란을 연구하면 다산초당의 땅주인이 이순신장군을 도우던 의병조직과 연계성이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다산초당을 보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은 점이 아깝다.

 

왜냐하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올 적에 거기는 기와로 만든 집이 아니라 볏짚으로 만든 집이었다. 볏짚으로 만든 집은 관리가 어려워 사유지 관리자가 투자하여 기와로 올린 것이다. 지금 다산초당 입구에 찻집이 있는데, 거기가 다신계라고 한다. 그 전통 찻집 가게 주인의 선조는 정약용 선생의 제자이며, 다산초당 주인의 후손이다. 그리고 나의 친할아버지는 그 초당의 주인이며 관리자였던 윤재찬이란 분과 친구였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영화를 보는 나에겐 다산초당의 기와는 이준익 감독의 실수였다. 초당의 내부를 봐야 할 것이지 왜 류승룡 싸를 정약용 배역을 맡아 기와를 보였느냐? 차라리 백련사에서 혜장 스님쪽이 나올 때가 좋았다. 정약용과 정약전을 연구하면 조선 성리학과 실학 더 나아가 서학과 천주교회사를 만나게 되고 깊이 들어가면 당파 갈등의 역사성을 파고 들어간다. 그래서 리뷰를 적기엔 고민이다. 역사, 향토문화, 씨족문화, 학문을 통한 당쟁관계, 천주교박해에 대한 의의에 대해 올라간다. 물론 나는 천주교회사를 지봉 이수광 선생의 <지봉유설>과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기축옥사부터 시작해야지 신해박해와 신유박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천주교박해는 천주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불씨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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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식인 윤선도 - 사상과 네트워크
고영진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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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 일원으로 고산 선생은 우리문중에 이름만.높았지 권력의 중심이.아닌 그 주변이.머물렀다. 고산 선생의 진정한 가풍은 고조부인 어초은공이 가뭄때 세금을 내지못해 감옥에.갇힌 전국의 백성을 3번이나.대납하여 풀러내게 한.점이다. 남을 위해 자기자신을 거는건 예나지금이나 어려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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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홀리데이>는 처음에는 많은 인기를 공유하다 끝에서는 최악으로 끝이 났다. 평점이 10점 만점 기준으로 9.5 이상 찍은 작품이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면서 5.0 수준으로 하락했다. 작품의 성격상 초반에 강마루가 보여준 카리스마적 요소, 그가 행하는 무리한 테러에서 기존 세계에서 정립된 한국은 초강대국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보면서 대중이 느끼는 희열은 초반에는 강마루가 보여준 기적적 형태 그리고 어스라는 초월적 국가기관이 세워지면서 어스의장으로 강마루가 취임하자 보여준 강력한 정책들은 분명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미국 대형 전투기 부대가 침공해도 전자해킹을 통해 상대 전투기를 통제하고, 상대국가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총살 시키는 것도 어마어마한 발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이 만들어진 원인이고 배경, 결과 등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예전에 읽은 책이 생각난다.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악몽>이다. 부재로는 소설보다 무서운 지구온난화와 환경 대재앙 시나리오로 평소 지구과학 또는 환경학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이쪽 분야에서 종사하지 않으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영역일 수 있다.

 

본인의 경우 학부를 환경공학을 전공하여 환경 관련 자격증 취득 후 환경 관련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홀리데이>에서 말하던 일들을 이미 2000년 전후로 알고 있었다. 당시 온실가스에 대해 말하자면 이상기후와 더불어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온실가스화로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엘리뇨 또는 라니냐 같은 이상기상이 일어나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세기 중반까지 몬순기후였지만, 이제는 아열대로 기후로 변경되었다. 쉽게 생각하면 제주도에서 관찰된 어류나 식물들이 이제는 남해안 해역에서 발견되고 있고, 예전에 동해에서 많이 잡힌 어류들은 점차 잡히지 않게 되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우리의 삶에서 추위와 더위 등의 기상 문제를 떠나 식량과 생태계까지 영향이 가게 된 것이다. <홀리데이>에서 강마루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했고, 특히나 식량과 식수, 알 수 없는 박테리아에 큰 문제를 지적했다. 과학자들의 말을 따르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을 경우 단순히 해수면의 상승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한 미생물이 빙하에서 나와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생물의 활동은 생물화학적인 감염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생물은 우리 인간의 내장에도 피부에도 산다.

