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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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김연수의 작품 3개가 좋았고, 그 외엔 딱히 와닿는 작품이 없었다. 이효석 문학상이 어딘가 나와 맞지 않나 싶게.

특히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은 매우.
수리탐구영역 같은 뉘앙스의 모르는 영역에 대한 인간들의 관계에 관하여. 어느 틈엔가 벌어져 버린 그런 사이에 관하여.

단편들이 잘 읽히는 시즌이고, 이 참에 많이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하지, 시간이 뜻대로 나질 않고 괜히 바쁨의 감각으로 살고 있다. 더 읽고 싶다.

- 낮달을 오래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듯 했고 문득 자신의 페인팅에서도 색과 기운을 조금씩 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세지지 말자 그런 생각. 조금 연해도 된다고, 묽어도 된다고, 빛나지 않아도, 선연하지 않아도, 쨍하지 않아도, 지워질 듯 아슬해도 괜찮다고, 겨우 간신해도...... 그런 생각 끝에 그는 마치 그 생각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라도 한 듯 여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 10, 모르는 영역, 권여선

- 순간 다영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고, 그게 그러니까...... 한 번은...... 한 번은 해도 됩니까 묻던 다영의 말이 식당 여자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그는 숨이 막힐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자갈 위에 주저앉았다. 과연 그렇다. 왜 한 번은 해도 되나? - 28, 모르는 영역, 권여선

- 거기에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가 있었다.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자신 만의 세계. 하루에 일 만톤에 가까운 네이팜탄과 칠 백톤이 넘는 폭탄이 떨어지는등 종일토록 불비가 쏟아져 평양 곳곳이 불타오르던 순간에도 기행은 적개심 가득한 문장을 통해서만 그 잔인한 세계의 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살던 집도 불타버리고, 빼곡히 꽂혀 있던 책이며 은은하게 풍기던 커피 향내 같은 것이 모두 사라지고, 아내와 어린 것들과도 헤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문자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문자들을 쓰거나 읽을 수 있어 그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그 언어와 문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행은 궁금했다. 자신의 것인가, 당의 것인가? 인민들의 것인가? 아니면 수령의 것인가? - 179, 그 밤과 마음, 김연수

- 아침이 되어 재를 치우느라고 난로 아래쪽의 재받이통을 꺼내니 타버린 종잇조각들이 있었따. 혹시나 해서 손끝으로 집어 들어 살펴보니 글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비비니 종이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먼지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기행은 무척 기뻤다. 자신이 쓴 글자들이 강철이나 바위 같은 것이 아니어서 사그라드는 불씨에도 쉽게 타버려 ㅓㄴ지처럼 사라지는 것들이어서. - 191, 그 밤과 마음, 김연수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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