 

미생물의 영역이 토착성에서 외부에서 충격이 오면 그대로 숙주인 인간 그리고 생물에게 일어난다. 흔히 우리가 듣는 장내 미생물에서 유산균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유익한 활동을 하는 세균, 하지만 이들도 인간의 몸이 약해지면 감염증을 일으키는 원인 중에 하나이다. 그 병리적 기발점이 온도, 습도, 바람, 식단 등만이 아니라 다른 미생물과의 관계성도 있다. <홀리데이>에서 극지방의 빙하붕괴는 단순히 해수면 상승만이 아니라 미생물로 인한 인간의 감염증세가 뒤따르고, 실제 작품에서 인간이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린 채 앓다 죽는 장면도 나온다.

 

강마루가 직접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는 병원성 미생물로부터 살아갈 수 있는 백신을 만들었기 때문이고, 일부 강대국은 그 특정 미생물만 잡으면 강마루는 필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미생물은 진화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므로, 새로운 병원균이 나오고, 그 병원균에 의해 새로운 증세가 발현된다. 강마루를 죽인 정보요원의 행동은 그 자신과 조직에게는 정의일지 모르나. 작품 결말부에서는 그녀가 저지른 행위는 인류의 멸망을 불렀다.

 

그래서 <홀리데이>2가지 주제로 압축된다. 하나는 온실가스 과중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 하나는 정의라는 관점이다. 문제는 정의는 누구에게 그 이념적 가치가 높은지에 따라 달라지고, 이념적 가치는 인간의 가치관과 권력의 힘에 의해 달라진다. 과거 군부독재 세력이 권력을 가졌지만, 폭력의 정치는 민주주의 이념가치에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가치가 전 국민이 알고 있어도 권력자의 힘에 의해 무력화되는 경우도 있다.

 

<홀리데이>에서 강마루의 폭력적이지만, 혁명적 그리고 독재적 모습을 하나의 정의 또는 불의로 묘사된다. 그러나 여기선 명확한 점이 있다. 강마루를 죽인 요원은 국가와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회법적 인간이고, 강마루를 그 사회법인 형태가 지구를 죽이고 결국 인류를 망하게 하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환경시스템에 따라 움직이어야 한다고 여기는 자연법적인 존재다. 자연법이란 생각하면 쉽고도 어렵다. 뉴턴이란 과학자가 사과무에서 사과가 떨어질 것을 보고 중력을 발견했듯이 자연이란 우리가 인위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고도 움직인다.

 

심지어 항공기가 하늘로 올라갈 때 자연적 중력과 가속도 관계성, 작용과 반작용 관계에서 찾아내어 간다. 인간이 자연의 원리를 찾아 과학적 공학적으로 세상을 풀어나가지만, 항공기가 지상을 날기 위해서는 활주로와 항공기를 제작해야 하고, 날아가는 과정에서 관제탑과 항공위성의 통제를 받는다. 항공관제는 자연에서 전자파를 이용한 방법이나, 그 행위는 사회적 약속과 규정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에게 자연적 법칙이란 그저 도구에 불과하게 된 셈이다.

 

자연적 법칙은 단순히 물리적 운동만 있는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하천이나 해양에서는 물이란 매개를 통해 쉬지 않고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게다가 생물이 대거 서식하고 있으니 생물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인간이 먹은 음식조차 소화되어 분변으로 나온 점에서 물과 음식, 그리고 산소는 인간 내부적으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자연적 조건은 인간의 도덕과 법칙에 의해 정립될 수 있으나, 그 존재성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자연적 조건인 지구에서 자연적 요소를 변모시키면 자연적 조건을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반작용을 일으킨다. 최근 한국에서 태풍의 발생빈도가 높거나 강력해진 이유는 지구가 본래의 조건으로 가기 위한 절차이다.

 

온실가스로 인해 거대한 열이 지구에 잔존하고 있다면, 지구는 스스로 그 열을 해소하기 위해 비와 바람을 일으키고, 대지를 가른다. 태풍의 위력은 열에너지가 높을수록 강력해진다. 인간이 자연의 조건 아래 자연의 법칙을 어긴 것으로 자연재난은 새롭게 시작된다. 문제는 자연법에 대해 인간은 사회법으로 다스리려 한다. 사회법은 단순히 공공성의 법률과 제도만이 아니다. 어느 개인과 사적 집단을 위해 법률과 제도 안에서 충분히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이며, 자본주의 사회구조 안에서 투자를 했다면 이윤을 얻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발은 이윤을 창출하는 창구 중에 하나이고, 특히 부동산개발은 더욱 그러하다. 산림을 파괴하고, 강을 오염시키는 것은 건설사업의 부산물이다.

 

게다가 공장을 세우거나 차를 움직이면 매연이 나오고, 공장을 돌리기 위한 가스와 전기, 수도 역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에너지원조차 석유, 석탄, 가스도 자연지반의 파괴로부터 얻어진다. 현대사회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는 자연의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홀리데이>에서 지구를 지키는 것은 자연적 법칙을 최대한 되돌리는 것이고, 자연적 법칙을 찾기 위해서는 개발을 멈추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결국 인간생활의 편리성과 이윤 추구를 위한 이기적 요소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와 개인의지가 있다. 일반의지는 공공성이란 보편적 사고 방식이지만, 개인의지는 어느 집단의 이익을 위한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권력과 경제적 힘에 의해 일반의지는 개인의지로부터 꺽이는 경우가 많다. 어느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지구환경도 위험에 처해지는 경우가 현실이다. 강마루는 권력자들로부터 개인의지를 빼앗을 수 있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모두 일반의지를 심을 수 없었다. 강마루가 죽기 전에 국가요원에게 자기가 죽으면 일어날 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은 채 국가요원은 강마루를 죽인다. 강마루가 죽고 난 뒤 그가 말한 것들은 모두 현실이 된다.

 

강마루가 지구를 위해 문명을 억눌렀던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살리고 싶었다. 그곳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도 있었다. 지구가 망하면 인류가 망하고, 인류가 망하면 강마루와 그의 여자친구가 죽는다.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가치는 아니나. 생존 앞에서는 선택의 기로가 인간을 괴롭게 만든다. 강마루의 자연법은 모두가 살아가는 길이나, 그 길에서 강마루가 문제삼은 것처럼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사회법은 공공성이라고 하지만, 사회법을 움직이는 것은 법이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권한으로 움직이는 작자들이다.

 

국가요원은 권력자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권력기관의 속한 인물이다. 자신의 연인이 강마루의 부하에게 죽은 이유로 그녀의 정의는 가치관의 문제보단 복수의 목적으로 변한다. 결국 자신의 신념으로 정의를 선택한다. 인류의 시계는 24시간 기준으로 몇 분 조차 남지 않은 게 세계기구의 말이다. 그 시간을 앞당기게 되면 사는 게 힘들지만, 쉽게 그 문제를 간과하는 것은 현실의 편리함과 자신의 이기심이다. <홀리데이>에서 생태주의 가치관이 도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생태주의가 등장한 배경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예지하기 보다는 그 문제가 현실로 닥쳤기 때문이다. 변증법적으로 물이 끓어도 물로 볼 수 있지만, 물이 수중기가 되면 더 이상 물이 아닌 기체 중에 하나다.

 

<홀리데이> 작품은 지구가 망하면 인류가 망하고, 인류가 망하면 모든 이가 죽고 만다. 아무도 없는 세상은 원하지 않으나 그것을 아무도 막지 않는다. <홀리데이> 세계는 진행 중이고, 우리는 목격한다.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바이러스 하나로 온실가스 지구온난화 문제를 보여주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이 좋았을 것이다.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것이 하나의 권력이라면, 최근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 수준밖에 안 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종료는 어떤 질병의 완치 또는 극복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일로 치부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개발을 할 때, 찬성하는 모습에서 만일 거기서 발생되는 부산물이나 오염물을 곁에 두지 않으려 한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그저 누리려는 모습에서 강마루의 테러는 그저 환타지에 불과한 이야기다. 물론 SF장르 웹툰이므로 상상을 가능하지만, 이야기의 서술성은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작가분은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악몽>을 읽을 수 있지만, 많은 독자들은 그런 책조차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는 지나가는 이야기 또는 학교 수업시간에 지구과학에서 단편적으로 배운 수능 점수에 도움 되지 못한 교과내용일 것이다.

 

20237월 계절상 여름이고, 앞으로 심각하게 더워질 것이다. 더운 여름 에어컨을 켜고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지만, 우리가 시원한 여름을 보내면 더 많은 전기에너지를 생산하여 지구의 열기는 높아질 것이다. 그런다고 더운 날에 냉방기구 없이 더위에 노출되면 열사병으로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상으로 욕심내고 탐낸다면 강마루가 말한 지구의 절망은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단지 작가는 그런 점을 조금 상황적 조건으로 반영했으면 어떤가 싶었다. 독자들은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보단 웹툰의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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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감이나 진교수와 변희재씨의 미러되는 상황이 웃긴다. 진중권 교수의 2020년 전의 책을 다 모우거나 사서 읽고 공부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다. 전에 진중권 교수의 책을 모조리 버렸다. 심지어 그의 친필사인이 담긴 도서까지 말이다. 변희재는 극보수의 상징적 논객이었는데 이제는 바뀌었다.


이런 점을 보며 나는 말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문제는 지위와 권력을 탐하는 자는 극우로 향하고, 보수진영에서 이용당해 버려진 토사구팽을 경험한 이들은 크로스 된다는 점이다. 최근 나는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를 본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를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다.

SNS나 블로그 글을 보면 진보진영적 가치관과 보수적인 마인드가 상존하는 글과 거기에 동의를 한다. 대표적인 게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성과 노동자의 죽음(SPC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진보라면 단순히 진영적인 논리로 진보적 가치관을 논할 게 아니라 시대적 변화를 읽는 진화적인 요소를 담아야 한다. 정의당을 보면서 느낀 점을 이들은 완전무결한 꼰대이다.

30~40년 전 독재정권에 활동하던 진보들은 독재정치를 펼치던 군부에 대항하던 사람이나, 지금의 소위 정의당 세력의 진보들은 그때와 다르다. 예전에 학력은 중졸이 대부분이고, 대졸은 귀했고, 학생운동하던 자들이 진보와 민주진영의 정치인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가?? 고졸이 더 귀한 시대가 아닌가? 대학교를 넘어 지방대학과 전문대는 돈만 있으면 갈 수 있다. 학력이 결국 정치적 세력에 연줄이 되는 것이고 이건 진보와 보수 모두 마찬가지이다.

이게 정의당의 실패이고, 문제이다. 그리고 시대는 경제적 조건, 시대적 흐름, 대중의 인식 등이 계속 변화한다. 20~30대들과 상대하면 느끼는 점은 이들을 맞추려면 어려운 이야기 대신 간단명료하고 재미난 표현을 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점차 꼰대화되어가고, 원래 보수는 꼰대였으나 돈과 지위, 명예 등의 달콤한 유혹는 주나. 결국 토사구팽한다(준스톤을 보시오). 앞으로 진영적 가치는 정체성이지만, 이것을 두고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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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등 서브컬처 콘텐츠는 매우 쉽게 접근하고,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대중에게 전달된다. 게다가 가격이 크지도 않으며, 대중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으므로, 서브컬처 수용자들은 큰 제약을 받지 않고 접할 수 있다. 물론 나이로 인해 성인등급이 제한되더라도 쉽게 그런 제약을 무시하고 즐기는 경우가 많다(필자 역시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성인용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을 했다). 그래서 서브컬처 수용자들이 대부분 10~20대 청소년과 청년층이 다수 존재하고, 2020년대로 이전하면서 1990년대 일본문화 개방정책에 따라 만화애니메이션을 접한 그 당시의 10~20대 사람들도 30대와 40대에 이르러도 계속 서브컬처 콘텐츠를 즐긴다.

 

1990년대와 2020년대를 바라보면 서브컬처 콘텐츠 흐름이 상당히 바뀌었다. 소재와 주제는 2020년대가 더 풍부하지만, 작가정신이나 예술론적인 요소는 1990년대가 더 높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경제적 조건, 사회적 여건 등이 교배되어 그렇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바라보는 작품 중에서 생각이 드는 점은 성적인 묘사와 야설적 요소는 1990년대가 더 강하다는 점이다. 작화나 애니메이션 영상기술은 2020년대가 뛰어나지만, 오히려 그때가 더 외설적 요소가 강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은 나온다. 아마도 1990년대 작품들은 사람의 손으로 작화기술을 내보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장비와 컴퓨터 성능, 프로그램의 진화는 애니메이션 제작 자체를 변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손으로 작화가 만들어진 것과 기계와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진 관능미는 다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감정을 사람 손으로 종이에 그런 것과 컴퓨터로 그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감정과 기분을 이끌어내는 아날로그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서사라는 이야기이며, 서사를 표현하는데 있어 사람의 손과 전자장비는 다소 차이점은 있다.

 

그래서 2020년대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은 1990년대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고, 그런 사고방식으로 새롭게 탄생한 작품이 안노 히데아키의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이다. 물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온 기본적 인물과 서사를 바탕으로 크게 비틀어 버렸지만, 당시와 지금의 에반게리온은 내용과 전개 그리고 작화까지도 모조리 다른 셈이다.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여건은 인간사회로 반영되고,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흐름이 반영된다. 동일 작품을 동일한 감독이 만들어도 변화하듯이 서로 다른 작품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느 동일한 소재와 장르를 이용해 만들어도 달라진다.

 

위에서 내거 1990년대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을 한 점을 제시하듯이 1990년대 미연시 관련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남자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움직인다. 히로인이라는 여성들은 수동적 존재이고, 다소 말괄량이 속성을 지닌 히로인도 주인공과 결정적 상황이 되면 상당히 순애적인 인물이 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가고 2020년대 들어서는 남자주인공이 점차 소심하고 소극적인 인물이 대다수 보이고, 심지어는 선비 같은 자세로 하렘 작품 남자주인공의 역할을 거부하는 캐릭터도 나온다. 히로인들이 소극적 여성상에서 적극적으로 변하고, 상대 경쟁자인 여성에 대해서도 매우 강렬하게 대치한다.

 

물론 기존의 흐름을 반영한 작품도 있지만, 사회적 흐름과 경제적 여건에서 변화가 도래한 것이다. 기존 남성권력 중심사회에서 점차 양성평등적인 가치관이 변화한 점이 크며, 기존 생계유지를 아버지 혼자서 책임지는 구조에서 부모 모두 일을 하는 사회로 변했다. 심지어 자녀가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인 신분에서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자녀가 사회에 나와 취업을 해도 부모는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계속 일을 한다. 경제적으로 양성평등은 왔지만, 경제적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

 

아버지가 혼자 벌어 생계유지가 가능한 시기와 온 가족이 일을 해도 도시에 집을 구하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세대가 받는 임금으로 대도시권역 물론 중도시권역 아파트 구매는 물론이고 전세조차 어렵다. 부모 아래 분가하면 취업 새내기 대부분은 원룸에서 기거하거나, 부모님 또는 친척 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원룸보다 가족, 친척 집에서 기거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나 혼기가 어느 정도 다가오면 결혼이란 압박이 들어오고, 그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혼하거나 집을 나와 혼자 자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제적 구조와 사회적 여건 등은 젊은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되고, 그것은 결혼의 포기와 지연, 더 나아가 저출산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출산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급여가 필요하고, 일정한 주거공간이 필요하다. 전세 비용이 증가하고, 물가는 오르는데,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 여성은 거의 최소 1년 이상을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 최근 육아지원정책이 많이 좋아졌다해도 여성이 버는 1달 수익에 평균 반에 반조차 미치지 못하고, 자녀 1명당 들어가는 금액은 출산 전후와 비교하여 남성 1인 월급(세후 350만원 기준) 10% 정도가 육아비용(분유, , 기저귀, 예방접종, 유모차, 보험, 기존 공과금에 납부되는 전기세, 물세, 도시가스비용 추가 비용 등)에 소요된다.

 

인구의 감소는 당연히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고, 그런 방식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느냐 아니면 간접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직접적인 소재로 사용한 작품으로 <종말의 하렘>이다. 겉보기에 상당히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이 소수의 남성 누군가에게 배치하여 어떻게든 매칭(성행위)되어 임신을 하도록 유도한다. 전 세계에 남은 남성이 5, 남은 여성은 수십억명인데, 인공수정을 해도 불가능하고, 직접적으로 남녀가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권력의 확보는 생존 남성을 누가 차지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인간의 수명은 70~80세가 평균이라면, 저 작품 기준으로 60년만 지나도 세계인구는 억 단위에서 천 또는 만 단위 이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작품에서 MK(Man-Kill) 바이러스는 예방접종도 불가하고 항생제도 없다. 걸리면 모조리 죽는 질병이다. 유전자 Y염색체만 가진 자는 모두 죽는다면 바이러스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이런 맥락을 보면 단순한 인구감소에서 왜 여성이 아닌 남성을 택하는가? 문화인류학자 마빈해리스의 도서를 참고하면 원시부족은 부족은 자원을 이용하여 생존하기 위해서 인구조절을 한다. 이때 하는 방식이 여아살해이다. 여성이 임신하여 자녀를 만들 수 있기에 여아를 죽이면 인구통제가 가능하고, 여기에 반해 남성이 여성에 비해 인구비율이 높지만, 남성 원시부족은 전투적인 기질이 강해 타 부족과 전쟁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야생이 세계에 살기에 사냥 또는 영역관리 시 맹수의 습격도 받는다. 또한 자기 부족 내 다툼(여기엔 여성을 아내로 삼기 위한 영역싸움)으로 죽기도 한다.

 

인간이 동물적 세계에서 문화사회로 넘어와도 미개한 공간에서 나왔을 뿐이지, 미개한 인간의 무의식적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ego라는 자아에서 Libido를 포함한 무의식 세계를 버리면 그것 역시 인간이 아닌 로봇에 불과하다. 인간이 무의식 세계에 있기에 기본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폭력적인 것은 곧 인간이기 그런 것이다. 단지 이성의 영역에서 사회적 규칙을 따르기에 충돌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야만의 세계에서 원주민들은 다르다. 이들은 자연적 조건에서 남성의 수를 줄인다고, 현대의 문명인은 문화적 조건에서 남성의 수를 줄여간다. 음주 및 흡연, 교통사고, 안전사고 등은 남성의 사망비율을 높이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환경오염도 큰 문제점을 반영한다. 최근에 들어 평균 남성의 정액에서 Y염색체를 가진 정자 수가 점차 줄어가는 것이다.

 

환경호르몬과 각종 환경오염물질이 인간의 생리적 조건을 변화하고, 특히 남아를 출산하게 하는 유전자 조건이 약해진다. 과거 한국에서 태아의 성별 감식으로 여아를 억울하게 낙태했지만, 최근에 그런 풍조는 없어지는 올바른 형태가 되었다. 최근에는 비율이 비슷하게 나오지만, 환경파괴가 지속되면 그 올바른 균형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종말의 하렘>은 실제 환경생태학적 연구결과를 참고하여 만든 작품인 셈이다. <종말의 하렘>에서 MKMan-Kill Virus지만, 환경과 관련된 영역에서 바라보면 MKEDCs 내분비계 교란 물질(Endocrine Disrupting Chemicals)”이다. 먼 미래 지구환경이 계속 파괴되어 가면 남성인구는 점차 소멸하고, 기술문명이 발전한 선진국일수록 그 피해가 더 심해진다.

 

이와 다르게 간접적인 소재로 다뤄지는 작품으로 최근 <부부 이상, 연인 미만>이 있다. 일본 어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남녀가 같이 거주하면서 유사 부부생활을 해야 한다. 이때 부부생활이 원만하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되고 여기에 따른 혜택이 주어진다. 물론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감시카메라(학생의 개인 인권 침해가 심각하고 사생활의 침해되는)가 통제할 수 있지만, 왜 학교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단순 로맨스 장르로 연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관리 시스템에서 교육기관으로 학교가 남녀간의 연애를 조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출산률이 저조하게 낮다. 물론 한국보다 심각하지 않으나, 일본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인구감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인구의 감소는 시장규모와 경제영역 더 나아가 공적영역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한국처럼 징병제가 시행되는 국가에서 병력모집에도 큰 치명상으로 작용한다.

 

한국도 노령사회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일본 역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인구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 관점에서 국가에서 해결하는 것을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사랑과 거짓말>이란 작품이 있다. 작품에서 태어난 남녀의 성향과 취향, 사회적 경제적 조건, 유전자적 정보 등을 적용하여 결혼 매칭상대를 국가에서 정해주고, 학생들은 국가의 일방적 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랑과 거짓말>은 심각한 사회적 구조라도 내용은 연애 로맨스 장르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지만 국가가 개인적 영역에서 연애까지 통제하는 것은 거의 독재 통치와 비슷한 형태이다. 중국에서 1가구 1자녀 정책이 있었고, 1명 이상 더 출산할 경우 세금을 매긴다. 그래서 둘째부터 호적에 올리지 않아, 둘째부터 국가의 통제에 닿지 않아 교육과 보건 쪽으로 취약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부부 이상, 연인 미만><사랑과 거짓말>은 남여간의 로맨스를 두근두근한 상황과 다소 아찔하고 우스운 상황을 많이 연출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회적 구조는 매우 무서운 현실이다. <종말의 하렘>은 겉으로 보기엔 야한 것만 충실히 재현한 것처럼 보이나, 상당히 공상과학적인 요소를 담은 작품이다. 건강하고 이성에 호기심이 많은 남성이라면 자신의 주변에 수많은 미녀를 두고 마음대로 안을 수 있다면 천국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세계가 정말 있고, 거기에 인구정책에 따라 사육당하고, 자기의 자녀조차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종말의 하렘>에서 생식능력이 사라진 남성은 필요 없는 존재이다. 물론 최근 인류의 영양 공급능력이 우수하고, 각종 의학적 보조적 장치가 들어와도 인간의 몸은 정해진 수명이 있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무엇을 생각할까? 당연히 자신의 자녀들을 떠오른다. 자신의 자녀를 만들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천륜의 연을 빼앗은 것과 같다.

 

국가에 의해 출산이 통제되면, 그 사회는 출산의 조건에 따라 정치적 권력이 부여되고, 그 권력을 독점하면 독재자가 등장한다. 물론 생식기능에서 남성이 필요 없을 경우 그 사회에서 모든 남성은 말살된다. 현대사회에서 남성이 모두 말살되면 당연히 인류는 100년 이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겠지만, 동성끼리 출산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동성애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그것을 원하지 않은 자에겐 폭력에 가깝다. 물론 시대와 사회가 세월에 따라 크게 변화하여 인간의 인식과 가치관이 바뀌면 다른 현상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도 생물학적으로 동물이다. 영혼을 가질 수 있더라도 인간이 동물이란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동물과 다른 점은 널리 통용되듯이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이성 그 자체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망한다. 결국 경제적으로 빈부격차나 젊은 세대의 비혼 급증도 결국 이성적 판단이다. 이기심이 이성적 판단이 기준이 되었으니 우리 사회나 일본 사회나 그런 것이고, 위와 같은 작품들도 그런 인간들의 사회상을 반영하듯이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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